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한 번에 딱딱 알아듣지 못해먹는 건 누구랑 똑같네.”
혼잣말을 한 태무는 이상운의 왼쪽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이상운이 태무의 팔을 잡아 세우고 앞으로 가 말했다.
“이 개새끼가 정말 미쳤나?”
“어. 미쳤어. 그러니까, 미친 개새끼한테 물리기 싫으면, 도망가. 월!”
고개를 숙 내민 태무가 장난스럽게 개 짖는 흉내를 내고는 살짝 웃어 보이자 상운이 몸을 뒤로 살짝 뺐다.
태무는 몸을 펴 상운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상운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려는데, 그냥 놔줄 상운이 아니었다.
상운이 지나가려는 태무의 어깨를 잡아당겨 태무의 몸을 자신의 앞에 세웠다.
“이 좆같은 새끼가 선배한테 미쳤나?”
웃고 있었던 태무의 표정이 싹 굳었다.
상운은 두 손으로 태무의 멱살을 꽉 쥐었다.
우선 태무는 겁에 질려 옆에 서 있던 창욱의 팔을 잡아 밀었다. 여기 있어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가 있어.”
눈치를 보던 창욱은 태무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말대꾸도 하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멀어지면서도 힐끗거리며 두 사람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때,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상운의 거친 손길을 누군가 제지했고, 고개를 돌려보니 이상운의 손목을 정태우가 잡고 있었다.
태우는 이상운의 손을 잡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랐다.
“둘이 뭐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눈치 없는 사람인 척 굴었다.
태우가 선배이기에 이상운도 더 이상 일을 키우지 못하겠는지 한숨만 푹 쉬었다.
손에 들어갔던 힘을 뺀 상운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태우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이상운이 멀어지고 난 후 태우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피곤하게 왜 그러고 사냐?”
걱정에서 하는 소리였다.
요즘 들어 매번 이상한 일에 엮이는 것 같아서 그를 보면 걱정이 밀려왔기에 하는 소리였다.
“그러게 누가 도와 달라고 했어요?”
태무는 입술을 툭 내밀고 퉁퉁거렸다.
도와줘서 고맙기는 했으나, 괜한 타박에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이렇고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은 아니었다.
평온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마음도 모르고 쉽게 말하는 것 같아 말이 툭 밉게 나가버렸다.
그러자 태우가 어린아이 꾸짖듯 태무의 머리를 쿡 쥐어박았다.
“그럼 가만히 있냐? 동생이 당하고 있는데?”
“아! 씨!”
“아~ 씨?”
태우는 태무의 머리를 또 한 대 쿡 쥐어박았다.
“아!”
태우는 살짝 웃으며 눈을 가늘고 날카롭게 뜨고 째려보는 태무를 뒤로하고 앞서 나갔다.
그는 머리를 한 손으로 비비적거리며 따라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뒤돌았던 창욱이 부러운 듯 힐끗 바라봤다.
그가 혼자가 아닌 게 무척 부러웠다.
알게 모르게 그의 주변으로 힘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게 무척이나 부러웠다.
*
경기가 시작되었다.
공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상대팀은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크리스의 공은 생각보다 좋았다.
빠르고 묵직하다가도 예상하기 힘든 각도로 휘어져 들어오는 스위퍼를 던져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스위퍼와 속도가 비슷한 슬라이더까지 던질 줄 알았기에, 타자들이 투수가 무슨 공을 던질 것인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7회 초
투수 크리스는 빠른 공을 주로 던져 힘이 조금 빠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마운드 위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공을 던지기 전 무슨 공을 던질지 궁금증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마운드 위에는 이상운이 서 있었다.
이상운은 빠른 볼을 못 친다는 단점이 있는 선수였다.
3 : 0이라는 숫자는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래서 더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이어졌다.
게다가 1루와 2루로 나가 있는 주자들은 빠른 볼을 치고 나갔기에 이번 타자 이상운과 투수 크리스의 대결이 무척 궁금해지는 상황이었다.
이상운은 생각했다.
‘힘이 떨어졌을 거야.’
‘두 번 연숙 빠른 볼에 맞았는데? 또 빠른 볼을 던진다고?’
‘아무리 내 약점이 속구라도, 자칫 잘못하면 홈런을 맞을 수 있는데?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이상운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사실 이상운은 경기를 하는 도중에 사람의 표정 변화를 읽는 것에 대해서 훈련이 되어 있던 선수였다. 부모님이 정신과 의사였고, 그래서 그런지 심리적인 변화를 느낄 때 선수들의 표정의 변화에 대해서 잘 알아차렸다.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구종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수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는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선수이기도 했지만, 많이 본 적 없는 투수였기에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략의 대상을 바꿨다.
“뭐 던질 생각이야?”
포수 윤석은 생각보다 익숙한 선수였다. 그랬기에 윤석을 공략하기로 마음을 바꾼 모양이었다.
투수가 잠시 로진백을 만지고 있을 때, 이상운이 윤석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그런데 말을 안 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윤석이 주저 없이 말했다.
“빠른 볼이요.”
“또?”
이상운의 예상에 빗나가는 말이었다.
“네.”
“거짓말?”
이상운은 거짓말이라는 말을 하고 윤석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윤석의 무표정이던 얼굴에 어색하게 웃음이 흘렀다.
“제가 왜 거, 거짓 말을 합니까?”
말을 더듬은 윤석은 말을 다 한 뒤,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윤석의 모습을 보던 이상운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고 윤석을 바라봤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 거짓말 진짜 못해.”
“네?”
윤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속구 사인 안 낼 거잖아?”
“정말 빠른 볼이라니까요!”
윤석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이상운은 더 여유 있게 웃었다.
“미친 새끼. 스위퍼지?”
“스위퍼 절대 아니에요!”
“스위퍼구나?”
한쪽 입술 끝을 올린 이상운은 여유가 넘쳤다.
“내가 너 하루 이틀 보냐?”
“그니까! 진짜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어. 많이 봤지. 그럴 때마다 어색했고.”
“아 씨! 됐거든요. 말 시키지 마요.”
윤석은 화를 내며 다시 앉았다.
사실 거짓말을 제법 못하긴 했다. 어색하게 웃거나 혹은 어색하게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투수가 자세를 잡았다.
이상운은 자신감이 넘쳤다.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윤석이었다.
타석에 들어섰을 때, 윤석이 거짓말을 하면 어색하게 웃거나 혹은 말을 더듬었던 것을 예리한 이상운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분명 스위퍼다.
이상운은 확신에 차 눈에 힘을 줬다.
투수는 자세를 잡고 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다리를 들었다. 투수 크리스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공을 던졌다.
머지않아 하얀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났다.
공은 쭉 빠르게 뻗어가 끝에 도착해서 그 구종을 결정했다.
휘이익!
퍼억!
묵직한 음을 낸 공은 포수 미트 안으로 빨려 들었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목소리를 듣고 휘두른 방망이를 땅 위로 떨어뜨린 이상운은 눈이 동그랗게 변해 포수 윤석을 바라봤다.
윤석은 일어나서 투수에게 공을 던져주며 오른쪽 입술을 쭉 내밀며 어깨를 살짝 들었다.
“거봐요. 나 거짓말 아니라니까?”
포수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빠른 직구였다.
윤석은 곧바로 더그아웃에 있던 태무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는 순간 서로를 보고 웃었다.
이건 태무의 힌트였다.
윤석이 거짓말을 할 때 보이던 특징을 알려줬고, 만약 이상운이 타석에서 말을 걸어온다면 역으로 그 어색한 표정을 이용하라고 조언을 해줬다.
이상운은 사람 표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공을 치는 사람이라고 정보를 줬기에 할 수 있던 행동이었다.
그 힌트를 받은 윤석이 경기 전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연습했다.
“너 뭐야?”
이상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거울 앞에서 얼마나 연습했는지 알아요? 연기 잘했죠? 나?”
“뭐?!”
“빨리 방망이 들어요. 공 그냥 지나가겠네.”
윤석은 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고, 아직도 정신이 없었던 상운은 타석에 다시 서서 방망이를 들었다.
그 후 바깥쪽 라인에 걸치는 직구가 그냥 지나갔다.
속도가 빠르긴 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간 이유가 있었다.
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뭔가 당했다는 생각에 억울해서 무슨 공이 올 것인지 노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헛스윙을 해버렸다.
어이없게 2스트라이크를 맞아버린 이상운은 발로 땅을 치며 눈을 깊게 감았다.
“씨발.”
나직이 욕을 내뱉은 이상운은 얼굴이 구겼다.
윤석은 이상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태풍은 몰아칠 때 더 무서운 법이다.
포수가 사인을 내고, 크리스는 준비를 하자마자 공을 던졌다.
공은 타자가 자세를 잡자마자 투수의 손을 떠났고, 위력적인 소음을 냈다.
휘이익!
푸억!
공은 끝에 가서 휘어지는 스위퍼였다.
끝에 가서 예상치 못하게 휘어졌기에 이미 정신이 털린 이상운은 허공에 방망이를 휘둘렀고,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위풍당당하게 나왔던 처음과 다르게 이상운의 끝은 공 3개로 아웃을 당했다.
아웃당해 들어가려고 몸을 돌리는 이상운에게 윤석이 조용히 속삭였다.
“속구 던진다고 했잖아요. 믿지 그랬어요? 나는 선배처럼 비겁하게 야구하지 않는데?”
“뭐?”
윤석의 말에 상운은 들어가다 말고 발을 멈춰 윤석을 바라봤고, 윤석은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선배.”
“뭐라고 했냐 너?”
상운은 몸을 모두 돌렸고, 곧 싸움이라도 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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