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투수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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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
작품등록일 :
2024.05.08 10:59
최근연재일 :
2024.07.1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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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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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DUMMY


경기장은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기자들이 경기장 주변에 몰려 플래시를 터트리고, 조창욱의 출근만 기다렸으나 창욱은 태무의 차를 타고 경기장 안으로 바로 들어왔기에 성가신 기자들의 질문을 피할 수 있었다.


이상운은 어제 경기를 졌음에도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발걸음을 가볍게 통통 튀어가며 걷는 것을 보면 상운의 지금 감정을 예상할 수 있었다.


구장 복도에서 화장실을 찾아가던 이상운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지 가던 발을 멈췄다.


“그러게 시키는 대로 하지 그랬어?”


거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더니, 거들먹거리는 말투로 상운이 창욱을 꾸짖었다.


한숨이 푹 나왔다. 한쪽 눈매를 찡그린 태무가 물었다.


“하- 얼마나 더 시키는 대로 해?”


“네가 뭘 안다고 나서?”


창욱이 가던 길을 막고 서서, 창욱과 이야기 하던 상운은 대화 중에 끼어든 태무의 행동이 몹시 불편했는지 콧방울을 벌름거리며 못난 표정을 지었다.


태무는 앞으로 한발 다가가 상운의 오른쪽 가슴을 주먹으로 툭 툭 치며 말했다.


“당신 입맛에 맞는 공 던져 줬는데, 자기가 못 치고 남 탓하는 거잖아 그쪽.”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공이 힘이 있어 상운이 안타를 만들지 못하긴 했지만, 정면 승부를 한다고 생각하고 상운이 좋아하는 구종을 던져줬다.


비록 그 공이 쓸데없이 좋은 공이긴 했으나, 바라는 구종을 던졌는데 못 친 건 분명 상운이었다.


그러나 공을 못 친 것은 상운 본인이면서, 좋아하는 구종을 안 던졌다는 억지를 피우며 기자들에게 창욱의 사진을 뿌려버렸다.


이렇게 뿌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태무도 그리고 사진의 주인공이던 창욱도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그만해요. 형.”


태무가 불나방처럼 달려들려 하자 창욱이 태무의 몸을 한 손으로 막았다.


그러자 태무는 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정은호가 다가왔다.


“조창욱, 너 감독님께 가봐.”


“아, 네.”


마침 반가운 소리였다.


여기에 더 있어봐야 싸움이 커질 것 같았다.


창욱은 태무의 팔을 끌고 상운의 앞에서 몸을 피했다.


상운과 멀어진 것을 느낀 창욱은 태무의 팔을 놔줬다.


감독실로 창욱만 오라고 했음에도 태무는 창욱의 옆을 나란히 걸었다.


감독실로 발을 옮기던 창욱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 어쩌죠?”


사실 창욱은 자신이 잘못한 게 없었다.


그저 덫에 걸린 것 분이었다.


그것을 자신이 알면서도 오늘 구장 주변에 깔린 기자들을 보기 전까지 당당했던 마음이 기자들을 보고 난 이후 혹시나 일이 잘못될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감독님까지 부르셨는데, 감독님은 또 무슨 호통을 칠지 겁이 났다.


“너 뭐 잘못했냐?”


“아니요.”


창욱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걱정 마. 다 해결해 줄 테니까.”


태무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지 조금 걷던 창욱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야구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죠...”


창욱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게 무서운 게 아니었다.


이렇게 터지고 나니까 알겠다.


자신이 야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야구를 못할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창욱의 숙여진 뒤통수를 태무가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그러자 창욱은 뒤통수를 잡고 고개를 들었다.


“아! 왜 때려요?”


“네가 별 이상한 소리 아니까 정신 차리라고 그랬다! 왜?! 그렇게 안되니까 걱정 마! 그리고 저 새끼들은 정말 뇌가 없는 거 아니냐?”


태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앞일은 생각도 안 하고 행동하는 놈들의 모습이 정말 미친 놈들 같았다.


이렇게 밝히고 나면 다음부터는 약점을 가지고 협박 하지 못할 텐데, 뭘 믿고 이렇게 터트린 것인지 궁금했다.


뇌의 구조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오늘만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저 말고도 이렇게 협박하는 사람들에게 보라고 하는 거겠죠, 정말 터트릴 수 있으니 조심하고 시키는 대로 해라.”


창욱은 힘이 쭉 빠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 말했다.


“그런 거라면 잘못 생각했네.”


고개를 숙였던 창욱은 고개를 들었다.


“네?”


“이제 협박 같은 거 안 통할 거라는 걸, 똑바로 알려줄 거거든.”


"어떻게 알려줘요?"


"똑같이."


사실 태무는 생각도 못 했다.


그들의 만행을 언론에 제보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만행을 막고 야구로 복수를 하며, 그들에게 당한 이들을 찾아내서 다 같이 고소하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참교육하는 방법을 알려주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똑같이요? 그렇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쉬워. 역풍 때리기 딱 좋은 날씨잖아.”


그동안은 증거가 없어서 아무 말 못 하고 있었지만, 증거가 있는 지금 참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감독실에 도착했다.


감독 까만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개화 감독은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태블릿을 바라봤다. 태블릿 안에는 선수들의 수치가 담겨 있었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라도 자신이 빠트린 부분이 있는지 보고 있던 중이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김개화 감독은 창욱이 들어오고 그 뒤에 태무가 따라 들어오자 물었다.


“넌 왜 와?”


“제가 키를 쥐고 있거든요.”


창욱과 태무는 커피를 마시고 있던 감독의 앞에 가서 앉았다.


태무는 감독을 보고 물었다.


“되게 여유 있으시네요?”


사실 감독이 불렀을 때는 물건이 날아오거나 혹은 호통이 날아올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호통은커녕 감독은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근심이 없는 표정으로 수치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 감독을 보니 정말 속을 모르겠다.


감독은 마시던 따뜻한 커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사실 아니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믿으세요?”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저번부터 뭔가 아는 것 같았던 김개화 감독은 그 속내를 말하지 않으니 도무지 뭘 알고 있는 것인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태무는 김개화 감독을 얇아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usb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


“구단 측에서 잘 정리해 주세요.”


감독은 그 까맣고 작은 usb를 들었다.


사기꾼 여자와 두현의 말이 녹음 된 파일과 사기꾼 여자와 했던 대화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거면 다 해결되는 건가?”


“네.”


“그래? 그거 잘 됐군.”


김개화 감독은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원래는 정태우의 선발 날이었다. 그러나 강태무와 바꾸었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던 탓에 바뀐 것이다. 그러나 태무는 컨디션이 좋아 보였기에 바꿨다.


그래서 오늘 선발은 태무였다.


태무가 일어나자 창욱도 일어났다. 그런데 나가던 태무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창욱도 뒤를 돌았다.


“아! 때를 잘 맞추셔야 합니다.”


다시 커피를 들었던 감독은 고개를 돌렸다.


“뭐?”


“터트리는 때를 잘 맞추셔야 한다고요.”


“그걸 왜 잘 맞춰야 하지?”


“그런 비겁한 팀한테, 오늘 경기 질 수 없잖아요?”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꼭 경기 시작하고 저희가 위험할 때 터트려주세요.”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


감독은 웃으며 다시 커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뒀다.


“에이, 술수에 능한 거죠?”


그는 한쪽 손을 흔들며 웃었다.


피식 웃은 감독은 그의 뜻을 모두 이해한 모양이었다.


감독실에서 나온 창욱은 그의 뒤를 빠짝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시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포크 볼 던질때, 어떤 포크 볼이 잘 먹히냐?”


“네?”


뜬금없는 포크 볼 물음에 창욱이 의도를 몰라 다시 되물었다.


그러자 창욱 쪽으로 고개를 돌린 태무의 언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포크 볼 말이야, 어떤 포크볼이 잘 먹히냐고?”


“그거야 타석 직전에 낙차가 커야 잘 못 치죠.”


“거봐, 직전에 낙차가 커야 못 치지?”


“네. 그런데 그게 지금 왜?”


창욱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태무가 창욱의 머리를 툭툭 쳤다.


“지금 그 새끼들 마음이 어떻겠냐?”


“좋겠죠?”


“맞지? 그런데 중요할 때, 자기가 주인공 되게 생겼을 때 펑! 나쁜 소식이 터진다면 어떻겠어?”


“엄청 화 나겠죠.”


“그치? 좋은 거랑 화 나는 게 단숨에 일어나면 경기에 영향을 주겠냐? 안 주겠냐?”


“... 주겠죠? 아~”


창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저 새끼 실컷 좋아하라고 해.”


태무는 마침 눈앞에 나타난 상운을 보고 말했다.


말하면서도 입술 끝이 올라갔다.


*


경기 시작 전 상운이 찾아왔다.


“너 오늘 경기 나와?”


창욱에게 묻는 말이었다.


“모르죠.”


알려주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직 알 수는 없었다.


어제 나오기는 했지만, 마무리하러 올라올 수도 있었다.


그건 감독이 결정하는 일이었다.


“너 여론 안 좋던데? 올라올 수 있냐? 풋"


낄낄거리며 나오려는 웃음을 한 손으로 막으며 야비한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태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상운을 바라보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열이 받았는지 지나치려던 태무의 어깨를 잡은 상운이 말했다.


“너도 조심해라.”


깊은 한숨을 후- 상운의 얼굴에 내뱉었다.


"뭐하는 거야!"


상운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오자, 태무가 상운의 어깨를 안쓰럽다는 듯 툭툭 쳤다.


“좋을 때 많이 웃어두세요.”


“뭐?”


“오늘 경기 지고, 많이 징징거려야 할 텐데.”


태무는 살짝 웃고는 마운드로 향했다.


경기는 그렇게 악감정이 가득 찬 채로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마운드 위에 태무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3회가 지나가기까지 타석에 올라온 타자들은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태무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번에는 패스트볼 아니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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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우리 팀 24.07.16 58 0 12쪽
»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24.07.15 64 0 10쪽
53 돌려줄 시간 24.07.12 78 0 10쪽
52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24.07.11 77 0 10쪽
51 끝까지 봐주세요.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 24.07.10 73 0 11쪽
50 하찮은 팀은 없다 24.07.09 85 0 11쪽
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4.07.08 89 0 11쪽
48 결정구 24.07.05 83 1 10쪽
47 조력자 24.07.04 90 1 14쪽
46 신도 돕고 싶은 팀 24.07.03 102 1 13쪽
45 보이면 쳐! 무작정 쳐! 다 쳐! 24.07.02 106 1 12쪽
44 그런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거지 24.07.01 118 2 11쪽
43 아주 더러운 반칙 24.06.28 128 2 12쪽
42 공도 사람이 던지는 것 24.06.27 125 2 13쪽
41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24.06.26 134 2 13쪽
40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24.06.25 134 3 14쪽
39 부주장 24.06.24 146 3 12쪽
38 다시 마운드로 24.06.21 165 3 13쪽
37 죽음 24.06.20 174 3 11쪽
36 해결 못해. 24.06.19 159 2 12쪽
35 각성 24.06.18 184 3 13쪽
34 각성 24.06.17 197 3 10쪽
33 확! 인! 24.06.14 173 4 11쪽
32 전조등 24.06.13 180 4 12쪽
31 마지막 경기 24.06.12 192 4 11쪽
30 복수를 위해 24.06.11 218 4 10쪽
29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24.06.10 208 4 11쪽
28 동기 24.06.07 210 5 11쪽
27 다른 방법 있습니까? 24.06.06 226 5 12쪽
26 이제부터 시작이야 24.06.05 252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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