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루시드.
어린 손주가 잠을 자지 않자 할아버지는 침대 옆에 앉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할아버지를 올려봤다.
“꿈 이야기해줘.”
할아버지는 종종 자신이 꿨던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꾸나. 전에 어디까지 이야기해 줬더라?”
“사람들을 데리고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어.”
할아버지가 끄덕였다.
“그래. 더는 살던 곳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거든.”
“왜? 집주인이 나가래?”
어린아이답지 않은 말에 할아버지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비슷하지. 아무튼, 처음에는 사람들이 반대했단다. 오랫동안 살던 집을 두고 갈 수 없다고 말이야.”
손주는 갸우뚱하며 물었다.
“계속 살 수 없게 되었다면서?”
할아버지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감성적이라서 말이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단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인 데라 제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할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곳에선 사람에게 서로를 끄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믿는단다. 인연이나 운명과 비슷한 느낌인데, 말로는 조금 설명하기 어렵구나.”
손주는 눈을 깜빡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힘에 이끌려 누군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 때 ‘인 데라 제라’라고 인사를 한단다.”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듣는 손주를 보며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지.”
아이가 먼저 말했다.
“인 데라 제라.”
할아버지가 손주의 눈을 보며 인사를 받아줬다.
“인 데라 제라.”
이어 할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시간이 지나 손주가 잠이 들려 하자 이불을 덮어주며 일어났다.
“다음에 또 이야기해 줄 테니 그만 자자.”
아이는 이불 밖으로 손을 꺼내 흔들며 다시 말했다.
“인 데라 제라.”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불을 껐다.
세월이 흘러 쇠약해진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슬픈 얼굴을 한 손주의 손을 잡았다.
“이제야 확인하러 갈 수 있겠구나.”
아이 때와 달리 성인이 된 손주의 얼굴에는 손바닥 크기의 큰 화상이 존재했다.
“내가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죽은 거로 생각해라.”
손주는 대답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뒷일은 잘 정리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응.”
손주는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못내 웃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머리맡에 둔 알약 두 개를 입으로 가져갔다.
* * *
프로게이머 고인수.
그는 프로 데뷔 전부터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큰 관심을 받았다.
그와 싸워 본 상대들은 보통 비슷한 말을 남기곤 했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이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역전을 당해서 지는 경우가 많다.
팀플레이 게임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았겠지’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팀을 해본 자들의 경험담이 퍼지고, 전적이 쌓일수록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그와 같은 편을 하면 지고 있어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생긴다.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나서고 그 결과는 대부분 좋다.
오래지 않아 프로게임 구단들의 관심도 끌게 되고 입단을 제의받는데, 명문 팀들의 제의를 거절하며 그가 입단한 곳은 언제 강등당할지 모르는 하위권 팀이었다.
그리고 주목받는 프로 데뷔전.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승리를 함으로써 첫발을 내밀었고, 승리 후의 인터뷰가 커뮤니티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명문 팀을 거절하고 하위권 팀에 입단한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다른 팀과는 달리 제 게임 스타일에 전적으로 맞춰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능력을 높이 사는 팀에 간 것일 뿐입니다.”
“그럼 그 스타일이 어떤 스타일인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인수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랄까요. 비유하자면 ‘황새의 뜻을 뱁새가 어찌 알랴’라고 하면 좋겠네요.”
다른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발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다른 팀을 도발하려는 의도인가요?”
인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들리셨다면 잘 들으신 겁니다.”
“아. 네···.”
당황하는 인터뷰어에게 인수가 다시 말했다.
“농담입니다.”
농담이라 말은 했지만, 이 발언 때문에 시작부터 적잖은 안티팬들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시즌 후반. 안티팬들의 야유를 등에 업은 채로 전 시즌 4할을 간신히 넘겼던 팀 승률을 6할까지 끌어올렸고, 결국엔 우승까지 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저 팀원 데리고 우승까지 했으면 패기로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무슨 매 경기가 드라마냐.
-우리 고인물 이름값 하네.
이름 때문에 별명도 붙었고, 건방진 태도에 그를 싫어했던 안티팬들도 조금씩 그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우승 후에 진행된 인터뷰.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연습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고 하는데, 따로 승리의 비결이 있는 건가요?”
인수는 덤덤히 대답했다.
“누군가 99의 노력을 해도 1의 재능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고 했죠. 저는 그저 남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재능을 더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의외의 대답에 인터뷰어가 물었다.
“돈이 많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면 금수저라 부르는데, 게임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면 금마우스라고 해야 할까요?”
인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인터뷰어를 쳐다봤고, 인터뷰어가 바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재미없는 농담이었지만 이 인터뷰 때문에 인수에게 ‘골든 마우스’, ‘GM'과 같은 별명이 추가로 붙게 되었다.
팬들의 뇌리에 박히는 첫 시즌. 그의 장래는 더없이 밝아 보였다.
많은 기대를 받는 다음 시즌. 예상과는 달리 불행히도 그의 경력은 허무하게 막을 내려버렸다.
우승 기념으로 가족과 여행을 하다가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부모님을 잃고,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는 장애를 갖게 된 인수.
처음에는 다리가 불편하더라도 손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프로 생활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를 원하지 않았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경기 내용과 관계없이 이겨도 욕을 먹었고, 져도 욕을 먹었다. 물론 욕이야 이전에도 많이 먹었지만, 내용이 달랐다.
대개는 인신공격성 발언이었기에 당연히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또한, 매스컴에서 있지도 않은 팀 내 불화설과 패배의 원인으로 그를 지목하는 등의 부정적인 내용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결국, 인수는 한 악플 때문에 시즌 도중에 은퇴를 결심했다.
-구차하게 병신으로 살아가느니 부모님 따라가지 그랬냐? 욕먹어가면서 게임을 하는 거 보면 참 좋아하시겠다. 네가 우승만 안 했어도 부모님은 살아 계셨을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잊어보려 노력하던 중에 날아온 비수는 회복 불가능한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
그 뒤로 인수는 부모님이 남긴 얼마 되지 않은 유산과 프로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합쳐 피시방을 차렸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기량이 꺾인 것은 아니기에 그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 한동안은 장사가 잘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세계를 휩쓴 전염병에 의한 강제 휴업을 버티지 못해 5천만 원의 빚을 남기고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인수는 이따금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꾸다가 눈을 뜨곤 했다.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몸을 일으키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은 창문 사이로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5평짜리 꿉꿉한 반지하 방과 아침 9시를 표시하는 핸드폰이었다.
사나운 꿈자리에 기분이 안 좋을 만도 했지만, 인수는 피식 웃고는 일어나 저는 다리를 이끌고 컴퓨터 앞에 힘겹게 앉았다.
-꿈이 현실이 됩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보이는 슬로건은 제약 회사인 솜니아가 만든 루시드의 광고였다.
인수는 모니터 넘어 광고를 지켜봤다.
‘꿈이라···.’
막 악몽에서 깨어난 인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꿈이 아니겠지.’
인수는 추억을 한 번 되새기고는 게임을 실행시켰다.
먹고 살기 위해 뭐라도 일을 해야 했지만,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게임 실력이 있어서 게임 관련된 일을 하며 근근이 먹고 사는 중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해보라는 말도 있었지만 다시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임에 접속하자 이따금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수를 타는 친구인 지훈이가 오랜만에 접속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게임 실력이 좋다 보니 어울리는 친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친 이후엔 대부분 소원해져 결국엔 지훈이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연락이 다 끊어진 상태였다.
-잘 지냈어?
메시지를 보내자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그럭저럭. 넌?
-뭐, 여전히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지.
언젠가부터 잠수의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넘어가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같이 한 게임 할까?
지훈의 제안에 인수는 아쉽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일해야 해서 안 돼. 이번 달엔 수입이 줄어서 빠듯하다고.
지훈이 가볍게 대꾸했다.
-약한 모습이네. 우리 황금 마우스의 패기는 어디로 갔어?
-패기가 밥 먹여주냐? 그따위 거 잊은 지 오래다.
-욕부터 박을 줄 알았는데, 웬일이래?
-아픔은 인간의 비료지. 너도 빨리 어른이 되어라.
지훈이 발끈하며 대꾸했다.
-어른이 게임 하면서 돈 버냐?
-백수보다는 낫지.
지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로 줄곧 백수 상태였다.
-너무 뭐라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이번에 일거리 하나 건졌다.
-뭔데?
-루시드라는 약 광고 본 적 있냐? 요새 꽤 여기저기에서 말이 많은데 말이야.
마침 조금 전에 봤던 그 광고였다.
-어. 그런데 그게 왜?
-그 약이 이번에 임상 시험에 들어가며 알바를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했거든.
-임상 시험? 위험한 거 아니야?
-3상이라서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고 하더라고. 이게 경쟁률이 꽤 높았다고 하던데 운이 좋았어.
-잘됐네.
-오늘 저녁부터 1박 2일로 진행된다고 하네. 끝나면 맥주 들고 찾아갈게.
-알았다. 기다리마.
인수는 진심으로 잘 됐다고 생각하며 평소와 같이 일을 시작했다.
다음날 오후. 일을 마치고 찾아온 지훈이 반지하 방에 들어오며 감탄했다. 집안에 많은 물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모두 가지런히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여전히 깔끔한 방이네. 몸도 불편하면서, 청소하는 거 안 귀찮아?”
“청소는 귀찮지. 하지만 정리는 안 귀찮아.”
“청소랑 정리랑 다른 건가?”
“어. 달라.”
지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달라? 어떻게?”
“청소는 안 한다고 해서 불편해지지 않지만, 정리는 하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차이가 있지.”
인수의 대답을 듣고는 지훈이 다시 한번 방을 훑어보았다. 여기저기 먼지가 쌓여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깨끗하게 청소를 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
지훈은 이어 맥주가 들어있는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가끔은 바깥바람도 쐬어야지. 나가서 마시자.”
“그럴까?”
인수는 일어나 책상 옆에 있는 목발을 짚을 때였다. 컴퓨터 옆에 ‘운수 좋은 날’이라 적힌 책 한 권이 지훈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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