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갈누.

인수는 이런 식의 싸움에 관한 토론을 처음 봐서 매우 흥미로움을 느끼며 구경만 하고 있던 차였다.
서로 열심히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의견이 충돌하더니 시선이 몰렸고, 다들 인수의 답을 기다리는 눈빛을 보였다.
갑작스런 상황에 답을 하지 못하자 올운이 물었다.
“인수 님은 어떻게 보였나요?”
어서 먹이를 달라는 시선을 보며 인수는 잠시 생각하고 답했다.
“변수가 많아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하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모두 맞는 말처럼 들리고요. 다만 제가 제란 님의 입장이었다면 상대의 조급함을 알아차리고 시간을 끌기 위해 거리를 벌렸을 것입니다.”
이어 휴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휴인 님의 입장이었다면 디네 님의 말처럼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높이기 위해 승부를 걸었을 거 같고요. 아, 물론 도망간다는 선택지가 있다면 도망갔을 겁니다. 제란 님은 휴인 님을 쫓지 못할 거로 보였으니까요.”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 같지 않아 반박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또 다른 질문이 없자 인수가 물었다.
“그런데 타국의 마법사들끼리도 이런 식으로 대련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렇습니까?”
디네가 대답했다.
“설마요. 타국은커녕 다른 가문과도 이러지 않아요. 이스트모스 대표 정도나 실력 증진을 위해 대련과 토론을 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죠.”
올운이 덧붙였다.
“목숨을 걸지 않는 카스토 경우는 대련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엔 토론이 없죠.”
“그러면 지금은 왜 하는 거죠?”
디네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당신에게서 뭐라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디네의 의견에 딱히 부정하는 발언은 없었다.
‘너무 날로 먹히면 안 되겠지?’
인수가 불편한 척 인상을 쓰자 디네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관찰자답게 눈치가 매우 빨랐다.
“그런데 그냥 도시로 돌아가도 된다고요?”
“네. 3년을 약속한 올운을 제외하고는 언제든지 돌아가도 됩니다. 물론 다시 오시는 것도 환영이고요.”
인수가 다시 돌아와도 된다는 말을 하자 디네는 한 사람이 떠오르면서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광산의 위치를 어떻게 숨기려고요?”
인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젠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숨길 계획이었는데요. 설마 누가 마성이 지키는 하급 광산을 차지하겠다고 쳐들어올까 싶어서요. 굳이 떠벌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비밀로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네요. 그럼 내일 도시로 가서 사람 한 명 데리고 와도 되죠?”
“비밀도 아니고 이제는 딱히 상관없습니다만, 누구죠?”
“전 이스트모스 대표인데, 여기 오면 좋아할 거 같아서 말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혹시 혼자 오갈 수 있으신가요?”
인수야 호구가 있어서 길 찾는 데에 문제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숲길은 외우기 쉽지 않았다.
“예. 혹시 몰라 라모트를 하나 가지고 왔거든요.”
마을에 위치를 저장하는 마법 물품인 라모트가 몇 개 더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알아봐야지. 일단은 있는 걸 활용하자.’
“그럼 얼마든지 다녀오셔도 됩니다. 그리고 돌아온 다음엔 다른 분께도 빌려주시면 더 좋겠네요.”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그럴게요.”
디네는 곧장 다시 도시로 갈 생각을 했다.
‘설마 하프까지 끌어들이려는 함정은 아니겠지?’
디네는 걱정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억측이겠지.’
인수는 광산마을의 공방으로 향했다.
갈누는 새로 들어온 조수 세 명을 가르치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직 라비엔 공방의 협력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장에 둘 양산형 제품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라비엔의 양산형 매장이 열리자마자 수요가 많을 거로 예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정 수량 이상은 만들어 놓아야 했다.
“들어가도 되나요?”
인수가 공방에 들어가며 물었고 갈누가 작업을 멈추고 조수들에게 말했다.
“그럼 가르쳐 준 것 연습하고 계세요.”
그는 이어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인수는 공방에 있는 가죽을 만져보며 말했다.
“대충 몬스터의 가죽 중에 고급 가죽이 있다는 것은 아는데 말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물어보려고요.”
“직접 구하시려고요?”
“필요하다면 그래야지요.”
갈누가 가죽 원단 하나를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일단 고급 가죽으로 손꼽는 것 중에 현실적으로 핸드백에 어울리는 가죽이라면 아얀하크라 가죽이 있습니다. 지금 작업 중인 가죽이기도 하고요.”
아얀하크 가죽은 인수도 구해주면서 알고 있었다.
갈누가 설명을 이었다.
“고급 가죽 중에 그나마 구하기 가장 쉬운 가죽이죠. 개체도 비교적 많고 사냥 난이도도 2급이니까요.”
“단점은요?”
“단점을 굳이 꼽자면 소형 몬스터라 한 마리당 나오는 가죽이 적다는 거랄까요. 그나마 핸드백은 가죽이 많이 드는 게 아니라서 적당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확실히 큰 단점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가죽의 등급을 정하는 기준은 뭐죠?”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핸드백이라면 미적인 아름다움이 첫째겠지요. 다음으로는 질감과 내구성이 중요합니다. 그 외에 보온성이나 마나 친화력, 강도 같은 것도 있지만 핸드백에는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건 다 이해가 갔지만 마나 친화력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마나 친화력은 뭘 뜻하는 말이죠?”
“보통 마법 물품을 만들 때 중요한 성질입니다. 특히 마갑을 만들 때 안감으로 사용되는 가죽의 마나 친화력이 중요합니다. 마나가 가죽에 흐르며 손실이 생기는데, 이 손실이 낮을수록 마나 친화력이 높다고 표현하죠.”
‘전선의 저항 같은 건가?’
인수는 나름의 정리를 하고 또 물었다.
“아까 현실적으로 어울리는 가죽이라 하셨는데, 현실적이지 않은 가죽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칼르아라는 몬스터가 있습니다. 아얀하크와 물성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워낙 개체가 적어서 희소성이 가치를 올리는 놈입니다. 사냥 난이도도 1급이고요. 구할 수만 있다면 최상의 가죽이죠.”
‘희소성이라···. 명품과 어울리는 말이네.’
갈누가 다음 몬스터를 이어 설명했다.
“다음으로 스쿠라라는 몬스터는 밀림에 사는 몬스터입니다. 이놈은 너무 멀어서 수급이 어려운 놈이죠. 가끔 밀림에서 던전을 탐험하는 탐사대가 부탁을 받고 가져오는 게 전부입니다.”
확실히 대량생산에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참고로 아얀하크나 칼르아, 스쿠라 모두 마나 친화력이 최상급은 아니라 마법 물품에 쓰이지는 않습니다.”
인수가 끄덕이며 물었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럼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라슈엘타입니다. 일단 마나 친화력이 현존하는 가죽 중에 가장 높아 마갑 재료로 최고라 칭하는 가죽입니다. 밀림에서만 서식하고 개체 수도 적어서 현실적으로는 마갑 제작에는 다른 가죽이 쓰이죠. 부르는 게 가격인 가죽입니다.”
“그 가죽으로 핸드백을 만들면 어떨까요?”
갈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단 본적도 없어서 뭐라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만 마갑 내피로 쓰이는 걸 보면 내구나 질감엔 문제없을 겁니다.”
인수가 생각을 하고 결정했다.
“좋습니다. 일단 초기 모델은 아얀하크로 통일하고 다른 희귀한 고급 가죽은 제가 구해보도록 하죠.”
“혹시 밀림에 가실 생각입니까?”
“네. 기왕 시간들여 가는 거 좋은 걸 구해 와야죠.”
“구할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한 번 시도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포기할 거니까요.”
“무두질은 할 줄 아시고요?”
“네. 문제없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최고급 가죽을 주는 몬스터를 하나씩 설명해 주세요.”
개수가 한둘이 아니어서 갈누가 말했다.
“수가 많은데, 적어드릴까요?”
인수는 호구를 믿었다.
“아니요. 기억력은 자신 있어서 천천히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갈누는 열 종류 정도의 몬스터를 설명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말을 보탰다.
“희귀한 가죽의 공통점은 밀림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밀림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일단 희귀합니다.”
밀림의 환경을 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몬스터든 밀림에서 잡으면 확인을 한 번 해보세요. 생김새는 어떤지, 촉감은 어떤지, 튼튼한지···.”
“그래야겠군요.”
인수는 계획을 세워봤다.
순간이동을 이용하면 하루면 깊은 숲에 갈 수 있고 밀림까지 거리가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이삼일 정도 열심히 달리면 도착할 것 같았다.
사냥시간까지 대략 일주일 정도.
몬스터 추적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갈누가 이야기한 라슈엘타는 못 찾을지 몰라도 다른 몬스터라면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방을 나선 인수는 적당히 채비를 갖추고 밀림으로 향했다.
휴인이 차를 타서 수련 중인 샤린에게 가져다주며 말을 걸었다.
“열심이시네요. 한잔 마시고 하세요.”
“딱히 할 거도 없는데 수련이나 하는 거죠.”
“아직 내려놓지 못하셨나 봐요?”
“내려놓다니요? 뭘요?”
“검이요.”
이해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나아가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다.
“검을 왜 내려놓아요? 아무리 당신에게 졌기로서니 그런 식의 언사는 좀 무례한 것 아닌가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휴인이 손을 내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절대 그런 말이 아니고요. 아오라 아니세요?”
아오라라는 말에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오해하셨나 보네요. 전 아오라가 아니에요.”
휴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당연히 저랑 같은 아오라인 줄 알았어요.”
“그러는 당신은 아오라인가 보죠?”
“네.”
“그리고 검은 놓았고요?”
“네.”
휴인은 살짝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강하네요?”
“제 몸 지킬 정도만 유지하는 정도에요.”
“그런데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강하면서 아오라는 왜 하시는 거죠? 보통 아오라는···. 아시잖아요?”
휴인이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상대가 진혈인 올운 님이기 때문이죠.”
“진혈이요?”
타국 마법사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게 많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진혈과 순혈 사이에 나오는 아이는 과연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요?”
굉장히 놀라운 말이었다.
“그렇다면 휴인 님은 순혈이란 말인가요?”
“맞아요.”
“순혈의 아오라라니, 처음 들어보네요.”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샤린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왈가왈부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다 생각이 다르니까요.”
휴인이 웃어 보였다.
“아무튼, 한 번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말 걸어봤어요. 한동안 같이 생활할 것 같은데, 데면데면하면 좀 그렇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수련하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요.”
친하게 지내서 득이 되는 건 약자인 샤린이었다.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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