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경쟁심.

손놈은 더는 말이 안 통할 거로 생각해 허리의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굳이 실력행사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실력에 자신 있는지 인수에게 경고까지 해주었고, 인수가 이어 물었다.
“하나만 묻자. 날 죽일 작정이냐?”
손놈이 거만하게 대답했다.
“너그럽게 팔 한쪽 잘라주마. 건방진 네 입을 탓해라.”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인수도 검을 뽑았다.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
길 위에서 마법사들이 검을 뽑아 들자 주변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고 이내 손놈이 달려들었다.
인수는 몇 번 검을 섞으며 손놈의 실력을 파악했다.
‘별거 없네. 지난번에 손봐줬던 건달 놈들 보다 조금 강한 정도인가?’
이어 가볍게 오른팔을 베어버렸다.
“크악!!”
“손이 없는 손놈이로군.”
선 채로 피 흘리는 어깨를 붙잡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손놈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을까? 어때? 10만 루로 받을래?”
손놈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수는 잘린 팔을 주워들으며 말했다.
“좋아. 목숨은 살려 주지. 그런데 이 팔은 값을 따로 치러야겠어. 원래는 버릴 생각이었는데, 봐준 거야.”
손놈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질문을 몇 가지 하지. 답을 잘하면 팔은 돌려줄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줄 거야.”
손놈은 어서 물어보라는 식으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누가 시킨 건지 알아?”
“모른다. 의뢰인을 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말이 좀 짧은 것 같은데, 아픈 거 같으니 그건 봐 줄게. 의뢰라면 어디서 받은 거지?”
“암살자 길드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이 암살자 길드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뭐, 상식적으로 불법적인 일을 시키는데 의뢰인의 신분을 밝히진 않았겠지. 그럼 의뢰비는 얼마야?”
“그것도 모른다. 난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온 것뿐이다.”
손놈이 개인적으로 받은 의뢰가 아닌 모양이었다.
“위? 그럼 넌 무슨 조직 같은 데에 속해있는 건가?”
“그렇다.”
“조직 이름은?”
손놈이 대답을 망설이자 인수가 잘린 팔을 흔들어 보였다.
“팔 붙이기 싫어?”
손놈은 이내 대답했다.
“타프룬이다.”
“하는 일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인수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이 되는 불법적인 일이겠지. 아니야? 억울하면 말해. 변명을 들어줄 생각은 있으니까.”
손놈은 대화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기에 변명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이 라비엔에 있는 건가?”
“그건 아니다. 란 도시에 거점이 있고, 지금은 파견 온 것뿐이다.”
“그럼 혹시 라비엔에 조직이 발을 넓힐 가능성이 있나?”
“그건 위에서 결정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돈이 된다고 판단하면 안 올 이유는 없다.”
“네가 생각하기에 돈이 될 것 같아?”
손놈은 인수를 빤히 보고는 답했다.
“좀 전까지는 돈이 되리라 판단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위에는 내 의견 따위는 듣지 않는다.”
‘이놈은 깃털일 뿐이란 소리군.’
이놈을 죽이든 살리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수는 팔을 던져주며 말했다.
“돌아가 잘 설득해봐. 이 도시에 발을 들여봤자 좋은 꼴 못 볼 거라고 말이야.”
손놈은 서둘러 치유 마법을 사용해 잘린 팔을 붙이며 말했다.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선다면 설령 타프룬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조직이 올 것이다.”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네 알 바 아니잖아?”
인수가 깜빡하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가지 말 안 한 게 있는데, 우리 뒤에는 란이 있다. 정확히는 란 플라가 있는 건데, 들어본 적 있어? 현인으로 꽤 유명하다고 하던데 말이야.”
손놈은 카스토렌에서 플라가 싸우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면 설득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겠지?”
인수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다시 매장으로 향했다.
로혼이 돌아온 인수를 반겼다.
“일은 잘 해결되었습니까?”
“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지요.”
인수는 사무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은 뒤 말했다.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고 영업을 방해하려고 온 모양입니다.”
“의뢰요? 누가 그런 의뢰를 한단 말입니까?”
“잘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만, 다음에 마법사를 데리고 오면 쉽게 해결될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인수는 이어 게시판을 들어 보이며 구상한 일을 하나 설명했다.
“게시판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많을수록 효과는 좋겠지만 비용이 많이 드니 일단 10명 정도 고용하는 거로 하죠. 그리고 그들에게 게시판에 글을 쓰게 시키는 겁니다.”
인수가 원하는 건 정확히 댓글 부대였다.
“어떤 글이요?”
“핸드백과 관련해서 옹호하는 글과 함께 갖고 싶다, 부럽다, 예쁘다와 같은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글이요. 핸드백을 갖고 있더니 주변에서 샘낸다와 같은 말도 좋겠네요.”
로혼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게시판에 거짓말한다고 해서 누가 잡아갑니까? 아니, 애초에 거짓말인지 판별할 수는 있나요?”
로혼이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잡아가는 건 아닙니다만, 양심의 문제랄까요?”
인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상황이 급하다 보니 평소 욕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양심이라···.”
인수는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이야기했다.
“좋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죠?”
“당연히 그편이 더 좋겠죠.”
“그럼 일단 10명을 모두 여자로 고용해주세요. 그리고 원하는 핸드백을 하나씩 주고 시작합시다. 그들이 핸드백을 들고 돌아다니며 느낀 감정을 그대로 게시판에 적어달라고 하면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니 문제없겠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핸드백을 가지고 가서 좋은 소리만 듣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좋은 말만 골라서 적어달라고 해야죠. 소식지에서 이미 안 좋은 쪽만 부각해서 글을 썼잖아요. 저희도 좋은 쪽만 글을 써야 균형이 맞지 않겠습니까?”
로혼은 직원인 자신을 설득시키려는 인수의 행동에 조금 감동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여성 10명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임금 같은 건 핸드백 가격을 고려해서 적당히 정해주세요.”
“맡겨주십시오.”
인수는 끄덕이며 다음 구상을 이어 설명했다.
“다음으로 No1.의 가격과 판매 순위를 공개할 생각입니다.”
“가격과 판매 순위를요?”
“네. 곧 귀빈 매장이 열리게 되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No.1 제품의 판매가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No.1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돈이 매우 많은 사람일 거고요. 당연히 그들은 자존심도 꽤 강할 텐데, 만약 그들의 이름이 걸린 모델의 가격과 순위가 발표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설명을 들으니 대략 그림이 그려졌다.
“가격이 낮으면 씀씀이가 너그럽지 못하다는 증거가 되고, 판매 순위가 낮으면 안목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되겠네요. 그리고 이는 매우 자존심이 상할 일이고요.”
인수가 씨익 웃었다.
“바로 그겁니다. 결국, 경쟁이 시작되겠죠.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는 저희 매출로 이어질 거고요.”
로혼이 감탄했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데요? 부자들의 경쟁심을 유발한다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게시판이 서민을 위한 전략이라면 판매 순위 공개는 귀빈을 위한 전략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시하신 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전 그럼 마법사를 데리러 마을에 다녀올게요.”
원래는 며칠 더 매장의 분위기를 보려고 했지만, 마법사를 데려오는 게 더 급해 보였다.
마을에 간 인수는 곧장 알렌을 찾아갔다.
“마을 생활은 좀 적응되셨나요?”
알렌이 멋쩍게 대답했다.
“적응이랄게 있나요.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실어 살아가는 거죠.”
‘원래 존댓말을 했던가?’
뭔가 태도가 공손해지고 딱히 불만을 표하지 않는 걸 보면 별문제 없어 보였다.
“비샨테에서 도망쳤다고 하셨죠?”
“그랬죠.”
“그럼 에란드의 라비엔 도시로 가시겠어요? 그곳에 가면 새 신분을 드릴게요. 그 대신 제 일을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년이면 됩니다.”
이 마을은 무슨 3년에 한이 맺혔나 싶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미 올운에게 3년을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인수는 몰랐던 이야기였고, 그래서 갑자기 공손해진 건가 싶었다.
“혹시 카스토에서 졌나요?”
“네.”
“그럼 먼저 올운을 보러 가야겠군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시죠.”
인수는 곧장 올운이 있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올운이 테크와 레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보였다.
딱히 열심히 가르쳐줄 걸 기대하지 않았는지라 의외였다.
올운이 인수를 보고 테크와 레이에게 훈련을 시키고는 다가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네. 교육은 어떻습니까?”
“레이는 혼혈치고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 1년 정도 수련하면 근처의 몬스터 정도는 무리 없이 사냥할 것 같습니다. 정말 마나지렁이의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수는 두루뭉술 대답했다.
“있을 겁니다. 제가 효과를 봤으니까요.”
올운이 의심의 눈초리로 인수를 봤다.
“그건 인수 님의 체질이 특이한 걸 수도 있죠. 마나의 선물일 수도 있고요.”
증명할 수도 없는 일 가지고 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테크는 어떻습니까?”
“평범한 마법사입니다. 나이도 어리지 않아 발전 가능성도 작죠. 기술적인 실력은 늘지라도 마법사로서의 실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냉정한 평가로군요.”
“헛된 꿈을 꾸며 시간 낭비하는 자들이 많으니까요. 냉정한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혹 그런 자 중 예상치 못하게 성장하는 예도 있지 않습니까?”
“틀린말은 아닙니다만, 그러려면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을 해야 하죠.”
인수가 끄덕였다.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도 있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테크는 그 재능 역시 뛰어나지 않아 보입니다.”
인수는 끄덕이고는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올운과 카스토를 진행해서 이기셨다고요? 그래서 3년간 수하로 지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죠.”
“그럼 수하의 수하인 알렌은 제 수하이기도 합니까?”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필요하시다면 당연히 인수 님의 수하이기도 하죠.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라비엔의 핸드백 매장에 호위 인력이 필요해져서요. 제가 비어있을 때도 있으니 알렌을 시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생각대로 하셔도 됩니다만, 혹시 제가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마을의 생활이 심심했기 때문에 시골 도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성이 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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