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결정.

85화 결정.
"형님은 알고 계셨어요?"
"몰랐어."
"옥황상제는요?"
"몰랐다."
사대신을 소멸시키고 형님과 옥황상제가 살고 있는 집에 왔다.
아스타가 어떻게 될 지 보기 위해 저승으로 갈까 했는데 새우초밥씨한테 물어보니까 자택대기 중이라 와봤자 의미없다고 해서 여기로 왔다.
여기오면 가족을 볼 수 있다.
내 눈으로 봐도 어떤 상태인 지 모르지만 봐야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온 거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
"사대신이 합쳐진 거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형님 질문에 생각에 빠지는 옥황상제.
생각을 해야될 정도면 본 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나보네. 아니면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 기억이 안나거나. 둘 중 하나지 뭐.
"기억이 안나."
내 예상대로네.
"확실한 건 합칠 수 있다는 걸 잊을 정도로 오래 됐어."
이 정도로 오래 됐을 줄이야.
"방에 계셔."
형님이 작은 방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 엄마랑 혜리가...
"형은 진짜... 죽은... 건가요?"
"응... 상황을 들어보니까 네 형이 아스타를 지키기 위해서 몸을 던졌대."
"네? 반대 아니었어요?"
호신형님과 우리 집에서 한 대화와 다르다.
"디테일한 상황설명을 듣고 다시 말해주는 거야."
"형의 수명이 얼마 안 남은 걸 사대신이 알고 영혼줄을 끊었다고 하셨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호신형님.
"사대신이 영혼줄을 끊은 것만 맞아. 네 형의 수명은 한참 남았었어."
"내가 확인했다. 제갈 호신 말이 맞아."
옥황상제가 형님이 한 말에 힘을 실어줬다.
상황이 더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나?
형님과 옥황상제의 표정에서 어렵다는 게 느껴져.
"네 형은 아스타가 직접 저승문으로 인솔했다. 네 형의 몸은 잠시 우리가 가지고 있다가 장례를 치를 때 돌려주겠다."
옥황상제 말에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 네 누나를 지키다가 상을 당한 걸로 기억을 조작할 거야."
"네..."
"사대신의 모습은 무장강도로 바꿀 거야."
대답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안나와서 고개만 끄덕였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
"운명을 바꾸기 위해 제일 중요한 사대신을 소멸시켰기 때문에 바꿀 수 있다. 아스타 쪽만 해결하면 바뀐 운명이 정착될 거야."
형님이 내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은 평생 가질 거야. 그 슬픔 때문에 네가 걱정하는 일은 안 생기게 나 옥황상제가 힘을 쓰겠다. 낌새가 보이면 극선반과 의료반이 도와줄 거고, 내가 나서야 할 상황이 오면 나설 거야."
"알겠... 습니다..."
앞으로 9개월...
부모님과 여동생은 나랑... 누나도... 잃게 된다.
1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무슨 말을 해야될 지 모르겠어...'
"네가 원하면 기억을 지워줄 수 있다."
"기억이요?"
고개를 들고 옥황상제를 쳐다봤다.
"9개월 남았나? 네 수명과 아스타와 저승의 계약."
"맞아요..."
"네 가족의 기억에서 너와 네 누나의 기억을 지워줄 수 있어. 원해?"
"나중에 물어봐도 되잖아."
형님 말에 살짝 고개를 돌리는 옥황상제.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하자.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미안해."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옥황상제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거야.
저승사자는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존재인데 슬퍼하는 게 말이 되냐는 둥, 이 정도 배려해줬으니까 앞으로 잘 하라는 둥.
기타등등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 거다.
'왜 안하겠어.'
내가 아직 인간이니까 안하는 거다.
옥황상제 말을 들으면서 현실을 깨달아서 그런 지 눈물이 멈췄다.
나랑 같이 있는 존재들 때문일 수도 있다.
든든한 것도 든든한 건데 정말 많은 것을 해주고 있으니까.
'형이 해준 말도 생각났어.'
없는 건 없다.
없는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잃은 것에 미련두지 마라.
형의 입버릇이었다.
평소에도 시키는 대로 잘했으니까 앞으로도 시키는 대로 잘하자.
그래야 형도 마음 편히 갈테니까.
"아스타가 형한테 사실을 전달했나요?"
"글쎄."
"안했을 걸?"
옥황상제와 형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둘이 그걸 물어보면 이상하지.
아스타를 만나면 물어봐야지.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일단 차근차근 해결하자, 옥황상제. 여러가지로 복잡하니까."
"대왕들이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
"믿자."
"네 말대로 할 수밖에 없어. 현재상황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어."
크게 한숨을 쉬는 옥황상제.
형님은 내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는 지 날 보며 환하게 웃는다.
'안심돼.'
"제갈 호신 말대로 순서대로 알려줄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전부 말하면 너무 복잡해. 중요한 걸 빼고 얘기할 수도 있어."
나는 옥황상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쉬거라. 쉬는 것도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제 가족은 멀쩡한 거죠?"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형님은 자기가 쓰는 방이라며 다른 방으로 날 데려왔다. 날 침대에 눕히고 형님은 방을 나갔다.
"아스타의 결과."
내가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쉬는 것도 좋지만 빨리 아스타한테 가고 싶다.
해야될 것을 하고 쉬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려나?
'그리고...'
형의 죽음.
아스타의 선배한테 들은 게 있다.
'명부가 오지 않는 죽음.'
형님과 옥황상제의 대화를 유추해봤을 때 형의 수명은 많이 남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명이 끝났다?
상황을 들었을 때 형은 아스타를 지켜주다가 사대신의 공격을 받았다.
'다르게 말하면 희생.'
계산에서 벗어나는 죽음.
신도 예측 할 수 없는 죽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죽음.
김차사한테 들은 내용이 이거다.
이 이유 때문에 형의 수명이 끝났다는 게 내 예상이다.
"어우!!"
잠 들었네...
여러가지 일이 한번에 몰려오고 쉴 틈 없이 계속 움직여서 피곤했나보네.
'귀신의 힘을 쓸 때도, 신의 힘을 쓸 때 체력 빠지는 게 확 느껴졌었지.'
이것도 크게 한 몫 했을 거야.
"갈 시간이야."
형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공간이동을 써서 저승에 왔다.
"응? 형님은 안 오세요?"
["네 가족을 지키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옥황상제가 자릴 비웠거든."]
"네!!"
자릴 비워?
생각없이 행동하는 신이 아니니까 걱정은 안되는데 엄마랑 혜리를 그냥 놔둬도 되나?
형님이 지켜주고 계시니까 문제는 안 생길 거 같은데.
'잘 모르니까 불안하네.'
"걱정마라."
옥황상제가 내 앞에 나타났다.
"놀래라."
"안정기에 들어갔어.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아스타의 결정을 보러 왔다."
"그랬군요."
"제갈 호신이 있으니까 걱정없어."
"알겠습니다."
"가자."
옥황상제와 같이 아스타가 살고 있는 집에 왔다.
저승에 있는 아스타 집에 온 건 처음이네.
자택대기라고 해서 우리 집에 있을 줄 알았다.
최근 3개월은 우리 집에 더 오래 있었으니까.
"오셨어요?"
우리가 올 걸 알았는 지 노크하기 전에 문을 열어주는 아스타.
덤덤하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8평 정도 될 거 같은데?
생활용품은...
이 정도면 없다고 봐야겠는데?
"왜 아무것도 없어요?"
"너랑 같이 살게 돼서 다 처분했어."
"아아."
내 예상대로 우리 집에 더 오래 있었네.
"너에 대한 결정. 벌써 나왔다고?"
"맞습니다, 상제폐하."
"예? 왜요?"
놀랄 수밖에 없다.
난 아직 아무것도 안했다.
내 말을 들어보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옥황상제는 왜 알고 있어?
"미안하다, 인간. 네가 자고 있을 때 아스타의 결정이 정해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옥황상제의 멱살을 잡았다.
"놔!!"
아스타가 내 손을 쳐서 놓게 만들었다.
"제가 끼어들어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이겁니까?"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옥황상제.
"왜 기대하게 만든 거예요..."
"될 줄 알았으니까."
"네?"
"대왕들이 나한테 말했다. 아스타의 처분을 결정하기 전에 네 의견을 꼭 듣겠다고."
"그런데 아니었다?"
"응. 염라대왕이 일을 너무 대충해서 전에는 간섭을 많이 했어. 원래는 하면 안돼. 저승을 관리하는 건 녀석이 하는 일이니까."
"염라대왕들은 다르다는 건가요?"
"그렇다."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이유 때문에 옥황상제가 간섭을 못한 거겠지.
"내가 만든 법을 내가 어길 수 없어. 염라대왕 땐 모든 신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한 거였어."
"그렇군요."
"인간계는 존재하는 모든 신과 같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상관없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승이 너무 빡빡해졌어.
염라대왕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지 모르겠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너무 안 좋았으니까.
지금처럼 여유가 느껴지지 않게 유지된다면 내 생각은 달라질 거야.
염라대왕이 혼자 할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버렸으니까.
"나한테 남은 시간은 9개월. 반절 정도인 5개월을 지옥에 갇히기로 정해졌어."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다르게 생각하자.
9개월 전부를 지옥에서 보내게 할 수 있는데 5개월만 있기로 했잖아.
환생 못하게 지옥에 있게 할 수도 있었고.
"괜찮겠어요?"
"응. 무한의 시간을 보낼 뿐이야. 고통을 주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어."
웃으며 말하는 아스타.
속은 찢어질 정도로 아플 거야.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웃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랑 한 약속은요? 제 가족을 지켜야죠."
"차사가 인간과 한 약속에 두번째 기회는 없어."
"그렇다는 건..."
"자의, 타의, 고의 상관없어. 차사에게 인간과의 약속은 그만큼 중요해."
"저승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오도리가 있잖아."
"그렇기는 한데..."
새우초밥씨 한명으로는 부족하다.
아스타가 많이 믿는 후배지만 아스타의 입장이다.
내 입장에서는 부족하다.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적을 거고 날 강하게 막아줄 수도 없다.
전(前) 지원과장님 계셨다면 또 모를까...
'아니구나...'
나보다 약하니까 새우초밥씨를 무시하고 있었어...
내 자신이 이렇게 속물이었을 줄이야.
나보다 한참 선배인데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아스타가 정말 많은 걸 알려주고, 많은 것을 못하게 하고 있었구나.
이런 식으로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될 줄 몰랐네.
"아스타."
"네, 상제폐하."
"인수인계는 안해도 돼?"
"지원과장이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네 동기가 됐다고 했던가?"
"맞습니다. 좀 이상한 애지만 믿을 수 있습니다."
동기한테 관심이 아예없는 분이 이상하다느니, 믿을 수 있다느니. 이런 말을 하니까 너무 모순이다.
호랑선배를 처음 언급했을 때가 생각나네.
'마지막 동기라고 했는데 동기가 많았어.'
극선반 반장님도 동기라고 했었는데.
사흉수 토벌 때 본 동기 말고 몇 명 더 있을 거 같아.
"알겠다."
잠시 후 처벌과 소속 저승사자 둘이 와서 아스타를 데려갔다.
나와 아스타는 웃으면서 인사했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스타는 처벌과 저승사자들과 사라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김차사한테 배운 거, 아스타한테 배운 거, 제갈 호신한테 배운대로 해."
"괜찮을까요?"
"응. 너도 생각이라는 걸 하잖아. 이걸 해도 될까, 안될까도 구분할 수 있을 거고."
"이보세요. 절 어디까지 바닥으로 보는 겁니까?"
"웃자고 한 말이다."
크게 웃는 옥황상제.
또 얘기하는 거지만...
유유리 선생님 모습으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어색하다.
연예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여성분인데 할아버지처럼 말이야.
'아네모네의 모습.'
이 모습 때문에 형님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셨지.
결국은 좋은 선택을 하셨지만 말이야.
"같이 가자."
"어딜요?"
"네 가족한테."
"아아!!"
"운명을 바꿀 수 있게 됐어. 사대신은 네가 소멸시켰고 아스타도 결정됐어."
"네."
옥황상제와 같이 유유리 선생님 집에 왔다.
나 왜 말을 이상하게 했지?
유유리 선생님 집이 옥황상제 집이잖아.
집에 오자마자 옥황상제는 엄마와 혜리가 있는 방에 들어갔고 5분 쯤 지나니까 형님이 집으로 가라고 해서 집에 왔다.
두 사람은 멀쩡히 각자 방에서 나왔고 날 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형의 영원한 부재...
잠시 후 아빠가 집에 오셨고 우린 장례를 시작했다.
옥황상제가 기억을 조작해서 사건발생 사흘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됐다.
무장강도한테서 누나를 지키다가 형이 죽었고, 누나는 병원에 입원.
부검과 동시에 상황정리와 설명 등등.
많은 일이 있은 후로 부모님과 혜리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장례는 무사히 끝냈고 옥황상제의 기억조작 덕분에 부모님과 혜리는 평소처럼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 건 아니다.
며칠 유심히 관찰해보니 부모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슬퍼하셨고, 혜리는 혼자 있을 때 울기만 했다.
그렇게 3주 정도가 지났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스타가 지옥에 갇힌 동안 누가 누나를 연기하느냐.
"안녕?"
"네, 안녕하세요."
많고 많은 저승사자 중에 지원과장님이 누나를 연기하게 될 줄 몰랐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지원과장님.
"표정이 왜 그래?"
"아니요... 그냥... 뭐... 네..."
지원과장님이 누나를 연기 할 수 있을까?
아스타도 들켰는데 지원과장님은 더 빨리 들킬 것 같은데...
"아스타는 들켰다면서?"
알고 계시는구나.
기억을 조작해서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혜리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수명이 끝날 때까지 몰랐을 사실이지.
"네."
"난 안 들킬 수 있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당당히 말씀하시는 걸까.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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