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대선배.

87화 대선배.
"잘 지내고 있니?"
아스타도 염라대왕처럼 묶여있다.
양팔을 벌린 채로 묶여있고 무릎을 꿇린채로 바닥에는 피가 뿌려져 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입고 있는 옷은 사방팔방이 찢어져 있다.
덕분에 상처가 너무 잘보인다...
염라대왕이 묶여있는 걸 봤을 때도 생각했던 건데 왜 상처가 있는걸까.
여기서 폭력을 쓰나?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발버둥 쳐서?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수가 없네...'
"잘 지내고 있어요. 새우초밥씨도."
"그래? 가족들은?"
가족도 걱정되겠지.
기억방면으로도 걱정일테고 형을 잃은 것 때문에도 걱정이 될 거다.
형이 그렇게 된 걸 자기 탓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형의 죽음은 신도 예상할 수 없는 죽음인 희생이니까.
희생.
명부가 발부되지 않으며 계산에서 벗어나고 신도 예측 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 형의 사인이다.
저승사자인 아스타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구나..."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한테는 정 쌓고 지낼 생각없다면서 단호하게 말했던 아스타가 맞나싶네.
나랑 아스타의 관계와 내 가족과의 관계는 다르니까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만.
"특별한 망자를 인솔하게 됐어요."
"응?"
"아스타가 잃어버린 명부의 망자."
"그 망자를 네가 인솔하게 됐구나."
"지원과장님이 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건 일부러 염라대왕한테 안 물어봤다.
어떤 대답이 나올 지 예상이 안 가서 안 물어본 것도 있고, 염라대왕이 지원과장님을 나쁘게 말할 것 같아서 안 물어봤다.
전(前) 지원과장님보다 더 오래 안 사이라서가 아니라 내 직속상사를 남이 욕하는 게 싫을 뿐이다.
'나만 욕할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네가 내 후임이니까."
"예?"
"다른 이유없어. 내가 잘못한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잖아."
"그렇군요."
엄청 시답잖은 이유잖아.
이런저런 상상을 한 내가 바보같아.
"나 다음으로 강하니까."
"네?"
"너를 저승사자로 보기 힘들지만. 이유를 떠나서 저승사자의 힘을 쓰는 존재 중 넌 나 다음으로 강해. 내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다는 뜻도 돼."
내 예상이 맞았네.
이 생각도 했으니까.
"잘 해봐. 다치지 말고."
"알겠습니다. 혹시 알려주고 싶으신 거 없나요?"
"없어.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나는 게 없어."
"네. 몸관리 잘하세요."
"응."
아스타가 웃길래 나도 같이 웃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웃은 거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웃은 거다.
여기서 나오기 전까지 나 혼자하거나 새우초밥씨와 함께 하는 것에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안 어울리게 걱정이 정말 많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덜 할 거다.
'그래도 얼굴 보니까 좋네.'
공간이동을 쓸 수 있는 곳에 와서 능력을 써서 집으로 왔다.
조금만 자고 움직이자.
낮에 하라고 했으니까...
아침 10시.
잠에서 깨고 방에서 나오니까 엄마랑 혜리가 밥을 먹고 있다.
"아빠는?"
"약속."
혜리가 짧게 대답하고 나도 식탁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엄마는 내 앞에 밥과 국을 내려놓으셨고 주방으로 가셨다.
"언니는 잘 지내겠지?"
"그럴 걸?"
아스타가 지옥에 갇힌 후 누나 역할을 해줄 저승사자가 없어서 해외로 공부하러 간 걸로 됐다.
지원과장님이 능력을 써서 누나로 인식하게 한 다음 해외로 가는 걸 보여줬다.
그 뒤로 연락 한번 안했구나.
한 번쯤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자기 일이 아니니까 아무것도 안하는 거겠지.
아스타였으면 이런 일 절대 없었을 텐데.
"오늘 언니 올 거야."
"진짜?"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누나가... 오늘... 온다고?
온다는 건... 집에... 온다는 거... 잖아?
"아빠가 맛있는 거 사온다고 했으니까 같이 먹자."
"응!!"
엄마 말에 혜리는 기쁘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가 한 말이 이해가 안된다.
과장님은 할 저승사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아스타가?
지금 지옥에 갇혀있는데?
누나 역할을 해줄 저승사자는 없는데...
["놀랄 거 없어."]
"아스타!!"
"깜짝이야!!"
"왜 그래?"
혜리는 놀라서 날 째려보고 있다.
엄마는 걱정가득한 얼굴로 날 보고 있다.
"아니... 잘 먹었습니다!!"
단숨에 뛰어서 내 방에 들어왔다.
문을 잠그고 결계를 쳤다.
"아스타?"
["많이 놀랬어?"]
"당연하죠!! 갑자기 뭐예요?"
["너 가고 들은 거라서 나도 많이 놀랬어."]
나랑 아스타가 정신감응을 하고 있다는 건 아스타는 현재 지옥이 아닌 저승에 있다는 뜻이다.
저승이거나 인간세계에 있거나.
"어디세요?"
["저승이야. 남은 기간은 인간세계에만 있어야돼."]
"진짜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글쎄."]
반응이 왜 이러지?
다행이라고 해야 될 타이밍 아니야?
"얼른 오세요!!"
["당장 못가. 이따 저녁에 보자. 네가 일을 끝내고 오면 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이따 집에서 봐요."
["응."]
아스타가 정신감응을 끊었다.
설명은 이따 집에 와서 듣자.
조금 찝찝하지만 아스타가 돌아오면 된 거야.
당장은 이유를 생각하지 말자!!
'지옥에서 나오자마자 엄마한테 얘기했구나.'
역시 아스타야.
몇 번을 생각해도 누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저승사자는 아스타 밖에 없다.
한시름 덜었어...
여러가지로...
"나갔다올게요!!"
"그래, 조심하고."
"언니 온다니까 늦지마."
"알겠어."
염력으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페도라를 썼다.
공간이동을 써서 선배가 있는 곳에 왔다.
강원도에 있는 깊은 산 속.
선배는 여기서 생활하고 있으며 망자 때 이후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들었다.
'40년이면 엄청 긴데 대단하네.'
염라대왕은 선배가 있는 위치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왜 여기를 조심하라고 한 걸까?
아무것도 없는 깊은 산 속인데.
야생동물 때문에?
산 속이라 위험해서?
이런 걸 조심하라고 할 신이 아닌데.
"너 뭐야?"
내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목소리가 엄청 싸늘해. 그리고 엄청난 이 살기...
안 봐도 알 수 있어.
선배님이야.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양손을 위로 들었다.
"이 행동은 뭘까?"
"전 당신과 싸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겠군."
"네, 맞습니다. 과거 잃어버린 망자를..."
"저승사자를 없애기 위해..."
"네?"
"응?"
정체모를 존재가 내 앞으로 왔다.
멀뚱멀뚱 날 보고 있다.
나도 똑같이 멀뚱멀뚱 보고 있다.
왜 우리 목적이 다르지?
'잠깐만...'
저승사자 맞나?
내가 저승사자를 볼 때 느껴지는 게 안 느껴져.
'보자마자 느껴지는 게 있는데.'
그렇다고 사신을 만났을 때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야.
신?
귀신?
천사?
인... 간...?
"누구세요?"
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 한다.
선배가... 아니야.
살기가 너무 세게 느껴져서 저승사잔 줄 알았는데 저승사자가 아니야.
그렇다면 뭐지, 이 존재는?
인간 외 존재인 건 확실한데 모르겠어.
"너 저승사자야?"
"점점 저승사자가 되고 있는 인간입니다."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한 건데 내 존재가 확립된 느낌이 든다.
점점 저승사자가 되고 있는 인간.
처음부터 난 이런 인간이었다.
"저승사자라는 거지?"
"네, 뭐."
"죽어!!"
내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빠른속도는 아니지만 꽤나 날카로웠어.
대체 뭐지?
다음 공격이 오길래 몸을 숙여서 피했다.
즉시 이 녀석의 품 안으로 들어갔고, 멱살을 잡고 그대로 두꺼워 보이는 나무로 던져버렸다.
"젠장!!"
"오오?"
생각보다 멀쩡히 일어나서 나한테 달려오는데 뒷꿈치로 녀석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눈이 뒤집어진 거 보니까 기절했네.
"저승사자한테 절대 안져!!"
뭐야?
이걸 버텨?
맷집이 좋은데?
녀석이 자세를 잡기 전에 손날로 녀석의 목을 때렸다.
이번에도 눈이 뒤집어졌고, 이번에는 쓰러졌다.
"도대체 뭐지?"
짝짝짝짝짝짝!!
박수소리?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정색 한복을 입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사자.'
이번에는 진짜다.
가슴팍에 닿을 것처럼 길게 기른 턱수염.
왼쪽 눈에 안대.
눈썹과 머리카락에는 듬성듬성 보이는 하얀털.
살짝 굽은 몸.
당장이라도 화를 낼 거 같은 인상.
한 손에는 곰방대를 들고 있다.
"선배님이시죠?"
"끌끌끌끌. 후배를 보는 거 참 오랜만이야."
우린 악수를 했다.
'잡는 힘이 약하진 않은데 힘을 숨기고 있다는 게 느껴져. 아스타만큼? 아니야. 아스타 보다 더 강할 거 같아.'
확실하진 않지만.
"망자 때문인가?"
"네. 아스타가 잃어버린 명부 때문에 놓고 온 망자 때문에 왔습니다."
"아스타? 안개나무가 아니고?"
아아!!
원래는 아스타가 아니라 안개나무라고 했었지.
염라대왕이 한 말을 까먹었다.
"맞아요, 안개나무요. 제가 헷갈렸습니다."
"그래. 계획이 뭐지?"
"네? 계획이요?"
"없이 온 거야?"
"네... 뭐... 그렇... 죠..."
나 왜 아무 생각없이 왔지?
망자에 대한 것도 안 알아보고 그냥 와버렸어.
"끌끌끌. 표정을 보니 계획이 없구나."
"아... 그게..."
"따라오거라. 계획은 만들어뒀다. 실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 뿐."
"알겠습니다."
선배는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가려는 순간 내가 기절시킨 게 보여서 쳐다봤다.
"괜찮아. 신경쓰지마."
"예?"
"세게 때렸어? 아니잖아."
"살살 때렸죠."
"금방 일어나겠지. 그리고 여기 있으면 안전해. 이렇게 놔둬도 돼."
"일단 알겠습니다."
이렇게 놔둬도 된다니.
왜 안전하다는 거지?
사람이 아예 안 오는 곳이라는 뜻 인 거 같다.
"뭔지 알려주세요. 정체를 모르겠어요."
"천천히 알려주마. 네가 할 일은 망자를 인솔하는 거야. 겸사겸사 내 환생도 도와주고."
환생.
망자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환생했을 테니까.
염라대왕은 이 저승사자가 일부러 남았다고 했어.
"알겠습니다."
선배님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너한테서 내 동기의 힘이 느껴져."
"1520기 넷째달 아홉번째 김차사와 동기세요?"
"맞아. 나는 넷째달 열 한번째 김차사야."
"동기 중 사신이 된..."
"끌끌끌. 그것도 알고 있을 줄이야. 그 녀석은 열 일곱번째 김차사였다."
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
보통 선배가 아니었어.
대선배였어.
나한테 힘을 준 저승사자와 동기였다니.
"녀석은 잘 살고 있나?"
"사신이 된 동기 말씀이세요?"
"응."
"가끔 절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녀석 답다면 녀석다워."
저승사자였을 때 어땠을 지 궁금해지네.
"안개나무가 잃어버린 명부의 주인은 이 산에 있어."
"진짜요?"
"응. 이 산에 있는 건 확실한데 찾을 수가 없어."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진짜?"
"네!!"
안개나무가 사흉수를 찾은 방법을 쓰면 돼.
이따가 허가 받으러 가야겠다.
"방법이 없다고 하셨는데 가지고 계신 계획은 뭔가요? 알려주세요."
"아까 너한테 시비 건 존재는 요괴다."
"예?"
"걸귀라고 하는 요괴다."
"요괴요?"
걸음을 멈추고 날 보는 선배님.
선배님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신과 귀신도 부족해서 이번에는 요괴?
망자인솔을 안하면 싸우기만 하고, 망자인솔을 하면 상상도 못한 존재를 만나네.
그래.
아스타가 지옥에 갇힌 지 벌써 2달이나 지났어.
그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던 게 이상한 거야.
"요괴들이 찾는 걸 잘해."
"진짜요?"
"응. 걸귀는 숙주의 식욕을 돋구어 배가 불러 더 이상 식욕을 느끼지 못할 때 까지 먹게 하는 요괴야."
"허기진 인간들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찾는 걸 잘한다는 뜻인가요?"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이신다.
생각의 전환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
이런 식으로 망자를 찾으려는 거야.
기발하다면 기발한데?
"이 산에 요괴가 많나요?"
"많이 있어. 망자를 찾기 위해 일부러 여기로 모았는데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야."
요괴가 이 산에 많이 있다라...
이거 왜 찝찝하냐.
나중에 큰 일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딴 생각하지 말자.'
일단은 망자에 집중해야돼!!
다시 걷기 시작한 선배님.
금지능력 사용의 허가를 받으려면 염라대왕들을 만나러 가야 되는데.
선배한테 말씀드리고 지금 갈까.
["들리니?"]
'아스타?'
["쓰고 싶을 때 쓰면 돼. 내가 허가 받았어."]
'예? 제가 쓰는 능력인데 왜 아스타가 받아요?'
["이 정도는 하게 해줘."]
평소랑 달라.
아스타가 이런 식으로 도아준 적 많지만 뭔가 달라.
말투랑 뉘앙스 때문인가?
앞으로 도와줄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어.
["있잖아..."]
'제가 항상 말씀드리잖아요. 우선순위가 있다고.'
["그랬지."]
'당장 듣고 싶지만 지금은 망자에 집중하고 싶어요. 이따 말씀해주세요.'
["알겠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정신감응을 끊었다.
이 기회에 염라대왕들을 만나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못 보겠네.
아스타가 나한테 하려는 말.
조금은 알 거 같다.
지옥에 갇혀있어야 할 기간 5개월.
겨우 2달 지났는데 나왔다는 건 남은 4달은 다른 벌을 받는다는 것.
후우...
또 여러가지로 복잡해지겠네.
"선배님."
"끌끌끌. 왜 그러나?"
"제가 볼 일이 생겼습니다."
"볼 일?"
"네.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끌끌끌. 빨리 해주면 해줄수록 난 좋아. 하루라도 빨리 환생해야 내 인연을 만날 수 있으니까. 많이 끊어졌겠지만 아직 끊기지 않은 인연도 있을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
"염라대왕이 여기가 위험하다고 말했지?"
이걸 왜 알고 있지?
"맞습... 니다."
"끌끌끌. 그렇게 될 지, 안 될 지 보고 싶지만 나한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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