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첫번째 악귀(3)

94화 첫번째 악귀(3)
우리가 알고 있는 악귀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열등감과 시기질투에서 태어난 특이한 악귀라고 봐야 한다.
사념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거 같다.
이 악귀를 우린 악귀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싶다.
"이까짓 거!!"
악귀는 똑같은 방법으로 내 공격을 피했다.
"놓치면 못 잡을 수도 있어!!"
"걱정마세요!!"
형님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구나.
또 놓치지 않을 거야!!
악귀한테 내 공격이 통했을 때 염력을 묻혔다.
공간이동을 써서 악귀를 내 앞으로 데려왔다.
"왜 내가 네 앞에?"
완벽히 사람 형태가 된 악귀.
녀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코피가 터지면서 악귀는 공중에서 세바퀴를 돌고 땅에 떨어졌다.
"엄청 세게 때렸네..."
"많이 화났나봐."
형님과 귀신의 대화를 일부러 무시했다.
"하아... 하아..."
몸을 일으킬 힘이 없는 지 내 반대방향으로 기어가고 있다.
"개 같은 옥황상제... 자기가 지켜줄 거니까... 도망가라고 해서... 모습을 드러낸 건데!! 약속이랑 다르잖아!!"
"신한테 넌 골치거리야."
형님이 악귀의 앞을 막았다.
"닥쳐!! 옥황상제는... 최고 신이잖아!! 약속을 지켜야 될 거 아니야!!"
"그럴 의무는 없어."
"뭐?"
"넌 악귀야. 악귀와 한 약속을 지키는 존재는 없어. 너희도 마찬가지 아니야?"
"젠장!! 젠장!!"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옥황상제가 널 숨기고 있었던 이유는 이거 하나 뿐이야."
형님은 악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라.'
현재 옥황상제는 유유리 선생님의 수명을 넘겼다.
수명을 넘겼기 때문에 극선반을 더 많이 부르게 된 거고. 덕분에 극선반의 일이 늘어나고 있다.
옥황상제가 수명을 넘긴 이유는 시기.
지금 당장 아네모네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네모네를 찾은 후 또 도망가버리면 옥황상제는 이 일을 또 해야 된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러고 있을 뿐.
옥황상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지금 악귀를 소멸시키는 게 맞는 지 모르겠다.
저 악귀가 유유리 선생님의 사인이니까.
없어져도 되니까 옥황상제가 안 나서는 것 같은데...
형님은 귀신의 힘을 써서 악귀를 소멸시켰다.
녀석의 핏자국도 같이 사라졌다.
크게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형님.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옛날 얘기를 잠깐 해도 될까?"
"네? 아, 네."
갑자기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저 표정...
형님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진다.
"잠깐 피해있을게."
"고마워."
형님의 그림자에서 무언가가 튀어나갔다.
귀신이 일부러 자릴 피할 정도로 심각한 얘기인가?
"쟤는 내 과거 얘기 듣는 걸 안 좋아해."
"왜요?"
"서로 고생을 너무 많이 했거든. 그리고 신과 동맹 맺을 걸 수치로 생각하고 있어. 그때도, 지금도."
"약점을 잡혔나요?"
"비밀."
"아아..."
"내 얘기를 들으면 그때 일이 생각나서 못 견디겠대. 그래서 자릴 피한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엄청 무거운 얘기할 거 같은데...
'난 이런 분위기 못 견디는데.'
그렇다고 듣기 싫다고 할 수 없고.
이 와중에 요약해 주세요 하면 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될 거고.
"듣기 싫구나?"
"네?! 무무...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에요!!"
"표정에 다 드러났어."
내 뺨을 세게 때렸다.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거 왜 못 고치냐!!
내 스스로가 너무 싫어지려고 하네.
갑자기 형님이 크게 웃으신다.
건물이 쓰러질 정도로 말이다.
"뭐야? 해결했어?"
새우초밥씨가 왔다.
"악귀는 소멸시켰어요."
"그래? 다행이다!!"
서둘러 결계를 없애는 새우초밥씨.
"아아. 정말 넌, 최고야!!"
"죄송합니다, 형님..."
"분위기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형님이 새우초밥씨한테 어깨동무하더니 웃으면서 어딘가로 데려가버렸다.
"에휴... 내가 미쳤지... 형님한테 죄송해서 어쩌냐..."
"잘했어."
귀신의 목소리?
"네 눈에 안 보여."
"왜?"
"형체를 가지고 나온 게 아니니까."
"영혼 같은 거야?"
"응. 내 몸은 지금 신이 몸 속에 있어."
"그렇구나."
별 게 다 가능하네.
"근데 뭘 잘했다는 거야?"
"신이가 할 과거 얘기는 아네모네에 대한 거야."
"그럴 거 같았어. 얘기 못하게 한 걸 잘했다고?"
"응. 옛날 얘기 할 때마다 울거든."
"진짜? 안 어울려!!"
"왜 질색하는 표정이냐?"
"지금 내 표정이 그래?"
"응. 너 인성에 문제 있는 거처럼 보여."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나 그런 표정 짓지 않았어!!"
날 왜 이상한 사람을 만들어?
질색하는 게 아니라 의외라서 놀란 표정인데.
귀신이 뭘 알겠어.
"놀리려고 한 말이니까 신경쓰지마."
"그렇게 놀리면 놀라잖아. 진짜야?"
"진짜야.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놀린 거야."
"믿을게."
"응."
센 바람소리가 들린 거 보니 귀신이 형님한테 간 것 같다. 아네모네 얘기를 하면 운다라...
형님도 약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해한다.
사람이라고 부르기 애매하지만 굉장히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이다, 호신형님은.
형님과 새우초밥씨가 간 방향으로 가려는 순간 무언가가 날 끌어당겨고 주변을 둘러보니까 저승문 영역이다.
"뭐지?"
누가 날 여기로 끌어당긴 거지?
"나다."
담배를 피우며 돌무더기에 앉아있는 옥황상제.
누가봐도 엄청 화난 얼굴이다.
"악귀를 소멸시켜서 그래요?"
나도 모르게 띠꺼운 말투가 나왔다.
"악귀는 상관없어. 내가 짜증나는 건 저 녀석이야."
옥황상제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렸다.
비틀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여기에 올 존재는 하나 밖에 없어.
"극선반 반장이다."
"왜 비틀거려요?"
"짜증나서 내가 한대 때렸어."
"악귀랑 싸우면서 다쳤단 말이야!!"
옥황상제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담배를 피우고 있다.
표정의 변화도 없고 짜증난다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극선반 반장님을 보고 있다.
"극선반 소속 저승사자들은 해야될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또 반말하네?"
"왜 이랬어!? 대답해!!"
"반말하지마."
"목적이 뭐야? 뭐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건 지 알려줘."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뭐?"
"넌 인간이야. 신들이 가장 조심해야 되는 존재인 인간. 내 목적을 너한테 알려줬을 때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내가 걱정하고 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
알려고 하지 말자.
옥황상제는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야.
"주제 넘은 짓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인간."
"네."
"넌 저승에서 시키는 것만 잘 해주면 돼. 네가 되고 싶은 건 저승사자잖아? 신이 아니야."
"맞습니다."
"내가 숨긴 악귀는 아네모네를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 없애게 놔둔 거야. 지금 난 저승에 관련된 신이니까 도와준 거야."
"알겠습니다."
"신과 저승사자, 다른 존재들이 숨긴 악귀 소멸. 언젠가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지원과장이 칼을 빼들어서 도와준 거야. 잊지마."
"네."
담배를 다 피우고 사라져버리는 옥황상제.
"가버렸나..."
거친 숨을 쉬며 내 옆으로 온 극선반 반장님.
"괜찮으세요?"
"멀쩡해."
"등에 상처는..."
"옥황상제가 치료해줬어."
"병 주고 약 주네요."
"악귀는 소멸시켰다고?"
반장님한테 중요한 건 이거니까 바로 물어보는구나.
"네."
"여러모로 골치 아파."
"염라대왕들한테 부탁하면 되지 않나요?"
"상제폐하께 가는 거?"
"네. 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난 모든 세계에 악영향을 줄까봐 걱정되서 대왕님들께 말 꺼내는 것조차 안했어."
"반장님 설마?"
"내가 악귀와 싸우는 동안 애들을 시켜서 대왕님들께 물어보라고 했어."
"대답은요?"
"해주겠다고 하더군."
"될 거 같았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난 왜..."
"스스로를 자책하지마세요."
반장님의 등을 토닥였다.
모든 세계에 줄 지 모르는 악영향.
저승사자는 이걸 해결할 수 없다.
해결할 능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장님은 조심한 거다.
옥황상제가 이걸 알려줬다면 얘기는 또 달랐겠지.
한참 전에 해결됐을 거고 옥황상제도 편하게 자기하고 싶은대로 일을 진행했을 거다.
옥황상제는 조심한 것 뿐이야.
혹시 모르니까.
"반장님.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상제폐하는 모르는 내용이라고 대왕님들이 말씀하셨어. 그래서 우리가 오는 걸 막지 못하신 거야."
"이럴수가."
내 예상이 틀려버렸네.
"최고 신이라 할 지라도 전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대왕님들께서 말씀하시더군."
"듣고보니 맞는 말이네요."
"극선반이 상제폐하한테 갈 일은 이제 없어."
"다행입니다!!"
"있다면 한번일 거야."
"한번이요?"
"응. 신으로 돌아가실 때."
"아아."
유유리 선생님의 사인은 극단적 선택.
옥황상제가 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사인을 그대로 하는 것.
옥황상제는 아직 수명을 끊을 수 없다보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극선반을 부르고 있었다. 극선반은 막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옥황상제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옥황상제를 그냥 놔둬도 되나요?"
"인간의 수명을 넘은 거?"
"네."
"대왕님들께 여쭤보니 상관없다고 하셨어. 문제 생기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냅두라는 말씀도 하셨고. 그래서 저승사자들 전부 신경 안 써."
설마했는데 설마했던 대답을 들어버렸네.
틀린 말이 아니라서 할 말은 없지만.
최고 신이니까 충분히 해결가능하니깐.
"왜 여기 계세요?"
"궁금한 게 있어서 상제폐하를 데리고 온 거야."
"저승문을 열고 들어가게 했나요?"
"응. 수명이 끝났으니까. 그런데 들어가면 다시 나오시더라."
"이유가 뭘까요."
"신은 수명이 없어. 인간이 됐다지만 본질은 신이잖아. 그래서 다시 나온 거라고 생각해."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이 됐다고 해서 능력을 못 쓰는 게 아니니까.
갑자기 사라지거나 저승문 영역에 오거나.
'이럴 거면 인간이 됐다고 표현하면 안되는 거 아니야? 인간인 척 하고 있다가 맞지.'
반장님은 고생했다면서 먼저 저승문 영역을 나갔다.
새우초밥씨가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더니 옥황상제 집이었고, 형님이랑 둘이 술을 마시고 있길래 간단히 인사하고 집에 왔다.
아, 옥황상제도 집에 있었다.
베란다에서 담배 피고 있었지만.
"늦었네?"
아스타가 내 방에 들어왔다.
"여러모로 힘든 하루였어요."
"미안해지네."
"네? 왜요?"
염력을 써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나 만난 후부터 안 힘든 날이 없었잖아."
"없진 않았죠. 쉬는 날도 많았잖아요."
"그치만..."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미안해하실 필요없어요."
괜히 민망해지네.
"쉬니까 어때요, 아스타?"
침대에 앉았다.
아스타는 의자에 앉았다.
"편하진 않아. 네가 인간계에 있을 땐 내가 저승에서 무언가를 했고. 네가 저승에 있을 땐 내가 인간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듣고보니."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정신감응을 써서 여러가지를 물어봤고, 너랑 내가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여러가지 조언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되잖아."
생각해보니까 연결이 끊어졌겠구나.
이건 생각을 아예 못했네.
편하다면 편한데 어색하네.
'이런.'
연결이 끊어졌다는 걸 알게 되니까 뭔가 엄청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시간장소 상관없이 아스타가 나한테 잔소리 하고 난 그걸 들어야 되는데 못 하게 됐잖아.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었던 거야?'
좋아해야 되는데 어색하게 느끼다니.
"아스타는 지금 저승에서 생기는 일을 아예 모르죠?"
"응.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몰라. 알려줄 차사도 없어. 나랑 만나는 걸 금지시켰거든."
난 인간이라 예외인 것 같다.
아니지, 아니지.
예외일 수밖에 없는 게 아스타가 우리 집에 살고 있잖아. 누나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밖에 없어.
날 예외로 안 두면 큰일나지.
"새우초밥씨도 못 보겠네요? 보러 오지도 못하고."
"응. 벌 받는 동안 날 아예 배제시키는 것 같아."
"그게 맞죠."
"내가 필요해도 나한테 도와달라고 안 할 거 같아."
"과장님이 막지 않을까요?"
"히아신스 성격이면 그럴 수 있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거나 불만이 있는 표정을 지을 줄 알았는데 덤덤하게 말해서 조금 놀랬다.
이미 정해진 것에 불만 품어서 뭐하겠냐 싶은 생각 뿐인가보네.
동기라고 해도 자기보다 직급이 높아서 결정을 따르는 거겠지만.
'염라대왕들이 한 결정이기도 하고.'
"아스타."
"응?"
"저승은 지금 신과 저승사자들, 혹은 다른 존재들이 숨긴 악귀를 찾아서 소멸시키고 있어요."
"어? 그걸 왜..."
"저한테는 인간세계에 숨겨둔 악귀를 소멸시키라고 했어요. 제가 소멸시켜야 하는 악귀는 셋."
"셋...?"
"네. 옥황상제가 숨긴 악귀를 소멸시키고 왔어요."
"그 말은..."
"염라대왕이 숨긴 악귀와..."
"내가 숨긴 악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타는 안절부절 하고 있다.
갑자기 땀을 엄청 흘리고 있다.
나랑 눈을 못 맞추고 있다.
엄청 불안해 보인다.
"염라대왕이 숨긴 악귀부터 없애려고 했는데 아스타가 숨긴 악귀부터 없애고 싶어요."
"그게 말이야..."
"아스타가 숨긴 악귀가 어디 있는 지 알려주세요."
"......"
"하나 더, 저희 집에 있던 악귀는 저에게 힘을 준 김차사가 숨긴 악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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