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마지막이 될.

108화 마지막이 될.
"갑자기 무슨 말이야!!"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지?"]
침착하게 말하는 염라대왕.
"화 안나게 생겼냐고!!"
"그만해."
"아스타도 화나잖아요!!"
"이유를 듣고 화내고 늦지 않아."
그래.
아스타 말대로 하자.
이유를 듣고 화를 내자.
"왜 방치인 지 알려주세요."
["시작부터 꼬여버렸다."]
"네?"
["인간."]
"왜?"
["처음 산에 갔을 때 요괴를 공격했나?"]
"응?"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전쟁이라고 했었지.
두번째 갔을 때가 아니라 처음 갔을 때를 묻는다?
선배님을 만나기 위해 처음 산에 갔을 때라면...
"왜 말이 없어?"
"아... 그게 말이죠... 아스타..."
["돌겠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염라대왕.
"아니라고 해."
아스타의 미간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찔리는 게 있다보니 식은땀이 멈추질 않는다.
아스타가 내 얼굴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아스타... 처음 산에 갔을 때 걸귀와 싸웠습니다..."
허탈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스타.
손에 힘이 풀렸는 지 내 얼굴을 놓고, 땅에 떨어지듯 팔이 내렸다.
다리에도 힘이 풀렸는 지 주저 앉아버렸다.
"스트레스 받아..."
["인간."]
"응."
염라대왕의 부름에 나도 눈치보듯이 대답했다.
["김차사가 봤는가?"]
"봤어."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 말도 안했구나."]
"안했어... 아니, 안했습니다..."
["자기하고 상관이 없으니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
이래서 토벌과장님이랑 처벌과장님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날 쳐다봤구나.
말을 해줬으면...
이제와서 말해봤자 늦었구나.
과장님들은 측은지심으로 본 것 뿐이야.
사태가 너무 커졌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대왕님... 방법이 없나요?"
["스피리아와 네모필라한테 맡길 수밖에 없다. 둘이서 할 일을 끝낼 때까지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염라대왕이 정신감응을 끊었다.
날 죽일듯이 노려보는 아스타.
아스타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고 한번 크게 쳤네."
지원과장님이 놀리듯이 말하며 나타났다.
"속에 불 지르려고 왔어?"
"설마."
아스타가 한 말에도 놀리듯이 대답하는 과장님.
"도와주려고 온 거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제발 도와주세요, 과장님!!"
"네 후임은 내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데?"
"끼어들지마."
"아스타. 일단 도움을 받고..."
살기?
아스타한테 엄청난 살기가 나오고 있어...
더 말했다간 날 죽일 거야...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서둘러 내 입을 막았다.
"왜 거절해? 도와주겠다는데."
"히아신스."
"응? 왜에?"
제발 과장님!!
놀리는 말투 좀 쓰지마세요!!
"내가 널 믿었던 적이 있던가?"
"음, 한번도 없어."
"맞아. 그러니까 꺼져."
"아스타. 네가 잊은 게 있는 거 같아."
"뭔데?"
과장님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아스타.
과장님도 아스타한테 지지 않을정도로 엄청 세게 아스타를 노려보고 있다.
아스타랑 과장님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아.
'호랑이와 용의 싸움이 이런 건가?'
"나 과장이야. 네가 소속되어 있는 부서에. 과장 말을 거역하려고?"
"꼴값 떨고 있네."
"뭐? 꼴값?"
"늙어서 귀가 막혔니? 다시 말해줄까?"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과장님의 말투가 변했다.
엄청 진지해졌고, 아스타 못지 않은 살기를 내고 있어.
"둘이 뭐하는 거야?"
"할 말이 없다."
갑자기 토벌과장님과 처벌과장님이 나타났다.
"얘가 나 무시하잖아."
"네가 무시 받을 짓을 하잖아."
아스타...
단단히 화났구나.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을 단어를 선택했어.
"짓? 짓? 말 다 했어?"
"맞잖아. 네가 하는 짓이 제대로 된 적 있어? 숨긴 악귀소멸? 네가 뭐했는데? 사대신 토벌? 네가 뭐했는데?"
"......"
분하다는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는 지원과장님.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지원과장님은 판만 깔고 아무것도 안했다. 악귀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한 건 나다.
사대신 토벌을 성공시킨 것도 나다.
지원과장님이 현장에 있었는가?
내가 실수로 불렀을 때 날 혼내기만 했다.
아스타 말대로 아무것도 안했다.
"그만해."
"후배보기 안 창피해? 저승사자 공식 최고짬 둘이 뭐하는 거야?"
처벌과장님 말이 맞다.
둘이서 이러는 거 진짜 보기 안좋다.
"손 내려."
토벌과장님이 내 손을 내렸다.
"아, 네."
"말하지 말랬지?"
"그만해, 아스타. 이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토벌과장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아스타.
지원과장님은 여전히 분하다는 표정이다.
빨개진 얼굴은 조금 돌아왔다.
"둘이 왜 왔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2개야."
"2개?"
토벌과장님 말에 관심을 가지는 아스타.
"내가 도와줄게!! 2개보다 더 해줄 수 있어!!"
"끼어들지마."
처벌과장님이 지원과장님을 데리고 사라졌다.
두 과장님은 지원과장님의 얘길 들어보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스타처럼 무시해버리네.
이 정도로 신용이 없을 줄은 몰랐다.
"해줄 수 있는 2개가 뭐야?"
"정보제공."
무심하게 말하는 토벌과장님.
"원래 해주기로 하셨잖아요."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날 슬쩍 쳐다보는 토벌과장님.
"디테일."
"주고 싶으신 정보가 무엇인가요?"
"요하입수거인 몸에 살고 있는 요괴의 세세한 정보와 마릿 수. 강함의 정도. 그리고 약점 등등."
말씀대로 디테일이 가득 담겨있다.
"파악은 끝났어?"
"반절."
"원래는 어떻게 정보를 주시려고 했나요?"
"어떤 요괴가 있는 지."
"끝이에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토벌과장님.
아스타를 쳐다봤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세게 짓고 있다.
나도 아스타랑 똑같은 표정이 됐을 거야.
"하나는 뭐야?"
"선배 대신 내가 하는 거."
"뭐?"
"예?"
무표정으로 말해서 그런 지 아스타랑 내가 부탁하면 해줄 거 같다.
'아니.'
우리가 빠졌음 하는 걸 돌려서 말한 것 같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무슨 뜻인가요?"
처벌과장님이 돌아왔다.
"쓸데없이 힘이 너무 세졌어."
"고생했어."
"응."
토벌과장님 옆에 서는 처벌과장님.
우리들의 분위기를 파악했는 지 처벌과장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꼈다.
"어디까지 얘기했어?"
"둘 대신 내가 하겠다고."
"이제 시작했구나."
고개를 끄덕이시는 토벌과장님.
"설명해."
"흠흠!! 선배를 위해서야."
처벌과장님이 대화를 이끌어 가려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응.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까."
"토벌과장님이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마지막이란 게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스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둘 다. 넌 인간이란 타이틀로, 선배는 저승사자란 타이틀로."
"몸 사리라는 뜻인가요?"
"맞아. 몇 개월 안 남았잖아. 그 사이에 무슨 일 생기면 여러가지로 복잡해져."
처벌과장님 말씀이 맞는데...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모르겠네.
["알고 있을 거야."]
'그러겠죠?'
["난 둘 말대로 사리는 게 맞아. 그치만 넌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옥황상제의 특별대우.'
["응. 무슨 일이 생겨도 넌 네 수명대로 사는 거."]
옥황상제가 내 가족을 살릴 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지. 차라리 다른 대우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랑 아스타가 처벌과장님을 쳐다봤다.
"상제폐하의 특별대우, 끝났어."
날 가리키면서 말했다.
"예?"
"이렇게 갑자기?"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토벌과장님.
이걸 놀래야 맞는 건가?
난 어떤 리액션을 해야 맞는 지 모르겠어서 멍 때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스타를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다.
예상했다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예상 못했다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하나도 모르겠네.
"불합리하다고 들었어."
"누구한테요?"
"상제폐하께."
오피셜이구나.
이게 맞다.
내가 뭐라고 특별대우를 해주는 지 이해를 못했다.
"그래도 가족을 구해준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제폐하께 직접 말해야지."
분위기를 풀려고 한 말이 아닌데 크게 웃는 처벌과장님. 토벌과장님은 살짝만 웃었다.
"요괴를 방치하게 된 이유가 제가 먼저 공격했기 때문인가요?"
"응. 지금 나서면 전쟁이돼. 그래서 시기를 늦추자는 거야."
"일단 알겠습니다."
"너희가 나서는 거. 그 이유가 맞아?"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두 과장님.
"말년대우라고 생각해요, 선배."
"선배대우 좀 하지마. 징그러워."
처벌과장님은 웃음이 많은 스타일이구나.
많이 웃으시네.
"우리가 할 얘기는 끝이야."
단호하게 끊으시는 토벌과장님.
"알려줘서 고마워."
"감사합니다."
"얼마나 대기해야 될 거 같아?"
"글쎄. 누가가도 전쟁이 안될 때까지 겠지."
당연한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두 과장님.
아스타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나도 복잡하다는 생각만 든다.
전쟁이 안될 때가 언젠데?
당장 내일이 될수도 있고, 한달 후가 될 수도 있다.
아스타가 환생한 후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사람이 아닐 때가 될 수도 있고.
"난감하네요."
"믿고 기다리자."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왔다.
나도 그렇고, 아스타도 그렇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서 우린 평소처럼 일했다.
난 학교를 가고, 끝나면 저승에 가서 일했다.
가끔은 조퇴해서 망자인솔도 하고, 처벌과에 가서 죄를 지은 저승사자를 데려왔다.
망자쉼터에서 부르면 쉼터 가서 일했다.
아스타는 누나 역할을 하면서 저승에 왔다갔다 했다.
난 나름 열심히 일하는데 아스타는 거의 집에만 있다.
새우초밥씨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로 일 하고 있다.
염라대왕이 몇 년은 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죄책감을 가지고 일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천기누설의 그 분은 저승사자가 됐고, 사람이었을 때 기억은 전부 지워지고 교육과에 갔다.
이렇게 일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고, 내 수명이 3개월 남은 시간까지 왔다.
"마지막 계절이구나."
학교 앞 사거리.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어서 놀랍다.
나름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
아직까지 요괴를 어떻게 할 지 결과는 안 나왔다.
그 사이 토벌과는 없어졌다.
토벌과 소속 저승사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부서로 이동했는데 대부분 망자쉼터로 갔다.
저승사자로 일하는 동안 거의 하루도 안 쉬고 싸움만 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부서로 옮기는 거라고 들었다.
"그치. 나도 이런 상황이었으면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싸우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니까."
토벌과장님은 인솔과나 발급과로 가실 줄 알았는데 처벌과로 가셨다.
요괴 일을 해결하고 싶으시다고 들었다.
이 일을 해결하면 발급과로 가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직접 들은 거라 오피셜이다.
신호가 바뀐 걸 보고 발을 땠는데...
"가자."
뒤에서 아스타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산에 갈 때 인가요?"
뒤로 돌아 아스타를 쳐다봤다.
아스타는 당장 갈 수 있게 유니폼을 입고 있고, 페도라도 쓰고 있다.
"응. 지금 막 저승에서 연락왔어."
"네!!"
일단 학교로 와서 담임 선생님께 길게 빠질 거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정신조작을 걸어둔 덕분에 선생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알았다는 말 뿐.
인적이 드문 곳에 와서 염력을 써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아스타와 함께 저승에 왔다.
저승 공무부서 처벌과에 왔다.
"저기 서 있는 거. 염라대왕 아니에요?"
"어? 대왕님이 왜 계시지?"
처벌과에 염라대왕이 있다.
우린 서둘러 염라대왕이 서 있는 곳으로 왔다.
"네 말버릇은 언제쯤 고정되는 거야?"
날 보자마자 이상한 걸 묻는다.
"제 마음대로 할게요."
"이럴거면 네가 염라대왕 하지 그랬어."
"그거랑 이거랑 달라요."
"반말했다가 존댓말 했다가."
"상관없잖아요?"
"없어."
크게 웃으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는 염라대왕.
"대왕님."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올 걸 알았나봐요?"
"여길 제일 먼저 올 거 같았거든."
이럴 땐 눈치가 정말 빠른 신이야.
"스피리아랑 네모필라를 데려오거라."
염라대왕 명령에 처벌과 저승사자들이 사라졌다.
"1명만 가도 되는데 몇 명이 가는 거야."
어이없어 하는 염라대왕.
나도 같은 생각이다.
"해결방법이 궁금합니다, 대왕님."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보는 아스타.
"방법은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줄 뿐."
"예?"
"지금까지 기다리고 하신 이유는 들었습니다. 누구든 산에 가도 전쟁이 안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라고."
"그렇다. 요괴들이 신경 끌 때까지 기다렸다."
"솔직히 말해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스타도 인간과 같은 생각인가?"
"죄송한 말씀이지만... 같은 생각입니다."
살짝 웃는 염라대왕.
"너희 둘이면 요괴들 전부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달라."
맞다고 대답하는 아스타.
"산에 어떤 요괴가 있는 지 보니까 사흉수 못지 않게 강한 요괴도 있었다."
"그런 놈이 있으면 전쟁규모가 너무 커지죠."
"아스타 말이 맞다."
"그거 말고 더 한 건?"
내가 궁금한 걸 물어봤다.
"요괴는 인간을 꾀어내는 존재. 너희가 만든 결계 덕분에 그런 일은 없었다."
"끝?"
"녀석들이 도망가는 것도 막고 있었다."
"끝?"
"나한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것이냐? 네가 듣고 싶은 말이 나오게 질문해라, 인간."
"나랑 아스타가 가면 전쟁 안 하는 거 맞아? 염라대왕, 그 쪽의 예상 아니야?"
옆에서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아스타.
염라대왕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타이밍 좋게 토벌과장님과 처벌과장님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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