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어쩌라고?!

- 45화 -
윤곤대는 이서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힘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아직도··· 황희 대감과 김종서 대감의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네. 전하께서 직접 하명한 그런 중요한 인재를, 포용과 아량? 겸손한 사람? 그런 두리뭉실한 조건으로 찾는다니··· 나는 아마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네.”
“그··· 말씀은?”
“나는··· 나의 원래 신념과 생각대로 인재를 발굴하겠네. 그러니 자네는 자네의 생각대로 그런 사람을 찾아 보게나.”
“네? 하지만 전하께서는 우리 둘이 같이 찾으라 하셨는데···”
윤곤대가 냉정하게 말했다.
“자네와 난··· 지금 보니 참 많이도 다른 듯하네. 자네 또한 나와는 생각이 같지 않다고··· 김종서 대감에게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아마도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간에 분명 충돌이 있을 걸세.”
“그건···”
“그러니 우리 각자 서로의 주관에 부합하는 인재를 찾아보고, 대신 전하께는 그 중에서 선별해서 추천을 올리면 되지 않겠나?”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참 많이도 다른 사람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완전히 결이 다른 사람이야. 그건 자네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
윤곤대는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황희 대감도. 김종서 대감도. 그런 자네를··· 칭찬하셨지 않은가? 그러니 자신을 갖게.”
“형··· 이조전랑님!”
“앞으로 내게 들어오는 추천서나 지원서들은 모두 똑같이 자네에게도 보여 주겠네. 그러니 각자 자료들을 살펴보고 나서, 앞으로 1달 후에 만나서 그 때 얘기를 다시 나누기로 하세. 그럼 그리 알고, 나는 먼저 나가 보겠네···”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윤곤대는 뒤돌아서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그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그리고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큰 일이 났다!
그 사이좋던 윤곤대와 이서치의 관계에, 어느새 균열이 생긴 듯하다.
이서치는 뭐라고 말을 걸려고 했다가, 윤곤대의 처연한 뒷모습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잠시 후 윤곤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 * *
얼마 후, 이서치는 여러 명의 추천서와 지원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조선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갈 책임자급을 찾는다는 교지가 이미 승정원을 통해서 육조에 내려진 상태였다.
그래서 육조로부터 직접 지원한 인재들의 이력서와 황희와 김종서 대감으로부터 추천받은 인재들의 자료들이 함께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서류 뭉치를 건네만 받았을 뿐, 직접 윤곤대를 본 것은 며칠 전의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아마도 윤곤대는··· 그 이후로 단단히 마음이 상한 듯했다.
하긴··· 윤곤대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 않던, 그리고 자기 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황희 대감과 김종서 대감으로부터 쓴 소리를 들었던 터였다.
더군다나 본인이 한참 아래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아니 설마 경쟁 상대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치 않았던.
그 하찮은 시골 출신 이서치가 오히려 두 대감의 칭찬을 받았으니 말이다.
윤곤대는 감히 황희 대감의 수제자라고 일컬어지던 사람이다.
김종서 대감과는 곧 사돈을 맺을 혈연과 같은 사이 아니던가.
그러니 윤곤대의 속이 얼마나 상하고 썩어 들어 갔겠는가···?
그가 느꼈을 상심과 자괴감이 어느 정도 이해도 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왜 내게?”
각자 따로 일을 하자는 윤곤대의 차가운 말과 행동을 다시금 떠올리자, 이서치는 그만 화가 치밀었다.
“그게 내 탓인가? 아냐!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잖아?”
아냐... 과연 그런가? 잘못한 게··· 없나?
“아이씨!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보고 어떡하라구?! 나 혼자서 어떻게?!”
이서치는 좀 억울했다!
아니 사실 슬펐다···
그간 1여 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일들이 생각났다.
이런! 미운정 고운정이 그새 많이 들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보다. 마치 전생의 팀장님에게 처럼, 김구함 사장에게 처럼 말이다. 내게 형으로서 선배로서 사수로서...’
이서치는 윤곤대를 떠올렸다.
‘서로 많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제법 잘 어울렸잖아? 안 그래, 윤곤대?’
이런 생각을 하고 나자, 나중에는 그만 오기가 생겨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이나 제대로 하자. 제대로 좋은 결과를 보여 주자! 그러면 그도 나를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겠지. 좀 막히긴 했지만, 본성은 선한 사람이니까···”
이서치는 결심했다.
“그래! 내가 잘해서, 이번 결과가 그의 업적이 되게 하자. 따지고 보면··· 내겐 조정에서의 승진이나 품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예전으로 돌아갈 단서를 찾을 방법만 구하면 되니까. 그럼 그도··· 그때는 내게 고마워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인재 찾기에 몰두했다.
기존에 황희 대감과 김종서 대감으로부터 추천받은 후보자들, 윤곤대를 통해 육조에서 지원한 후보자들 말고도.
육조에 현재 근무 중인 사람들 중에서도 추가로 더 적합한 자가 있는 지 탐색했다.
이서치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서, 단골 선배 권해룡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 이조에서 단골을 시작했을 때부터 윤곤대가 권해룡에게 ‘당분간 이서치의 일을 도우라’고 지시를 했었기 때문에, 그의 도움을 받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조에서 단골로 활동한 지 10년이 넘은 해룡은 여기저기 육조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그의 오지랖과 네트워크는 각 방면의 후보자들을 발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이서치는 황희 대감과 김종서 대감의 조언을 떠올렸다.
‘포용과 아량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되 함부로 남 앞에서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대신 틈날 때마다 공적을 칭찬해줘서 아랫사람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상사.’
‘겸손한 태도로 본인 능력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신 아래 사람들이 편하고 신나게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주변의 온갖 골치아픈 일들을 해결해 주는 리더.’
누가 그런 인재인지 면밀히 찾아 나섰다.
하지만 성향이나 리더십 같은 정성적인 덕목은 추천서나 지원서에 나와 있는 정보로는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렇다면 방법은···’
이서치는 그동안 추천받고 지원받고 발굴해낸 모든 인재들의 주변을 물색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후보자와 일한 경험이 있는 윗사람, 아랫사람, 동료들.
심지어는 거주지의 이웃과 그 후보자가 자주 들락거린다는 객잔과 기루 등도 죄다 찾아다녔다.
평소의 품성, 인간관계, 책임감, 성실성, 상사로부터 일을 받았을 때의 대응 요령,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아래 사람에게 일을 분배했을 때 그 책임 소재에 대한 권한과 의무 등등을 일일이 다 체크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제법 들어갔다.
여기저기 다녀야 할 곳이 여럿이고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 보니, 생각보다 비용이 오버된 것이다.
보다 못한 해룡이 서치에게 한마디 했다.
“이보게... 그나저나 돈이 많이 들어서 어쩌나? 이조에서 지원받은 경비 갖고는 택도 없을 텐데?”
“네 맞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었어요. 휴우~ 할 수 없이 모자란 부분은 일단 제 사비로 충당을 했죠 뭐··· 에고~”
그 말에 해룡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자네 사비를?! 아니 그게 뭐라고 그리 열심인가?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자네는 어찌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갖다 바치면서 일은 하는 게야?”
“그게··· 어찌되었든. 제가 이조에서 처음 받은 일이잖아요? 그러니 무조건 성공해야죠. 이판사판입니다!”
그 계산 빠른 이서치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뭐··· 나중에 세종대왕님께 경비는 다 청구해서 되돌려 받으면 되지~’
그런 이서치의 속 생각을 알 리 없는 해룡이 혀를 찼다.
“쯔쯧~ 뭔 사람이 일을 적당히 해야지. 그러다가 자네 곧 거덜난다구··· 그나저나 이조전랑 나으리와는 요새 통 왕래가 없는 듯 하구먼? 처음에는 그리 친한 것 같더니만. 왜,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네? 네··· 그러네요. 헤헤헤.”
이서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니 후보자를 찾고 검증하는 데 몰두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는데, 따지고 보니 윤곤대를 마지막으로 본 지도 어언 1달이 지난 것 같았다.
이서치는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쬐금···
* * *
지금은 이서치 회귀 +5년. (1423년, 세종 5년)
이서치는 근 1달 동안 추천받고 지원받고 직접 찾은 수십 명의 인재들을 대상으로 여러 방면에서 검토를 했다.
낮에는 실사를 나가고 밤에는 문서 작업을 하느라.
지난 1달 동안 밤낮이 어떻게 바뀌는 지, 계절이 얼마나 흘러서 언제 봄이 되었는지 등을 통 모른 채 지나쳤다.
마침내 5명의 최종 후보자를 추스를 수 있었다.
이서치는 이 5명 후보자에 대한 헤드헌팅 추천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최종 검토까지 다 마친 후, 윤곤대를 찾아갔다.
“형··· 아니 이조전랑 나으리! 소인 이서치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오게.”
이서치는 오랜만에 윤곤대와 마주 앉았다.
그의 집무실 책상에는 후보자들의 추천서로 보이는 두루마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당연히 그간 윤곤대도 치열하게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을 터였다.
“무슨 일인가?”
윤곤대는 책상의 서류 뭉치에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사무적으로 말했다.
“네··· 그간 저 나름대로 여러 인재들을 물색한 끝에 이제 5명의 최종 후보자를 추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조전랑 나으리께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그런가? 음··· 알았네. 그럼 서류를 두고 가네. 내 틈나면 한 번 살펴보겠네.”
이서치는 머뭇머뭇거리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이조전랑 나으리.”
“왜 그러는가? 아직 할 말이 남았는가?”
이서치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아··· 아닙니다.”
“원 싱거운 친구같으니··· 할 말이 없으면 그만 돌아가 보게나. 내가 좀 바빠서···”
이서치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서, 집무실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그 때 윤곤대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듣자 하니! 그동안 굉장히 열심히 일을 한 것 같군?!”
“네? 네··· 일이 일인지라서요.”
그제서야 윤곤대가 서류에서 눈을 떼더니 이서치의 얼굴을 마주 봐 주었다.
“이런··· 그동안 얼굴도 많이 상했구먼. 좀 쉬엄 쉬엄 하지. 이런 융통성 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쯔쯧!”
“네? 아닙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형··· 이조전랑 나으리!”
윤곤대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허. 둘이 있을 때는 예전처럼 편하게 불러도 된다네.”
“네? 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래. 하여간··· 자네가 추천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내가 꼼꼼히 살펴보겠네. 걱정 마시게.”
“네. 형님도 너무 무리하게 일에만 몰두하지 마시고 건강도 챙기십시오.”
윤곤대와 이서치는 실로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래. 고맙네.”
“네. 형님! 형님이 많이 바쁘신 듯하시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이서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윤곤대와의 사이가 그렇게 서먹서먹해진 뒤로는, 통 기운이 나지 않던 그였다.
하지만 오늘 그를 마주하고 보니, 이제 다시 예전의 그 다정한 형님 동생 사이로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작성한 추천서를 보시면 형님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지실거야. 내가 1달 동안 얼마나 고생하면서 그걸 만들었는데 말이야···’
이서치는 자기가 만든 추천서를 보고 윤곤대가 활짝 웃으면서 자신을 반겨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나···!
* * *
다음날, 이서치가 있는 단골서리 사무실로 아침 일찍 윤곤대가 들이 닥쳤다.
“자네! 있는가?!!”
“네. 형님~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신지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윤곤대의 표정이 또 심상치 않게 변해 있었다.
“자네··· 나 좀 보세. 어서 나를 따라오게!”
“네? 네! 알겠습니다.”
이서치는 그를 따라서 윤곤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신지···?”
“어제 자네가 두고 간 추천서들을··· 내가 밤새 다 살펴보았네!”
이서치가 어제 두고 간 추천서들을 손에 쥔 윤곤대가, 살짝 언성을 높이면서 말했다.
“네. 벌써 보셨군요···?”
“그런데 이 추천서에는··· 좀 문제가 있어 보이네!”
이서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문제요? 아이고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뭔 실수를··· 했는지요?”
“추천서에··· 마땅히 있어야 할 내용이 빠져 있고, 대신에 필요없는 사항들만 잔뜩 들어가 있지 않은가?!”
윤곤대가 마치 이서치를 혼내는 듯이 말했다.
“네? 그럴리가요···?”
“이런 식이라면··· 나는 자네가 만든 추천서를 전하께 보고 드릴 수가 없네! 절대로 안되네!”
이서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안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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