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수원으로 다시 내려갈까 봐요

- 54화 -
권해룡의 말에 의하면, 윤곤대는 어제 이조판서에게 요청해서 특별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젊은 문신들이 직무를 쉬면서 글을 읽고 학문을 닦을 수 있는 특별휴가 제도를 운용하였는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 년에 걸쳐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한 휴가를 주었다.
윤곤대는 이 사가독서를 신청해서 오늘부터 1년 짜리 휴직 비슷한 장기휴가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갑자기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어디 아픈가? 아니 그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럴리가··· 설마 이번 경연에서 진 것 때문인가? 나··· 때문인가?’
이서치는 윤곤대가 걱정도 되고 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혹시 윤곤대도 자신처럼 앓아 누웠을까 봐, 닭 한 마리를 사서 대추, 마늘 등과 함께 가져갔다.
북촌에 있는 윤곤대 집에 가는 것은 거의 반년 만이었다.
그의 집에서 반년 가까이를 하숙 비슷하게 살았던 셈이니까, 오랜만에 그 집 대문을 보게 되자 예전에 여기서 윤곤대와 지지고 볶았던 추억이 새삼 떠올라서 울컥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윤곤대에게 많이 의지했었나 보다···’
윤곤대의 처인 신영임이 이서치를 반겨 주었다.
하지만 윤곤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이서치가 찾아왔다는 말에 윤보라도 나타났다.
서로가 대놓고 반가움을 표시하기엔, 지금의 분위기가 너무 우울했다.
보다 못한 윤보라가 신영임과 함께 윤곤대 방에 에게 가서 그를 설득을 했지만, 끝끝내 그는 이서치를 보려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이 행수 님이 오랜만에 찾아오셨는데, 정말 안 보실 거예요?”
“내가 그 자를··· 볼 일이 더 이상은 없다!”
“사방님. 그래도 이건 도리가 아니죠. 서방님 생각해서 닭백숙 거리도 들고 오셨는데···”
“도대체가! 왜들! 내 마음은 헤아려 주지를 않고··· 그 놈의 이서치 생각만 하는 거요? 왜?!”
그동안 이서치와 그렇게나 친하게 지냈던 윤곤대가 이처럼 한순간에 갑자기 냉랭해진 것을 그녀들은 영 이해하지 못했다.
인재 경연 과정 중에 윤곤대와 이서치의 사이에서 일어난 감정의 변곡과, 이번 경연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 자세한 내막을 일일이 알지 못하는 그녀들은, 윤곤대의 매정한 처사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들은 중요한 채용 건이 있어서 윤곤대와 이서치가 각각 인물을 추천했는데, 이서치가 추천한 후보자가 최종 합격이 되었다고만 알고 있었다.
이번 결과로 인해 윤곤대에게는 아무런 해나 실이 없었고, 이서치가 체아직에서 종9품 참봉으로 정식 단골서리가 되었으므로 오히려 이를 축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서치가 어서 인정을 받아서 정직원이 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윤곤대가 내심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곤대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그녀들에 대한 서운함이 사무쳐 왔다.
이서치와 친한 것과, 그에게 진 것은 별개다.
우애와 승부가 별개라는 것을, 그녀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자존심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을 그녀들은 미처 알아 차리지 못했다.
윤곤대는 이번 일로··· 이서치에 대한 그의 마음이 까맣게 변해가게 되었다.
예전부터 윤곤대를 아끼었던 세종대왕이었다.
윤곤대도 그 누구보다도 주군을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이번 경연에서 이서치의 손을 들어주고 심지어 그를 두둔하기까지 하자, 윤곤대는 실망하였다가 이내 분노하였다.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과 시기심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심지어는 영원히 그의 편인 줄로만 알았던 황희 대감도 김종서 대감도,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소식을 접한 아버지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기까지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호랑이 새끼를 집에 들였던 거’라니, ‘키우던 개에게 물린 꼴’이라니 하며 나무랬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안사람도 여동생도 모두 서치의 편만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가장 충격이었다.
그래서 윤곤대는 마음껏 비뚤어졌다.
그는 ‘블랙 스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서치를 라이벌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치 못했다가 허망하게 패해서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고.
심지어는 그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이들에게 인정을 받기는 커녕 쓴 소리만 듣고.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오히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서치를 두둔하자.
커다란 마상을 입고 그만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멀게 된 것이다.
윤곤대의 모든 분노의 원인을 이서치에게 돌리게 되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왜 전하도 스승님도 김종서 대감님도 이서치를 편드는 거지? 안사람도 보라도 뭘 안다고 이서치를 끼고 도는 게야? 왜? 그래··· 이게 다 따지고 보면 이서치! 그 놈 때문이다! 저 놈이 내 옆에 오면서부터 모든 일이 꼬여 버린 거야!’
문 앞에 있는 이서치가 들으라고, 일부러 윤곤대가 크게 소리쳤다.
“이서치! 듣고··· 있지? 앞으로 다시는 나를 찾지 말게! 우리는 여기까지··· 인 게야.”
서치는 윤곤대의 외침 속에서 자신에 대한 그의 분노와 원망을 엿들을 수 있었다.
결국 신영임과 윤보라가 고개를 흔들면서 나오자, 이서치는 그대로 윤곤대의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서치는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갔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온갖 감정이 북받치는 바람에 지금 여기가 어디쯤 인지 잘 헤아려 지지도 않았다.
서치는 후회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그만 승부욕과 공명심과 들떠 윤곤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어. 다 내 잘못이야...’
솔직히 윤곤대에 대한 세종대왕과 황희 대감 등의 날 선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윤곤대가 이 일에 얼마나 목숨 걸고 덤볐던 것인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다.
급격한 후회가 몰아치는 바람이, 몸이 붕 떠 있는 것만 같게 느껴졌다.
‘난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 * *
지금은 이서치 회귀 +5년. (1423년, 세종 5년)
이조 안에서도 이서치를 향한 비난의 소리들이 들렸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주고 키워준 은인인 윤곤대를 배신했다’느니, ‘이제 1년도 안 된 체아직 주제에 어찌 윤곤대를 이길수 있냐’며 ‘분명히 뭔가 꼼수나 암수가 있었지 않았겠느냐’ 하는 등의 음모론이 퍼져 나갔다.
윤곤대와 친분이 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멸시와 비아냥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권해룡이 그들 앞에 나서서 대신 항변해 주었지만,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할 뿐이었다.
이미 잔뜩 색안경을 쓰고 있는 그들은, 이번 일의 실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조의 가장 위인 이조판서부터 가장 말단인 서리까지, 많은 이들이 이서치를 피했다.
그를 미워했다.
싫어했다.
결국 이서치는 이조 내에서 철저히 고립이 되었고, 알게 모르게 왕따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휴가를 받게 되자, 얼씨구나 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일체 밖에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하게 되었다.
이서치는 승진과 함께 소속 부서장인 이조판서로부터 특별히 2주간의 포상휴가를 받았는데.
서치에게 적대적인 이조판서가 그를 배려했을 리는 만무했고.
얼굴이 반쪽이 된 서치의 몰골을 긍휼히 여긴 세종대왕의 지시로 인해 특별휴가를 받게 된 것이다.
이전에 체아직으로 있을 때는 정기휴가 자체가 아예 없어서, 사수 격인 윤곤대의 재량으로 가끔씩 쉬곤 했다.
하지만 정월에 세종대왕으로부터 과학기술 책임자 채용 명을 받고 부터는, 그나마도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지금까지 달려왔었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다 소진이 된 상태였다.
원래 조선의 관리들은 매달 1, 8, 15, 23일에 쉬었고, 24절기에도 쉬었다.
그러면 한 달 평균 6일, 1년으로 하면 약 72일의 기본 휴일을 보장받았던 셈이다.
일식과 월식 때도 쉬었다. 설날, 추석, 대보름과 단오 때도 쉬었다.
정조시일이라고 해서 임금이나 대비, 왕비 등 국상이 나거나, 종친, 정2품 이상의 관리가 사망했을 때도 임시공휴일이 주어졌다.
이걸 다 합치면, 지금의 휴일 숫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생각보다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친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을 치르기 위해 3년 휴가를 받았고, 장인, 장모, 아내가 죽으면 15일간 휴가를 받았다.
부모 병환 때에도 거리에 따라서, 가까우면 30일부터 먼 거리는 70일까지의 특별휴가를 주었다.
3년에 한 번 부모 뵈러 갈 때, 5년에 한 번 조상묘 갈 때, 혼례 때 등등은 7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휴가 기간이 끝나고 제 때에 돌아오지 않으면 파면, 거짓으로 휴가를 받았을 경우에는 탄핵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종 때 ‘엄귀남’이라는 당상관은 모친이 위독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대신 기생과 밀월여행을 갔다가 들통이 나서 탄핵을 당한 일도 있었다.
반면에, 농민이나 상민들은 알아서 자율적으로 쉬었다.
노비들도 출산휴가 등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노비들이 쉴 수 있는 날은 일년에 단 하루, 음력 2월1일 이었다.
이를 삭일이라고 하는데, 나라에서 앞으로 농사 일 때문에 1년 내내 고생할 노비들에게 이 날 하루는 배불리 먹이고 취하도록 하는 풍습이었다.
백성의 수가 곧 권력이라고 생각했던 세종대왕은 심지어 출신휴가도 권장했다.
관청 여종이 임신하게 되면 출산 한달 전부터 일을 쉬게 했고, 출산한 이후에는 100일간의 휴가를 주도록 했다.
임신한 부인이 출산하게 되면 그 남편에게도 30일간의 휴가를 부여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또한 지금도 다자녀에 대한 혜택을 주 듯, 그 당시에도 세 쌍둥이를 낳으면 커다란 혜택을 주었는데 자그마치 1년치 먹을 수 있는 쌀과 콩 10석을 하사했다.
* * *
이서치가 2주간의 휴가를 받고는 집에서 꼼짝도 않고 두문불출하자,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무흑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서치는 아침부터 퍼질러서 술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어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아침부터 술이나 퍼 마시고···”
“어? 이게 누구야? 어디 보자··· 아하! 천하의 내금위장 무흑님 아니세요? 내가 가장 좋아라 하는 우리 무흑님! 잘 오셨습니다. 어서 예 앉으세요. 인생 뭐 있습니까? 저랑 술이나 마시자구요.”
“쯔쯧! 이 사람이 참···”
이서치가 무슨 일로 이렇게 괴로워하는 지, 무흑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통 보이지 않자 수소문을 했었는데 그와 친하다고 하는 권해룡으로부터 그간의 얘기를 전해 듣고는, 오늘 이서치를 정신차리게 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일단은 무흑도 이서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자코 이서치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어색한 분위기를 좀 고쳐 볼 심산에, 무흑이 말을 꺼냈다.
“자네는··· 모처럼 휴가를 받았는데 집에서 술만 싸지르고 있는가? 하다못해 어디 처자라도 만나든지 하지···”
“처자요? 허허허. 제가 만날 처자가 어디 있어요? 제 주제에 무슨···”
“자네가 혼자인 것은 알겠네만, 어디 두고 온 정인은 없는겐가? 올커니... 예전에 못골시장에서 자네 옆에 함께 있던 그 한약방 처자와는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던가?”
“누구요? 아. 혜수요? 에이··· 혜수는 제게 여동생 같은 친구예요.”
“그래? 그럼··· 자네가 하는 것 봐서 저번에 얘기한 그 처자를 내가 소개시켜 줄 수도 있는데···”
“처자 누구요?”
“왜 자네가 예전에 한양에 처음 와서 천지루에 들렀을 때, 흘깃 한번 보고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누구냐고 계속 캐물은 처자가 있다고 사방지가 그러던데··· 그리고 나를 찾아왔을 때에도 그 처자를 아느냐고 물어 보았지 않은가?”
“아하! 그 처자요? 그런데 그 처자는 내금위장님··· 정인이 아니었어요?”
“허허허. 이 놈이 또 헛소리를··· 그 애는 그런 애가 아니다. 그 아이는 내··· 아니다! 뭐 싫음 말고!”
“그래요? 음··· 에이! 저도 됐어요. 이 판국에 무슨 여자고 뭔 연앱니까?”
“그나저나 내 듣자 하니, 사방지가 글쎄 자네에게 뭔가 받을 게 있다면서 자네가 연락 주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던데··· 자네가 줄 게 뭔가?”
“네에? 허허 허허허···”
그렇게 연거푸 몇 순배나 술잔을 나눴을까, 서치가 갑자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수원으로 다시 내려갈까 봐요.”
이서치 입에서 예상치 못한 폭탄선언이 터져 나왔다.
여기 일은 다 그만두고, 이제라도 수원으로 내려가서 예전에 하던 일 다시 하고, 그러다가 참한 처자와 혼인해서 살림차리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야겠다고 얘기했다.
“그래에? 그러셔! 그럼!”
“네?”
“그렇게 하시라구! 그런데··· 자네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
“난 예전에 자네가 못골시장의 주막에서 밤새 한 얘기를 조금도 믿지 아니하였네. 그런데··· 자네가 한양에 오고 난 후 지금까지의 기가 막힌 행적을 보아하니, 어쩌면 자네가 진짜로 먼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종종 들더군.”
“내금위장님···”
“그게 맞다면 자네··· 여기서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말로?”
“...”
“전하께서 하신 말씀 기억나는가? 단골로서 일하게 되면 집현전의 자료들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신 말씀 말야··· 자네. 자네가 말했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겐가? 아니면 그새 마음이라도 바뀐 겐가?”
“다시··· 돌아간다···”
“그러니 투정이나 어리광 일랑은 그만 부리고, 이제 정신 좀 차리게! 엉?!”
“네네. 무흑님 말씀은··· 잘 알겠구요. 그런데 당분간은 그냥 저 좀··· 내버려···”
서치는 아침부터 마신 술에 취해 그만 골아 떨어졌다.
시간은 벌써 한낮을 넘어 신시(申時, 오후 3시 무렵)를 지나고 있었다.
무흑이 혀를 차며 서치에게 이불을 덮어주려고 있어 섰을 때, 문 앞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 * *
문 앞에 어떤 젊은 처자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처자는··· 누구시오? 혹 여기 사는 이서치와··· 아는 사이시오?”
“네. 저는··· 수원에서 온 혜수라고 하옵니다.”
“혜수? 아··· 수원의 그 한약방 처자?!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그녀는 김허준 한약방의 혜수였다!
혜수는 삼성대상단 이재웅의 소개로 광고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한양의 큰 상인이 불러서, 그와 광고 일을 상담하러 조선제일기획 직원들과 함께 오늘 아침 일찍 한양에 왔던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는 다시 수원으로 내려 가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서 이서치를 보러 왔다.
이서치의 집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서치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용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그래서 그만 반가운 기색도 내지 못한 채 그렇게 한참 동안 서있던 참이었다.
그녀로부터 대충의 사정 얘기를 들은 무흑이 단도직입적으로 혜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서치를 사모하는 게요?”
“네?! 아···”
무흑이 갑자기 혜수보고는 이서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혜수는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발개져서는 주저거렸다.
“미안한 얘기지만··· 만약에 그대가 저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고 있다면, 당분간은 그를 찾지 말아 주시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 지···?”
“지금 이서치는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을 좀 다친 상태요. 그래서 보다시피 저렇게 매일 술만 마시면서 잠시 방황하고 있는 중이오. 하지만··· 전하도 그렇고 많은 대신들도 그렇고. 저 친구의 능력을 아주 높게 보고 있소.”
“아···”
“그러니··· 지금 그대가 이서치를 자극하게 되면. 자신이 여기 한양에 온 목적을 그만 포기하고, 다시 수원으로 내려 갈 지도 모르오. 내 자세한 사정이야 잘은 모르지만··· 그대도 이서치, 저 친구가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만··· 안 그렇소?”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초면에··· 미안하오. 잘 살펴 가시오.”
“저··· 한 가지만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물어 보시오.”
“오라버니가 지금··· 많이 힘드신 상태신가요? 괜찮으···실까요?”
“생각보다 심지가 굳은 친구니까 곧 툴툴 털고 일어설거요. 나도 있고, 전하께서도 저 친구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각별하시니까. 저 친구가 잘못되게는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오.”
“그럼··· 됐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무흑은 그렇게 말하고, 이서치의 집을 떠났다.
혜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수원에서부터 챙겨가지고 온 꾸러미를 풀었다.
그리고는 부뚜막에 들어가서 이서치가 평소에 좋아하던 황태해장국을 끓였다.
국을 끓이면서 숨죽여 우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떨렸다.
부뚜막 한 켠에 따뜻하게 지은 밥과 국을 차려 놓고는, 이서치가 잠들어 있는 방 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리고 혜수는 다시 수원으로 떠났다.
한밤중이나 되어서야 깨어난 이서치는 배가 고프기도 하고 속이 쓰리기도 해서, 뭔가 먹을 게 있나 하고 부뚜막을 뒤졌다.
그러다가 밥과 국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야~ 설마 무흑이 해놓고 간 건가? 그 양반, 의외로 센스가 있네···”
국 솥을 열어 보았더니, 기가 막히게도 이서치의 최애 해장 메뉴인 황태해장국이었다.
국을 한 뚝배기 퍼서 거기에 밥을 말아서는 허겁지겁 퍼먹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어라? 이 국··· 어딘가 익숙한 맛인데? 이거 혹시··· 혜수?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