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스카우트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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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애드헌터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6
최근연재일 :
2024.07.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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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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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개와 늑대의 시간

DUMMY

- 55화 -


시간이 약이라고, 이서치는 이제 조금씩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있었다.

저번에 무흑이 다그치며 해 준 얘기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 내겐 여기에 온 목적이 아직 남아 있잖아. 단골로 일할 수 있게 되면, 집현전 같은 곳에 들어가서 회귀나 전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던 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지만, 그러다가도 윤곤대를 떠올리면 다시 기운이 빠지곤 했다.

이서치는 자신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윤곤대가 이렇게 상심에 빠지게 되는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생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는 거랑, 여기 조선에서 신료들을 채용시키는 것에는 그 영향력과 파급 효과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단골로서의 이서치의 결정과 행동이 조선의 역사에 생각치 못한 변화를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별 거 없는 이방인이 이렇게 역사에 마음대로 개입해도 되는 걸까? 나로 인해 그 누군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가 사는 필동의 동네 뒷산인 남산 길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여기저기에 봄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때는 봄의 중심인 4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꽃들을 보니, 갑자기 사방지가 생각났다.

2주 간의 휴가가 이제 며칠 안 남았던 터였다.


더 늦기 전에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번 박영서 건으로 요청한 자료 수집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답답한 심정을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토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사방지라면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고 천지루에 가서 사방지 앞으로 서찰을 남기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 이튿날 인편을 통해서 바로 답신이 왔다.


‘내일 미시(未時, 오후 1시 무렵)에 천지루 앞에서, 단 둘이서만.’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이서치는 서찰을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단 둘이서만··· ㅠㅜ’


* * *


다음날, 이서치는 약속 시간에 맞춰 천지루 앞에 도착했다.

사방지는 이미 나와 있었다. 서찰에 적은 대로 호위를 다 물리치고 혼자서만···


‘그래도 어디서 그 누군가가 사방지 주변을 주시하며 지키고 있겠지? 그나저나··· 헐! 이게 뭔 패션이야···?! 온통 핑크에 또 핑크라니···’


그녀는 연분홍색 치마에 진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벚꽃무늬 수가 놓아져 있는 화려한 패션이었다.

그녀의 핑크빛 저고리와 치마를 보자, 불연듯 흑분홍낭자단 아이들이 생각났다.


‘잘들 있을까? 수진이는... 이런! 내가 지금 수진이 생각할 때가 아니지.’


이서치는 그렇게 한껏 꾸며서 패션에 힘을 팍팍 주고 나온 사방지를 에스코트하고, 봄나들이를 갔다.

단 둘이서만···



“호호호. 오늘 따라 날씨가 참 좋네요. 어머! 도련님! 저것 좀 보세요.”


화려한 그녀의 행차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다 쳐다보았다.


‘이거 왠지 내가 다 낯 뜨거운데? 어이구야···’


육조거리를 걸어서 광화문까지 간 후에 경복궁을 지나쳐서 서촌 방향으로 걸어 갔다.


사방지가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웬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저랑 봄나들이를 하실 생각을 다 해 주셨을까?”

“아니··· 그건 제가 아니라 행수님이 저번에 정보 제공 대가로 요청한···”


“에이~ 그건 핑계시잖아요. 호호호. 그럼 이제··· 햇님이에 대한 관심은 지우신 건가요?”

“햇님이···가 누군데요?”


“어머! 예전에는 제 앞에서도 계속 그 아이 얘기만 하시더니···”

“??? 아하! 예전에 천지루 처음 갔던 날 잠깐 스쳐 지나쳤던 그 처자요? 그 처자 이름이 햇님이예요?


“호호호. 본명은 아니구요, 햇님이는 별칭이에요. 그 애가 여간하면 잘 안 웃는데, 한번 웃으면 마치 햇님처럼 따스하고 광채가 난다고 해서 그런 별칭이 붙었지요.”

“근데··· 그 처자가 내금위장님의 부인이나 정인이 아니었어요? 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물어보니 무흑님은 아니라고 딱 잡아 떼더라구요···”


“네? 호호호. 그럴리가요···!”

“아··· 그렇군요.”


이서치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근데 햇님이가 지금 나랑 무슨 상관있나? 이런 상황에 무슨 여자야?’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서 서촌마을에 다다르니, 주위가 온통 벚나무로 만개해 있는 아름다운 언덕이 나왔다.

야트막한 바위산 자락이었는데, 이곳을 지나서 위로 오르면 인왕산과 이어진다는 것 같았다.


옆으로는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에는 너른 바위가 놓여져 있는데, 이 주위로 많은 풍류객들이 모여 한창 벚꽃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방지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조선의 벚꽃 명소인 필운대(弼雲臺, 지금의 서촌마을 배화여고 근처)라고 하였다.


여기는 단지 꽃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사당패나 민요, 판소리 등의 공연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양반들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함께 즐기는 조선시대 한양의 풍류 핫플레이스라고 알려 주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자 벚꽃이 사방에 휘날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서, 이서치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 봄바람 휘날리며

이 거리에 벚꽃 잎이 ~ ]


사방지가 물었다.


“어머! 그게 무슨 가락인가요?”

“아··· 아뇨. 그냥요···”


“도련님이 저번에 들려주신 장미··· 시조도 그렇고, 희한하고 재미있는 걸 많이 알고 계시네요?”

“···”


이서치가 별 말이 없자, 사방지가 조심스레 윤곤대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도 이조전랑··· 그 분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세요?”

“··· 그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호호호. 잊으셨나 봐요? 제가 그 천지루의 사방지잖아요.”

“하하. 그렇네요···”


이서치가 더 이상 윤곤대에 대해서 얘기를 이어 가지 않자, 사방지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혜수라는 처자와는 어떤 사이세요?”

“네? 혜수는··· 또 어찌 아세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그나저나 그 처자와는··· 잤나요?”

“푸아악!!!”


이서치가 너무 놀라서 먹던 물을 뿜었다.


“호호호. 잤네! 잤어!!”

“아뇨! 그럴리가요.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수진이라는 처자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듣자 하니 이조전랑 댁 막내 아기씨와도 꽤 친하신 사이시라고?”

“허허허. 그걸 다 어찌 알고 계십니까?”


“이거 왜 이러세요? 저 사방지라니까요. 호호호~”

“네···”


“가만 보니 도련님, 순 바람둥이 아니예요? 호호호.”


이서치는 쓴 웃음만 지어 보였다.



그 때, 건너편에 앉아서 꽃구경을 하던 일행이 이 쪽을 보면서 수근거리는 게 이서치 귀에 들어왔다.


“근데··· 저 사람, 사방지 아닌가?”

“그게 누군데?”


“아니, 그 왜··· 있잖은가? 다동에 있는 천지루의 행수라고 하는 그···”

“아하! 그 계집도 아니고 사내도 아니라는 천하에 요상하고 괴이한 자?! 어쭈? 저 이가 그 사방지야? 겉으로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그러면서··· 속은 어찌 그리 숭한 것이여?”


“흐흐흐. 낸들 알겠는가? 왜 궁금혀? 궁금하면 어디 직접 확인해 보던가···”

“그럴까···나? 그럼 밤 일은··· 어떻게 하는 겨? 흐흐흐.”


그들은 술을 마시면서 사방지를 가지고 너저분한 음담패설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이서치가 욱해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사방지가 말렸다.


“도련님. 그냥 놔두세요. 모처럼의 이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네요.”

“그래도···”


사방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의 밤은 저들의 낮보다 아름답거든요. 어떠셔요? 제가 선사하는 밤을 한번 경험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호호호.”

“네에?!”


이서치가 기겁을 했다.


“어머! 놀라시긴··· 농담이예요. 농담! 호호호~”


그렇게 벚꽃잎 날리는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질녁이 되었다.


가만히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사방지가 얘기 하나를 해 주었다.


“혹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개와··· 늑대의··· 시간?”


“저 멀리 석양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자가, 과연 나를 반갑게 마중 나온 개인가, 아니면 나를 노리러 온 늑대인가.”


사방지가 붉으스레한 노을을 보며 마치 꿈꾸듯이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어떤 이를 보고 ‘이 사람은 개다, 아니 늑대다’ 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그 두 가지 모습을 다 지니고 있거든요. 그건 조금 전에 저를 가지고 안주거리로 삼았던 저들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저한테는 무례했지만 또 다른 이들한테는 한없이 다정할 지 몰라요. 사람은 그런 존재거든요. 저도 그렇구요···”


이서치는 노을 빛에 반사되어 붉게 물들어가는 사방지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사방지는 시선을 노을에 둔 채로 가만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래서··· 저한테 소중한 사람에게만 잘 할려구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벅차거든요.”


이서치가 물었다.


“저는 행수님에게 개인가요? 늑대인가요?”

“네? 호호. 저는 그래도 도련님은··· 저를 항상 반겨주는 귀여운 강아지 일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때로는 늑대가 되어서··· 저를 얼른 덮쳐 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있답니다. 호호호.”


“행수님···”

“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사방지는 이서치의 얼굴에 서린 그늘을 보며 말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오늘은 아무 생각 하지 마시고, 그냥 지금을 즐기세요. 이 날을 누리세요.”

“···”


* * *


지금은 이서치 회귀 +5년. (1423년, 세종 5년)


필운대에서의 벚꽃구경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가 저문 시간인데, 웬일로 운종가 앞 저잣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누가 왔나’ 하며 다가서자,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 서방님이 날 어찌 생각하는지는

너무 명약관화(明若觀火) 해.

만만히 보셨다면 우리 인연 이쯤에서~ ]


아! 그가 익히 아는 노래소리.


[ 지화자 좋다.

얼쑤 얼쑤 잘 한다!

하지만 눈에선 또륵또륵~ ]


바로 흑분홍낭자단이었다!


“아! 드디어 흑분홍이 한양에 진출한 게로구나!”


이서치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흑분홍의 공연을 쳐다보고 있자, 사방지가 곁에 붙어서 아는 체를 했다.


“오! 저 아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흑분홍낭자단이군요?! 오늘 여기서 무슨 가무 공연이 있다길래, 저는 어디 사당패라도 온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모두들 참으로 젊고 이쁘네요. 그럼 저 친구가··· 수진이겠네요? 역시 저 처자가 가장 도드라져 보이네요. 호호호.”


오랫만에 수진이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열창에 모든 구경꾼들의 이목이 수진이를 향하고 있었다.

특히 남정네들은 모두 얼굴에 넋이 나간 표정들이었다.


흑분홍은 조선의 트렌드세터였고, 이 시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들의 노래와 춤과 패션에,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어느새 생긴 흑분홍의 팬들이 환호하며 외쳤다.


“최고다! 우리 흑분홍!”

“언니, 멋있어요!”

“이쁘다 수진! 귀엽다 하린! 지화자 지수! 니나노 채원!”



그런데 흑분홍에 열광하는 팬들을 못마땅한 듯 째려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흑분홍을 헐뜯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기녀들인 주제에··· 흥!”

“에고! 저 천한 것들이···”

“저런 요망한 년들!”


기존의 익숙했던 사당패나 민요, 판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그녀들의 파격을 차마 못 받아들이겠나 보다.

군중 속에 일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흑분홍에게 큰 소리로 욕을 하거나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흑분홍을 깔보고 욕하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고 드세서, 분명 흑분홍 멤버들에게도 들릴 터였다.

맨 앞에서 노래를 하고 있던 수진도 분명 그 소리를 들었을 터인데,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공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흑분홍낭자단은 안티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끝까지 웃으면서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좋고 나쁜 반응에 하나하나 모두 감사하고 감격해하는 표정이었다.



이서치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는 새삼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옆에 있던 사방지가 얘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여러 사람들한테서 저런 욕을 듣고 살았죠. 아까 필운대에서도 그랬었지만 말이죠···”

“행수님···”


“이렇게 이상한 몸으로 태어났는지라, 부모는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기방에다 저를 팔아 버렸더랬죠. 하지만 같은 기녀들한테서도 손가락질을 피할 순 없었어요.”

“저런···”


“저도 처음에는 분노했어요.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게 내 탓이냐구요. 나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고 있냐고 말이죠. 그러는 너희들은 그 얼마나 대단하냐고···”


이서치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영 이해가 안 갔어요.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한 적이 없는데··· 왜 저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고 미워할까? 혼자서 속으로 많이 괴로워했죠.”

“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의 나를 흉보고만 있는 것 같았고 나보고 또 뭐라고 욕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


“하지만 마치 도련님이 그랬었던 것처럼, 저에게 따스하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잡아준 사람들이 생겨 났죠.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이해해 줄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다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살면 되겠구나···”


사방지가 촉촉한 눈으로 이서치를 바라보았다.


“도련님...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어요. 그냥 곁에 좋은 사람만 몇 있으면 되는 거예요.”


사방지가 하는 말이, 이서치의 가슴에 콕콕 들어와 박혔다.


‘그래 나도 그 사람들을 보고 계속 달리자. 나는 신이 아니다. 내가 세상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 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만 다스리고, 나머지는 세상에 맡기자. 윤곤대가 그랬듯이, 나도 이 일에 내 나름의 중요한 의미와 동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덤비지 않았던가? 난 그냥 내 일을 다 한 거야.’


오늘따라 사방지가 듬직한 형님, 아니 푸근한 누님처럼 보였다.


“고마워요. 행수님!”


사방지가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이제 좀 마음이 편해지셨나요? 호호호. 제가 뭐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리 고마우시다면... 어때요? 이번 여름에 같이 물놀이나 갈까요? 우리, 서로를 좀 더 알아가자구요? 네?! 호호호~”


이서치는 생각했다.


‘사방지 말대로···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나의 몫이 아니다. 그냥 나는 나의 길을 부지런히 열심히 걸어가자. 흑분홍의 수진이처럼···”


이서치는 이제 그만 아파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하며 사는 것. 그게 내가 앞으로 할 일이다!’


* * *


발걸음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그 순간.

갑자기 이서치 앞에 애수암 교두 ‘혜진’이 불쑥 나타났다.


“어머! 대표님? 설마설마 했더니··· 이서치 대표님 맞으셨네요?!”


저 멀리서 혜진이 이서치를 용케 알아보고 찾아온 것이다.


“교두님! 반가워요. 아···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우리 흑분홍이 한양에 입성했네요.”

“네. 흑분홍 얘기가 여기 한양에도 들어 갔나 봐요. 그래서 드디어 오늘 운종가에서 공연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분은···?”


혜진은 이서치 옆에 있는 화려한 행색의 여인네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아! 이 분은··· 천지루라는 객잔의 행수인 사방지라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분은 수원 수성각의···.”


이서치가 소개를 하는 도중, 갑자기 혜진이 사방지에게 날아갈 듯이 큰 절을 올렸다.


“소녀가 오늘 처음 사방지 님을 뵈옵니다. 저는 수원에서 수성각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기루를 맡고 있는 혜진이라고 하옵니다. 그간 말씀으로만 듣던 사방지 님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소녀 정말로 감개무량하옵니다!”

“호호호. 어머! 저를 아세요?”


“천지루의 사방지 님을 모른다면 조선 땅의 기녀가 아니지요.”

“역시··· 애수암의 교두 다우시네요.”


“애수암을··· 아시나요?”

“호호호. 수성각의 최연소 행수이면서, 조선을 호령하는 7대 해어화 중 1명이고. 기녀 사관학교로 유명한 애수암의 교두인 혜진, 그대를 내 어찌 모를 수 있겠는지요?”


사방지를 대하는 혜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조용필을 대하는 이승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 과연 사방지가 이쪽 씬에서는··· 레전드였나 보다···’


혜진이 이서치에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예전에 수원에 계실 때 드린 말씀, 아직 기억하시죠? 수진이 얘기요···”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가 왔다는 기척, 수진이에게 안 내고 조용히 사라질께요. 걱정마셔요.”


“죄송해요. 대표님. 하지만 제 마음··· 아시죠?”

“네. 그럼요···”



그러는 사이에 드디어 흑분홍이 준비한 공연이 끝이 났다.

수진은 팬들에게 둘러싸여 눈웃음으로 대신 싸인을 해주느라고 온통 정신이 없었다.


그 때, 언제 나타났는지 흑분홍의 하린이 혜진에게로 다가왔다.


“행수님! 여기 계셨네요. 주최자 분이 급하게 행수님을 찾으셔요. 어서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그럼 소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사방지 님, 다음에 또 뵙지요. 그리고··· 이서치 대표님도 건강히 잘 지내시길···”


혜진은 사방지와 서치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서 공연장으로 갔다.


하린이 반갑게 서치를 반겼다.


“대표님! 잘 지내셨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통 소식도 없으시고···”

“하린아. 오랜만이구나! 오늘 공연 잘 봤다. 잘했다! 노래 솜씨가 더 늘었어. 그동안 연습 많이 했구나? 장하다 하린아···”


“고맙습니다. 대표님. 그런데 수진 언니는··· 보신 거예요?”

“응? 아니···”


“네? 그럼 잠시만 예서 기다려 주세요. 제가 얼른 가서 수진 언니 데리고 올께요.”

“아니··· 아니다. 하린아. 수진이는··· 됐어. 네 얼굴 보았으면 됐지 뭐···”


“아니 그래도 수진 언니가 알면··· 엄청 서운해할 텐데요?”

“나는··· 이제 이만 갈께. 하린아. 몸조심하고, 다음에 또 보자꾸나. 행수님. 저희는 그만 가죠···”


수진의 마음을 익히 아는 하린이가 수진이를 부르려 했지만, 서치는 이를 만류하고 사방지와 함께 훌쩍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이 사실을 하린으로부터 들은 수진이가 버선발로 뛰어나왔지만, 이서치는 이미 가고 없었다.


“대표님! 어찌··· 흑흑. 저를 보시지도 않으시고 그냥 가십니까? 너무하세요. 저는 어찌 하라고··· 흑흑.”


수진이는 우두커니 이서치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서러운 눈물만 흘렸다.



혜수는 이서치의 앞날을 위해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지만, 이서치는 수진의 앞날을 위해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엇갈린 3명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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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죄송한데요··· 제가 그럴 능력이 안돼요 24.07.03 84 1 15쪽
57 제가 필히 그 자를 잡아끌고 오겠습니다! 24.07.02 89 1 19쪽
56 참봉 이서치, 명 받들겠나이다 24.07.01 93 1 17쪽
» 개와 늑대의 시간 24.06.30 94 1 20쪽
54 저, 수원으로 다시 내려갈까 봐요 24.06.29 90 1 18쪽
53 승자도 패자도 모두 현자타임 24.06.28 91 1 14쪽
52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24.06.27 105 1 21쪽
51 이제부터는 전쟁이다.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24.06.26 104 1 14쪽
50 보일 듯 말 듯 가리워진 길 24.06.25 102 1 17쪽
49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24.06.24 110 1 21쪽
48 드디어 배틀 시작이렸다~ 드랍더비트! 24.06.23 106 1 17쪽
47 전하 앞에서 PT를 하라구요? 24.06.22 125 1 15쪽
46 이제는 저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24.06.21 105 1 18쪽
45 그래서 뭐 어쩌라고?! 24.06.20 106 1 13쪽
44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만 24.06.19 105 1 19쪽
43 누가 누가 잘하나 24.06.18 109 1 18쪽
42 첫번째 채용 오더 24.06.17 118 1 17쪽
41 이런 게 행복인가 봐요 +2 24.06.16 12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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