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스카우트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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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애드헌터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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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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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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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필히 그 자를 잡아끌고 오겠습니다!

DUMMY

- 57화 -


이서치는 박영서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공식 출장이었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마패(馬牌)를 수여받았다.


마패라고 하면 으레 암행어사부터 떠올리는데, 암행어사만 마패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마패는 조정의 관리가 업무를 위해 이동할 때 길 중간에 있는 역에서 말을 빌릴 수 있는 일종의 증표였는데,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수에 따라 그 등급이 달라지게 된다.

무려 10마리의 말이 그려진 10마패는 임금님 전용이였고, 영의정이 7마리까지 활용이 가능했다.


암행어사들은 보통 2~5마리가 그려진 마패를 활용했다.

다만 이들에게 지급된 마패는 어사의 인장 대용으로 사용키도 했는데, 사극에서 보던 것처럼 어사 출두 때는 역졸이 손에 들고 ‘암행어사 출두’ 라고 크게 외쳤다.


이번에 이서치가 지급받은 마패에는 꼴랑 말 1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도 위에서 엄청 배려해 준 조치였다.

원래 말이나 가마는 양반들의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에, 이서치 같은 말단 아전은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출장을 가는 중요 사안이다 보니, 도승지 한종회 대감이 특별히 마패를 내려 보내 준 것이다.


‘그래도 가만 보면 우리 도승지 대감이 알게 모르게 이것저것 참 많이 도와준 단 말이야. 무흑은 맨날 말만 그럴싸하게나 하고···’


도승지 대감이 마패를 내려 주면서 말했다.


“만약 신변에 위험한 일이 생기거나 도움받을 건이 생기면 근처 관아에 가서 마패를 보이게나. 그러면 적당히 돌봐 줄 것이네.”


마패에는 또 다른 기능이 하나 더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공무로 지방에 출장 가는 관원의 신분을 알려주는 증표 역할이기도 했다.

즉 현재의 공무원증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시대의 육조 관원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선택받은 소수였다.

그러다 보니 마패의 도용을 막기 위해서 높고 낮은 관원부터 기마역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왕에게 아뢴 뒤에 마패를 주도록 하여, 그 관리를 엄격하게 하였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하거나 교체되어 돌아갈 때에는 즉시 반납하도록 했다.

일단 외방으로 말을 주어 내려 보낸 관원이 임지에 도착하면 관찰사와 절도사는 마패를 검사하고 봉한 다음에 한양으로 올려 보내어 승정원에 도착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만약 기한 내에 보내지 않은 경우에는 받아 간 사람을 무겁게 추고하기까지 하였다.


만약에 마패를 분실하거나 도용하면 무겁게 처벌하였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난 말을··· 전혀 타지를 못하는 데 말야. 에휴···’


올해 초에 파주의 황희 대감에게 찾아갈 때 윤곤대가 모는 말 위에 함께 매달려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 때 얼마나 무서웠던지··· 말 멀미는 또 어떻고···’


마패를 받긴 했지만 정작 말을 타지 못하니 이를 어쩌나?

이서치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무흑에게 상의했다.


“뭐야? 말을 못 타? 얼씨구! 허··· 무슨 사내가 말도 못 탄 단 말이냐? 허허허.”


사내 타령하는 무흑이 무지 얄미웠지만, 그래도 무흑이 사방지에게 말해서 도움을 내려 주었다.


사방지는 천지루의 행수로 있으면서, 그 휘하에 큰 상단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정보 수집이 주 목적인 천지루에서 전국 팔도에 네트워크를 가지려면 상단을 운영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천지루 휘하의 상단에서 경상도 안동으로 중요한 표물(택배)을 운송할 계획이 있었는데, 그 무리에 이서치를 끼워 준 것이다.



먼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못골시장에서 입던 작업복을 꺼내 입었다.

그 특유의 아웃도어 베스트와 카고조거팬츠를 입고 커스텀 백팩을 등에 맨 채, 상단과 함께 이동하기로 약조한 날 아침 일찍 필동의 집을 나섰다.


그대로 남대문을 통과했다.

작년 봄에 처음 한양에 올 때는 평민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일이 호패 검사를 하느라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었지만.

지금은 그도 엄연한 조선의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마패를 포졸들에게 보이자 패스트트랙으로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포졸들은 이서치의 낮도깨비 같은 복장을 훔쳐보며 몰래 킥킥거렸지만 말이다.


만리동 고개를 넘어 공덕을 지나 마포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노량진에서 내린 후에는 도보로 사당을 지나 드디어 약속장소인 낙성대에 도착했다.

동행하기로 한 천지루의 상단 일행들이 미리 나와서 이서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단 일행은 상인 6명과 호위무사 1명, 그리고 표물을 잔뜩 실은 수레 2대와 그 수레를 끄는 나귀 2마리가 다였다.


그 중 호위무사는 왠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하! 작년에 천지루에 처음 갔던 날, 사방지가 있던 안채를 지키던 덩치 중 1명이구나!’


이서치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서 통성명을 했다.

서치가 천지루에 갈 때마다 눈인사를 했던 사이인지라, 호위무사도 금세 이서치를 알아보았다.


“뭐야? 오늘 함께 간다던 단골서리가 누군가 했더니, 바로 자네였나? 하하하. 반갑구먼! 앞으로는 격식 너무 따지지 말고··· 나를 그냥 편하게 형님이라고 부르게나.”

“네. 형님! 근데··· 상인들도 여럿 되고 짐도 꽤 많은데, 호위무사는 형님 한 분 이신가요?


“응! 나 혼자면 돼. 하하하.”

“네···”


“그나저나··· 자네 옷차림 한번 끝내주는구먼!”

“아··· 네.”


그런 인연으로 호위무사 ‘마동식’과는 금세 친해졌다.


마동식은 엄청난 근육질 통몸매에 얼굴은 동글동글하게 귀엽게 생겨 얼굴과 몸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의 사내였다.

나이는 이서치보다 댓 살은 많아 보였고, 손이 무지무지하게 커서 그의 얼굴이 그리 작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손으로 가리면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서치는 그들과 함께 삼남대로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모두 도보로 갔지만, 이서치는 마동식의 배려로 중간중간 힘이 들면 수레에 얻어 타고 가기도 했다.

수레에 걸터앉아 덜컹덜컹하고 가면서, 이서치는 며칠 전에 박영서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 * *


"박 별좌님! 전하께 들었습니다. 사람이 필요하시다구요?"

"아··· 자네 왔는가? 잘 왔네."


"어떤 사람을 찾으면 되는 겁니까?"

"쇠를 능숙히 다룰 인재를 찾는다네."


"쇠를 능히 다룬다 하시면...?"

"쉽게 말해서, 대장장이를 찾으면 되네."


이서치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대장장이? 문과 출신인 내가 그런 기술자를 무슨 재주로 찾나? 휴우~'


이서치의 한숨을 들은 박영서가,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이보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네. 내가 딱 알맞은 사람을 알고 있으니 말야..."

"네? 그게 누구입니까?"


"전라도 남원 땅에 살고 있는 ‘이종국’이라는 사람을 여기로 데려와 주면 되는 거네."

"어? 그래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라도 얼른 보내서 그 양반을 데리고 오면 되는 것을··· 굳이 왜 제게 맡기시는 겁니까?"


"그게··· 그리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서 말야..."


박영서의 설명에 의하면, 이종국은 예전에 공조에서 박영서 밑에서 일하던 관리라고 했다.

그는 천부적인 제련술을 지닌 대장장이였다.

이종국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쇳덩이리가 금세 쓸만한 도구와 장비로 뚝딱하고 변하는 데, 그 속도와 솜씨가 남달라서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하였다.


'설마... 어디 마법세계에서 전이되어 온 연금술사 아냐?'


이종국은 타고난 손재주를 지닌 사람이었다.

단지 쇠만 잘 다루는 게 아니라, 기계에 대한 눈썰미가 상당해서 한번 본 기구는 금방 그 원리를 알아챘고 그래서 기계의 분해도 조립도 자유자재로 가능한 기계공학 능력자였다.


그래서 한때 공조에서 박영서와 함께 과학기술 조선을 꿈꿨지만, 갑작스러운 개인 사정으로 인해 공직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몇 년 전에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다시는 관리를 하지 않을 테니, 절대 찾지 말라고 하면서···


그런 그를 설득해서 공조로 데려와야만 하는 것이 이번 미션이었다.

이종국은 고향 남원에서 형과 함께 조그만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 그리 된 거라네. 그가 있어야 명나라에서 수입한 천문 기계들도 분해가 가능하고. 또 그걸 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품들을 일일이 만들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원리를 이해하고 익혀야만 결국에 우리 만의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거라네.”

“그렇군요···”


“그러니 지금 우리에겐 그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네. 힘든 길이 될 지도 모르지만··· 부디 그를 데리고 와 주시게. 부탁하네!”

“음··· 알겠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게 제 주특기 중의 하나니까 말이죠. 한 번 해보죠 뭐 까짓거!”


“고맙네. 내 자네만 믿고 있겠네!”

“걱정 마십쇼. 제가 그 자를 필히 잡아 끌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이서치는 전라도 남원으로 헤드헌팅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그가 박영서를 만나서 헤드헌팅 의뢰를 수락한 다음 날, 승정원에서 호출이 와서 도승지 대감을 만나러 갔다.

한종회 대감으로부터 이번 출장을 위한 마패를 수령했다.


그러면서 저번 박영서 채용 건의 수수료도 받았다.

원래는 후보자인 박영서로부터 받는 것이 순리였지만, 이번 건은 특별히 세종대왕이 의뢰를 한 별건이었으므로. 전하의 명으로 승정원에서 이서치에게 특별 수수료를 지급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도승지 대감이 건네 준 돈 주머니를 슬그머니 열어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돈이었다.


“이번 출장비도 포함해서 조금 넉넉히 넣었네.”


도승지 대감의 말을 듣고, 이서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거··· 조선시대 단골 일도 제법 할 만한데? 히히히.’


* * *


지금은 이서치 회귀 +5년. (1423년, 세종 5년)


사방지 휘하 상단 일행들은 꽤나 익숙한 듯 들길이며 산길을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이서치만 홀로 허덕거리고 쫓아갔다.

중간중간 수레에 얻어 타고 가면서도, 이서치가 일행 중에서 가장 빨리 지치고 가장 빨리 퍼지곤 했다.


그렇게 과천을 지나 안양으로, 다시 의왕으로 걸어갔다.

하염없이 강행군을 하였더니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아··· 이제 저녁인데 대체 언제까지 계속 갈 생각이지? 다리고 아프고 배도 고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차마 말을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었는데, 왠지 익숙한 풍경이 이서치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운 수원 땅에 도착한 것이다.


“어이구야! 이 사람들 보통이 아니네! 세상에나 한양에서 수원까지 백리(40km)라는 데, 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했다고? 내가 작년에 수원에서 한양에 갈 때는 3일에 걸쳐 갔는데? 헐···”


이서치가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거리자, 마동식이 그의 등을 툭 한 번 치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뭐야? 이 친구야~ 천지루에서 엄포 놓는 거 보니까 왠지 한 가닥 할 걸로 보였었는데. 이거 이거··· 보기보단 약골이네?”

“제가 약골이 아니라, 형님 일행이 대단한 거요···”


“그래도 한양에서 수원가는 길은 샌님같이 얌전한 길이라고! 그 흔한 산적도 하나 보이지 않고 말야... 그러니 이런 편한 길은 하루 안에 백리 정도는 주파하는 게 상단한테는 기본이라고. 이 친구야! 하하하.”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수원에 다시 오니 마음이 참 편안했다.

근 1년도 더 지난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한양에서 많은 일을 겪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잘 지냈을까?’


상단 사람들이 모두 배고프다고 난리를 쳤다.


“이봐. 자네 고향이 여기 수원이랬지? 근처에 어디 잘 아는 맛집 좀 없나?”


마동식이 수원 로컬 맛집을 찾길래, 일행들을 데리고 안성댁 주막에 갔다.


“이보시오! 안성댁 누님~ 내가 왔소. 이서치가 왔단 말이오!!”

“어이구야! 이게 누구여?! 서치 아닌가? 이게 꿈이여 생시여? 오메. 그새 안 본 사이에 한양 사람 다 되었구만!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좀 보소!”


일행들은 모두 모여 안성댁 주막 ‘한상포차’에서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이서치가 고향에 온 기념과 동행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모든 테이블에 탁주 1병씩을 돌렸다.


그는 마동식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는데, 마동식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술을 한 잔도 하지 않았다.


“어허! 형님~ 이거 이거 왜 이러셔요? 여기 수원은 내 구역이라니까요··· 걱정말고 오늘 같은 날은 한 잔 하셔야죠. 네?”


그래도 마동식이 주저주저하자, 상술 좋은 안성댁이 그의 곁에 걸터앉아 직접 술을 따라주며 끼어 들었다.


“워매 워매! 이 팔뚝 좀 보소! 자기는 몸이 왜 이렇게 성난거야? 자기~ 완전 내 취향이다! 내가 한 잔 찐하게 타줄 터이니, 퍼뜩 한 잔 하쇼~ 잉?”


안성댁이 자꾸 술을 권하자, 그제서야 마동식이 마지못해 술을 받아 마셨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자 마자, 갑자기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묻지도 않는 얘기들을 술술 토해냈다.


“이봐 동생~ 내가 말야··· 원래는 호위무사가 아녀! 딸꾹! 원래는··· 그 무시무시한 내금위의 위사라고. 내가 말야! 응. 알았어? 근데··· 좀 특수한 임무를 맡아서 지금은 천지루의 호위무사로 위장 취업한 거라 말씀이지··· 응? 알겠어? 내 말···?! 근데··· 왜 이러지? 나 좀 뜨겁다?”


그렇게 혼자서 시키지도 않는 말을 속사포처럼 토해내더니, 잠시 후 쿵하고 술상에 머리를 쳐박고는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뭐야? 이 사람, 덩치만 컸지. 영 별거 없네? 헐···”


술 취한 마동식을 겨우 방 안에 눕히고는 한상포차를 빠져나왔다.


상단 일행과는 달리 이서치는 공무 수행 중이므로, 중간 보고를 위해 역참으로 갔다.

역참은 관리들이 말도 갈아타고 하룻밤 묵기도 하는 곳이지만.

원래는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으로, 조정의 명령과 공문서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영접, 공공 물자 운송 등의 온갖 공무를 수행하는 거점이다.


여기서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오랜만에 전주댁을 만나 안부 인사를 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여? 어디 어디··· 한양 도련님 얼굴 좀 자세히 봐야 쓰겄네!”

“그간 잘 지내셨죠?”


역참을 나와 못골시장에도 가 보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는 지라, 저잣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모두 불 꺼진 상태였다.


이서치는 김의원 한약방 앞까지 갔다가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통금시간도 얼마 안 남은지라 뭐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혜수를 보지 못했다.


‘잘 지내고 있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으니···’


그러고 보니 혜수로부터 기별이 온 지도 한참이 지났다.

조선제일기획 일과 한약방 일이 많이 바쁜 것 같았다.


“하긴··· 나도 혜수에게 연락한 지 오래되었으니까. 피차 일반이지 뭐···”



한상포차로 돌아왔더니, 상단 일행들 중 몇몇 상인들이 아직도 안 자고 술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어이~ 형씨! 늦은 밤에 어디 갔다 오는 길이오?”

“잠깐 누구 좀 볼까 하고 갔었는데, 너무 늦어서 만나지는 못하였소.”


“누구? 혹··· 여자? 흐흐흐.”

“···”


“묵묵부답인 걸 보니 여자가 맞나 보네? 흐흐흐. 아하! 형씨! 그러고보니 여기가 고향이라고 그랬었지? 그럼 어디 이것 좀 구경해 보겄슈? 여인네들이 좋아라 할 물건들인데 말이요···”


상인 하나가 방에 들어가더니, 좌판을 가지고 나와서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이런저런 노리개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노리개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 허리에 차는 부녀자들의 장신구를 말하는데, 띠돈과 끈 및 주체가 되는 패물·매듭·술로 구성된다.

패물의 개수에 따라 한 개로 된 단작 노리개, 세 개가 한 벌로 된 삼작 노리개가 있는데, 금·은·백옥·비취옥·금패·산호 등의 재료를 사용한다.

다채로운 색상과 귀한 패물을 사용하여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표현한 노리개는.

단조로운 우리나라 의상에 화려하고도 섬세한 미를 더해주는데. 궁중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애용되었던 장신구였다.


이서치는 그 중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은 삼작 하나와 화려하고 영롱한 빛을 내는 비취 삼작 하나를 골랐다.


‘이 은 삼작은 혜수에게 잘 어울릴 것 같고, 저 비취 삼작은 수진이에게 잘 맞을 것 같네··· 아! 그런데 혜진 교두가 수진이에게 더 이상 플러팅 하지 말라고 그랬었지··· 이거 괜히 또 혼날 뻔했네. 그냥 흑분홍 멤버들 4명 줄 거를 같은 걸로 사는 게 낫겠다. 휴~’


이서치는 혜수에게 줄 은 삼작 하나와, 흑분홍낭자단 4명에게 줄 호박 단작 4개를 샀다.

한상포차 안성댁에게 부탁했다.


“이거··· 안성댁 누님이 혜수와 흑분홍 4명에게 대신 좀 전해주세요.”


* * *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난 이서치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오산을 거쳐 안성에 도착해서 또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일찍 일어나서 드디어 기착점인 천안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동식이 오늘 안으로는 무조건 천안에 도착해야 한다고 채근하더니, 결국 지름길인 산길을 택해 가자고 얘기했다.

그래서 태조산을 향해 가는데, 태조산 못 미쳐서 만난 다른 상인들이 태조산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극구 만류했다.


“어허! 이 길로는 안 가는 게 좋을 걸? 여긴 산적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흉한 곳이요··· 얼마 전에도 여기서 보부상 여럿이 산적을 만나서 짐 다 뺏기고 엄청 두드려 맞았다 던데.”

“하하하~ 우리 걱정은 하지 마슈. 산적이 아니라 산적 할아버지가 와도 전혀 문제없으니까 말이요.”


마동식이 하도 자신만만해 하길래, 이서치는 얼떨결에 그를 따라 산길을 올라 탔다.

그래서 천안의 입구에 있는 태조산을 넘게 되었다.


산길을 따라 가니, 나무 위에서 송충이가 떨어지곤 했다.

송충이 한 마리가 마동식의 어깨에 떨어져서 이서치가 잡아 주었는데, 송충이를 본 마동식이 기겁을 했다.


“뭐야? 으악! 으악!! 송충이 아냐? 빨리 좀 치워!!”

“아니··· 형님은 생긴 거는 소도 금방 때려잡을 것처럼 생기셨는데, 무슨 송충이 한 마리에 그리 놀라셔요?”


“으··· 난··· 벌레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 흐이구!”

“허 참 나··· 쯔쯧!”


이서치는 ‘아니? 내금위 위사라는 자가 뭐 이리 겁이 많아? 내가 이런 사람을 믿고 이 험한 산길을 가도 문제가 없을까? 중간에 산적도 나올 수 있다 던데?’ 라고 속으로 걱정했다.


결국은 우려했던 사단이 일어나고 말았다.


오후 늦게 어스름한 상태에서 태조산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등 뒤에서 외쳤다.


“이놈들! 게섯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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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필히 그 자를 잡아끌고 오겠습니다! 24.07.02 89 1 19쪽
56 참봉 이서치, 명 받들겠나이다 24.07.01 93 1 17쪽
55 개와 늑대의 시간 24.06.30 93 1 20쪽
54 저, 수원으로 다시 내려갈까 봐요 24.06.29 90 1 18쪽
53 승자도 패자도 모두 현자타임 24.06.28 9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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