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엔 별게 다 있구나

- 60화 -
[ 으르릉~ 어흥!!! ]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렸고 머리가 쭈뼛거리고 곤두섰으며, 등짝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으억! 이게 뭔··· 소리여?!”
그의 눈 앞에 비현실적으로 엄청나게 큰 동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무지막지하게 큰 몸통에 다리 하나가 이서치의 몸뚱아리만 했고, 발 끝에는 주먹 만한 크기의 새까만 발톱들이 주르르 붙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위로 올리자, 온통 노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의 몸이 들썩들썩 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몸통 위에는 조금 과장하면 이서치의 얼굴 크기 만한 부리부리한 눈이 두 개 떡하니 붙어 있었다.
까만 코도 야구공만 한 크기였고, 그 아래 위치한 커다란 입에서는 가득 침이 고여서 흘러내렸는데 그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빼꼼히 보였다.
호랑이였다!
이서치가 용인의 동물원에서나 보았던 그 동물이었다.
호랑이의 커다란 눈을 보자, 왠지 모르게 오금이 저려오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만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엎친데 덮친다고. 호랑이라니?! 이게 꿈이야 현실이야? 내가 그간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산적에다 오늘은 호랑이라니! ㅠㅜ’
호랑이는 성큼성큼 이서치에게 다가왔다.
이서치는 그만 두 눈을 감아 버렸다. 호랑이 앞에서 뭘 어쩌겠나?
‘에이! 될 대로 되라지!!”
그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이서치의 오른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 삐이익!! ]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더니, 조금 전에 봤던 그 턱수염 사내가 저 멀리서 휘파람 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다.
호랑이는 이서치에게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추더니, 몸통을 그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러자 그가 잽싸게 바로 도망을 쳤고, 호랑이는 냉큼 그를 뒤따라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이서치는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와서,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호랑이가 튀어나간 곳과 반대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웬일로 그 산적의 도움을 받아서 호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듯했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가던 중에, 갑자기 그의 발 밑이 푹하고 꺼져 버렸다.
정신없이 아래로 떼굴떼굴 구르던 이서치는,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겨우 멈추게 되었다.
“아이고~ 아이고야! 나 죽네. 나 죽어!!”
왼 발목이 굉장히 아팠다.
그만 발목을 심하게 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아까 마주친 호랑이가 생각나자, 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다는 간절감이 자기도 모르게 그의 목에서 요란한 비명을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거기··· 누구 없소?! 이보시오!!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그렇게 한참을 소리쳤더니, 잠시 후에 이서치가 굴러 떨어진 비탈길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서치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휘파람을 불어서 호랑이로부터 그를 구해 준 산적 같이 생긴 턱수염 사내였다.
‘아··· 이런··· 그래도 호랑이보다는 산적이 낫지! 암!!’
이서치는 그에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내가 발목을 크게 다친 것 같소! 아이구야~ 그러니 제발 나 좀 도와···”
갑자기 그가 이서치의 뒷목을 손날로 내려쳤다.
이서치는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 우으웅 위이잉. 우으웅 위이잉! ]
높이 걸려져 있는 커다란 해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과 요란한 굉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하늘에는 금색 해와 은색 달이 동시에 떠있다.
그 옆에.
온통 새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 흰 문사건을 쓰고 있는 백발의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서있다.
그 노인은 이서치가 아는 그 누군가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하늘에 떠 있던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이 새겨진 커다란 화로였다.
그런데 그 화로가 점점 이서치에게 가까이 날라왔다.
서치는 도망가려 했지만,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금색 해와 은색 달이 새겨진 커다란 화로는 결국 무서운 속도로 그의 품에 그대로 돌진해 가슴팍에 내려 꽂혔다.
"우아악! 으아아악!!!"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등짝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커다란 해와 달, 아니 금일은월(金日銀月) 화로가 품 안에 돌진하는 꿈으로 그만 가위에 눌린 것이다.
"ㅅㅂ!!! 또 그 꿈이네! 어휴~”
얼마 전의 박영서 별좌 채용 배틀 때 꾸었던 그 꿈을 다시 또 꾸었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왔다.
게다가 왼쪽 발목도 엄청 아팠다.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발목아! 아야야···”
머리도 띵하고 발목도 무지 시큰거렸지만, 그렇게 아픈 것을 보니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가만 보자··· 내가 호랑이를 피해서 도망치다가 그만 굴러 떨어졌지? 그러다가··· 아! 그래. 그 산적 놈! 그 놈이 나타났는데··· 그리고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보니, 그제서야 주위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어느 낯선 방안이었다.
벽이 온통 황토흙으로 덮여있는 평범한 방이었다.
* * *
이서치가 꿈에서 깨다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누군가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 댁은···?!”
상대는 아까 호랑이로부터 그를 구해주었다가 다시 나타나서는 그를 때려서 기절시킨 산적? 같은 사내였다.
‘뭐야? 내가 또 산적에게 잡힌 건가? 하여간 재수 없기는··· 응? 아니지! 호랑이 밥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산적이 나은가? 아닌가? 에휴~ 이 놈의 팔자는··· ㅠㅜ’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서치를 보고 말했다.
“이제 정신이 좀 나는가? 이것 좀 마셔보게.”
그가 약사발을 하나 내밀었다.
연한 갈색의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그게 뭔지 몰라서 거부하고 싶었지만, 사내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는 순간 그냥 마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목이 심하게 말랐었기에, 그대로 원샷을 했다.
엷은 한약 맛이 났다.
‘설마··· 사약은 아니겠지?’
그 산적 같은 사내는 이서치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산적이 아니라 이 근처에서 약초를 깨던 심마니인데.
발목을 접질린 이서치를 등에 업고서 그의 집에 데려오게 된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저를 구해주신 거는 참으로 고맙긴 한데, 굳이 왜 기절시키신 겁니까···?”
“자네가 하도 시끄럽게 굴길래··· 그러면 근처에 있는 호랑이가 또 나타날까 봐 할 수 없이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게. 많이 놀랐나? 그랬다면··· 미안허이.”
“아··· 그래요? 아닙니다! 선생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호환으로부터 구해 주시고, 또 이렇게 데려와서 보살펴 주셨잖아요. 제가 오히려 감사드려야죠. 고맙습니다!”
“별 거 아니네. 인지상정이 뭐 그런 거지···”
“그런데··· 아까 처음에 봤던 그 커다란 호랑이는 어찌 되었습니까? 설마··· 호랑이를 때려잡으신 겁니까? 선생님이 휘파람을 부시는 바람에 호랑이가 선생님에게 달려 갔었잖아요? 그 덕에 제가 목숨을 구했구요···”
“예끼. 이 사람아! 호랑이를 내가 무슨 재주로 때려잡겠는가? 나야 뭐··· 워낙 이 곳의 지형을 손바닥보듯 뻔히 아니까, 그냥 호랑이를 잽싸게 따돌리고는 냅다 도망친 거였지.”
자세히 그의 얼굴을 보니, 수염이 무성하여 조금 무서워 보이긴 했어도 커다란 눈이 참 맑은 게 원래 심성은 선하기 그지없는 사람 같았다.
나이는 이서치보다 대여섯살 정도는 더 많아 보였다.
‘보기보단 착한 사람이구나?! 하긴 그러니··· 나 같이 처음 보는 사람을 챙겨서 호랑이를 피해 그 산길을 돌아올 생각을 다 했겠지.’
그 때, 문 바깥에서 뭔가 단단한 것끼리 마주 쳐대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 채앵! 채앵! 채앵! ]
이서치가 사내에게 물었다.
“저게··· 뭔 소리입니까?”
“그게 쇠질··· 하는 소리라네. 여기는 사실 대장간··· 이거든.”
여기가 대장간이라는 대답에 이서치는 갑자기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럼 혹시··· 선생님 성함이···???”
“나? 나는··· 이종국이라고 하네.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던데, 그러지 말게. 나는 여기 지리산 기슭에 들어 사는 한낱 심마니일 뿐이니까 말일세···”
놀랍게도 그의 집은 지리산 속에 있는 대장간이었고, 혹시나 하고 그의 이름을 물어보니 그가 바로 ‘이종국’이었다!
그런데 웬 심마니···?
“아이고! 이제서야 나으리를 찾았네요! 내가 그간 나으리를 찾으려고 얼마나 갖은 개고생을 다 했는 줄 아세요? 산적도 만나고 오늘은 호랑이도 만나고···”
“나를 찾으러··· 왔다고? 그러는 자네는··· 대체 누군가?”
이서치는 자신의 신분과 여기 온 목적을 밝히고는, 박영서가 그를 애타게 찾으니 이제 함께 한양으로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이종국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왜요? 나으리는 원래 공조의 관리셨잖아요?”
“나는... 다시는 한양에 가지 않기로 다짐했네! 그러니 자네도 그런 줄 알고, 발목이 다 나으면··· 바로 떠나게!”
이종국은 이전의 사람 좋은 표정을 갑자기 싹 다 지우더니, 차갑게 말하고는 아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문을 열고 나가던 도중에 잠시 멈춰 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엄중히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 가족들에게는 내가 예전에 공조에서 일했다는 말은 일절 꺼내지 마시게! 그리고 자네가 나를 찾으러 왔다는 얘기도 마찬가지이고! 만약 이를 어기면···”
“네에?”
“자네를 내쫓아서 호랑이 밥으로 줘 버리고 말테니까! 알겠나? 내 말을 그리 가볍게 여기지 마시게! 그리고··· 발목은··· 한 일주일 지나면 다 나을테니까,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바로 여기를 떠나 주시게!”
“···”
이서치는 갑자기 무시무시해진 그의 엄포와 기운에 쫄아서 아무런 끽소리도 하지 못했다.
* * *
지금은 이서치 회귀 +5년. (1423년, 세종 5년)
그렇게 이서치는 이종국의 집에서 며칠을 마무르게 되었다.
다음 날 발목이 조금 좋아져서 바람이라도 좀 쐬려고 방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니, 마당 건너편에 자그마한 대장간이 딸려 있는 게 보였다.
그 곳에서 이종국은 커다란 망치를 들고 쇠를 내려 치고 있었고, 다른 사내 하나가 집게로 쇠뭉치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사내는 이종국의 형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형의 왼 팔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예전에 다쳐서 왼 팔을 안으로 굽힐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형제가 서로 쇠질을 치거니 받거니 하는 호흡이 그렇게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 질 수가 없었다.
자칫 조금만 잘못하면 쇳덩이리가 튀어 나가 둘 중에 하나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위험한 모습은 낌새도 없을 정도로 둘은 매우 안정적인 호흡으로 쇠질을 하고 있었다.
[ 채앵! 채앵! 채앵! ]
서로 간에 별 말은 없었지만, 이서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둘 간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 지를 말이다.
그 둘 말고도 가족은 세 명이 더 있었는데, 늙은 노모, 형과 나이 차가 좀 있어 보이는 듯한 형수, 그리고 아직 갓난애기인 조카가 있었다.
형수는 알고 보니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끼니 때마다 이서치에게 밥을 갖다 주곤 하였다.
이종국은 아직 미혼이라고 했다.
이서치는 이종국이 경고한대로 가족들 앞에서 이종국의 과거와 이서치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일절 얘기를 하지 않았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지, 이종국도 차츰 이서치에게 스스럼없이 대해 주었다.
며칠 시간이 지나서 발목이 완연히 좋아져서 이서치 혼자서도 앞마당을 거닐 수 있게 되자, 이종국의 형과도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턱수염이 인상적인 동생 이종국의 별명은, 그래서 ‘산적’이라고 했다.
‘흐흐흐. 그러니까 저 면상은 누가 봐도 산적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으로부터 들어 알게 된 건데, ‘산적’ 이종국은 술, 여자, 도박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마초이자 속물남이었다.
쑥맥에 가까운 이서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어서 둘은 영 안 어울릴 것으로 보였으나, 어느새 이서치와 이종국은 보기와는 다르게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그건 어느 날인가 우연히 이서치의 고민 상담을 이종국이 받아주었던 게 계기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생겼어도, 생각보다 여자들이 나를 꽤 많이 따르거든··· 하하하. 그래서 그간 연애도 좀 했었지!”
“진짜요? 정말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그러면 도대체 그 인기의 비결이 뭔가요?”
“여자는 말야··· 자고로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지, 암! 내가 생긴 것은 참 남자다와도 속은 꽤 섬세하단 말이야. 그러니 여자들 속마음을 내가 다 꿰뚫어 보곤 하거든.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흐흐흐.”
“음··· 영 이해가 안 되는데··· 예를 들면요?”
“흐음~ 예를 들면··· 자네가 서로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처자가 있다고 치자고. 그래! 그 처자의 이름이 다정이라고 치고. 근데 다정이가 이번에 이사를 했어. 그래서 방에 황토 흙을 다시 칠한 거야. 그래서 문을 닫으면 흙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는 거야.”
“그런데요?”
“그래서 방 문을 열었더니 마침 한겨울이라서 방 안으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너무 추운 거야. 그런데 그 방에 자네가 마침 들어간 거야. 그랬더니 다정이가 자네에게 물어보네?”
“뭐라고요?”
“자기야. 오늘 이사했는데 문을 닫으면 흙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문을 열면 추워서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문을 여는 게 좋겠나 닫는 게 좋겠나? 라고 말야.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인 거지. 그러면 자네는··· 뭐라고 대답하겠나?”
“음··· 그거 좀 어렵네요. 문을 열면 연 대로 문제가 있고, 또 닫으면 닫은 대로 문제가 있고 말이죠. 그래도 저라면··· 문을 닫자고 말하겠어요.”
“왜?”
“그 처자를 위한다면 머리 아픈 게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요? 그만 고뿔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허허허. 이것 좀 보소!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이 친구야~”
“그럼요···? 말씀하신 대로 진퇴양난인데, 거기서 뭐라고 말해요? 문을 열라고 해요, 아님 닫으라고 해요?”
“그럴 때는··· 그 처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다정히 말하는 거야··· ‘다정아~ 괜찮니? 의원한테 가야 되는 거 아냐?’ 라고 말야··· 알겠어? 응??”
“에이~ 그게 뭐예요?”
“어허! 지금 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 전에 다정이는 ‘지금 내가 아프다. 냄새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말했지? 그러니 그 마음을 헤아리고 응대를 해줘야지! 바로 그게 핵심이라고, 이 친구야!”
뭐, 이런 식이었다.
‘헐··· 본인이 나름 조선의 츤데레 라는 건가? 어이가 없네···’
어찌 되었든 이서치는 그의 성화에 못 이겨서, 술이 한 잔 들어간 김에 그만 혜수 얘기를 털어 놓고 말았다.
본인이 우연한 기회를 만나 나라 일을 하기 위해서 수원에서 한양으로 넘어 갔고.
가기 전에 혹시나 해서 혜수에게 물어보았는데 혜수가 당연히 나라 일 하러 한양으로 떠나는 게 맞다고 해서.
내심 자기 마음이 좀 서운했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 글쎄!
“어이구! 이 천치 같은 친구야! 그렇다고 그 처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어찌 하나? 아이구~ 답답해라!”
“네? 그럼 뭐라고 해요? 굳이 가라고 하는데···”
“여자는 말야··· 본인이 그런 속마음을 남자한테 직접 말하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구! 그러니까 내심 다른 얘기를 해버리는 거라니까! 그걸 당연히 눈치챘어야지? 응? 어이구!!”
“그런가요? 그럼 혜수의 진짜 속마음은··· 뭔데요?”
“그 처자는··· 자네가 떠날까 말까 라고 물어보는 순간에, 이미 자동적으로 대답을 정하게 된다고! 그럼··· 마음에 둔 사내가 큰 일 하러 떠나가겠다는 데, 그냥 떠나지 말라고 할 처자가 어디 있냐? 잉? 그럴 때는 여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면 안된다고! 으이구~”
“제가 선택을 강요했다구요?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요?”
“그럴 때는··· ‘내가 비록 지금은 떠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항상 너 밖에 없다. 그러니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 그럼 연락도 자주 하고, 곧 어찌어찌 해보겠다’ 라고 얘기해야지! 알겠나?”
“네? 으음~ 글쎄요···”
이서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살다 살다가··· 조선 사람한테 연애 상담을 받을 줄은 미처 몰랐네··· 헐~’
그리 까불고 놀다가도 이종국이 정작 대장간 일을 할 때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태도는 사라지고 진중한 태도를 보이며 심지어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종국과 밤에 술을 한 잔 하다가 그의 놀라운 과거사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여자에 대해서 빠삭하신 분이, 어찌해서 아직 장가는 안 가신 게요?”
“나? 나는··· 가정을 꾸릴 수 없네. 나는 그럴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야···”
“무슨··· 말 못하실 사연이라도 있으신 게요?”
“사실 우리 형이··· 내 친 형이 아니라네···”
“네에? 진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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