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섭취의 중요성

"허억... 헉...."
성유화는 구서울에서 무언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쫓아오는 것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두개골 뚜껑이 따인 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 때, 도망가는 유화의 앞에 흉측한 괴물이 나타났다.
"왜 도망치는 거죠? 같이 전부 죽여버려요... 당신도 이제 어엿한 살인자니까."
"내가 한 게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라 전부 '앨리스'가 한 짓이야!"
"왜 그런 소리를 하세요? 당신이 앨리스잖아요?"
뭐라고 재차 반박하려던 성유화는 이변을 깨닫는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성유화의 검은색이 아닌, 앨리스의 금발이었다는 것을.
어느새 그녀는 앨리스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가슴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익숙한 검은 칼날이 자신의 몸을 뚫고 튀어나와 있다.
부서진 몸체에서는, 피도 살점도 나오지 않았다.
정체 불명의 회로와 부품들의 잔해들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
성유화는 자신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본 장면은 꿈이었나 보다.
"웃기지도 않은 악몽이잖아..."
유화는 침대에 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싸맨 채 쓴웃음을 짓는다.
악몽인 줄 알면 무서워 할 것은 없다.
다만, 꿈 속에서 외친 자신의 대답이 너무도 추하게 느껴졌다.
마음을 추스린 성유화는 평소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아침을 먹기 위해 식사 공간으로 갔다.
성동현과 성유화 부녀는 식탁에 앉아, 화려하게 차려진 진미들을 맛보기 시작한다.
"오민수 셰프의 요리는 오늘도 훌륭하군. 난 그의 요리에 표현된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한단다..."
성동현이 딸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성유화는 훌륭한 요리들을 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어 보였다.
"나라에는 돈이 부족하다면서요. 이런 사치를 매일같이 부려도 되는 거예요?"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사치를 덜 부리고 평범한 음식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성유화는 어쩐지 자신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성동현은 그것을 유화의 의지표명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훌륭한 생각이구나...! 네가 원한다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도와줄 수 있지."
성동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식사 공간으로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온다.
이 식사를 만든 장본인, 오민수 셰프였다.
"대통령 님... 혹시 식사에 무슨 문제라도...?"
셰프는 성동현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하지만, 성동현은 그런 셰프에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유감스럽네만, 자넨 오늘부로 해고야."
"아니... 갑자기 무슨!"
오민수 셰프 뿐 만이 아니라, 성유화마저도 난데없는 해고 통보에 놀랐다.
"내 딸아이가, 국가의 위기 상황에 고급 요리로 사치를 부리는 건 하지 말자고 하더군."
"아니, 아버지! 그게 셰프님을 해고하는 것과 무슨 관계인가요?"
"AI가 싸게 음식을 만들어 주면 되는데, 이런 고급 요리사를 돈 들여서 고용해야 할 이유가 뭐지?
뭐, 자네 요리는 항상 만족스러웠네. 그럼 잘 가게."
상황을 파악한 오민수 셰프는 부끄러움도 없이 성유화 앞에 엎드려 빈다.
"유화 아가씨. 제발 용서해주십쇼! 일자리가 없어지면 재취직도 힘든 시기인데,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겁니다!"
온 정성을 다해 비는 셰프를 보면서, 유화는 자신의 선택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셰프님... 제가 생각이 짧았나봐요. 해고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 순간, 유화는 셰프의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은 구서울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악의는 명백히 성유화를 향하고 있었다.
"아이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전 주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까 전의 눈빛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셰프는 선량한 표정으로 성유화의 결정에 감사를 표한다.
성유화는 막막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단백질을 잘 챙겨 먹으렴. 젊을 때일수록 단백질이 필요하지."
성동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적인 대화를 진행한다.
성유화는 묵묵히 고기를 썰어 입에 넣는 수 밖에 없었다.
***
그 무렵, 유한, 김가은, 이상덕, 강승천은 신서울 어딘가의 폐빌딩의 방 안에 숨어있었다.
여러가지 결계와 마법과 함정이 설치된 이 곳은, 외부 사람들이 존재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은신처이다.
"젠장... 언제까지 잠도 못 자고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이상덕이 투덜거렸다.
24시간 가까이 잠을 자지 못한 그의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닌 모두가 그랬다.
비정상적인 체력을 가진 김가은을 제외하고.
"그렇게 깽판을 쳐 놨으니, 사병이랑 N&R이 노리고 있을 거라고. 우리 협력자들이 나설 때 까지만 버텨."
하지만 24시간 가량 못 자서 예민해진 이상덕은 투덜거렸다.
자신은 며칠 동안 안 자는 훈련을 받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더이상 버티긴 힘들거라고 유한은 판단했다.
"하아... 그럼 저기 침대에서 잠이나 자라. 적이 오면 알아서 깨어나라고."
방 한구석에는 기능에 충실해 보이는 가성비 침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상덕은 그것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지 김가은을 부른다.
"어이, 꼬맹아! 푹신푹신한 괴물로 변신 해서 털이라도 좀 떼주면 안되냐?
베개로 쓰게."
"아니, 아저씨... 저도 나름 여자애인데 그런 요구는 좀..."
"이봐, 이 쪽은 너때문에 팔이 날라갔었다고? 아이고... 누구 집 괴물자식인지..."
이상덕이 새로 붙인 자신의 팔을 흔들면서 보란듯이 엄살을 부린다.
김가은은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팔의 일부를 변형시켜 털달린 복슬복슬한 살덩이로 만든다.
그리고 그 부분을 떼어내 상덕에게 준다.
"자요. 이거면 됐죠?"
"대체 어떻게 돼먹은 신체 구조야..."
이상덕은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괴상한 베개를 들고 어이없어했다.
김가은은 자신을 조종하던 장치를 제거할 때도, 몇 번 기침하더니 부서진 장치를 입으로 토해냈다.
...분명 장치는 뇌에 설치되어 있었을텐데 말이다.
"유한, 드디어 통신이다."
강승천이 졸려 죽겠다는 표정으로 방 안의 통신장치를 가리킨다.
유한은 통신 장치로 뛰어가 헤드셋을 끼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을 노트에 연필로 받아 적는다.
암호였다.
유한은 통신 장치 옆면에 쓰인 암호 해독표를 계속 확인하면서 받은 암호를 해독해 나간다.
유한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암호의 복잡성을 욕했다.
"이건 뭐지?"
"왜 그래요? 유한 씨?"
"정부도, N&R도 딱히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데.
슬슬 은신처에서 나와도 된다는 군."
유한의 말에 강승천은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그 정보 믿을 만 한 건가?"
"이 자들이 굳이 우릴 속일 이유는 없을 테지."
유한은 자신들이 왜 쫓기지 않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일단 내가 직접 나가서 확인해 볼까? 무서우면 여기 처박혀 있으라고."
유한은 조심스럽게 각종 결계와 함정들을 피해 은신처 밖으로 나갔다.
***
할 일이 없어진 앨리스는, 구서울 생명관리국에 들른 후 청암 사무소에 들어와 앉아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진 나름 번듯한 명패에는 '소장 A.L.I.C.E'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걸 준비한 유한의 성품을 생각하면 조롱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역시 소장님이시군. 충견마냥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줄이야."
비꼬는 말과 함께 사무소 안으로 들어오는 건, 물론 유한이다.
원래도 껄끄러운 놈이지만, 아침의 악몽을 생각하니 오늘은 더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어? 괜찮은 거야?"
"잘 숨어있지. 근데 정보를 입수했거든.
우리에게 보복하고 싶은 인간들이 딱히 없는 모양이야.
신기하지? 넌 그 이유를 알겠어?"
앨리스가 무언가를 알고 있을거라는 투로 유한이 묻는다.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성동현이 사건을 덮기 위해 힘을 쓴 게 분명하다.
그의 친위대조차도 연구소가 당한 습격 자체는 알지만, 누가 그랬는지는 모를 정도니까.
"..."
앨리스가 침묵하던 그 때, 난데없이 한 남자가 사무소로 들어왔다.
"유한, 잘 지냈냐?"
앨리스는 이 남자를 기억해냈다.
양진무와 처음 싸울 때 난입해 도움을 주고 사라진 정구한이라는 자였다.
유한과 친분이 있는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유한은 정구한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N&R의 앞잡이 놈이 왔구만. 내 목이라도 따갈려고?"
"섭섭한 소리를... 널 죽이는데 나 혼자 올 리가 없잖아?
키메라 괴물, 엘프, 이상한 그림쟁이, 마력이 있는 로봇까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악의적인 동료 구성인데? 내 퍼스널을 철저히도 대비하는군."
"설마 칭찬이나 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겠지? 빨리 용건이나 말해."
정구한은 소파에 앉아 뜸을 들이고는 말한다.
"우리 용병들을 죽였으니, 어떻게 할래?"
역시나 N&R은 연구소를 습격한 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나보다.
"어떻게 하냐니.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가?"
유한이 정구한에게 되물었다.
어차피 N&R의 뜻대로 움직이라는 게 아니냐는 의미다.
"두 선택지 중 하나는 선택하게 해줄게.
첫 번째는, 네 동료들과 단체로 N&R에 입사하는 거지."
전 세계 사람들이 입사하기 위해 경쟁하는 대기업에 공짜로 취직시켜준다는 터무니 없는 조건이다.
애초에 직원들을 죽였는데 취직을 시켜줘서 봐준다니 상식을 벗어난 얘기다.
정작 그 파격 제안을 듣는 유한의 표정은 떨떠름 했다.
"반응이 별론데? 그럼 두 번째 제안도 있지. 우리와 협력해서 일을 좀 처리해 주는 거다."
유한이 첫 번째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예상 내였고, 애초부터 두 번째 제안을 하려고 온 듯 했다.
"우리는 김제현이라는 자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거든.
그 자가 우리와 적대적인 기업 연합체와 손을 잡고, 우리의 영향력을 줄이고 있어서 말이지...
아, 물론 너도 김제현과 좋은 사이는 아니겠지?"
국제 대기업 답게, 유한과 김제현 사이의 일도 이미 조사가 다 끝난 것 같았다.
애초부터 유한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철저히 준비한 것 이다.
결국 유한은 짧게 협력하겠다고 대답하고는 불편한 표정으로 벽에 기댔다.
"...당신들 동료가 당했는데, 그렇게 넘어가도 되나요?"
지켜보던 앨리스가 한마디 하자, 정구한은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네이든 씨는 '마침 그럭저럭인 인재들을 소모시켜야 했는데 잘됐다'더군.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지."
"..."
한 조직의 지도자는 죄다 이런 사고방식이 되는 걸까?
앨리스는 네이든이라는 자는 아버지 이상의 소시오패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결행일은 이틀 후다. 너희들도 쉴 시간이 필요할 테니.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친구들"
정구한은 할 말을 다 하고는 미련 없이 나가버린다.
"넌 어쩔 거야?"
유한이 앨리스에게 물었다.
"어쩔 거냐니? N&R과 같이 또 누굴 죽이면 되잖아?"
앨리스의 대답에 유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마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 혼자면 충분해. 넌 가만히 집에 있으라고."
"내 능력을 못 믿겠다는 거야!?"
"아니...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후의 네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너 최근 너무 많이 죽이고 있지 않아?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네 실제 삶에도 영향이 갈 거야."
하지만 유한의 말은 앨리스의 마음 속에 있던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았다.
앨리스는 격분하며 말했다.
"뭐야? 그 표정은! 이제 와서 날 걱정하는 연기야? 역겨워, 그딴 표정!
내 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고! 인생 선배인 것처럼 굴면서, 내 뒷바라지 까지 해주는 척 하지 말란 말이야!!"
앨리스가 쉴 새 없이 몰아붙이자, 그녀를 바라보는 유한의 시선도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남이 기껏 걱정해 줬더니. 좋아! 나중에 질질짜면서 후회나 하지 마라."
유한은 그 말만 남기고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간다.
앨리스는 멍하니 앉아 아무도 없는 사무소 천장을 바라보았다.
순진무구한 삶을 사는 성유화와 달리, 앨리스는 점점 어느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 작가의말
단백질= 일반적으로 다른 생물들을 희생시켜야 얻을 수 있는 영양소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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