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의 미학의 차이

오늘도 평화로운 청암 사무소에 새 '친구'가 찾아왔다.
"튼튼해보이는 신입 하나를 주워왔다. 신입? 자기소개."
"이랑이라고 합니다..."
전직 황호 사무소의 TOP3 였던 이랑은, 사무소가 궤멸당한 후 '우연히' 유한과 만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황호 사무소에서 두달치 월급이 밀려있었기에, 쪼들리는 상황인 이랑은 선택지가 없었다.
물론 거부했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적의 잔당을 살려둘 이유따위는 없으니까.
"당신은...! 잘 왔어요.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김가은이 반갑게 이랑의 손을 잡고 흔든다.
동공이 흔들리는 이랑은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가벼운 악수에서도 범상치 않은 힘을 느끼고 포기했다.
그 광경은 왠지 3자가 보기엔, 인형의 팔을 흔들며 노는 아이같은 모습이었다.
"...저 사람, 황호 사무소 직원 아니었어? 우릴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영입해도 되는거야?"
앨리스가 조용히 유한에게 질문했다.
인터넷상에 남은 황호사무소의 정보 중에 그녀의 신원이 당당히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랑이 수인이라 왠지 모르게 황호 사무소 사람일 것 같다는 편견도 약간은 작용했지만.
"난 적이 많은 인생이라서 말이야. 날 죽이려는 사람과 협력하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할까?
...그보다 넌 두번이나 날 죽이려고 해놓고선, 잘도 그런말을 하는군."
유한의 반론에 간단히 앨리스의 말문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을 시킬 작정인데?"
김가은에게서 겨우 해방된 이랑이 일에 관한 질문을 했다.
"일거리를 스스로 찾는 자세, 아주 훌륭해. 마침 너가 처리할 일거리가 도착했군."
유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명의 남자가 큰 박스를 들고 사무소 안으로 찾아왔다.
"청암 사무소 분들 맞으신가요? 저희는 '악어 거북 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저희 사무소는 귀하의 사무소와 협력 관계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이 선물은 저희의 작은 성의이오니... 조만간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어이... 선물이랜다. 너가 가서 확인해."
유한이 말하자, 이상덕이 자동으로 자리에서 튀어나와 선물을 살펴본다.
그는 잠시 상자를 살펴보더니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큭큭... 이거 참 성대한 선물을 가져오셨군 그래? 설마 한우세트 안에 소형 폭탄을 설치해 놨을 줄이야...!"
순식간에 사무소안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진다.
사실, 상자를 가져온 두 사람과 이랑만 날카로워졌을 뿐, 나머지는 딱히 그것을 위기로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마침 잘 됐군. 신입 테스트 용으로 딱이겠는데? 1분이면 충분하지?"
유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랑의 주먹이 남자 한명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다른 한명을 걷어차 척추를 부러뜨리고 벽에 쳐박아버린다.
"1분?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는 10초면 충분해."
이랑 역시도 구서울 안락사 요원들 중에서는 상위권의 실력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보란듯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보았다.
정작 청암 사무소 직원들에게는 별 감흥도 못 줬던 모양이지만.
"3." "나도 3." "2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2만큼 예술적이진 않은데." "그럼 2.5로 합의 보자고..."
"뭐야? 그 기분 나쁜 숫자는."
"네 실력이 몇 티어인지 평가해 본 거야. 결론은 2.5티어 정도인 것 같네."
자신을 구경거리 삼아 평가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벌써 이 사무소 사람들에게 정이 떨어지고 있는 이랑이었다.
고작 2.5티어라는 평가도 맘에 안 들었지만.
그 때, 두 명의 시체에서 정체불명의 마력이 새어나오더니, 영혼의 형태를 취한다.
야당 대표 김제현의 모습이었다.
그의 퍼스널 마법을 이용한 것 같았다.
"유한... 꽤나 일을 크게 벌이는군. 이제 대놓고 내 세력 중 하나를 건드리겠다는 거냐?"
"가만히 있어도 죽일거잖아? 그러니 우리가 먼저 널 죽이는 수 밖에."
"죽인다고? 지지율 70%의 국회의원인 나를? 무모한 짓 하지 말게 유한...
그러지 말고, 엎드려 절하면서 사죄하고, 내 편으로 들어오겠다 하면 충분히 용서해 줄 수 있는데?"
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고민하는 척하던 유한은, 이내 무거운 입을 연다.
"좆까."
"쯧쯧. 유감이군. 설마 자살을 선택할 줄이야."
그 말을 끝으로 김제현의 영혼 같은 것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이... 김제현을 죽이겠다니, 그딴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고!"
거대 정치세력과 엮일 예정이라는 것을 안 이랑은 유한에게 따지지만, 그의 살의가 담긴 눈에 간단히 침묵해버리고 말았다.
앨리스도 이전이라면 반발했겠지만, 그녀 역시 앨리스로서 김제현의 '부패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그를 제거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아무 반대가 없는 틈에, 유한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남궁현 씨? 이제 슬슬 당신이 직접 나서줘야겠어. 물론 평소처럼 시체도 치워주고 말이야.
우리 사무소의 2구랑... 앞으로 잔뜩 생길 것들도 말이야."
유한은 이것저것 말하고 전화를 끊고는 직원들에게 가자고 한다.
물론 목적지는, 적이 있는 악어거북 사무소이다.
사무소 사람들은 귀찮아 하면서도 나가지만, 이랑만은 가기를 망설이는 듯 했다.
"이봐... 김제현은 멀고, 나는 가까이있다.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았다고... 하면 되잖아."
유한의 위협에 못 이겨, 이랑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아기 호랑이마냥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
불새, 황호, 흑룡, 악어거북, 네개의 사무소는 단단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 수입원은 자신들보다 약한 개인이나 사무소를 찾아가서 삥을 뜯는 것이었다.
만약 그것에 저항한다면, 곧바로 구서울 최상위인 네 사무소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리고 가엾은 반동분자는 이 업계에서 발 붙이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승에서도 발 붙이지 못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네 사무소 중 세 개를 신흥 사무소가 2주일만에 작살내버린 것이다.
악어거북 사무소의 소장은 긴급히 자신의 뒷배에게 연락했다.
"대표님... 우리만으로 유한을 잡기에는 무리입니다. 지원을 내려주셔야..."
"글쎄, 자네들 따위에게 내 소중한 병력을 보내라고? 그건 너무 낭비같군..."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지원을 안 보내주겠다고 했지, 자네들을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 건 아니라네."
"예? 그건 무슨..."
언뜻 보기엔 소장과 김제현의 그럴듯한 대화로 불리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소장은 연락하기 위한 어떤 장치도, 마법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혼잣말을 하며, 1인 2역으로 지껄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들의 형편없는 영혼대신에, 이 내가 자네들의 몸을 써주겠다는 말이다."
그 순간, 소장은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의 안광은 어느새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소장이 방을 박차고 나왔을 때, 다른 직원들의 안광도 모조리 푸른빛이었다.
"가볼까? '나'들. 오늘이야말로 유한 놈의 사지를 찢어발기는거다."
푸른 눈의 집단이 일사분란하게 사무소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구서울의 형편없는 안락사 요원들의 움직임이 아닌, 고도로 전투에 능숙한 자들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무소 주변은 이미 어떤 세력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까마귀 부리 모양 방독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람들이다.
"스캐빈져? 시체를 치우기엔 아직 이른데. 길을 비켜주지 않겠나."
하지만 스캐빈져의 직원들은 곧바로 마법 공격을 날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무소 직원들은 공격을 쳐내고, 그들에게 달라붙어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난투 중 한 스캐빈져 직원의 방독면이 공격에 날아갔을 때, 김제현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만다.
직원의 피부엔 핏기도 없고, 눈가에 초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체인가!"
시체를 질리도록 보아온 김제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흑마법이라 칭해지는 강령 마법이 분명했다.
이전부터 강박적으로 시체를 수거하고, 직원들의 신원이 불분명한 스캐빈져라는 기업을 수상히 여겼지만, 이제 명확해졌다.
직원들의 대부분, 아니 어쩌면 설립자 남궁현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조종당하는 시체일 것이다.
"우리 사무소도 선물을 준비해 봤는데, 만족하나?"
시체 병사들의 무리 뒤로는 유한과 청암 사무소 직원들이 당당히 서있었다.
"유한! 마음이 없는 건가!! 고인을 이렇게 모독하다니!!"
김제현의 분노를 유한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모양이었다.
"당신이 인해전술로 날 압박하니, 나도 머릿수를 맞추는 수 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마음? 정말 내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건가? 널 죽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말이야!"
그리고 청암 사무소 사람들 6명이 끼어들자 마자, 분위기는 패싸움에서 일방적인 학살극으로 변해버렸다.
유한과 앨리스가 적들을 경쾌하게 베어넘기고, 괴물로 변한 김가은이 적들을 뭉개고 다닌다.
그리고 화염방사기를 든 엘프, 이상덕이 눈앞의 적들을 불로 지져버린다.
강승천은 어떠한 수단인지 모르겠지만 적들의 움직임을 멈추는 듯 했다.
'말도 안되는... 도대체 어디서 이딴 말도 안되는 괴물들이 튀어나온거지!?'
이랑은 자신의 주먹으로 적을 쓰러뜨리면서 생각했다.
그녀 역시도 주위의 시체 병사들과 협공해 나름 노련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처리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어쩌면 이런 괴물들의 집단이라면 정말로 김제현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조종한다 해도 이런 쓰레기들로는 한계가 있는 건가...
좋아! 유한. 기대하게. 자네는 결코 안락하게 죽지 못할테니까."
김제현의 말을 전하는 마지막 사람의 머리를, 유한은 칼로 쳐서 날려보냈다.
***
악어거북 사무소가 궤멸당하는 동안, 김제현의 당에서는 중진들의 회의가 있었다.
"어떻게 할 건가, 김제현 대표! 여당들의 사병에 이어서, N&R까지 우리를 견제하고 있지 않나!
페이롱과 손을 잡은 건 실책이었어!
아무리 다음 선거에서 승리 확정이라 해도 의미 있나? 죽어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나!!"
호통치는 중진 의원을 앞에 두고도, 김제현은 사회적인 미소를 잃지 않는다.
"확실히. 선거 따윈 이제 의미가 없겠군요. 좀 이르긴 하지만, 바로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겠습니다."
"다음 계획이라니...? 설명해보게."
김제현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신의 얼굴에 덮어 씌웠다.
방독면이었다.
살면서 싸움 한 번 한 적 없는 고상한 의원들은, 그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해석하지 못했다.
"뭐하는 건가? 설명은 안 하고..."
"간단한 이치입니다, 여러분. 지루한 정치 싸움도 의미없어졌으니, 당신들은 이제 쓸모없다는거다."
김제현의 말과 동시에, 방의 사방에서 흰색 연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흰 연기를 마시자마자 호흡 중추가 마비된 의원들이 괴로워 하며 발버둥쳤다.
김제현은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 너무 아쉽게 생각하지들 말라고. 어차피 자네들은 언젠가 죽어야 했으니 말이야!"
김제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걸어가 회의실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다.
밖에는 죽은 국회의원들의 사병 또한 있었지만... 그들은 김제현에게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훌륭하다고 박수갈채를 보낸다.
"오늘은 기쁜 날이네, 지지자 여러분! 오늘부로 한국은 내 것이 된다!
그리고... 모든 반대세력들을 지옥으로 보내는거다!"
건물 안에 남은 소리는 지지자들의 환호와 박수소리, 그리고 김제현의 하늘을 찌를 듯한 웃음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 작가의말
이랑은 전직 중소기업 에이스 같은 느낌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수인 무투파 여캐는 있으면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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