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탄압받는 영웅의 서사

"크아아아아악...! 네 이놈...! 감히 나를...! 한민족의 구원자인 이 나를!!"
김제현은 유한의 일격이 상당히 괴로웠던건지, 공격을 받은 부위를 감싸쥐면서 신음한다.
처음에 그는 유한이 고정마법에 걸리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한이 단지 자신의 마력으로 버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어졌다.
수많은 지지자들에게서 정성들여 모은 마력량과 현재 유한의 마력량이 비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크큭... 내 판토마임 실력이 어때? 정말 못 움직이는 줄 알았나?"
유한은 고정마법에 걸린 척 하면서, 김제현이 방심하고 빈틈을 보일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 덕분에 순수 마력 에너지로 공격해 치명상을 입혔다만, 사실 김제현이 살아있는 것도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이 쓰레기놈...! 감히 나를 능멸하다니! 전국민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죽여주마!!"
분노한 김제현의 얼굴 위로 정체불명의 흰 가면이 나타난다.
그 가면을 착용하자 김제현의 모습이 빛나더니, 트렌치 코트를 입은 근대의 복식으로 변했다.
"'처단자의 가면'... 나는 위인들의 가면을 씀으로써, 그들의 영광을 다시금 이 땅에 강림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개같은 마법들을 많이도 모아놨군...!"
유한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김제현이 어지간히도 강한 마력으로 마법을 걸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유한은 그들 주위의 마력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들이 움직일 수는 없지만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파악한다.
지금은 그 마력으로 자신들에게 걸린 고정 마법을 푸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봐! 네놈들이 자력으로 마법을 풀기 전에, 시간이 다 돼서 마법이 풀리는 게 빠를 거라고! 그냥 못 움직이는 채로 마법이나 싸라.
내가 김제현 놈을 최대한 상대하는 동안 말이지."
유한이 판단을 내리자 김제현이 미친 듯이 웃었다.
"날 상대한다고? 아쉽지만 유한, 난 이미 네가 마력을 폭증시킨 방법을 알아냈다!"
"뭐라고...?!"
"너같은 사회악 인간 쓰레기가 할 행동은 뻔하지... 너는 무고한 사람들의 마력을 갈취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서 빼앗은 힘으로는 시민들의 유대가 합쳐진 '진정한 힘'을 이겨낼 수 없어!!"
김제현은 말과 동시에 마력으로 재현해낸 위인들의 성물, 정확히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먼 과거에 한민족을 지배하려 했던 탐욕스러운 침략자를 처단한 그 권총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김제현의 고함 소리와 함께, 권총에서 무수한 탄환이 발사된다.
물론 진짜 권총이라면 이런 짓은 불가능 했겠지만, 마법으로 만든 가짜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일도 있는 것이다.
총알이 유한 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들을 향해 날아간다.
한 발 한 발에 강대한 마력이 주입 되어 있는 총알은 마력이 증폭된 유한도차도 다 막아내기에 벅찼다.
유한은 보호 우선순위가 높은 최남선과, 자기 사무소 사람들에게만 우선 마력 방벽을 씌우는 수 밖에 없었다.
총알은 남은 사병들을 향해 날아가, 그들의 빈약한 마력방벽을 깨부수고 팔, 다리, 옆구리 등을 관통해 지나간다.
맞은 부위는 거의 뜯어지다시피 해서 날아갔지만 이상하게도 급소는 전부 피해갔다.
"빗나가다니...? 조준은 분명 확실했건만...!"
마력의 흐름을 관측할 수 있는 유한은 총알이 빗나간 원인을 금방 알아챈다.
사병들 중 주위 환경의 인력을 변화시키는 퍼스널을 가진 자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사병들은 알아서들 생존하고 있으니, 유한이 할 일은 근접전으로 계속 김제현을 압박해 다음 공격을 저지하는 것 뿐이었다.
유한은 순수한 마력 에너지를 전신에 두르고 김제현의 급소를 노리고 찌른다.
하지만 일반인의 수백배에 달하는 마력을 가진 김제현은 뚫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김제현 입장에서도 유한에게 피해를 입히기는 까다로웠다.
"김제현... 이제 슬슬 고정 마법도 풀릴 때가 됐지? 모두 움직일 수만 있게 되면 너의 패배다."
"하! 역시 사회악 버러지답게 쉽게 자만에 빠지는군..."
김제현은 그의 카본-코팅 칼을 소환해 유한의 일격을 몇 합이고 받아내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 이전엔 꽤나 강력한 안락사 요원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칼날을 맞부딫힐때 마다 주위로 퍼져나가는 마력은 주위 사람들의 몸을 떨리게 할 정도였다.
한창 싸우던 도중에 유한은 돌연 김제현을 밀쳐내고 물러난다.
김제현이 의아해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압력이 그가 있는 공간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력은 강화되었지만 본체는 딱히 강해지지 않은 김제현은, 짜부라지지 않기 위해 마력을 쓰느라 핏줄이 보일 지경이었다.
"김제현 대표, 미친건가? 신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뭔가 변명이라도 해 볼텐가?"
김제현과 유한의 앞에 나타난 것은 대통령 직속 친위대의 대장 김은혜와, 친위대 대원들이었다.
"이 독재자의 앞잡이놈들...! 반드시 너희를 처단하고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것이다!!"
"...대화가 안 통하는 군. 쏴라."
친위대 대원들은 일제히 김제현을 향해 고열 광선총을 발사했다.
무수한 광선 세례를 받은 김제현은 타는 듯한 아픔으로 고통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기는 커녕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량한 나에게 이런 폭거를...!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다...!"
입을 놀리던 김제현은 한순간에 섬광과 폭음을 발생시켰다.
그로 인해 자신을 짓누르는 압력의 마법이 잠깐 멈춘 틈에, 김제현은 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받은 유한이나 친위대 대원들은 금방 제정신을 차렸지만, 다른 사람들이 회복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로봇이라 애초에 아무 효과가 없었던 앨리스는, 오랜만에 만난 친언니 같은 존재인 김은혜를 보고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반갑게 언니라고 부르려 했지만 김은혜는 그만두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앨리스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정체를 들킬 만한 여지를 함부로 남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몸을 되찾을 방법을 찾을 때 까지 기다려주십시오.)"
앨리스가 의미를 이해하고 알았다고 끄덕이자, 김은혜는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치 오늘 앨리스를 처음 만난 것처럼 행세하기 시작한다.
"과연! 당신이 청암 사무소의 장(長)인 앨리스 씨로군요! 듣던대로 직원들의 수준이 꽤나 높군요..."
"네... 당신이 친위대 대장님이시군요."
두 사람이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있는 틈에, 유한이 조소를 띄우며 다가왔다.
"친위대 대장님께서 내 수준을 칭찬해주시다니,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군...!"
"이 새끼... 누가 너같은 쓰레기놈을 칭찬했다는 거냐?"
순식간에 유한과 김은혜 사이에 살기로 가득 찬 격렬한 시선이 맞부딫힌다.
청와타워 내에서의 고상하고 우아한 김은혜의 모습만 본 앨리스는 그녀의 친위대 대장으로서의 일면이 신선했다.
한동안 유한을 노려보던 김은혜는, 그를 무시하기로 결정하고 최남선 쪽을 돌아본다.
"최남선 의원. 세뇌마법을 악용했으니 당장 죽여버려도 시원찮지만... N&R의 요청으로 불문에 부쳐두기로 했습니다.
뭐, 어차피 당신을 죽여봤자 김제현을 도와주는 꼴이지겠만."
"관대한 처분에 감사하네, 대장."
친위대 대원들과 최남선의 사병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앨리스는 나름 전투원이라는 사람들은 인사를 신경전과 기싸움으로만 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그 말만 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정부는 N&R과 협조하여 빠른 시일 이내에 김제현을 처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한다는 의미입니다. 청암사무소 여러분도 김제현과 적대적인 입장이니, 부디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김은혜는 경멸과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유한을 노려보았다.
"...언제나 당신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으니, 허튼 짓 할 생각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정중하지만 사실상 위협이나 다름없는 말을 남기고 친위대는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이동했다.
"하아... 김제현 놈. 최근 만난 미친놈들 중 세 손가락에 드는 또라이군..."
"세 손가락? 대체 나머지 두 명은 어느 정도로 미쳤길래?"
"알고 싶어? 자살한다고 하다가 사람을 죽이려드는 미친 년이랑, 자기 딸을 로봇 몸에 쳐박아놓는 미친 놈이야."
아무래도 유한이 말하는 그 사람들은 앨리스가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 같았다.
앨리스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 껄끄러워져서, 질문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려 했다.
"그보다, 방금 그 마력은 뭐였어? 그게 네 퍼스널인가?"
앨리스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유한은 시선을 피했다.
"...내 퍼스널은 패시브 계열이다. 조건만 맞으면 마력과 신체능력이 강화되는 특별할 것도 없는 능력이야. 그 정도는 보면 알겠지?"
유한이 주구장창 커먼 마법만 쓰는 이유는 애초에 퍼스널을 자기 의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 조건이 뭔데?"
"그건 사업 비밀이야. 절대 안 알려줘."
예상대로 유한은 아무것도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때, 유한이 지닌 통신 장비에서 선두조로부터의 무전이 걸려왔다.
통신 장비를 통해 김제현의 습격 상황은 전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요인의 안전을 확보했으면, 임시 거점을 마련해 재정비해라.]
"...당신들은 어쩌게?"
[N&R의 1티어 전투원들을 투입할 예정이다.]
김제현 자체의 위험도도 높은데다가 타나틱스까지 협력했으니 N&R은 조금도 봐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심지어는 그들은 이번 사태가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고려 중이었으니까.
아니, 사실상 내전은 이미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마침 주변에 내 은신처가 있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
유한은 N&R 사람들에게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은신처가 공개되는 것이 탐탁치 않은 듯 했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다.
***
그 무렵 청암 사무소에서는 결투의 결말이 나있었다.
"쯧쯧. 자연의 일부인 너 따위가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젠장...!"
이랑은 사무소 바닥에서 자라난 나무줄기에 의해 온 몸이 속박된 상태였다.
그것만해도 굴욕적이었겠지만, 이상덕에게는 상처하나도 없었다.
그보다 더더욱 굴욕적인 것은, 이랑에게도 상처하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를 상처하나 없이 제압하고 자신도 상처가 없다는 것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의 반증이었다.
황호 사무소의 TOP3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김가은은 측은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약한 사람 좀 그만 괴롭히세요."
김가은은 순수하게 상냥한 의도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이랑의 남은 자존심까지 가루로 만들어버리기 충분했다...
그들이 딱히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그 때, 청암사무소 안으로 누군가가 걸어들어 온다.
건물 밖에 서 있던 시체 병사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왜냐하면, 그 자는 애초에 이곳에 들어오는 게 허용되어 있었으니까.
양진무를 봉인했던 전투에서 같이 싸웠던, 남철이었다.
"어이... 마침 이 사무소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질리던 참이라고."
이상덕은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인사한다.
나머지 둘은 남철이 왜 갑작스레 나타났는지 짐작조차 못 했다.
그들을 향해, 남철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럼 가볼까. 유한 자식의 정체를 파헤치러."
- 작가의말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것을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도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유한의 비효율적인 행동들을 관찰하면, 그가 어떤 목적을 가졌고, 퍼스널의 조건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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