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장사 씨름꾼 소뿔이를 얻다

유 책사는
강재기를 슬쩍 쳐다보자,
강재기가 웃어 보였다.
장령산으로 입구에는
씨름판이 벌어졌는지
떠들썩했다.
“이 사람에게
덤벼볼 사람이 또 없소?
없으면
이번엔 소뿔을 만나러 가는 사람을
이 사람으로 하겠소.”
강재기,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러니까 이 사람을 이기면
소뿔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거요?”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이기면 소뿔 장사랑
씨름을 해 볼 수 있소.”
“알았소. 내가 해보겠소.”
무룡과 네 사람은
장령산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 올라 가다 보니
씨름을 한 것 같은 자리가 보였다.
그때 뒤에서
굵고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왔소?”
“이골산에서 왔소?”
말을 마치자
엄청난 체구의 사내가
웃으며 앞으로 걸어왔다.
둥근 얼굴,
둥그스름하게 내려 앉은 어깨,
두꺼운 허리와 배,
튼실한 다리,
움직일 때마다
종아리의 알통을 보고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올까
기다렸는데 멀리서 온 것 같소.”
“그렇소, 소문 듣고 경주에서 왔소.”
“내가 소뿔이오.
준비됐으면 시작해 봅시다.”
무룡은 책사에게,
“지지는 말라고 하시오.”
장사인 강재기도 소뿔이 앞에선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였다.
강재기는 유연성이 탁월했다.
소뿔이 힘을 쓸 때는
같이 쓰고
기술을 쓸 때는 또 그에 맞춰
대적해 주었다.
승부는 쉬 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기술을 걸면
노련하게 빠져나가고
또 다른 사람이 기술을 걸면
피해버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 지는 것 같더니 소
뿔의 입에서,
“무승부로 합시다.”
란 말이 나오고 말았다.
둘은 샅바를 놓고
숨을 몰아쉬며 나란히 누웠다.
“최근엔
나랑 비긴 사람은 처음이오.”
“나는 이골산에 들어가
씨름을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대단하오.”
“나는 소뿔이오.”
“나는 강재기요.”
“반갑소.
근데 저 사람들과는 어찌되오?”
“저기 제일 젊고 잘생긴 사람이
우리 대장이오?”
“대장?”
“우린 대장이라 부르고 있소.”
“그렇게 뛰어나오?”
강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은 검법과 수리검,
투석 등 두루 잘하고,
기수는 채찍과 수리검,
대발산은 힘과 월도,
저기 제일 작은 체구를 가진
유재기는 우리 책사요.”
“대단한 사람이 모였소.
그럼 강재기는 무슨 재주를
가지고 있소?”
“나는 힘쓰는 일과
창을 수련하고 있소.”
“호걸들이 모인 것 같아 부럽소.
인사를 좀 시켜 주시오.
그럼, 내 밥을 대접하겠소.”
“나는 소뿔이오. 만나서 반갑소.”
“무룡이오. 대단한 실력이었소.”
“대발산이오.”
“기수요.”
“나는 책사 유재기요.”
소뿔이,
“오늘 호걸을 만나 기분이 좋소.
먹을 것을 대접하겠소.”
유 책사,
“그러지 말고
여기서 간단히 고기로
요기하면 어떻겠소?”
“여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소.”
유 책사는
“그럼, 우리를 따라오시오.”
강재기와 대발산이
팔뚝만한 나무를
힘들이지 않고 뚝뚝 부러뜨려
막대기를 만들었다.
기수,
“소뿔이 먹을 것을
대접한다고 했으니,
줍는 것을 맡으시겠소?”
“예?”
소뿔은
그들을 안내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무룡과 기수는 높은 곳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고
대발산과 강재기가 풀숲을 헤치며
소리를 냈다.
“휘이, 훠이”
기수는
먹기 좋은 꿩과 토끼만
골라 잡아 냈다.
잠시 숲에서
“푸드득, 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 책사,
“이만하면 된 것 같소.
올라 오시오.”
세 사람이
양손에 잡은 것을 들고 왔다.
그 사이 무룡은
자리를 잡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소뿔이 얼른 빼앗으며,
“대장은 가만히 계시오.
내가 하겠소.”
“아니오.
난 사냥을 하지 않았으니
이건 내 몫이오.”
소뿔은
그래도 대장이라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네 사람은
자기 할 일만 하고
대장이라는 사람의 일을
대신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소뿔이
강재기에게 물어보았다.
“대장은 왜 사냥을 하지 않고,
불을 피우고 있소?”
“대장까지 나서면
이 산에 짐승 씨가 말랐을 거요.
그래서 오늘 대장이
나무를 줍고 불을 피우는 거요.”
강재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린 늘 이렇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의논하고,
재주 있고 정의로운 사람은
가족으로 받아들이오.
되고 싶다고
아무나 받아주는 건 아니지만....”
강재기는 말끝에
‘아무나’에 유독 힘을 주었다.
꿩과 토끼가
노릇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다.
소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어졌다.
유 책사가 네 사람을 둘러보며,
“대장,
충청도에는 옛날부터
장사가 많다는데,
이번 여행에
뜻을 같이할 사람을
좀 찾아 봐야 하지 않겠소?”
“그렇게 합시다.
소뿔이 같은
장사가 있나 찾아봅시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소뿔이 바닥에 엎드렸다.
“나도 좋은 일 하게
좀 끼워주시오.”
유 책사가 빙그레 웃더니
얼른 표정을 바꾸고,
“우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을
징치하지만,
왜놈이 쳐들어오면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는 일에
목숨 바칠 사람들이오.
할 수 있겠소?”
“암요, 나라를 지키고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인데
여부가 있겠소.”
대발산,
“대장, 막내로 괜찮겠소?”
유재기,
“힘도 기술도 대단했소.”
“기수가 보기는 어떻소?”
“사람이 우직하니 된 것 같소.”
유 책사,
“그럼, 가부로 결정하겠소.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없던 걸로 하겠소.”
소뿔은 입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축이고 있다.
“좋소.
막내로 들일지 말지
가부로 결정합시다.
반대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모두 빙그레 웃고 있다.
“네 사람의 표정을 보니
반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좋소.”
유 책사,
“소뿔이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겠소.”
“고맙소. 고맙소.”
무룡 일행은
소뿔이를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집은 장령산 자락에 있었는데,
커다란
구릉같이 평탄한 느낌이었다.
강재기,
“멋진 곳이오.
혼자 살고 있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물려준 이 집을
떠나기가 쉽지 않소.”
대길산,
“뭘 먹고 사시오.”
“나무도 뜯고,
산짐승을 잡아
가죽을 팔기도 하는데,
혼자 지내니
크게 걱정할 것이 없소.”
“여기 농토가
제법 나올 것 같은데
개간할 생각은 없소?”
“산이 남의 것이라
사는 건 되지만
개간은 함부로 할 수 없소.”
무룡이
유 책사를 보며,
“여길 개간하면
몇이나 살 수 있겠소?”
유 책사는
휘둘러 보는 것 같더니,
“삼사십은 무난할 것 같소.”
“알았소.
소뿔은
여길 개간할 수 있다면 하겠소?”
“주위에
나를 따르는 사람이 제법 있어서
그건 걱정 없소.”
“좋소,
유 책사는 내일 당장
소뿔을 데리고 가서
주인을 만나시오.”
무룡은
이틀을 소뿔이와 지내며
충청도의 사정을 대략 파악했다.
그리고 다음날,
장날에 맞춰
산 주인과 계약을 끝내고,
산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 들고 왔다.
“이제부터 이 장령산 요새는
소뿔이가 맡는다.”
“고맙소. 무룡 대장,
실망시키지 않을 거요.”
“소뿔은 요새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문경의 주흘을 찾으시오.
구미 요새가 가깝긴 하지만
아직은 문경이 나을 거요.”
“알았소.”
소뿔의 집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일행은
충주로 방향을 잡았다.
기수,
“대장,
이럴 게 아니라 지역을 나눠서
훑고 가면 어떻겠소? 방법은 유 책사가
빠를 거 같소만.”
기수는 시치미를 떼며
공을 유 책사에게 넘겼다.
“유 책사,
“대장이 중간으로
나랑 대발산이 오른쪽으로,
기수와 유재기는 왼쪽으로
먼 길이 좋을 것 같소.”
“그게 좋을 것 같소.
좋은 재목을 찾아서 올라가
충주, 괴산, 음성이 맞닿는 곳에서
만나면 어떻겠소?”
기수,
“우리 둘이면 문제없소.”
유 책사,
“나는 대발산이 있으니
걱정 없소. 근데 무룡 대장이
좀 걱정되는데 괜찮겠소?”
갑작스런
유 책사의 익살에
네 사람은 크게 웃었다.
무룡은
당부를 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사람을 만난 때,
자연스런 시비는 괜찮지만,
감정이 상하는 시비는
하지 마시오.”
“예, 대장.”
“우리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절대로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자존심을 뭉개지 마시오.”
“예, 대장.”
“마지막으로”
유 책사가 냉큼
무룡의 말을 가로챘다.
무룡은
‘이 사람이 하다.’가 웃으며
말해 보시오.
유 책사,
“이겨야 할 때와 져줘야 할 때,
그리고 비겨야 할 때를
잘 구분하시오.”
세 사람이 동시에 받아
유 책사에게 고개까지 숙이며,
“예, 대장.”
하고 장난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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