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진평과 여옥

무룡은
이제야 제대로 돌아간다 싶어
내심 기뻤다.
“아무래도 나의 실수야,
사총사?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
네 사람은
굳게 손을 잡았다가 돌아섰다.
무룡은 간절한 목소리로
“다치지 마시오.
이건 대장의 명령이오.”
“예, 대장.”
무룡의 입에서
처음으로 대장,
명령이란 말을 들은
네 사람은 울컥하며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무룡이
보은과 청원의 경계를 따라
올라가다가 어느 주막에 앉아
요기하고 있을 때였다.
머리를 제멋대로 틀어 올리고
젓가락으로 꽂은 사내 하나가
주막을 쭉 둘러보는가 싶더니
무룡 옆자리로 왔다. 그리곤
젓가락을 들더니
무룡이 시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다른 사람이 보면
무룡의 일행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룡은,
“그건 내 음식이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양인데
나눠 먹으면 서로 좋지 않겠소?”
사내는 마치 남의 말을 하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난 어린 거지에게 적선해도
강도에겐 못 주는 성격이오.”
사내
“성격 참 이상하시네.
같은 음식인데 다를 게 뭐 있소?”
무룡은
점점 ‘재미있어진다.’ 싶어
더 세게 나갔다.
“난 재주도 없이 떠도는
비렁뱅이는 질색이오.”
사내
“그럼 재주 있는 비렁뱅이와는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소?”
“그렇소. 그런데 재주 있는 사람이
왜 비렁뱅이로 남겠소?”
사내
“그런 사람이 있다 치면
어떻게 하겠소?”
“밥도 주고
집도 주고
또 신나게 일할 것도 줄 수 있소.”
사내
“정말이오?”
“이미
내가 밥그릇을 뺏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오지 않았소? 아니면 가시오.”
사내
“밥부터 좀 먹고 이야기합시다.”
“난 재주도 없는 비렁뱅이는
질색이라고 하지 않았소.”
무룡이
밥을 빼앗으려는 동작을 하자,
“알았소. 나는 사람을
구슬리는 재주가 있소.”
“보여 주시오.”
“그걸 어떻게 당장 보여달란 말이오.
이름이 뭐요?”
“그건 나중에 알아도 늦지 않소.”
그때 사내의 눈에
주막 안을 기웃거리는 여자
하나가 보였다.
“슬쩍 보시오.
저기 저 여자가 당신에게 올 거요.
돈 냄새를 맡은 거요.
돈주머니를 조심하시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무룡 곁으로 곧장 다가와
‘술 한 잔 주시겠소? 하며
수작을 거는 것 같더니
잽싸게 돈주머니를 움켜쥐었다.
그때 사내가 손바닥으로
그 여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생긴 건 반반한데
손버릇은 못 쓰겠네.”
하며 쫓아냈다.
여자는 콧방귀를 뀌며
사내를 노려보다가 갔다.
사내,
“잠시 뒤면,
사내들이 나타날 것 같소.
도망가겠소,
아니면 식사를 계속하겠소?”
하며 주막 문 쪽을 쳐다봤다.
무룡
“그러다 가자미 눈 되겠소.
걱정하지 말고
식사나 계속합시다.”
사내,
“괜찮겠소.
꽤 사나운 사람들이라 들었소.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망신당할 일은 없소.”
무룡,
“겁이 꽤나 많구려.
아까와는 전혀 딴판이오?”
사내,
“그게 전문분야와
다른 일을 할 때의
차이 아니겠소?”
무룡,
“날 믿어도 되오.”
사내는
무룡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비로소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우락부락하게 생긴 놈
너 댓이 나타났다.
“내 동생 손목을 잡고
희롱한 놈이 누구여?”
사내,
“앞에 놔두고
왜 빙빙 돌리고 그랴?
볼일 있으면 빨리 보고 가슈.”
“생긴 건 기생오라비같이
멀쩡하게 생긴 게 백주 대낮에
내 여동생의 손목을 잡아?”
사내는
여전히 밥을 먹으며 대꾸했다.
“손목을 잡은 건 맞는데,
이놈 저놈 다 만지는 손목인데
좀 만지면 어떻다고?”
“뭐 이런 개 잡놈들이 있나?”
“말이 너무 거칠다.
차라리 손목 만진 값을
달라면 모를까?”
“좋다. 그래 얼마를 낼래?”
사내는
무룡을 쳐다보며
“‘얼마를 낼 거냐는데
어쩔 거요?”
무룡,
“망신당하기 싫으면
빨리 꺼지라 전하시오.”
사내 난감한 얼굴로
“들었소?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난 밥이나 먹겠소.”
사내가
다시 숟가락을 들려는데
‘우당탕탕, 아이고’
소리가 들리더니 몽둥이를 들고
기세등등하던 네놈이
순식간에 바닥에 자빠져 있었다.
사내는
얼른 무룡에게,
“나는 마이산에서 온 진평이오.”
“나는 이골산에서 온 무룡이오.
아직 밥값을 한 건 아니오.”
“알았소.
외상으로 먹은 걸로 하겠소.
생긴 것과 다르게 꽤 까다롭네.”
무룡은
진평을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 먹었소?”
사내
“차린 건 없지만 그런 것 같소?”
“아까 그놈들은 누구요?”
사내
“저 옆에 있는 방초원에 있는 사람들 같소.”
“방초원?”
사내
“술 마시고 여자를 품는 곳 말이오.”
“아하, 여기 청평과 보은에서
제일 이름있는 기생이 누구요?”
사내
“유명한 기생은 많아
나도 모르겠고, 콧대 높기로는
여옥이 단연 최고요?”
“어째서?”
사내
“미인에다
가무와 시에 능하다 들었소?”
“본 적 있소?”
사내
“내가 무슨 수로
기방에 들어가 보겠소.
두 곳 접경에서 하도
소문이 자자하니
주워들은 거지.”
“사람 구슬리는
재주가 있다고 했소?”
사내
“그렇소?”
“그럼, 여옥을 삼일 안에
내게 데리고 오시오.”
사내
“난 돈도 없는데 무슨 수로?
아니 그리고 나 같은 사내를
거들떠나 보겠소?”
“자신 없으면 그만두시오.
돈을 바리바리 사 들고 가면
그게 무슨 재주요. 돈 힘이지.”
진평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좋소.
그 대신 술값 조금만 주시오.”
“알았소.
사흘 안에 데려오지 못하면
없던 걸로 하겠소.”
무룡은
낮에는 청원과 보은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다가
저녁이면 돌아왔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진평이 여자 하나를 데리고 왔다.
“나, 진평이오?”
“들어오시오.”
사내
“나는 약속을 지켰소.”
“알았소.
여자분이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잠시만
밖에서 지켜 주시오.”
“여옥이라 합니다.”
“무룡이오?”
“왜 나를 이리로 부르셨소?
날 아시오?”
“아니오.
난 저 사람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소.
부르기 쉽지 않은 사람이란
소릴 들었는데 와 줘서 고맙소.”
“정말로
겨우 그것 때문에 날 불렀소?”
“내겐 겨우 그것이 아니라
인재를 찾는 아주 큰 일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라오.”
여옥의 눈에
실망의 빛이 보였다.
“실례가 됐다면 미안하오.
나는 팔도의
인재를 모으고 있소.
각설하고 오늘 여기까지
저 사람을 따라온
이유를 말해 주면
도움이 될 것 같소만.”
여옥은
여전히 실망스런 얼굴을
표시 내지 않으려 애쓰며,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저 사람이 사람을
구슬리는 능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나는 그의 조심스런
행동에서 뒤에 누가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소.
저렇게 뛰어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싶어
따라온 마음도 있었소.”
“소문을 들어
대단한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직접 보니
허명이 아니란 건 알겠소.
귀한 시간 내 주어서 고맙소.
그에 관한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으니,
조심해서 가시오.
가는 길은
저 사람이 지켜 줄 것이오.”
여옥은
무룡의 인사가 끝났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밤에 사람을 불렀으면,
데려다줄 줄도 알아야
대장부가 아니겠소?”
무룡,
“미안하오.
내가 이런 일에
경험이 없어
그런 것이니
너무 나무라진 마시오.”
무룡과 진평은
여옥을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난 약속 지켰소.”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소.”
“그게 뭔 소리요?”
“그건 나중에
여옥을 만나면 물어보시오.”
“내가 무슨 수로
여옥을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이오?”
“그게 진평의 능력 아니었소?”
진평은 한 방 맞았다는 듯
“그게 말이 되네.”
하고 웃었다.
“진평,
노잣돈은 넉넉히 줄 테니
은자 세 개를
좀 받아 줄 수 있겠소?”
“거기가 어디요?”
“경주요.”
“알았소.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
구경도 하고
돈도 벌고 좋을 것 같소.
그러니까 이골산에 가서
달수, 언유, 진달에게
각각 은자 하나씩을 받으면
된다는 말이 맞소.”
“그렇소.
그자들이 좀 질긴 자들이라
나는 번번이 실패했소.”
“하나라도 받아내면
거기서 내가 갈 때까지
먹고 자고
구경하고 기다리면 되오.”
“알았소.”
진달이 떠나고
무룡은
다음 날 아침에 떠날 작정으로
일찍 자리에 들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깊은 밤에
문 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밖에 누구요?”
“아씨가 모셔오라고 했소.”
“잘못 알았소.
나는 여기가 타지라
댁의 아씨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오.”
무룡은
다시 깊이 잠들었다.
날이 밝았다.
무룡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주막을 나와
장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장터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갔더니,
부녀를 둘러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필시 소 판 돈을 노리는 짓
같았다.
“이 부녀가
내 소 판 돈을 쓸 쩍 해갔소.”
“아니오. 절대 그런 일 없소.”
“그럼
보따리를 풀어보시오.
그러면 돈이 있는지 없는지
알 거 아니오.”
놈들이
우시장부터 쫓아와
수작을 부리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부녀는 꼼짝없이
도둑 누명을 쓰고
돈도 빼앗길 처지였다.
부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아니라고 해보지만,
그럴수록 노련한 패거리의
올가미가 점점 더 깊이
조여들기만 했다.
마침내 보따리가 풀어지고
소를 판 돈이 나왔다.
사내 하나가
“이보시오.
이래도 쓰리꾼이 아니란 말이오.
이것들을 당장 끌고 가서
감옥에 넣어 버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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