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도처에 도적들

사내 하나가
돈을 빼앗려는 순간
수리검 하나가 날아가
전대 앞에 꽂혔다.
“맞아,
감옥에 처넣어야지.
그런데 감옥에 갈 사람은
대낮에 남의 돈을
자기 돈이라 우기고
빼앗으려 드는
강도 놈들일 것 같은데.”
“뭐야?”
대여섯이
무룡을 에워싸고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애초에 상대가 아니었다.
놈들은 잠깐 사이에 머리에
피를 흘리고,
다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내었다.
무룡은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
누가 이놈들 데려가게
발고 좀 해 주시오.”
무룡이
파김치가 된
부녀를 일으켜 세웠다.
“봉변당할 뻔했소.
괜찮으시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부녀는 수없이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잠깐만 기다렸다가
저놈들 잡아가는 걸
보고 가시오.
저놈들이 다시는 못 설치게
관에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혹 모르니 집에까지 좀
데려다 달라 부탁하시오.”
무룡은
옷을 털고
다시 길을 나서려 했다.
그때 몸종으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다가와 종이 하나를 주고 갔다.
어젯밤에 문 앞에 있었던
여자 같았다.
무룡은 버리진 못하고
주머니에 넣고 길을 나섰다.
땀이 이마에 맺힐 때쯤
종이가 생각나 폈다.
“큰일을 하려는 사내가
어찌 그리 무정하고
매정하시오.
때때로 못이기는 척
엎어질 줄도 알아야
사내가 아니겠소?
오늘 밤,
주안상을 놓고
기다려 볼 참이오.”
무룡은
첩첩산중을 걷다가
해가 뉘엿해질 때쯤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는 길이 이리 늦은
이유가 무엇이오?”
“애초 오기로 약속한 적 없으니
그런 말은 무의미하오.”
“큰일을 하려는 사내는
목석이 없다고 들었소만.”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면
마음을 끊기가 어디 쉽겠소?”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내시오?”
“그대의 눈빛과 자태에 취해
일을 그르칠까 두렵소.”
여옥이
무룡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한편
이골산으로 찾아간 진평은
느닷없이 무룡의 이름을 들먹이며
은자를 내놓으라 했다.
하는 짓이 밉지 않았고,
노력이 가상했다.
진달과 언유는
둘이 말을 맞춰
멋진 여자를 들먹이며
소개해 준다는 말에
진평에 넘어가는 척하기로 했다.
언유,
“저런 잡스런 사람도
더러 있어야
더 재밌어질 것 같지 않소?”
진달,
“동감이오.
우린 모른 척하고
달수가 어떻게 하나 봅시다.”
그 시간
기수와 강재기는
험산 준령을 넘고 있었다.
풀숲에 꿩 한 마리가 있길래
무심코 주었더니
사내들이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도둑이라며 달려들었다.
어이없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채찍으로 혼을 내어 쫓아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식사하고 있으려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주위를 에워쌌다.
“저 자들이오?
우리 꿩을 훔치고
채찍을 휘둘렀소.”
“우리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우릴 도둑으로 몬 사람이
뭔 말이 많소?”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어디서 온 누구요?
그리고 어디로 가시오?”
“우린 이골산에서 왔소.
그리고 충주로 가는 중이오.
꿩 한 마리 가지고
시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혹, 먹을 것이 필요하면
잡아주겠소.”
“그럼 좋소,
다섯 마리만 잡아주시오.”
기수,
“몇이 내려가서
내 눈앞으로
꿩을 다섯 마리만 날려주겠소.”
한 마리가 날고
‘툭’ 떨어지고,
또 한 마리가
날아가다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꿩 세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동시에 푸드덕 날아올랐다.
기수는 채찍으로 한 마리,
수리검으로 두 마리를 잡았다.
강재기,
“봤소?
우린 남의 사냥감을 탐낼
이유가 없소.”
“오해였던 것 같소.
제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염려 마시고 같이 갑시다.”
강재기와 기수는
그들을 따라갔다.
그 시간
대발산과 유 책사는
보은 땅을 걷고 있었다.
풀숲에서
여자 둘이 나타나더니 다급하게
“잠시만 우리 좀 숨겨주시오.”
둘은 영문 모르고
여자들을 숨겼고,
얼마 뒤,
사내들이 나타나
여자들의 행방을 물었다.
“좀 전에 두 년이
지나가는 것 못 봤소?”
“모르겠소.”
“이년들이 어디로 갔나?
멀리 못 갔을 테니
샅샅이 뒤져라.”
사내들이
쉽게 포기하고
가는 것이 이상해 여자들을 찾았다.
그러나 두 여자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유 책사가
무엇인가 집히는 게 있는 듯
봇짐을 뒤져 보고 탄식했다.
“당했소.”
대발산,
“뭘 말이오?”
“돈을 털렸단 말이오.”
“뭐요?”
“그 정도 패거리면
가까운 곳에 있는 놈들일 거요.
찾아봅시다.”
“이놈들이 겁도 없이
감히 우리 돈을 노려!”
대발산과 유 책사는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내일을 기약하려 했다. 그
런데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깊은 산 속에
인가가 있을 자리는 아닌 것 같아
불빛을 따라갔다.
거기엔 낮에
두 사람을 속인 놈들의
거처로 보였다.
둘은 년놈들이 맞는지만
확인만 하고 나왔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요절을 낼 참이었다.
동굴에서 잠시 눈을 붙었다가
날이 밝자 다시 그곳으로 갔다.
유 책사는 몽둥이를 들고 있고
대발산은 집 뒤로 가서
집을 번쩍 들어 뒤집어 버렸다.
자다가 놀란 놈들이
문을 겨우 찾아 나오다가
유 책사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뻗어버렸다.
여자 둘에 사내가 여섯이었다.
유 책사,
“어제 훔쳐 간 돈
이자를 쳐서 가져와.”
놈들이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대발산이 몽둥이로
집을 내려치자
뒤집혀 있던 집이
그대로 폭삭 내려 앉아버렸다.
“긴말 필요 없다.
잔머리 쓰다간
제명이 못 갈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놈들에게 돌려받은
엽전을 가지고 부지런히 걸어
괴산 땅에 도착했다.
무룡은
증평과 괴산의
경계를 타고 올라가다.
날이 저물어 노숙할 자리를
찾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증평장에 들러볼 생각이었다.
저녁으로 먹을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해 들고 가는데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무룡은
첩첩산중에 불빛이 반가워
따라가다 동굴 앞에서 멈췄다.
“계시오?
밖이 어두워져서 그러니
괜찮다면 하룻밤 같이
지내도 되겠소?”
그 소리에 안에선
화들짝 놀란 듯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한참 만에 떨리는
어린 사내의 목소리로
“미안하지만, 안 되겠소.”
하는 말이었다.
“알았소.”
무룡은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에
멀찍이 물러나
바람은 피할 수 있는
바위틈에 자리 잡았다.
불을 피우고
토끼를 구워 먹고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산짐승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이내 지팡이에서 손을 놓았다.
말소리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 다 들리겠다.”
“난 배가 너무 고프단 말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룡은
먹던 고기를 내려놓고
자는 척했다.
한 아이가 다가와
남은 고기를 가져가는 게 보였다.
아침,
무룡은 인기척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지팡이를 잡았다.
“어제 동굴에서 자던 사람이오.”
“그런데 무슨 일이오?”
“어제는 미안했소.”
“아니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소.”
“이해해 줘서 고맙소.”
나무 뒤에 숨었다 나타난 사람은
열일곱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오?”
“사과하러 왔소?”
“사과?”
“어제 내 동생이
고기를 훔쳐 먹었다 들었소.
용서해 주시오.”
“난 고기를
도둑맞은 적이 없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가 배고파 먹은 걸
탓할 생각이 없소.”
“고맙소.”
“일행이 몇 명이오?”
“넷이오.”
“그럼, 날 좀 도와주겠소.
아침은 먹고
출발해야 되지 않겠소?”
앳된 청년은
동생들을 단속한 뒤,
무룡을 따라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무룡과 청년은
사냥감을 들고
청년을 따라 동굴로 갔다.
거기엔 올망졸망한 여자아이 셋이
있다가 청년 뒤로 숨었다.
청년,
“이분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사냥한 고기를
맛나게 구워 먹고
일어날 준비를 할 때
청년이 입을 열었다.
“나는 단홍이라 합니다.”
“나는 무룡이오.”
“고맙소.”
“고마울 게 뭐 있소.
아침 준비를 조금 더 한 것뿐인데.”
“어디로 가시는지 물어도 될는지?”
“그러기 전에
청년은 반가의 자제 같은데,
이 깊은 산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소.”
“우린 의탁할 곳이 있나
싶어 음성으로 가는 길이오.”
“음성에는 누가 있소?”
“먼 친척이 산다고 듣긴 했는데···.”
“그래서 무작정 가고 있단 말이오?”
단홍은 고개를 숙였다.
“딱하게 됐소.
음성까지 가겠다면
가는 곳까지 동행은
해줄 수 있겠지만,
찾을 수 있겠소?”
“다른 방도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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