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항불이를 만나다

무룡의
한마디에 아이는
마음 놓고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룡은
아이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을 듯 말 듯 하면서
약을 올렸다.
아이는
그게 너무 화가 나는지
미친 듯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내려치고 옆으로
휘두르고
찌르고
등 뒤로 숨겼다가
별안간 빗각으로 내려쳤다.
아이는 지칠 줄도 모르는지
숨이 턱턱 막히는
소리를 내면서도 몽둥이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룡은
처음에는 아이가
불만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불만보다 더 큰 것을
아이가 가지고 있었다.
집념과 끈기,
포기할 줄 모르는 성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무룡은 씩씩거리는
아이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것이 어때?
그런 부지깽이로는
나를 맞추지 못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이를 악물며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마치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여서
보기가 딱할 지경이었다.
아이는 몽둥이를 휘두르다
제풀에 힘이 빠져 쓰러졌다.
무룡이 다가가
아이를 보려 하자
아이가 회심의 일격을
무룡에게 날렸다.
무룡은 간신히
몽둥이를 피하고 나서
‘요놈 봐라.’ 하면서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해가 산에 걸렸을 때쯤
아이는 거의 탈진상태로
비틀거리더니
앞으로 폭 고꾸라졌다.
무룡은
아이를 둘러업고
아이의 집을 찾다가
한 곳을 보고 찾아갔다.
“계시오?”
“뉘시오?”
“혹 이 아이가 여기 아이요?”
“이놈이 사고를 쳤소?”
무룡은
오후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반항심으로 그런 줄 알았소.
그런데 그게
아이도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소.
어쩌겠소,
그렇게 타고난걸.
날이 어두워졌으니
길을 더 가지도 못할 거요.
누추하지만 자고 가슈.”
무룡은 아이 아버지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내일 하루만
내게 맡겨 주시오?
내가 고쳐 보리다.”
“그러다 공연히
봉변당할 수도 있소.”
다음 날 아침,
무룡은 잠이 덜깬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아이는 피곤함에 절은
모습으로 간신히 눈을 떴다.
“어제 못한 승부를 내야지
빨리 준비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어제 일이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무룡을 따라왔다.
편편한 자리를 찾아
마주 보고 섰다.
아이는 어제보다 가늘고 긴
지게 작대기를 들고 섰다.
가끔씩 지게 작대기와
지팡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딱, 딱”
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는 더 힘을 내는 것 같았다.
지팡이와 작대기가 부딪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무룡은 문득 아이가
무룡이 갈 방향을
익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룡은
보법을 쓰다가 가끔
보법을 어제와 다르게 썼다.
그를 때마다
아이의 작대기가 영락없이
어제 보법에 맞춰져 움직인다는 걸
알았다.
무룡은
아이를 보며 잘만 다듬으면
괜찮은 재목이 될 것이라 싶었다.
“어제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지는 거다?”
아이 대답 대신
더욱 공격에 힘을 실었다.
“졌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이길 수 있는 사람이다.
남자가 그런 것도
인정할 줄 모르면
그건 대장부가 아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아이가 쓰러졌다.
무룡은 아이를 업고
아이 집으로 덜이 와 눕혀놓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다.
정신을 차린
아이의 첫마디가 의외였다.
“졌소. 잘못했소.”
무룡을 아이를 쳐다보며
“졌으니까 잘못했다
하는 것이냐 아니면
잘못한 걸 뉘우쳐서 말하는 거냐?”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둘 다요.”
“이제 입이 떨어졌구나.
난 무룡이다. 너 이름이 뭐냐?”
“항불이요.”
“졌다고 말한 것 보니
내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무술을 배우고 싶어요.”
“어디가 쓰려고?”
“나쁜 일에는 쓰지 않을게요.”
“알았다. 나는 너를 믿고
너 눈빛을 믿는다.”
무룡은
항불에게 보법을 가르쳐 주었다.
“발 움직이는 보법을
익혀 놓으면
검이든 창이든 봉이든
다 쓸 수 있다.
부지런히 익혀 놓으면
다음에 또 봐주마.”
“예, 알았어요.”
“내 울진과 봉화 연락처를
아버지에게 가르쳐 주마.
혹 그곳으로 지나갈 일이 있으면
연락하거라.”
“나쁜 일에 쓰지 않겠다는 말
잊지 말거라.”
“예.”
무룡은
끝없는 산길을 따라
함백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반나절 만에 쉬어 가려고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사람 소리가 들려 쳐다봤더니
여러 사람이
물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왔다.
“어서 오시오.”
“이 깊은 산에
우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먼저 오셨소.”
“어디서 오는 길이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어디 정해진 곳이 있겠소.
함백산을 다녀와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오.”
“함백산 자락에는
사람들이 더러 있소?”
“모르긴 하지만 거의
무술 수련하는 사람들일 것이오.”
“무술 수련 말이오.?”
“그렇소.”
“검법으로 유명한 사람도 있다던데?
이름이 함산이라 하던가?”
“함산요?
함백산 산신령을
줄인 별칭이라 들었소.”
“고맙소.
조심해서 내려가시오.”
무룡은 함백산을 찾았고
함산을 찾기 위해 애썼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산속,
이전의 산과는 비교할 수 없이
험하고 높고 깊은 산이었다.
나흘을 산속에 헤매다
찾아든 깊은 산속의 집에
하룻밤을 신세 지기로 했다.
“젊은이는 어디로 가시오?”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혹, 함산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은 적 있소?”
“들은 것은 같소만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찾으려 하시오.”
“한번 겨뤄보고 싶어서 왔소.”
“겨뤄서 뭣하게,
최고가 되고 싶어서?”
“아니오.
나는 최고가 되고 싶은 생각보다
팔도의 인재를 두루 만나 보고 싶소.”
“아마 내일 새벽 동틀 무렵에
동쪽으로 나가면 만날 수 있을게요.”
“고맙소.”
무룡은
내일 아침에 함산을 만날 생각에
일찍 자리에 누웠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희붐하게 어둠이 물러가고 있었다.
무룡은 지팡이를 들고
바다가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어둠이 물러나자
주인 노인의 말대로 삿갓을 쓴
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이골산에서 온
무룡이라 하는데 함산이 맞소?”
“그렇소.”
“검법 대련을
해보고 싶어 왔는데 가능하겠소?”
“실망도 좌절도
하지 않을 생각이면 좋소.”
“한 수 부탁하겠소.”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이 만나
꽃이 피었다.
살심(殺心)이 없는 교검(交劍),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구름이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움막집 주인과 무룡이 서 있었다.
노인,
“멋진 검법이었소.”
무룡,
“고맙소.
덕분에 검을 잡는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게 되었소.”
노인
“바라던 바는 이루었소?”
무룡,
“인재로 청하기엔
함산의 무애(無碍)한 삶에
욕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소.”
함산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함산,
“젊은 나이에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소.
내가 그 나이엔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소.
시간이 되면 영월에
두청을 만나 보시오.”
무룡,
“예?”
함산,
“서로 좋은 인연이 될 거요.
앞으로 바라는 일 잘 되기를 빌겠소.”
무룡,
“고맙소.”
무룡은
함산과 작별하고
아름드리나무 사이를 걸어 나왔다.
영월에
두청을 만나 보러 가다가
발길을 돌려 울진 요새로 내려갔다.
며칠 전에
꼭두 요새의 유장으로부터
장용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였다.
“어서 오시오. 무룡 우.”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찼소.
무슨 일이오?”
“옆 산에서 농사지을 물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고 있소.”
“아니 그걸 그냥 두고 있단 말이오?
소상히 말해 보시오.”
“얼마 전,
요새 일에 정신없을 때,
옆 산 산주라는 사람이 찾아와
자기 산을 사라는 말이 있었소.”
“그래서?”
“그때는 바쁘기도 했고,
요새 만들기에도 돈이 빠듯한 때라
돌려보냈소.
그런데 농사철에 물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소.”
“물이 거기서 오는 것 말고는 없소?”
“거기가 주위에서
제일 큰 산이고
우리 요새뿐 아니라
산 아랫마을도 그물을 이용하는데
거기서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소.”
“얼마를 달라고 했소?”
“처음에는 150냥을 달라고 하더니
지금은 300냥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어쩌지 못하는 이유가 뭐요?”
“그놈이 관과 줄이 닿아있어서
아랫마을에서 아무리 관에 말해도
소용없다고 하였소.”
“알았소.
지금 당장 영덕에 사람을 보내
영길이를 데리고 오시오.”
“영길이라는 아이는 왜요?”
“꿩 잡는 게 매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