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평삼 형제와 박치기 2

기수가
있는 무주 요새에서 하룻밤을 자고
충주 요새에 들러 맹호를 만났다.
영월에서 두청을 만나고
경기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을 타고 올랐다.
먹을 것은 잡았으나
소금이 없어
난감해 하고 있을 때
큰 동굴 앞에 도착했다.
동굴은 넓고 커서
많은 사람이 동시에 묵어도
될 곳으로 보였다.
무룡 일행은 연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진평이 세 사람이 모인 자리로 가
소금을 얻었다.
진평,
“고맙소.”
사내
“어디로 가는 길이오?”
진평,
“평안도로 가는 길이오.”
사내,
“좋은 일이라도 있어서 가는 거요?”
진평,
“아니오. 피양 박치기가 유명하다고 해서
구경 가오.”
사내,
“팔자 좋소. 이 북풍을 뚫고 유람이라니.”
진평,
“나는 일행에 길 안내하는 정도요.”
사내,
“먼 길을 가려면
소금은 꼭 필요한 것인데······.”
진평,
“오다가 흘린 것 같소.
아무튼 고맙소.”
진평은 돌아와
고기를 구워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진평에게 소금을 준 사내가 일어나자
동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같이 일어났다.
진평이 사내를 보고 어리 둥절하자,
“가진 것 빼앗기지 않으려면
따라 붙으슈.”
진평,
“왜, 숭악한 도적들이라도 있소?”
사내,
“그렇소.”
무룡 일행은
열 명 남짓의 무리에 섞여서
그들을 따라갔다.
얼마나 갔을까
사주를 경계하며 가는 그들 앞에
커다란 나무 하나가 떨어지며
길을 막았다.
그리고 시커먼 수염을 기른
털복숭이 놈 하나가 나타났다.
“가진 것 반만 내놓으면 보내 주마.”
사내와
등짐을 진 두 사람은
난감한 얼굴로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같이 온 일행 중
두 명이 도적들 무리에게 갔다.
진평,
“뭐야 저놈들도 같은 패 아냐?”
도적1
“저 등짐에선 삼 냄새가 나고,
저 셋에겐 엽전 냄새가 났소.”
소금을 나눠준 사내가
지팡이를 들었으나
난감한 얼굴이다.
도적들의 숫자는 열 명 남짓으로
비슷했으나
무룡 일행과 무리는
사내 무리를 빼곤
몽둥이조차 들고 나서는 자가 없었다.
무룡이 나서며
“걱정 마시고,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시오.”
하고 고갯짓을 하자
강재기가 기다란 나무하나를 들고 나섰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
시커먼 수염의 도적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강재기를 앞에서 멈췄다.
“너는 반 아니라 전부를 내놔야겠다.”
강재기,
“도적놈들이
물건의 반만 빼앗았다는 말은
내가 들어본 적도 없다.
수작 부리지 말고
어디 능력 있으면 뺏어 보든지.”
강재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적들이 네 방향에서 덤벼들었다.
그리고 비명이 들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일행은
비로소 두려움이 사라진 얼굴이 되었다.
강재기와 진평 그리고 사내는
도적을 묶어서 꿇렸다.
강재기,
“대장, 목을 따 버릴까요?”
그 소리에 도적들은
목을 움추렸다.
그 사이에 진평은
일행 속에 숨어서
고자질한 놈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놈들은 저 도적의
개 노릇을 하는 놈들이다.
이제부터 너희 둘은
사람이 아니라 개다. 알았나?”
“예.”
“어라, 개가 사람 말을 다하고,
사람처럼 두 발로 서있네.”
두 놈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네발로 기었다.
무룡과 같이 온 사람들이
분풀이로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그리고 강재기가 신음을 내고
있는 털복숭이 수염을
무룡 앞에 세웠다.
강재기,
“우리 대장은 말로 안 해,
빨리 대답 안 하면,
그냥 병신으로 만들어버려
그러니 알아서 대답해.”
무룡,
“산채가 어딨냐?”
털복숭이는
아직도 믿는 구석이 있는지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순간 무룡의 수리검이 놈의
사타구니를 스쳐서 땅바닥에 꽂혔다.
강재기,
“내가 경고를 해 줬는데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강재기의 말이 끝나고,
수리검 두 개가 날아가
털복숭이 두 발의
좌우 엄지발가락과
집게 발가락 사이 사이에 박혔다.
허세를 떨던 털복숭이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강재기,
“산채가 어딨고
몇 명이나 되냐?”
털북숭이 수염은
‘박달골 서른 명’하고 말하고는
놀라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진평은 사내와 일행에게 다가갔다.
“박달골이 어디요?”
사내,
“여기서 오리 정도 떨어진 골에 있소.”
“나는 경주 이골산에서
온 진평이오.
왜 그 많은 삼을 위험하게
지고 다니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삼을 팔 곳이 없소.
헐값에라도 넘기려고
황해도 최부자를 찾아가는 길이오.”
“삼을 팔 곳이 없다는 소리를
처음 듣소.”
“우리 인삼 농가는
최 부자에게 밉보이면 어쩔 수 없소.”
“왜 밉보였소?”
“우리가
육 년간 고생한 삼 가격을
너무 박하게 쳐줘서
나는 삼을 최 부자에게
안 판다고 버텼더니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소.
나 때문에 삼도 못 팔게 생겼다고
화살이 내게로 왔소.
문제는 최부자가 인데,
나 혼자면 그래도 참고 견디겠지만
마을의 삼을 ‘사지 않겠다’ 고 하니
나보고 빌러 가라고 떠밀어서
마을 삼을 지고 가는 길이오.”
“가서 빌고 싶소?”
“난 죽기보다 싫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삼을 못 팔면 살아갈 방법이 없소.”
“그럼 삼을 우리가 제값에 사줄 테니,
운반을 해주겠소?”
“사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하겠소.”
“난 진평이오.”
“난 평삼이고, 동생 평수, 평지요.”
강재기,
“이제 인심하고 갈 길 가시오.
우리는 박달골로 가서
다시는 도적놈들이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산채를 없애 버리고 갈 것이니
잘 가시오.”
사람들이 떠나고
무룡과 삼 형제만 남았다.
무룡,
“황해도로 먼저 가 있는 것 어떻소?
돈을 미리 줄 수도 있소.”
평삼,
“괜찮다면 우리도 동행하고 싶소.”
“평수, 평지 동생들도 괜찮겠소?”
동생들,
“우리도 괜찮소.”
“그럼, 박달골로
저놈들을 데리고 갑시다.”
진평이
박달골 산채 부근에서
놈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는,
“소리를 내거나
산채에 신호를 주는 놈은
남자구실을 못 하게 해줄 거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하고 산채로 다가갔다.
강재기,
“대장, 오랜만에 창술로
땀 좀 흘리고 싶소.”
진평,
“그럼 나와 대장은 뭣 하라고?”
“진평은 내가 위험해지면
대장을 부르고
대장은 돌을 던지든
수리검을 던지든 하면 되지.”
“알았어.”
강재기는
삼 형제에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주고 앞서서 산채로 들어갔다.
진평,
“비달이라는 두목 놈이
번개처럼 빠르게
몽둥이를 휘두른다고 하니
조심하시오.”
강재기의 창술이 눈부셨다.
무룡의 권유로 배우기 시작한 창술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순식간에 도적들 산채는
쑥대밭이 되었고,
비달이라는 놈이
다듬잇방망이 크기의 몽둥이
두 개를 들고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무룡이 깜짝 놀라
수리검을 던져 주저앉혀 버렸다.
산채를 불태우고
삼 형제를 시켜
인근 마을 사람을 불러
먹을 것을 골고루 나누어 주고
놈들을 관에 넘겼다.
무룡 일행은
이틀을 걸어 황해도에 도착했다.
주막에 짐을 풀고
진평 삼 형제가 나가
인삼값을 알아보고 왔다.
“가격이 어떻소?”
“우리에게 주는 가격의
세 배 정도요.”
“알았소.
그 가격에 우리가 모두 사겠소.
대신 금산으로 돌아가서
마을 삼을 모두 가지고 오시오.
그것은 다른 곳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모두 사주겠소.”
“정말이오.
혹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면
이 주막에 말해 놓을 테니
여기서 기다리시오.”
평삼 삼 형제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내려갔다.
진평,
“대장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떻하긴 최 부자에게 팔아야지.”
강재기
“여기 삼을 취급하는 곳은
모두 최부자와 연관이 있는 것 같소.”
“우리가 여기로 올 때쯤은
가격이 더 올라 있을 거요.”
세 사람은
함경도 황해의 접경을 타고
평안도에 도착했다.
여독으로 입술과 손이 갈라졌다.
생전 처음으로 겪는 맹추위였다.
셋은 장터로 나가
동물의 털로 단단히 준비하고
며칠을 쉬며 체력을 비축했다.
평안도는
숲에서 호랑이가 달려 나오는 것처럼
용맹한 사람들이라 하더니
아랫지방 사람들과 비교하면 말
투가 억세고 표정이 강해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얼어있었다.
냉기가 얼마나 강한지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다
얼어버릴 지경이었다.
모든 것을 얼리고 마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려면
사람들이 강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뜨끈한 국밥을 먹고 방에 있으려니
기둥 울리면서
집이 무너질 듯한 소리가 났다.
일행이 놀라 일어났더니
주막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 무너지겠소.
제발 그만하게 해 주시오.”
“아이가 장난으로
그러는 것 가지고
너무 야단 떨지 마시오.”
“나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이 집이 무너지는 줄 알고
놀라서 난리요.”
하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렸다.
진평이 슬며시 문을 열고 나가더니
옆방의 동정을 살피고 들어왔다.
“앞방에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있었소. 다른 아이는 없었소.”
강재기,
“설마 그 아이는 아니겠지?”
“주인 부부가
그 아이가 맞다고 했소.
해마다 이맘때쯤 소를 팔아서
식량을 사서 산으로 간다고 했소.”
강재기
“에이 설마?”
“위에 형이 있는데
벌써 박치기로
어른 열 명을 넘게 넘겼다 했소.”
강재기,
“몇 살이나 되었다고 했소?”
“열네 살이 된다고 했소.”
강재기,
“대장,
그럼 우리가 저 사람들을 따라가서
확인해 봅시다.”
진평이 앞장서서 가고
강재기와 무룡이 거리를 두고
따라가기로 했다.
소를 몰고 우시장으로 가던
부부와 아이가 소를 팔고 나오다가
뜻밖에 쓰리 꾼을 만났다.
진평의 신호로 강재기가
그놈들을 막아서고
진평이 부부를 불렀다.
“이보시오.
방금 소 판 돈을 쓰리 당했소.”
부부는 이게 뭔 소린가 싶은지
조심스럽게 품을 더듬더니 소리쳤다.
“돈이 없어졌다!”
진평은
강재기가 가로막고 있는
사내들을 가리켰다.
“저놈들이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의 몸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날아서 그대로 쓰리꾼 중에
한 놈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뻑’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사내는 피를 흘리며 기절해 버렸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부리부리한
눈의 사내였다.
그러나 쓰리꾼들도 만만 치 않았다.
“뭐여?”
강재기,
“이놈들이 쓰리꾼들이오.”
“아니 이 미친 자가
생사람을 다 잡네.
우리가 소 판 돈을
훔쳤다는 증거를 대봐 ”
강재기가 적반하장에
기가 막혀 있을 때,
진평이
“그래 훔쳤다고 실토했네.
훔치지 않았다면
소 판 돈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이 도둑놈들아?
그러니까 훔치려고
지켜 보고 있었단 말이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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