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밤발, 바람개비, 망치

쓰리꾼들은 아차하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어버렸다.
이제 할 일은
그들의 방식대로
상대를 때려 눕히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소판 돈을 털린 사내는
무기를 든
여럿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하여 강재기가 나서서
놈들을 혼내주는 사이
쓰리꾼으로 보이는
패거리들이 떼로 몰려왔다.
무룡은 만만하게 보다가
일이 크게 된 것 같았다.
패거리의 숫자로 보면
이곳에 산채를 둔
토착 패거리가 분명해 보였다.
무룡이 앞으로 나서며
“잘 들어라.
돈을 순순히 내놓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관에 넘기는 일은 하지 않으마”
놈들은
숫자만 믿고 코웃음을 쳤다.
“돌려줄 바에 뭣 하러 슬쩍 했겠냐.”
하며 노골적으로 나왔다.
“알았다.
빌 기회를 줬는데도
너희들이 기어코 해보겠다면
다쳐도 우리를 원망하지 말거라.”
무룡의
지팡이가 순식간에
놈들의 다리를 때려 꿇어 앉혔다.
그 사이 강재기는
놈들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탑을 쌓듯 던져 쌓았다.
진평은
강재기의 창을 들고
놈들을 감시하고
무룡의 수리검이
대장으로 보이는 놈의 발에 꿰었다.
“자 이제 내 놓을 테냐?
아니면 멱을 따 줄까?”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놈들을 묶어 놓고
발길질을 하며
그동안 당했던 분풀이를 했다.
돈을 돌려받은 사내는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고맙소. 내가 큰 신세를 졌소.”
라며 무룡 일행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어느 주막,
“나는 밤발이오”
“나는 이골산에서 온 무룡이오.”
“정말 고맙소.
덕분에 올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소.”
“쓰리꾼이 내 돈을 훔친 것을
어떻게 알았소?”
강재기
“아이의 박치기 실력이 궁금해
지켜보고 있었소.”
“그랬소? 그
런데 여긴 무슨 일로 왔는데
아이 박치기에 관심을 가진 거요?”
“우린 경주 땅에서
평안도가 박치기가 궁금해서 왔소.”
“그렇담 시기를 잘 못 찾아왔소.
겨울이라 머리를 쓰기기 쉽지 않소.
해마다 가을에 대회가 열리고 있소.
그때가 되면 골짜기마다
나무를 들이받으며 연습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소.”
진평,
“대장,
박치기 고수 찾기는 그른 거 같소.”
밤발,
“그런데 박치기 고수를
찾으려는 이유가 뭐요?”
강재기,
“말로만 들은
평양 박치기가 궁금해서 그러오.”
밤발,
“그걸 알아서 뭣에 쓰게요?”
강재기,
“그 실력을 의로운
일에 쓰면 좋지 않겠소?”
밤발,
“의로운 일?”
강재기,
“그렇소.
우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을 하고 있소.”
밤발,
“그럼,
오늘 같은 일을 말하는 거요?”
강재기,
“뭐, 그렇소.”
밤발,
“그럼 밥을 먹고
내가 사는 곳에 따라갑시다.
구경거리가 좀 있소.”
무룡은 밥을 먹고
밤발의 짐을 나눠 들고
그를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산길은 눈으로 덮여 있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언덕을 지나 계곡이 나타났고
밤발은
“조심하시오.
여기는 곰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오.
눈 올 때 만나면 낭패요.”
진평,
“지금은 동면할 시기 아니오?”
“그렇소.
그런데 가끔 얕은 잠을 자는 놈들이 있어서
깨우면 난리도 아니오.”
강재기,
“동면에서 잠을 깬 곰이라?
그거 재미겠소.”
“아니오,
눈 오는 산의 경사면에서 만나면
목숨이 간당간당이오.”
진평,
“곰에게 쉽게 당할 우리가 아니오.
호랑이라면 모를까?”
“오늘 우시장에서 활약을 보면
그럴 것 같소.
그렇지만 겨울에 산은
변수가 많고 만만치 않은 곳이오.”
그때 인기척에 놀랐는지
멧돼지 한 마리가
능선을 넘어 달려왔다.
짐을 들고 가던
강재기가 짐을 놓고 창을 던졌다.
창은 멧돼지의 심장에
곧바로 날아가 박혔다.
멧돼지는
‘캑’ 하는 짧고 굵은 소리를 내며
피를 토했다.
진평이
두 사람의 짐을 나누어지고
무룡과 강재기가
돼지를 앞뒤에서 나무를 걸어 어깨에 멨다.
너무나 쉽고 편안하게
사냥하는 모습을 본 밤발은
많이 놀란 듯했다.
얼마를 더 걸어가자
평평한 땅이 나오고
집 몇 채가 골짜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쿵, 쿵’ 소리가 나며
하늘을 덮은 나무에서
눈이 떨어져 내렸다.
무룡
“무슨 소리요?”
“겨울이라 방 안에서
머리로 기둥을 박는 소리요.”
“그럼, 여기는 박치기 연습이
일상이란 말이오?”
“그렇소.
그렇기에 피양 박치기의 명맥이
이어지는 것 아니겠소?”
“나는 아직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소.
피양 박치기가 특별한 이유가 뭐요?”
“피양 박치기는
특별한 사람이 연습하는 게 아니라
평안도 사람들 모두가
수련하고 때문일 거요.”
“연습하는 사람이 많다고
특별하긴 어렵지 않겠소?”
“맞소.
머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평안도 박치기가 유명한 이유는
특별한 움직임이오.”
“움직임?”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시에 들어가는 것 말이오.”
“불시라?”
“그렇소.
상대가 박치기가 들어온다 알았을 땐
이미 늦은 뒤일 거요.”
“그러니까 일단 몸이 빠르고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공격할 틈을 찾아낸다는 이야기겠소.”
“그렇소.”
강재기가 잡은
멧돼지 고기로 저녁을 먹었다.
밤발,
“좀 있으면 두 사람이 올 거요.
한겨울이라 제대로 보여 주진 못하지만,
헛걸음은 아닐 거요.”
진평,
“어떤 사람이오?”
“말보다
직접 보는 게 낫지 않겠소?”
“그게 더 좋을 수도 있겠소.”
진평은 그렇게 말하고
무룡을 향해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얼마 뒤,
밤발의 말대로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두꺼운 옷을 걸쳤는데도
허리와 몸통이 날렵한 사내와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있는
덩치 큰 사내였다.
밤발,
“인사하시오.
멀리서 온 무룡, 강재기, 진평이오.”
“반갑소.
나는 바람개비요, 나는 망치요.”
날렵해 보이는 사람이 바람개비고
덩치 큰 사내는 망치였다.
진평,
“우린 이골산에서 왔소?
이골산이라고 들어 봤소?”
두 사람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거긴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오.
거기서 작년에 일 등을 한 사람이
여기 우리 무룡 대장이오.”
바람개비,
“거기서 수련하는 사람이 많소?”
“산 전체가 수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소.”
“아랫지방에선
여기 평안도 사람들이
박치기를 생각하는 만큼
유명한 곳이오.”
망치,
“그럼 실력이 대단하겠소?”
진평,
“궁금하시오.
우리에게 평양 박치기를
제대로 보여 준다면
가만있지는 않을 거요.”
밤발,
“바람개비의 상대는
‘어어’하다가 머리를 잡고 뒹굴고,
망치는 박치기로 곰을 죽인 적도 있소.”
“곰을 죽였단 말이오.”
망치,
“그게 아니라
덫에 걸린 놈이
하도 몸부림치기에 들이받아 버렸더니
버둥거리다
죽은 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오.
잡아놓은 놈을 죽인 것이니
특별할 것도 없소.”
밤발,
“망치는 망치처럼 강력한 힘이 있고,
바람개비는 바람을 타듯
유연한 허리로 상
대를 제압하는 것이 최고요.
그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담비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소.”
바람개비는
현란한 몸놀림을 보여 주었고,
망치는 방안에서
박치기 한 방으로
지붕에 쌓인 눈이
모두 땅에 떨어질 정도였다.
둘은 허벅지 굵기의
기다란 송판을 줄에 매달아 놓고
가볍게 부수어버렸다.
단순히 머리만 강한 것이 아니라
실전에 엄청난 강점일 것 같았다.
강재기와 진평이
그들이 부숴버린 송판을 들고
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냉기가
방으로 들어왔다.
강재기와 진평이
번갈아 가며 나무를 던졌고
무룡이 팔을 몇 번 흔들었다.
세 사람은 밖으로 나가
깨진 송판을 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을 피해서 날린 검이
모조리 적중했기 때문이다.
방으로 들어온 그들은
남은 송판 세 개를 놓고
손날로 격파하는
강재기를 보고 또 놀랐다.
망치,
“몰라뵈었소.”
바람개비,
“대단하오, 괜찮다면
나랑 한번 붙어보면 어떻겠소.”
“좋소.”
강재기가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바람개비의 움직임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처음에는 강재기도
바람개비의 공격을
몇 번 허용하는 것 같더니
대응법을 곧 찾아냈다.
그리고 기어코 항복을 받아냈다.
바람개비, 망치
“우리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소.”
강재기,
“아니오.
처음에 나를 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피투성이가 되었을 거요.
고맙소”
망치,
“우린 처음으로
감탄할 실력자를 만나게 되었소.
형님으로 모시겠소.”
바람개비,
“나도 마찬가지요.”
유재기,
“대장, 우리와 같이 나쁜 놈들을
혼내줄 재목인 것 같소.”
망치,
“좋은 일을 한다면
우리 둘은 언제든 따르겠소.”
바람개비도 고개를 끄덕였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일제히
시선이 무룡을 쳐다봤다.
“좋소.
두 사람 아니 밤발까지
세 사람을
우리 식구로 받아들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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