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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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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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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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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DUMMY

마제시절 천마와의 생사투에서 군황이 비등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흑살마장덕분이었다.

흑살마장에 타인의 내공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지 않았다면 끝을 모르는 천마의 내공에 압살당했을 것이다.

천마군림이란 대지에서 기를 끌어모으는 토납법의 원류이자 그 으뜸이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화산검은 거친 숨을 뱉으며 검을 사막의 모래 속에 박아 넣었다.

검을 지팡이 삼아 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의 상태는 엉망이다.

칼바람을 맞은 듯 화산검의 신체와 옷이 여기 저기 갈라져 붉은 피가 베어 나왔다.


“제법 잘 버티는구나. 검에서 나는 매화향이 화산의 떼놈 같은데 어째 사용하는 무공이 괴상하구나.”


천마의 칭찬에 화산검 명진은 피를 한 번 토하고는 웃고 말았다.

제법 잘 버텼다니. 고작 열 수다.

열 수만에 자신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천마는 멀쩡히 하늘에 떠 있었다.

천외천의 고수. 

천마는 그의 스승인 무량검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절대적 존재였다.


“그는 무량검이라는 사람의 제자예요.”


옆에서 조용히 명진이 당하는 것만 보고 있던 백연이 말했다.


“무량검? 무량검의 제자라고?”


명진은 신기한 것을 보는 듯 자신을 보는 천마를 보며 죽음을 각오했다.

천마군림의 진짜 모습을 본 자 살아 남지 못한다는 건 강호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과연 천하의 둘도 없는 마공. 이 화산검의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소.”


명진은 비틀거리며 겨우 천마에게 포권을 해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는 다시 거꾸로 꽂힌 검을 붙들고 싸늘하게 자신을 보는 백연을 아련히 바라봤다.


“당신을 만나 즐거웠소. 연소저. 그대에겐 그저 약하디약한 졸장부의 마지막 말이겠으나 많이 사랑했소.”


명진은 백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천마를 똑바로 바라봤다.


“화산의 매화검수는 적을 눈앞에 두고 등을 보이지 않는 법.”


명진은 목을 길게 빼 천마에게 보였다.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기개에 천마조차 더 이상 그에게 욕을 하지 않았다.


“스승님! 청이 있습니다!”


그런데 명진의 목이 천마의 수도에 날아가기 직전에 흑기린이 달려와 그사이에 엎드렸다.


“뭐냐. 흑기린. 지금 본좌의 행동을 막은 것이냐?”


흑기린은 생애 처음으로 스승인 천마의 앞을 막았다.

어찌나 겁이 나는지 엎드린 그의 등이 덜덜덜 떨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청입니다. 저는 당신이 교주로서 내리신 소교주의 신분을 스스로 반납했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격? 자아격?”


천마는 기가 막혀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흑기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능공허도로 둥둥 뜬 천마가 턱을 괴더니 생각에 잠겼다.


“좋다. 어릴 때부터 나를 보필한 정을 봐서 들어는 보마.”


천마가 말을 허하자 흑기린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이자의 스승은 무량검. 본인도 화산제일검이라 불리는 고수입니다. 스승님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이나 화산에는 큰 전력일 터. 이 자의 목숨을 빌미로 화산에 거래를 요구한다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흑기린!”


명진은 차라리 죽겠다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홱 뒤돌아 자신을 바라보는 흑기린의 표정이 처절해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닥치게! 그 입 닥쳐!”


흑기린이 명진에게 해 줄 말은 그게 다였다.

천마는 흑기린과 명진을 번갈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화산 따위에게 거래? 한 달에 본교로 들어오는 재물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네가 그런 말을 해? 그리고 그자가 화산에 그리 큰 전력이라면 이 자리에서 목을 베는 게 교에 이득이겠구나.”


천마의 말에 흑기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정이라도 들었나 보죠.”


연이 끼어들어 천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정이 들어?”

“둘 다 나를 차지 하겠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비무를 했고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운 적도 있다 하니.”


연의 시선이 머리를 조아린 흑기린에게 갔다.


“그렇죠?”

“이 자와 등을 맞대고 싸운 건 폭주해 무림 공적이 되기 일보 직전이던 소교주님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연의 물음에 흑기린은 이를 악물었다가 대답했다.


“누가 구해 달라고 했나요? 당신들이 나서지 않았어도 큰 오라버니가 해결했을 거예요.”


연의 말이 맞아 흑기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친우라도 되었다 주장하는 것이냐?”


천마가 물었지만 흑기린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렇다 했다간 여기서 둘 다 죽을 것이다.


“이래서 살성이 아닌 자를 제자로 들이는 게 아니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너는 이렇지 않겠지?”


실망한 표정으로 흑기린을 보던 천마가 연에게 고개를 돌려 묻자 그녀는 천마를 쏘아보다 딱 한 번 고개를 까딱했다.

천인공노할 행동이었으나 그조차 천마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내 목표는 석백성에 있는 성주의 아들이자 내 오빠인 백청기를 내 발아래 무릎 꿇리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사사로운 정 따위 몇 번이라도 살해하겠어요.”


연의 선언에 천마가 하늘을 향해 크게 광소했다.

하필 육합전성으로 웃어 내공이 빈약한 자들이 쓰러져 오공에서 피를 쏟아냈지만 천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좋다. 좋아. 새 소교주의 마음가짐이 실로 나를 만족시키는구나. 좋다. 좋아. 기분이다. 저 도둑놈과 아는 사이라 했으니 처분도 네게 맡기마.”


천마는 장포를 한번 휘날리고는 자신의 가마로 날아 돌아갔다.

사막의 황색 모래 위에 너덜너덜해진 화산검과 납작 엎드린 흑기린, 냉담한 백연만이 남았다.

멀리서 오는 마교의 행렬이 오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안 그러면 도착한 마교의 고수들이 소교주를 납치한 명진을 갈기갈기 찢어 젓갈로 담아 버릴 것이다.


“백검문의 아래에 만들어진.”


연이 처분만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입을 뗐다.


“홍살문 아래 연무장에서 당신들과 나눈 비무는 가짜였나요?”


연은 그게 궁금했다.

천마의 공격을 받아낼 정도의 실력자인 명진이 자신에게 매일 졌다.

흑기린도 마찬가지다.

천마의 제자로 천마군림을 익힌 자가 그 편린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연은 그게 분했다.

여자라고 봐준 것인가 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붉은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져 활활 타올랐다.


“내가 소교주 그대에게 진 것은 내 눈과 마음이 사랑에 멀어 검이 무뎌진 까닭이지 그대를 얕잡아 본 기억은 없소.”


명진이 먼저 대답했다.

흑기린도 고개를 들었다.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게 패인이지. 소교주를 놀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모든 게 내 매력 때문이다?”

“내가 왜 마교의 행렬로 숨어 들어 그대를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거요?”


명진의 마지막 말에 연의 화난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마교의 행렬을 뒤따라올 리 없다.

흑기린도 소교주를 상징하는 흑룡반지를 넘길 때 잠시 입을 맞춰 날리지 않았던가.


“좋아요. 두 분 말을 믿어보죠. 두 분 다 본녀가 새롭게 익힐 천마군림의 비무 상대로서 살려는 주겠어요. 다만 다음에 사랑이 뭐니 떠들며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는 내가 직접 명을 내려 목을 치겠으니 명심하세요.”


살려주겠다는 말에 흑기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잘 쉬어지지 않던 호흡이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다.


“존명.”

“알겠소. 소저 말대로 하리다.”


흑기린이 일어나 예를 표하고 심한 부상을 입은 명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힘없이 대답했다. 


***


군황은 왜곡왕 고독이 남긴 금괴를 군기를 통해 회수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백검문이 자리 잡은 산 위 폭포 옆에 지어질 학당의 규모는 어지간한 문파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크다.

올린 주춧돌만 수십 개에 달하니 모든 건물이 올라가면 천년소림이나 곤륜의 수많은 문파에 비견될 터였다.


“저건 저쪽으로 옮겨야 할 거 같은데? 저기에 통나무가 모자란다고 하더라고.”


군기가 방향을 가리키자 공사판 한가운데 떠 있던 군황이 자재를 그쪽으로 날렸다.

절대 고수의 손을 빌리니 공사에 드는 비용이 마구 깎여 할인되는 걸 보며 군기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문주님. 저건 저쪽으로.”

“이건 이쪽으로.”


비서인 모란과 작약도 신이나 군황에게 이것저것 부탁했다.


“내 제자를 당장 내놔라!!! 이 호랑말코 같은 놈들아!”


고성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어찌나 큰지 귀가 아파 모든 사람이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물론 군황은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만 봤지 귀를 막진 않았다.


“손님이 온 모양이군. 누군지 짐작이 간다. 잠깐 내려갔다 오마.”


군황이 둥둥 떠 백검문의 대문으로 내려갔다.

문 앞에는 태극문양이 박힌 하얀 도복을 입은 키 작은 노인이 하나 있다.

노인의 옆에는 웃는 상의 도인들이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가슴에 매화문양이 박혀 있어 출신지를 짐작게 했다.


“문주님.”

“문주님.”


문주인 군황의 등장에 백검문의 대문을 지키던 문도들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군황은 문도들에게 손을 들어 그들의 고개를 들게 하고는 노인을 보고 웃었다.

옆에 있는 두 명의 매화검수보다 노인이 반가웠다.

무량검. 이 늙은 노인네가 아직도 우화등선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왜 나를 보고 쳐 웃는 것이냐. 망할 놈아. 목 아프게 위에 있지 말고 쳐 내려오지 그러냐?”


걸걸한 저 입도 그대로다.

그러고 보니 제자인 화산검은 어찌 그리 예의가 바른지 모르겠다.

그 스승에 그 제자로 그 나물에 그 밥일진대 말이다.


“제자 교육은 잘했더군.”

“어쭈? 반말을 해?”


기분 좋게 건넨 군황의 칭찬에 무량검 안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쳐 내려오라고!”


남들 반만 한 노인의 몸이 빙글빙글 돌더니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뛰어올라 기습적으로 검을 뽑아 가로로 휘둘렀다.

보통 사용하는 검보다 반 치가 짧은 소검에서 서슬 퍼런 검기가 뿜어져 나와 군황의 목을 날려버리려 했다.

절기를 맞은 군황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검의 검기를 무효화시키고 소검을 꽉 잡아 버렸다.


“어쭈?”


군황의 손에 매달린 꼴이 된 무량검의 눈이 빛났다.


“소문대로 좀 치는 모양인데 어디 이것도 받아낼 수 있나 보자.”


무량검이 군황의 손에 잡힌 소검에 내공을 주입해 강제로 회수한 후 공중에서 매화십이사수를 펼쳤다.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같이 극한의 변초를 간직한 검초가 꽃향기를 내며 쇄도했다.

군황은 그대로 몸을 띄운 채 정확히 살초만 골라내 피하고 환상인 허초는 내버려두었다.

매화검법을 극성까지 펼쳤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군황의 모습을 보고 무량검을 보필하던 매화검수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허. 네놈 나이가 몇이냐? 혹시 면상과는 전혀 다른 나이 아니냐?”


검법을 모두 펼치고 땅에 가볍게 착지한 무량검도 예사롭지 않은 군황의 무공에 감탄했다.


“반로환동을 했냐고 묻는 거라면 하지 않았습니다.”


무량검이 반말을 기분 나빠했기에 군황은 백검문의 문주로서 행동하기로 했다.

문을 강제로 박차고 들어왔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냥 문 앞에서 소리만 질렀을 뿐이다.

그러니 빙의된 백청기의 관점에서 보면 까마득한 무림선배에게 존대를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수준이라고?”

“기연을 좀 얻어.”

“그게 기연이면 강호, 세상 통틀어 기연을 얻은 놈은 없다.”

“예쁘게 봐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군요. 무량검님.”

“날 알아?”

“옆에 매화검수를 끼고 나타나셨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군황의 말에 무량검은 두 명의 매화검수를 번갈아 봤다.


“망할 놈들.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굳이 붙여주더군. 원로원 놈들 노망이 든 거야. 내게 해를 가할 자가 무림에 몇이나 된다고.”

“무량검에게 해를 가할 자라. 저도 궁금하군요.”

“궁금해? 하기야 어리니 모를 수도 있겠군. 죄다 서쪽에 몰려 있지. 곤륜의 태극검제. 백만대산의 천마. 백백교의 마제. 아, 이놈은 죽었군. 그리고 소림의 신승. 이놈들 정도 되어야 나와 동수를 이룰 것이다. 근데 지금 보니까...”


무량검이 군황을 보며 말을 흐렸다.


“아니, 됐고. 나는 이런 잡담이나 하러 온 게 아니다.”


키 작은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군황은 천천히 공중에 뜬 몸을 움직여 땅에 내려섰다.


“그럼 본문을 방문하신 목적이 무엇인지요?”

“아까 들었지 않느냐. 내 제자를 내놔라.”

“화산검 말입니까?”

“아는군. 하기야 그놈이 보낸 서찰에 여기 처자와 정분났다는 내용만 한가득하니 그럴 만하지. 어디다 숨겼나. 내놔라!”

“무림맹도 실종되었다 보고한 걸 왜 저에게 내놓으라 하십니까. 뭐, 짐작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군황은 말해 줄 듯 말 듯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아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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