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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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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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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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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DUMMY

곤륜은 수많은 도인들이 세운 일인전승 문파가 모인 곳이다.

그들은 곤륜산의 자리 잡은 수천의 동굴 하나하나마다 현판을 걸었다.

그러니 관에서 상황을 파악하겠다 나와도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렵고 생기고 사라지는 일이 잦아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렇듯 베일에 싸인 곤륜의 도사 중 가장 유명한 이를 꼽는다면 당연히 태극검제일 것이다.

왜냐면 그는 곤륜에서 수행하는 도사 중 유일하게 대전쟁에 참가한 사람이라 그 실체를 증명해 줄 많은 증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총관님. 시원한 냉차를 들라 할까요?”


모란의 비음 섞인 애교에 군기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작약의 손에 냉차가 든 긴 잔이 건네지고 그걸 다시 건네받아 쭉 들이킨다.


“카! 이거지!”


군기는 오랜만에 백검문의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껏 격무에 시달리느라 쉬지 못해서인지 침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긴 의자에 누워 있는 이 시간이 정말 꿀 같았다.

양옆으로 아름다운 비서들이 부쳐주는 부채질을 받으면서 군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이 말이야. 내 속을 쥐어짰다가 살려줬다가 하는 이유가 뭘까?”


그러다 문득 큰 형인 백청기가 하는 짓이 생각나 속이 아파졌다.

그의 형은 자꾸 백검문과 석백성의 창고를 바닥냈다가 채우기를 반복했다.

지금도 그렇다.

고독인지 망독인지가 남긴 금괴를 얻어와서 자신을 안심시키더니.

천하학관을 지으며 반절을 날리고 학생들에게 나눠줄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절반을 가져갔다.

사학재단을 만들 거라나 뭐라나.


“화산이고 마교고 다들 도와주지 않았으면 우린 지금 파산했을 거야.”

“하지만 새로 세운 재단을 총관님이 관리하니 빈털터리는 아니지 않나요?”

“얘. 어디 그게 총관님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니. 다 천하학관에서 먹고 잘 학생들에게 들어갈 돈인데.”


작약의 말에 모란이 핀잔을 줬다.

그래 모란의 말이 맞다.


“후. 얘들아. 지금은 그냥 쉬자. 재단장인지 뭔지 아직 취임 안 했어. 한다고 형한테 말도 안했고. 장학금은 그렇다고 쳐. 선생들 월급에 애들 먹일 요리사 고용에. 들여야 할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그 돈은 어디서 구하지?”


그냥 쉬자면서 한 번 말을 꺼내니 끝이 없다.

군기는 피눈물이 나올 것 같은 눈물샘을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불쌍한 우리 총관님.”

“문주님도 너무하시지.”


모란과 작약의 위로와 풍만한 뭔가에 둘러싸여 다시 행복해진 군기의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총관님! 총관님! 큰일 났습니다!”


백검문도 중 하나가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아. 형님. 쉬고 있는데. 너무하네. 증말.”


백검문도의 대부분은 군기가 어릴 때 연을 맺은 도박장의 사내들이다.

그래서 군기는 그들을 대할 때 항상 살갑게 굴려고 애썼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백총관!”


백검문도가 다시 경고하는데 멀리서 아름다운 악기의 음색이 들려왔다.

들어보니 소리가 현악기다.


“응? 악사가 왔나? 이런 산중에?”


백검문은 석백성보다 높은 지대에 세워져 있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저번처럼 잔치가 열리지 않는 이상 악사가 올라올 일이 없는 곳이었다. 


“산 아래 모두가!”


뭐라고 말하려던 백검문도가 갑자기 눈이 뒤집히더니 쓰러졌다.

놀란 모란과 작약이 군기의 옆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봤다.


“커어어...”

“총관님 이 대머리 아저씨. 자는데요?”

“어머. 진짜 잠들었잖아?


모란이 민머리를 찰싹찰싹 치고 작약이 흔들어도 봤지만 백검문도는 깨어날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문도의 상태를 확인하러 군기가 일어선 순간 모란과 작약도 쓰러져 버렸다.

누가 목덜미를 치기라도 한 것처럼 기절하듯 쓰러지는 두 여자를 보고 군기가 얼른 뛰어갔다.


“모란! 작약!”


놀란 군기가 백검문도위에 쓰러진 두 여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둘 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멀쩡히 활동하던 세 사람이 갑자기 동시에 잠들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군기는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는 현악기의 소리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형에게 알려야 해!”


뒤돌아 경공을 쓰려는 데 군기의 눈앞이 컴컴해졌다.

잠시 후 군기를 포함해 잠든 네 사람의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각자 검, 망치, 낚싯대, 비파를 든 사람들이었는데 행색이 초라하고 빈약해 사당패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굴 보이기 부끄럽다고 죄다 잠재워버리는 것 좀 자제하면 안 되겠나?”


낚싯대를 어깨에 멘 자가 말했다.

비파를 튕기던 면사 쓴 여자는 답이 없고 오히려 연주 속도를 올렸다.

그러자 군기를 포함한 잠든 이들이 뱀이 피리연주에 반응하듯 꿈틀거리더니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하고 반듯이 누웠다.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짓는 건 덤이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비파선녀.”


낚싯대 사내가 툴툴거리자 검을 찬 사내가 웃었다.


“그만두게. 마보간. 선녀께서 우리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있었다면 망망대해에서 선원들이 죄다 잠들어 떠돌 때 비파연주는 멈췄을 거네.”

“애초에 이 심각한 대인기피증이 있는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네.”


검든 사내의 말에 커다란 망치를 등에 멘 자가 대꾸했다.


“자자. 미우나 고우나 우린 다 곤륜의 도인들이 아닌가. 서로 이해하고 또 잘 지내야지. 자 가세. 비파선녀가 연주를 멈추려면 우리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할 것 아닌가.”


사내는 저 위에 보이는 천하학관을 보며 동료들을 다독였다.

말과는 달리 네 사람은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천천히 천하학관으로 가는 산길로 향했다.


“손님이 오는군.”


조각을 하던 무량검이 멀리서 들려오는 비파소리를 듣고 말했다.

군황도 그 옆에서 나무로 사람을 조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할 일이 없어 무량검의 옆에 붙어 조각하는 게 군황의 취미가 되었다.


“손님은 손님이고. 자네가 계속해서 조각하는 그 사람은 정말로 실존하는 사람인가?”


무량검의 물음에 군황은 집중해 입을 다문 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놈. 조각의 인물이 참으로 아름다워 물은 것인데 입 밖으로 내면 어디가 부러지나?”

“한때 소중한 이였지요.”

“소중한 이? 죽었나?”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 때인가? 저자에 대한 맘이 변했나 보군.”


무량검이 조각의 인물을 보며 말했다.

군황은 답하지 않았다.

변한 게 제 스승의 배에 칼을 박아 넣은 제자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의 마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손님께서 꽤 거친 사람들인가 봅니다.”


군황은 점점 커지는 비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무량검이 일어서 소검을 뽑았다.

천하학관을 열심히 짖고 있는 목수와 대장장이, 마교와 화산의 인물들이 위험했다.


“위에서 떨어지는 자들은 제가 해결하지요.”

“나머지를 맡지.” 


허공 답보로, 하늘로 뛰어 올라간 군황은 대들보와 지붕 따위에서 작업을 하다 잠에 빠져 떨어지는 자들을 가볍게 기로 받쳐냈다.

내공의 배에 탄 잠든 이들이 깃털처럼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번개같이 뛰어간 무량검은 자재를 나르거나 위험한 연장으로 쓰러지는 이들을 검풍으로 날려버렸다.

거친 손속이었지만 그래도 튀어나온 못 위로 머리가 떨어지는 것보단 나았다.


“어떤 망할 새끼가 사술을 부리느냐!”


허공에 둥둥 뜬 군황의 옆으로 무량검이 날아가며 소리를 질렀다.

군황은 노인네 성격하고는 하고 생각하다 무량검이 없었으면 자신이 소리를 질렀겠지하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이 무공은 생각 없는 무공이다.

들은 자를 죄다 잠재우는 무공이라니.

심성이 어떻게 꼬여야 이런 식으로 무공이 발전하나 싶었다.


“망할 새끼라니. 노인장. 거 말이 심한 거 아니오?”


낚싯바늘이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량검을 향해 날아왔다.

무량검의 소검이 바늘을 튕겨내자 쩡하고 나서는 안 될 소리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그마한 낚싯대가 쇠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이놈이?”


무량검의 눈이 천하학관의 입구를 막 지나친 네 사람에게 갔다.


“이놈이는 한 명을 지칭하는 말이니 이놈들이겠군.”


군황은 나란히 걸어 다가오는 방문자들에게 천천히 내려가며 말했다.


“둘 중 누가 천하학관의 주인이오?”


등에서 커다란 망치를 빼 든 자가 땅에 망치머리를 쾅 하고 박아 넣으며 물었다.


“나선동자. 그렇게 행동하면 꼭 우리가 여길 습격하러 온 것 같지 않나. 우린 그런 게 아니라···?”


전혀 동자처럼 보이지 않는 우락부락한 사내에게 연신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던 검든 이가 꼬장꼬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무량검을 보더니 표정이 변했다.


“무량검. 정말 여기에 있군. 설마 설마 했는데.”


검든 이의 입에서 무량검이라는 말이 나오자 마보간, 비파선녀, 나선동자의 눈이 무량검에게 향했다.


“저자가 무량검인가?”

“듣던 대로 성격 나쁘게 생겼군.”

“······.”


무량검은 자신을 알아본 검든 이를 눈살을 찌푸리며 봤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났다.

게다가 자신에게 반말을 지껄이기에는 애초에 나이가 안 맞다.

반로환동을 한 거면 모를까.


“이거 태극검제께서 학관을 방문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군황의 입에서 검든 자의 정체가 나오고 나서야 무량검은 온몸을 파고드는 더러운 기분의 정체를 알아챘다.


“검제라고? 저게?”


믿고 싶지 않은지 젊은이처럼 보이는 검제의 모습을 무량검이 몇 번이나 훑었다.

군황은 전장에서 두어 번 만난 적 있는 상대였기에 바로 알아봤다.

솔이 달린 저 낡은 검하며 항상 웃고 있는 낯짝 하며 나이만 바뀌었을 뿐 기도도 그대로다.

허허실실. 그게 태극검제다.


“무량검. 그 작달막한 키는 여전하군.”

“뭐? 이 새끼가?”


검제의 실눈이 웃으며 도발하자 무량검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런데 말을 마친 검제의 자세가 일순하자 날뛰는 망아지 같던 무량검의 기세도 차분하게 변했다.


“문주. 검제의 저 자세를 조심해야 한다.”


소검으로 검제를 겨눈 무량검이 군황에게 경고했다.

몸을 극단적으로 앞으로 숙이고 검을 뒤로 감춘 저 자세는 거합의 자세다.


“알고 있습니다.”


군황이 작은 눈에서 천둥이 쏘아질 것 같은 검제를 보며 대답했다.

태극검제란 별호는 검제가 태극과 관련 있는 무공을 써 붙은 게 아니다.

그 별호는 음과 양을 무시하고 그사이를 절단한다고 해 붙은 별호이다.

한 마디로 세상을 구성하는 음양을 검으로 초월한 존재란 말이다.


“이봐. 검제. 설마 여기서 검을 휘두를 셈은 아니겠지?”


함께 온 마보간이 자세를 잡은 검제에게서 물러나며 물었다.

검제는 대답 대신 자세를 더 낮췄다.

검제의 몸 주변에서 푸른 전기가 흐르더니 파직 소리를 내며 지면을 태웠다.


“온다.”


무량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검제의 검이 무량검을 습격했다.

공간을 자르고 나타난 검제가 무량검의 목을 노렸다.

일도양단을 완벽히 표현한 검을 무량검이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했다.


카앙!


무량검의 소검과 검제의 검이 서로를 튕겨내고 그 충격에 원래 목표였던 무량검을 놓친 검제의 뒤틀린 검로가 바로 옆에 서 있던 군황을 노렸다.


“이런!”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처럼 움직이던 검제가 순간 당황했지만 공격을 거두긴 늦었다.

군황은 푸른 번개와 함께 떨어지는 검제의 검을 보고 처음엔 조각칼을 들고 막으려 했다.

전장에서 만났던 검제의 수준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그때와 변한 것 없이 단순하지만 더 매섭고 빠르고 강했다.

조각칼을 저기에 대면 죽을 것이다.


“갈!”


군황은 노성을 지르고는 본능적으로 흑살마장을 펼쳤다.

황금색 장법이 번개에 휩싸인 거합과 맞부딪쳐 소멸했다.

그 잠깐의 순간, 태극검제는 흑살마장에 본인이 내뿜은 번개의 기를 흡수당했다.

몸속에서 뭔가가 강제로 쑥 빨려 들어가는 이 더러운 기분. 

검제의 실눈이 눈동자가 보일 만큼 커졌다.


“마제?”


검집안으로 검을 회수한 검제가 꺼낸 말에 검제를 치려던 무량검의 검이 우뚝 멈췄다.


“뭐? 뭐라고? 누구라고?”


놀란 무량검은 이곳에서 군황과 함께하며 계속 느끼던 기시감의 정체를 이제야 눈치챘다.

젊은 놈이 어째 전쟁이고 자신이고 죄다 잘 알더니 이유가 있었다.


“이런. 이렇게 들킬 줄은 몰랐는데.”


어이없이 정체가 들통난 군황은 둘을 보며 그냥 웃고 말았다.

비파선녀의 현란한 음공에 다른 이들이 잠든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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