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 사도세자의 부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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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란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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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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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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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둑고양이! (1)

DUMMY




거목이 쓰러졌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빙과 31에 이은 369 게임에서 내가 5연승을 거두고, 계속해서 세자의 잔을 채워 주던 술주전자가 마침내 텅 비어버린 순간의 일이었다.


“살았다······.”


코를 골며 쓰러져 있는 세자에게 이불을 덮어주자, 승리감에 젖은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가득했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온몸이 흐물흐물 해지는 느낌이었다.


‘세자의 주량은 열 잔 정도구나.’


방금 마신 술의 도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현대에서 마시던 참한 이슬보다는 확실히 독했다.


‘그렇게 보면 술을 못 마시는 편도 아니란 말이지.’


나는 곤히 잠든 세자 놈을 잠시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오늘 하루는 무사히 넘긴 셈이었다. 이제 문 앞에서 합궁이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상궁에게 ‘세자 저하께서 피곤하신지 먼저 주무시더라고요~’라고 보고할 차례였다.


“나를 혼자 두지 말아다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자그마한 중얼거림이 방안을 메웠다.


“히이이익!”


나는 깜짝 놀라 다시 세자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안 잤어?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야, 잠꼬대인가?”


돌아본 세자는 여전히 입을 벌린 채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꼬대치고는 참 공교로운 내용이었지만, 딱히 눈을 뜨려는 듯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세자를 잠시 내려다보던 나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드르륵, 장지문을 열자, 문 바로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까의 상궁이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저하······ 가 아니네, 뭐야?”


동궁의 모든 지밀상궁들이 몰려온 듯, 복도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네 명의 상궁들이 더 앉아 있었다.


무슨 구경이라도 났나, 세자와의 합궁이 주는 무게감에 왠지 모르게 더부룩해진 나는, 얌전히 방문을 닫고 방금 있었던 일을 솔직히 보고했다.


“세자 저하께서 피곤하신지 먼저 주무시더라고요.”

“벌써? 그럼······ 어, 합궁은?”

“안 했죠. 당연히.”


상궁은 그저 “엥?” 하는 소리를 내며 멀뚱하게 눈을 끔뻑거릴 뿐이었다.




※※




어젯밤, 최씨의 방을 세자에게 내어준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전각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도 잠에서 깬 세자가 한밤중에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기에, 나는 정조를 지킨 채 조선에서의 첫 번째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삼전三殿께 문안 인사는 내일부터 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이른 아침, 잠기운에 아직 몽롱한 채로 방에 앉아 있자니, 어제 나를 질질 끌고 다녔던 상궁이 불쑥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을 건넸다.

그녀가 갑자기 높임말을 쓰는 걸 보니, 새벽 사이 내 후궁으로서의 품계가 내려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이 시대의 삼전이라면, 대왕대비 인원왕후, 중전 정성왕후, 그리고 왕 영조일 터.

각각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될 분들인데, 하루쯤 문안 인사를 빼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18세기 조선은 ‘유교 탈레반’이라는 표현으로도 다 담아내기 힘들 만큼 지엄한 성리학의 나라일 테니까 말이다.


“네, 오늘 하루는 새 소훈의 몸을 편히 쉬게 하라는 대비마마의 하교가 있었습니다.”


상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마마님께서는 힘든 일도 없으셨겠지만 말입니다.” 라며 굳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젯밤에도 그랬지만, 내가 세자의 승은을 거절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지 영 뚱한 기색이 역력했다.


“감사한 일이네요. 그보다 그······ 김 상궁?”


상궁의 이름은 여전히 모르는 터라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어젯밤 세자가 김 상궁이라는 이름을 언급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상궁이 슬쩍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예.”


다행히 김 상궁이 맞긴 한 모양이다.


“그럼, 오늘 따로 해야 할 일은 없나요?”

“네,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물론 어제처럼 아무 말 없이 동궁을 빠져나가시면 안 됩니다만.”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상궁의 눈빛은 장난꾸러기 아이를 대하듯 날카로웠다.


세자의 후궁에게도 이런 태도라면, 역시 최씨와 김 상궁은 꽤나 가까운 사이였던 걸까?

그렇다면 최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김 상궁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떤 사람 같나요?”

“······네?”


김 상궁의 얼굴이 갑자기 뭔 소리를 하냐는 듯 일그러졌다.


역시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었나.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 왜, 저는 이제 후궁이 되었잖아요? 세자 저하께서 저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서요.”

“다시 말해 주관적인 평가가 아닌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네, 그런 셈이죠.”


상궁은 그제야 표정을 약간 누그러뜨렸다. 잠시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팔짱을 끼고 입을 열었다.


“조심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말괄량이에 윗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으신 분이죠.”

“······제가요?”

“뭐가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최씨가 그런 성격이었다고?

나는 저 어린 세자가 마음을 열 만큼 따듯하고 포근한······ 말하자면 엄마 같은 인품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지금의 세자 나이 때는 연상의 여인에게 막연한 동경심 같은 걸 품고 있었으니까.


“소훈 마마님께서 제 당혜 안에 개구리알을 넣어 두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참, 세월 빠르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상궁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시길 바랍니다.”


다소 진부한 충고였지만, 목소리에는 마치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 같은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듣기로는 궁녀들은 상궁에게서 일대일 교육을 받는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녀가 바로 최씨의 스승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


상궁이 다시 한번 나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모습에, 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뇨. 충분히 들었어요.”

“그럼, 조반을 들이라 하겠습니다.”


상궁은 내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나 혼자 남겨진 방안에는 다시금 적막만이 맴돌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멍하니 앉아 아침상을 기다리던 중, 문득 머릿속에 어젯밤 세자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나와 화완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던 그 약속 말이다.


‘세자가 아직 그걸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어젯밤 완전히 꽐라가 되어버린 세자가 아침부터 무슨 실수라도 저지르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방금 상궁이 별말을 안 하던 걸 봐선 큰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내가 술을 잔뜩 먹인 탓에 세자가 영조에게 혼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였다.


‘일단 세자를 한번 만나봐야겠어. 화완에 대해서도 물어볼 겸.’


마음속으로 그렇게 결심하자마자, 이내 문이 열리고 나인 두 명이 양손으로 커다란 밥상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마치 내가 후궁이 된 것을 축하라도 하는 듯, 나 혼자 먹기에는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진수성찬이었다.





※※




시간이 흘러 사시巳時가 되었다. 나는 조참을 막 끝내고 처소로 돌아왔다는 세자를 만나기 위해 그의 공부방인 시민당時敏堂으로 향했다.


“어젯밤 일은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세자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갑작스럽게 사과를 건넸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쪼르르 다가오면서.

얼떨떨해진 기분으로 “네?” 하고 되묻자, 세자는 마치 후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첫날밤부터 부인을 홀로 두고 술에 취해 먼저 잠들어 버리다니······ 너를 볼 면목이 없다.”


세자의 목소리엔 한숨이 턱턱 묻어 나왔다. 술 때문에 기억이 흐릿해지기라도 했는지, 내가 술을 먹인 것을 탓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필름이 끊긴 건가? 일단은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하께서도 필시 피곤하셨겠지요.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숙취는요?”

“그거라면 걱정 말거라. 나는 숙취가 없는 편이거든.”


자신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세자. 그 분위기를 보니, 과음한 걸 들켜 영조에게 꾸중을 들은 듯한 기색도 아니었다.

이어 그는 잠시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의가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당의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후궁의 옷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잠깐만요, 뭘 이렇게 많이 입히려고 하시는 거예요?”

“이제 시작인데요? 이 위로 대슘치마에 남색대란치마, 자적색대란치마를 입으시고, 당의 아래에도 삼회장저고리를 입으셔야 해요.”

“그게 뭔······ 그걸 다 입으면 굴러다니는 거 아니에요?”

“하하, 농담도 잘하시네요. 그런데 마마님께선 왜 눈을 감고 계시는 거예요?”

“······그냥요.”


옷을 입는 것조차 엄청난 고역이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속에 껴입은 총 여덟 겹의 옷들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황송합니다, 저하.”

“황송은 무슨, 그래서 네가 이까진 어인 일이더냐.”


다시 자리로 돌아간 세자는 앉으라는 듯 내게 의자를 권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저와 옹주 자가들 이야기를 하셨던 것 기억나십니까?”

“옹주?”


술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세자는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 화완이 얘기를 했었지.”


그래도 이내 기억이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깜빡 잊고 있었구나. 지금 바로 자리를 마련해 주마.”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그래, 화완이는 벌써 궁에 도착해서 인사를 하고 갔거든.”


벌써? 생각보다 빨리 오고 가나 보네.


“그리고 그 아이가 수연이 네 소식도 이미 들은 것 같더구나.”

“제 소식을요?”

“그래, 나인이 미리 귀띔이라도 해 줬겠지. 너를 찾는다기에 지금은 처소에서 쉬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세자는 ‘내가 뭐랬어’라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새언니가 된 너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걸 게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눈치가 빠른 아이라고 말이야.”


뭐, 눈치가 정말 빨랐다면, 훗날 정조에게 까불다가 골로 가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녀도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역시 돌을 던졌다는 건 어린아이의 장난이었나 보다. 그 나이대 아이들은 가끔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괴롭히기도 하니까.


“여하간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거라, 내가 지금 바로 그 아이를 데려올 테니.”

“저하께서 직접 가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쯤이면 어머니와 함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분 얼굴도 보고 올 겸 해서 말이지.”


영빈이 아니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건가.

하긴 영조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녀석이니까, 법적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그리 중요하진 않을지 모르겠다. 최씨 앞에서라면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을 테고.


“그럼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금방 돌아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혜경궁은 옹주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던데, 그래서인진 몰라도 세자는 꽤나 들뜬 기색이었다.

그 나름대로는 부인이 누이들과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다녀오십시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세자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 후 방 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를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는 지루함이 밀려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에 놓인 책장으로 향했다.


‘삼국지 같은 건 없으려나.’


삼국지는 이 시대에도 베스트셀러였다.

물론 세자의 공부방에 소설 따위가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도세자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오라버니-! 최가 녀석이 처소에 없다는데 어찌 된 일인가요?!”


문밖에서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그리고 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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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조(이산 아님)를 지켜라! (1) +1 24.05.12 91 4 13쪽
5 전생하니 시아버지가 게장대왕 (2) +1 24.05.11 104 4 14쪽
4 전생하니 시아버지가 게장대왕 (1) +1 24.05.10 112 5 13쪽
3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3 24.05.09 128 4 16쪽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1) +2 24.05.08 148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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