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창 쓰는 천재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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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말론
작품등록일 :
2024.05.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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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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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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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량을 채우십시오

DUMMY

투수가 문제를 내면 타자는 정답을 찾아간다.


변하지 않는 야구의 이치며 이는 인생 역시 비슷하다.


운명이란 투수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변화구를 던지며 삶을 방해한다.


운명은 내게 3개의 변화구를 던졌다.


1구.


[1보] 불광고 강속구 투수 최이강, 전체 1순위 지명.


당시 나는 고교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다.


지명됐을 때만해도 내 최전성기가 고등학교 시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탄탄대로의 앞날이 기다릴 것만 같던 데뷔 시즌.


차세대 국대 1선발이란 별명이 무색하게도 내게 찾아온 건 화려한 데뷔가 아닌 팔꿈치 수술이었다.


수술은 말없이 구속을 가져갔다.


평균 구속 156km. 최고 구속 165km에 달하던 강속구는 최고 136km로 줄어들었는데, 그건 중학교 3학년 때 내 구속과 같았다.


‘이강아, 타자들한테 배팅볼 좀 던져줘라.’


인생 최대 치욕을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변화구도 연마했지만 우완투수치고 직구의 위력이 너무 약했다.


배팅볼 투수가 된 나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7년을 뛰다가 반강제로 은퇴 당했다.


1군 통산 28경기 37⅓이닝 30실점 0승 7패 5홀드 1세이브 방어율 7.23


그게 내 프로 생활의 최종 성적이다.


1스트라이크.


2구.


군대를 다녀온 후, 난 야구 방송 트라이아웃에 합격해 재기를 노렸다.


‘이강이 변화구가 많이 늘었는데?’

‘프로 때보다 공이 더 좋아, 최이강. 이제야 타자를 맞춰 잡는 느낌이랄까?’


레전드라 칭송받던 선배들은 내 성공을 점쳤고, 방송국 놈들은 내게 비운의 천재란 별명을 붙여줬다.


방송만 나가면 프로구단에서 날 찾을 거라며 온갖 수로 띄워주곤 했다.


‘이강씨도 성공해야죠. 지금 이대로 가시면 무조건 성공합니다.’


난 준비해간 여러 변화구로 상대를 요리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활약은 방송되지 못했다.


타 선수 입단 조작이 드러나며 방송이 갑작스레 폐지된 것이다.


2스트라이크.


3구.


올해 초, 나는 선배와 함께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차렸다.


프로 계약금, 7년간의 연봉, 각종 알바비 등등, 있는 대로 돈을 끌어 모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베이스볼 아카데미였는데···


그랬는데···


지난주에 동업자인 선배, 아니 그 씨발 새끼가 돈을 들고튀었다.


3스트라이크.


삼구삼진.


내게 남은 건 몇 천 만원의 빚과 애물단지가 된 아카데미뿐이었다.


고교 최대어로 꼽히던 나는 야구계에서 쓸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다.


나는 불 꺼진 아카데미에 앉아 텅 빈 공금계좌를 쳐다봤다.


이 새끼는 어떻게 1원도 안남기고 다 인출했냐.


아카데미 전화는 환불 요구로 쉴 틈 없이 울려댔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당장 환불 해달라고!”


“어머님,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당장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이 씨발 새끼야? 내 돈이지 네 돈이야 그게? 알고 보니 철판 두꺼운 새끼네 이거?”


“빠른 시일 내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아무리 내가 멍청했다지만, 나 역시 피해자인 와중에 사과해야하는 이 상황이 좆같은 건 사실이다.


대다수의 학부모는 화를 풀기위해 전화하는 듯했다.


나는 샌드백이 되어 일방적으로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나는 부디 그 씨발 새끼가 붙잡혔다는 경찰의 연락이길 바라며 핸드폰을 열었다.



[web 발신]

[추억의 프로야구 게임! 프로야구 20XX]

[그때의 열기를 다시 한 번 느껴보시겠습니까?]



뭐야 이건?


뜬금없는 게임 홍보 멘트와 수상쩍어 보이는 링크.


프로야구 20XX는 내가 초등학교 때 밥 먹듯이 했던 핸드폰 게임이었다.


오랜만에 다운이나 받아볼까?


익숙한 도트 그래픽과 정겨운 BGM.


나는 수원 드래곤즈를 고른 다음 컴퓨터와 친선 경기를 진행했다.


단순히 던지고 치는 것이 반복될 뿐이지만, 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그리고 난 게임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문득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어린 시절이 스쳐갔다.


핸드폰을 닫자, 어두운 아카데미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자리를 잡았나 했는데.


나는 잔뜩 널브러져있는 야구공을 한데 모으고 배트와 글러브를 정리했다.


혹시나 그 씨발 새끼가 야구 용품까지 훔치러 올까봐 아카데미 문을 단단히 잠갔다.


이거 준비한답시고 돈을 얼마나 들였는데.


전세금까지 투자한 나는 아카데미에서 숙식까지 하며 모든 걸 바쳤다.


통장잔고는 정확히 47만 8천원.


일이 벌어지고 나서부턴,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했다.


오늘도 소주를 한잔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로 야구 중계를 틀어놓았다.


“한국시리즈 직행을 두고 양 팀이 치열한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는 수원, 잠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캐스터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했다.


9회 초, 수원 드래곤즈가 창원 스트로스를 상대로 3대 0 리드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때 저 수원 드래곤즈의 1라운더였다.


그러나 동기들이 하나 둘 1군에 자리 잡는 동안, 난 꿈에서 점차 멀어져갔다.


사소한 부상이라 여겼던 부상엔 대수술이 필요했고, 이후론 내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다른 선수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쉬운 공을 던져주는 것.


그게 프로에서의 내 역할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고, 애석하게도 내게는 1이닝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깍두기만도 못한 신세였다.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결국 소주 한 병을 다 들이키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카데미에서 나와 수원경기장이 있는 쪽을 말없이 쳐다봤다.


수원의 가을 공기는 선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 상공에서 폭죽이 터졌다. 옛 동료들이 9회를 잘 막은 모양이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으니 선수들에겐 보너스가 떨어질 것이다.


보너스는 개뿔, 나는 마이너스만 계속되고 있는데. 부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드래곤즈는 나를 마지막으로 1라운드 잔혹사를 끊어냈고, 이젠 가을 야구에 밥 먹듯이 진출하는 팀이 됐다.


언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나는 폭죽놀이를 뒤로하고 반대방향으로 정처 없이 걸었다.


잠에 들기 전, 몸을 최대한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툭 투둑-


그때, 내 눈 앞으로 야구공이 떨어졌다.


땅바닥에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실밥은 거뭇했고, 가죽에 생채기가 많은 오래된 야구공이었다.


“아저씨! 공 좀 던져주세요!”


그리 밝지 않은 조명 아래에서 글러브를 흔드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야심한 밤에 야구라니. 열정하나는 기가 막히네.


나도 저렇게 열심이던 때가 있었는데. 열정으로 하루를 견디던 과거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여기요, 여기!”


풋내기들한테 한번 제대로 던져 줄까나.


아무리 느려졌어도 애들 놀라게 할 정도의 구속은 나온다.


공을 줍기 위해 고개를 숙인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번쩍였다.


[베이스볼 20XX. 그때의 열기를 다시 한 번 느껴보세요.]


이게 뭔 말이야?


뜬금없이 밝아진 핸드폰 화면엔 이해할 수 없는 문구가 떠있었다.


이상해진 핸드폰을 뒤로 한 채, 우선 공을 줍고 일어섰다.


어라?


고개를 들고 공을 던지려는 순간, 나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최이강 파이팅!”

“삼진 가보자!”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갈색 마운드와 푸른 잔디.


그 뒤로 우렁찬 응원단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거닐던 수원 밤공기의 선선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이건···


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 청룡기 우승 깃발.


그리고 내 앞에 앉아있는 건 나와 같이 드래곤즈에 드래프트됐던 포수, 찬용이었다.


방금 전까지 TV에 나오던 드래곤즈의 포수 말이다.


고등학교 때잖아?


나는 당혹감으로 인해 손에 들고 있던 공을 떨어트려버렸다.


“피쳐 보크!”


“야 집중 안 해, 최이강!”


1루에 있던 주자가 2루로 진루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답은 명확했다.


“저 자식 비어있는 1루랑 3루는 왜 보는 거야?”


내가 이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이건 고등학교 3학년 때, 청룡기 결승전이다.


당시 압도적인 피칭으로 3경기를 책임지고 MVP 상패를 거머쥐었던 청룡기 대회.


2승 0패 1세이브. 19이닝 2실점 24K, 2BB, 방어율 0.95


내 인생 최고점의 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청룡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9회에 올라온 그 시점으로 말이다.


그때, 찬용이가 손가락을 요란하게 움직이며 사인을 줬다.


씨발, 저게 뭐였더라.


나는 당혹감에 타임을 요청해버렸다.


지금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 경기를 망쳐버릴 것 같았다.


그때, 이상한 문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 삼진 2개]

[보상 : 50 포인트]


할당량이라 하면··· 아까 그 플래시 게임?


[지정된 할당량을 기한 내에 채우면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포인트는 상점에서 활용 가능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삼진을 잡으면 보상을 준다는 거잖아?


아무리 내가 사기를 당할 정도로 멍청할지라도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찬용이가 다시금 사인을 줬지만, 여전히 저게 뭘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직구 구위로 압도하던 투수였으니, 직구를 뿌리면 될 것이다.


정적의 순간.


와인드업을 한 후, 미트의 정 가운데를 향해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슈웅-


공이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맑고 강력한 소리였다.


“스트라이크!”


158km.


전광판에 찍힌 직구의 구속이었다.


미친. 이런 공을 던진 게 대체 얼마만인가.


모든 투구 동작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며, 무엇보다도 팔이 아프지 않았다.


막혀있던 혈이 뻥 뚫리는 느낌과 함께, 기쁜 감정이 벅차올랐다.


나는 과거의 감각을 살려 피칭에 몰두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투!”


156km.


예상하고 휘두른 게 티가 났다. 아카데미 훈련생에게 항상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이었다.


속구도 보고 칠 줄 알아야지.


연습 좀 더 해야겠는 걸.


안타깝지만, 넌 삼진이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을 잡아내자 한쪽에서는 탄식이, 한쪽에서는 감탄의 박수가 흘러나왔다.


“저걸 치라고 던지는 거냐?”

“1점차라서 할만 했는데 끝판왕을 올려버리네.”


“나이스 볼!”

“원 아웃 남았다, 이강아!”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남아있는 삼진 할당량도 하나.


곧이어 다음 타자가 타석에 섰다.


공 하나하나에 이유모를 중압감이 느껴졌다.


잠깐만, 긴장이 된다고?


내가 언제부터 긴장을 했었지?


팔꿈치 부상 이후부터 그랬던가.


실수하면 끝인 벼랑 끝의 인생을 살던 시기에 암처럼 퍼진 부정적인 생각들.


하지만 내게도 긴장을 하지 않던 순간이 있었다.


모든 고교 타자가 두려워하던 투수.


그게 나였다.


그때의 당차던 내 모습을 상상하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감히 네가 내 공을 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과거의 나와 완벽히 일치화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패스트볼을 던졌다.


파앙-


163km의 공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머지않아 타이밍을 놓친 타자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 종료!”


찬용이가 포수마스크를 벗으며 내게 달려왔고, 어느새 마운드로 온 야수들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승리의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 문구가 다시금 등장했다.


[할당량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 50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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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얼떨결의 첫 승리 24.06.18 438 12 12쪽
38 멱살 사건의 전말 24.06.17 434 12 14쪽
37 세이부와의 연습경기 24.06.14 545 20 15쪽
36 결속의 펜 24.06.13 592 13 15쪽
35 최고대전 24.06.12 629 14 14쪽
34 은총을 받은 깃털 24.06.11 689 14 14쪽
33 기본기 훈련 24.06.10 690 14 14쪽
32 스플리터 24.06.07 800 16 13쪽
31 스프링캠프의 시작 +1 24.06.06 807 14 14쪽
30 빛의 정령 24.06.05 817 16 14쪽
29 강화된 최형민의 사인볼 24.06.04 824 16 13쪽
28 스토브리그 24.06.03 856 16 14쪽
27 드래곤즈의 예상 라인업 24.06.02 902 16 13쪽
26 마무리의 꽃, 팀 회식 +1 24.06.02 929 17 14쪽
25 아이템 강화 망치 24.06.01 939 14 14쪽
24 마지막 청백전 +1 24.05.31 964 16 14쪽
23 데이트 24.05.30 972 15 14쪽
22 진열대 새로 고침 쿠폰 24.05.29 1,004 16 15쪽
21 두 번째 청백전 24.05.28 1,050 15 15쪽
20 새로운 진열대 +1 24.05.27 1,089 18 14쪽
19 눈도장 찍기 24.05.26 1,114 18 15쪽
18 첫 번째 청백전 24.05.25 1,134 17 15쪽
17 마무리캠프의 시작 +1 24.05.24 1,188 18 14쪽
16 10억 팔 투수 +1 24.05.23 1,229 18 14쪽
15 KBO 신인 드래프트 +1 24.05.22 1,239 16 15쪽
14 허수아비 더미 24.05.21 1,260 21 14쪽
13 첫 번째 인터뷰 +1 24.05.20 1,298 17 14쪽
12 달콤한 휴가 24.05.19 1,335 22 14쪽
11 자랑스러운 아들 24.05.18 1,365 1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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