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눈

개안.
뒷눈은 내게 광범위한 시야를 안겨줬다.
사실상 내 시야각은 360도에 가까워졌다.
역시 상점에 있는 물건들은 지구에서 구할 수 없는, 평범하지 않은 물건인 것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2회초.
체인지업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은 울현고 5번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다.
“나이스 볼넷! 공 잘 지켜봤다!”
“쟤들 또 도루하겠는데?”
울현고는 작전대로 도루를 감행했고 이에 성공했지만, 난 딱히 두렵지 않았다.
내 등 뒤에 있는 2루 주자를 볼 수 있었으니까.
2루 주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찬용이의 미트를 지긋이 쳐다봤고, 사인을 고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슬금슬금 베이스를 벗어나는 2루 주자가 뒷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다.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 2루에 공을 던졌다.
“아웃!”
베이스를 벗어났던 주자가 다급하게 돌아와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니 이강이 저걸 어떻게 본 거야?”
“누가 신호 주기라도 했어? 시야 미쳤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견제사였다.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게 전달된 듯 울현고 벤치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
패스트볼 구속만 빠른 투수.
울현고 감독 이운구는 최이강을 그렇게 평가했다.
제 아무리 고교 최고의 투수라 해도 타자들이 강속구에 적응만하면 승산은 있었다.
다른 구종은 던지질 않으니, 이론상 충분히 가능했다.
오로지 최이강을 상대하기 위해 배팅 머신의 구속을 160km로 맞춰 놓고 하루 종일 연습시켰다.
근데 이게 웬걸.
직전 대회까지만 해도 직구 구사율 100%였던 최이강이 일순간에 달라졌다.
최이강은 울현고 타자들에게 계속 문제를 냈다.
양자택일.
직구와 체인지업. 둘 중 뭐를 고를래?
갑작스러운 변화구의 등장에 심리전이 걸렸고, 결과는 하나같이 헛방질이었다.
울현고 타자들은 체인지업과 강속구의 적절한 배합에 맥을 못 췄고, 헛스윙을 거듭했다.
불광고의 작전일까? 포수의 리드 덕분일까? 아니면 투수의 독단적인 판단?
최이강의 완급조절은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경기가 본인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울현고 감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근데 체인지업이 잠깐 연습한다고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요 감독님.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한두 번 던져본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삼진을 당하고 벤치로 돌아온 선수들은 직구에 배트만 갖다 대라던 코치진과 감독을 말없이 쳐다봤다.
‘이제 어떡하죠?’라는 얼굴로 말이다.
그래도 정신만 차리면 기회가 오는 법. 어떻게든 볼넷을 얻어내 출루한 선수가 작전대로 2루로 도루했다.
“나이스 도루! 장타 하나만 치자!”
“발 빠르니까 안타 하나면 들어올 수 있어. 하나만 치자 제발.”
아무리 봐도 울현고가 준비한 전략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주자만 살아있으면···
그러면 되는데···
어이없게도 2루에서 주자가 견제사를 당하며 맥이 끊겨 버렸다.
“아니 씨발 뒤에 눈이라도 달렸나?”
울현고 감독은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이 막힌 탓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저 자식 주자 잘 안 내보내서 견제 연습도 안했을 텐데 견제를 왜 이렇게 잘해?”
이운구의 짜증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울현고 코치진도 당혹감에 고개를 저었다.
직구만 던지던 놈이 갑자기 체인지업이라니.
거기다 견제까지 잘하다니.
울현고는 승부처라 여겼던 초반 3이닝에 점수를 내지 못했고, 결국 전의를 상실했다.
반면 침울한 분위기의 울현고 벤치와 달리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와 진짜 프로 오면 어떨지 너무 궁금한데?”
“그러니까. 1년차에 바로 신인왕 먹어버리는 거 아니야? 제발 유니콘즈로 왔으면 좋겠다.”
“개소리야 드래곤즈 와야지.”
“공부 잘하면 서울대가고 야구 잘하면 드래곤즈라니. 불쌍하다.”
관중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천재 투수라 칭송했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스카우터들은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패스트볼만 좋은 줄 알았는데. 감추고 있는 무기가 있었잖아?’
지난 3년간의 혹사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게 최이강에 대한 평가였다.
강속구 투수에겐 투구 수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당장 실적을 내야하는 고등학교에선 그게 지켜지지 않는다.
실제로 몇몇 구단은 최이강이 입단하자마자 드러누울지도 모른다며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최이강은 그 우려를 오늘로서 종식시켰다.
1순위 지명권을 손에 쥐고 있는 드래곤즈에게 최이강은 폭탄이 아니라 폭죽이었다.
드래곤즈 스카우터는 혼자 축제였다.
고등학생의 체인지업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완성된 공.
변화구를 장착한 덕분에 최이강에 대한 평가는 더욱 높아졌다.
설령 부상을 당해서 구속을 잃더라도, 변화구 의존도를 높여 완급조절형 투수로 거듭날 가능성이 엿보였다.
“갑자기 완성형 투수가 됐어···”
드래곤즈 스카우터는 최이강이 드래곤즈의 1선발이 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윽고 드래곤즈 스카우터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깐만··· 저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아니야···?”
다시금 미국 구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백년에 한번 나올까한 선수.
드래프트를 앞둔 내게 붙은 수식어였다.
150km를 밥 먹듯이 던졌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별명은 천년에 한번 나올까한 선수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평가가 조금 떨어졌는데, 그건 내가 직구 원툴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구위로 찍어 누르는 것에 익숙했던 탓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독님이 직구만 던지게 시킨 탓에 변화구를 익힐 시간이 없었다.
‘코치님 혹시 체인지업···’
‘넌 직구만 던지면 돼. 어차피 쟤들 못 쳐.’
‘선배님 혹시 슬라이더···’
‘네가 슬라이더까지 던지면 나는 뭐 먹고 사냐?’
다들 그냥 좀 알려주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열 받네.
아무튼, 내가 던진 수많은 강속구는···
갓 데뷔한 내 팔을 아작 내버리고 말았다.
한계를 느낀 나는 2군에서 변화구 훈련에 매진했다.
다만 프로 생활하면서는 변화구를 활용하지 못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완성했다.
그리고 난, 그때의 노력을 지금에서야 보상받았다.
봉황대기 1차전.
3이닝 1피안타 2볼넷 5삼진 2견제사.
체인지업으로 울현고의 혼을 쏙 빼놓았으며, 하루에 한번 하기도 쉽지 않은 견제사를 뒷눈 덕분에 2번이나 해냈다.
[할당량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 50 포인트.]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덕분에 모인 포인트는 170.
뒷눈의 효과를 제대로 맛봤으니, 상점에 들러 실제 상품을 구매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경기에 집중해서 잘 끝내는 게 우선이겠지만.
땅-
그때, 4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찬용이가 퍼올린 공이 목동 야구장 센터를 향해 날아갔다.
강하게 날아간 공은 전광판 정 가운데를 강타했다.
“찬용이 나이스 홈런!”
“야··· 찬용이 파워 봐라? 목동 센터를 그냥 넘겨버리네.”
찬용이를 비롯한 타자들이 분발해준 덕분에 우리 팀은 3점차 리드를 가져왔다.
할당량도 달성했고, 점수도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난 부담감을 덜고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온 4회말.
원래 과거대로라면 내가 강판되었을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마운드에서 버티고 있었다.
울현고 타자들은 여전히 내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체 거듭 삼진 당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죽하면 삼진콜을 너무 많이 외친 탓에 심판의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였다.
“아이 참 답답하네. 공 지켜보라니까!”
울현고 벤치에선 열이 받았는지 아예 타자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하긴, 145km로 날아가는 체인지업에 배트가 안 나가긴 쉽지 않지.
상대 타자들이 잘 속아준 덕분에 4회는 공 10개로 3삼진을 잡으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한 타자가 체인지업을 지켜보지만 않았다면, 1이닝 9구 3삼진인 무결점 이닝을 달성했을 것이다.
내 호투에 동료 타자들이 응답해준 걸까.
5회초엔 타순이 2번 돌 정도로 빅이닝이 만들어졌다.
찬용이는 연타석 홈련을 때렸고, 선발 타자 전원이 안타를 때리며 울현고와의 체급차이를 보란 듯이 증명해냈다.
10대 0. 봉황대기 규정상 10점차가 유지될 경우 6회초에 콜드게임으로 경기가 끝날 것이다. 즉, 난 2이닝만 잘 막아내면 된다.
뒷눈이 잘 붙어있나 뒷덜미를 만지작거리던 와중, 감독님이 내게 찾아왔다.
“이강이는 여기까지만 던지자. 우리 결승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4이닝밖에 못 던졌는데. 아쉽기는 했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다.
감독님 말대로 남은 경기가 많다. 나로선 체력을 아낄 수 있으니 나쁠 것 없었다.
10점차 리드 덕분이었을까. 이후 경기 역시 일방적이었다.
후속 투수가 올라왔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울현고 타자들은 맥없이 아웃 당했다.
땅볼.
뜬공.
직선타 아웃.
6회까지 10점차 리드를 지킨 우리 팀은 6회 콜드게임으로 승리했다.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나는 승리투수가 됐다. 물론 수훈선수는 연타석 홈런을 때린 찬용이가 가져갔지만.
“야, 찬용아. 오늘 폼 좋은데? 이번 대회 홈런왕하면 네가 1순위 지명될지도 모르겠는 걸?”
“뭔 소리야. 기만자가 따로 없네. 메이저리그가 널 탐내고 있어 지금. 그런 앨 두고 날 지명하겠냐?”
하지만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과거 울현고와의 경기 땐 내가 말려서 그런지 찬용이도 타선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오늘은 10대 0으로 이겼다지만, 그땐 3대 4로 진땀승을 거뒀다.
나보다 더 뛰어난 개인성적을 거둔 건 팩트니, 이대로 가면 지명순위가 바뀔지도 몰랐다.
현대 야구엔 이런 말이 있다.
‘최고급 선수로 도배된 팀이라도 좋은 포수가 없으면 우승하기 어렵다.’
즉, 당장의 성적이 중요한 우승권 팀은 찬용이를 차세대 주전 포수로 키우기 위해 군침을 흘릴 것이다.
“찬용이, 이강이. 일로 와봐라!”
그때, 코치님이 장비를 정리 중이던 우리 둘을 불렀다.
부리나케 달려간 곳엔 코치님과 함께 감독님이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던 감독님이 매서운 눈빛으로 우릴 쳐다봤다.
역시, 사인대로 안 해서 그런가.
“체인지업 연구한 건 좋은데, 우리한테 얘기해줬으면 더 좋았을 거야. 너네도 알지?”
“찬용이는 잘못 없습니다. 그냥 제가 독단적으로 한 거라···”
감독님이 한숨을 푹 쉬었고, 나는 그 적막으로 인해 숨이 점점 막혀왔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나였지만, 지려버리겠네.
침묵하는 감독님은 오랜만에 봐도 무서웠다.
“잘했다. 결과가 좋으니까 망정이지. 찬용이가 블로킹 못했으면 바로 주자 3루였어. 경기 흐름이 어찌 됐을지 몰랐던 상황이고. 다음 경기 땐 사인 맞추고 들어가자.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그래. 마저 짐 정리하러 가봐.”
감독님 말씀이 맞다. 찬용이가 아니었다면 시도도 못했을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물론 난 찬용이 실력을 믿었지만.
다행히 찬용이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우리 같이 드래프트 되면 좋을 텐데. 선배들 공 잡는 거보다 너 잡을 때가 제일 편해. 빨라서 손이 아프긴 하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일지도.
“고맙다 새끼야. 덕분이야.”
“너 공 잡다보면 다른 애들 공이 아리랑 볼처럼 보인다니까.”
우리는 장비가방을 맨 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버스로 돌아갔다.
“저기···”
그때, 불쑥 나타난 누군가가 우리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는 나를 멈춰 세우더니 명함을 하나 건넸다.
“다인 에이전시 김정수입니다. 들어보신 적은 없겠지만, 주로 해외진출을 도맡아하죠.”
다인 에이전시?
내가 과거로 돌아온 시점엔 이미 미국 진출을 거절한 뒤였다.
즉, 이건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상황이란 것이다.
“이강 선수가 미국 진출을 고사했다는 정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임팩트라면 역대 최고 계약금도 노려볼 수 있을 겁니다.”
체인지업을 보고 가능성을 높게 친 건가.
그래서 내게 새로운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프로 출신인 내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와 맹활약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능력 있는 스카우터라면 내가 단순히 변화구만 늘은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챘을 터.
1, 2군에서 구르며 몸에 밴 완급조절이 알게 모르게 티가 났을 것이다.
그걸 꿰뚫고 내 재능을 알아본 스카우터가 대단해보였다.
기분은 좋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확고했다.
전에 말했듯 한국프로야구에서 증명이 우선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미국에 갈 생각이···”
“지금 진출을 선언하면 150만 달러는 우습게 받으실 겁니다.”
150만 달러?
KBO 명품 외인선수의 1년 연봉이 150만 달러다.
프로에서 증명되지 않은 유망주에게 150만 달러를 투자하는 건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친 셈이었다.
“국제 유망주 보너스 풀이 많이 남은 팀이면 계약금을 더 줄 겁니다. 만약 다음 경기 때 또 다른 변화구를 보여준다면 한국 최고 금액을 노려볼 수도 있겠네요.”
나는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대답에 뜸을 들였다.
과거 내 예상 계약금은 70만 달러 수준. 물론 돈 때문에 고민하는 건 아니지만, 2배라면 다르다.
투자한 금액만큼 선수로부터 뽑아먹으려는 게 프로팀의 기본 마인드다.
150만 달러를 투자한 선수를 마이너리그에 주구장창 박아두는 팀은 없을 것이다.
즉, 평가가 좋은 만큼 빠른 데뷔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구미가 안 당긴다면 거짓말이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물론입니다. 다만 일찍 연락해주실수록 계약 조건이 좋을 겁니다. 그럼, 다음 경기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한참 어린 내게 예의를 차리며 인사하다니.
꼰대들 많은 야구판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네.
“드래곤즈 스카우터는 안 보이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찬용이가 한마디 뱉었다.
“그러게.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다.
내 기억 상 드래곤즈 스카우터가 찾아온 날이 이때였던 것 같은데.
나는 내가 던진 변화구로 인해 미래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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