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팅 리포트

§§
[Scouting Report] - Lee kang Choi
Fastball: 65
Curveball: 35
Changeup: 60
Control: 50
Overall: 50
애리조나 국제 스카우터 팀 사무실 전체에 조셉 리의 호통 소리가 울렸다.
“스카우터가 보낸 영상을 보고도 의심하는 겁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다른 팀이 180만 달러에 낚아 챌 거라고요.”
사무실 구석에 앉아 귀를 파던 프랭크는 조셉 리에게 시비를 걸었다.
“같은 한국인 피가 흘러서 좋게 보는 건 아니고요?”
한껏 진지한 분위기였던 사무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조셉 리는 원색적인 비난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 좆 까고 내가 옳다는 태도로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
그게 조셉 리가 험난한 메이저리그에서 프론트 직원으로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좋을 대로 생각하십쇼. 전 제 뜻 절대 안 굽힐 거니까.”
조셉 리는 수년간 애리조나의 국제 계약을 담당하며 최고의 선수들을 발굴해냈다.
2019년. 70만 달러에 도미니카에서 데려온 라파엘 마르테는 지금 애리조나의 1선발로, 이번 시즌 전반기에만 10승을 올렸다.
조셉 리의 능력은 비단 남미 선수만 잘 뽑는 데에만 몰려있는 게 아니다.
2020년. 한국, 일본에 비해 선수층이 얇은 대만에서 10만 달러에 데려온 천제쉰은 지금 신인왕 경쟁 중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로 유명한 일명, 짠돌이 스카우터.
그게 조셉 리의 별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최이강에게 200만 달러를 배팅했다.
놓치면 애리조나를 15년간 괴롭힐 투수.
잡으면 애리조나의 15년을 책임질 투수.
최이강에 대한 조셉 리의 평가였다.
“평균 구속 156km의 파이어볼러가 체인지업까지 장착했습니다. 이 경기를 보세요.”
조셉 리는 다른 동료 스카우터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이강의 플레이 영상을 틀었다.
“2회초. 최이강은 이미 1회에 156km를 던졌음에도 147km의 직구를 던졌습니다. 왜? 체인지업의 구속이 145km니까요.”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직구와 체인지업 구속을 비슷하게 만들어 타자를 속이겠다는 거죠.”
“힘이 덜 들어간 걸지도 모를 텐데, 너무 속단하는 거 아닙니까?”
“최이강의 장점은, 이게 먹힐 타자와 안 먹힐 타자를 구분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완급조절 능력이 프로급이란 거죠.”
실제로 자료영상에서 최이강은 울현고 타자들을 맞춰 잡았다.
느린공을 던져 예상해서 치는 타자를 속이고, 빠른공을 던져 기다리는 타자를 속였다.
조셉 리는 평소 눈여겨보던 한국 고등학생 최이강을 데려와야 한다고 강력 어필했다.
“정보원에 따르면 당장 내일이 최 선수의 등판일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경기에서도 저희가 기대하는 모습이 나온다면 계약을 꼭 진행해야합니다.”
“그렇지만 200만 달러는 무리가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출신 크루즈도 잡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스카우터의 말에 조셉 리는 고개를 저었다.
“12승 투수 잡으려다가 20승 투수 놓치는 꼴이 될 겁니다. 계약금은 최 선수에게 올인 해야 돼요.”
조셉 리는 수년간의 국제 계약을 담당했던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힘을 조절할 줄 아는 절제된 피칭과 묘한 완숙미.
그게 크루즈에겐 없지만, 최이강에겐 있는 능력이다.
“저는 최이강이 사이영상을 무조건 탄다는 것에 제 스카우터 인생을 걸겠습니다.”
조셉 리의 당찬 내기 제안에 다른 스카우터들이 코웃음 쳤다.
“마르테랑 천제쉰으로 연타석 홈런 치니까 콧대가 너무 높아졌네 이 친구.”
“아시아인이라 콧대는 당신들처럼 안 높습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말한 건데요?”
조셉 리는 확신했다.
최이강이 미국에 온다면 마이너리그를 1년 안에 돌파할 것이며,
사이영상을 최소 3번 타내며 전설의 반열에 오를 잠재력이 있다고 말이다.
§§
[할당량을 완료했습니다.]
[야간 퀘스트]
[호수 3바퀴 돌기 – 12km 완주]
[보상 : 20 포인트]
우리 팀이 두 학교를 격파하며 16강에 올라가는 3일 동안, 난 할당량 채우는 것에 몰두했다.
어느덧 모인 포인트는 290 포인트.
상점에 가서 내가 보유한 포인트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알아두는 편이 좋아보였다.
모두가 잠에 든 새벽 1시. 난 숙소 화장실에 들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점창.”
정신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내 주변 모습이 뒤바뀌었다.
꽃무늬 패턴의 화장실 타일 대신 구름 바닥과 나무문이 나를 맞이했다.
벌컥-
어라?
상점 내부···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물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지 짚어낼 순 없었다.
“안녕하세요 이강님. 그사이 포인트를 꽤나 모으셨군요.”
“네, 할당량 채우는 걸 빼먹지 않았거든요.”
“마침 비교적 가격 있는 상품들이 세일 중입니다.”
지온의 말대로 허수아비 더미와 런닝머신이 파격 세일 중이었다.
500 포인트인 허수아비 더미는 30% 세일이 들어가 350 포인트였고, 1000 포인트였던 런닝머신은 아예 반값 세일 중이었다.
아직 포인트가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이정도 차액이면 금방 모을 수 있을 터.
“세일은 언제까지 하나요?”
“9월 초까지 진행합니다.”
남은 세일 기간은 3주. 그때까지 포인트를 착실하게 모으면 진열대에 있는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건 못 보던 건데?
상점이 달라졌다고 느낀 이유. 그건 바로 새로운 장치였다.
“혹시 저건 뭔가요?”
“아, 이건 새로 들인 랜덤 뽑기 기계입니다. 보상으로만 주어지는 뽑기권을 사용하면 랜덤으로 상품이 나옵니다.”
“저기 들어있는 상품 가격대가 어떤가요?”
“가격이 낮은 상품일수도, 어마무시하게 높은 포인트의 상품이 있을 수도 있죠. 저희는 잡회점이잖아요. 다양한 물건이 많습니다.”
일단 당장은 허수아비 더미나 런닝머신을 목표로 포인트를 모으는 편이 좋겠네.
소모품인 포션은 미리 사둘 필요는 없어보였다.
상점은 언제든 올 수 있으니 필요할 때 사면되겠지.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네, 이강님.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숙소 화장실로 되돌아온 나는 곧바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양한 종류의 신비로운 물건을 파는 상점이 내겐 24시 편의점과도 같다니.
나는 앞으로 상점에 어떤 물건이 진열될지 상상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
내 어깨가 쉬는 동안 불광고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2차전과 3차전을 내리 이겼다.
바쁘게 할당량을 채우다보니 어느덧 내 선발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찬용이의 미친 폼이랄까.
두 경기 동안 찬용이의 방망이는 계속 불타올랐고, 여러 번 담장을 넘겼다.
차세대 홈런왕 포수.
이번 생의 찬용이에게 붙은 수식어였다.
“야 찬용아. 너 드래곤즈 뽑히기엔 너무 잘한다. 내 생각엔 1라운드에 무조건 뽑힐 것 같은데.”
“싫어. 난 드래곤즈 가야 돼.”
“남들은 죽어도 안 가려는 걸 왜 가려고 하냐?”
“우승할 거면 최저점에 있는 팀에 가서 우승하는 게 좋지. 간지 뒤지잖아. 그리고 너랑 같이 뛰면 5년 연속 우승도 가능할 걸?”
참 사서 고생한다.
“됐고, 일단 앉아. 경기 시작하려면 1시간 남았어. 몸 풀어야 돼.”
아니나 다를까, 불펜에서 몸을 푸려던 찰나에 홀로그램이 일일 퀘스트를 안내했다.
[일일 퀘스트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커브 50구 던지기]
[보상 : 포인트 30]
잠깐만, 내가 잘못 본 건가?
커브···?
드래곤즈에 지명되고 첫 스프링캠프 때 체인지업 제구가 잡히지 않던 내게 코치님은 커브를 권했다.
개인적으로는 파워커브와 슬로커브를 던질 줄 알지만, 실전에서 던지는 일은 없었다.
나는 커브에 젬병이었으니까.
이상하게 커브만 던지면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렸다.
방출 후 체인지업, 슬라이더, 포크볼 등등 여러 변화구를 연마했지만 그 중 최악의 숙련도를 자랑하는 게 커브다.
부실공사 순살빌딩급 미완성 구종.
그걸로 내 커브를 설명할 수 있겠다.
스트라이크존을 빠져나가길 일쑤였고, 그 방향은 왼쪽, 오른쪽, 위, 아래를 가리질 않았다.
오죽하면 포수 생고생시키기 싫어 혼자 벽에다 던지면서 연습했을 정도니까.
“직구 먼저 가자.”
찬용이가 미트를 주먹으로 치곤 자리에 앉으며 직구를 요구했다.
“안 돼.”
찬용아 미안하다. 고생 좀 해야겠다.
“뭐가 안 돼?”
“커브··· 던지고 싶어.”
“무슨 그런 말을 고백하는 말투로 말하는 거야, 역겹게.”
찬용이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던지라는 듯 미트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커브 그립.
포인트 벌기 위해 이 짓까지 다시하다니.
그래도 다양한 구종을 연마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일단은 파워커브를 가운데에 넣어볼까.
나는 초점을 미트 정가운데에 고정한 뒤, 패스트볼을 던지듯 빠르게 팔을 돌렸다.
슈웅-
쾅-
“야 뭐해!”
아뿔싸.
가운데를 향해 던진 커브볼은 불펜 철문을 강타했다. 그것도 포수로부터 50cm나 벗어나버린 것이다.
이걸 어쩌지?
나는 침착해지기 위해 숨을 가다듬었고, 커브를 존 안에 넣기 위해 슬로커브를 던졌다.
슈우웅-
이번엔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꽂혀버렸다.
“아니 느린공도 존에 못 넣으면 어떡해. 그리고 그렇게 느리게 던지면 타자가 속겠냐?”
“일단 기다려봐.”
나는 찬용이를 안심시키곤 계속해서 커브를 던졌다.
10구.
어? 존에 조금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30구.
“야! 가운데로 던지라고! 경기 시작도 안했는데 똥개 훈련시키는 거야?”
50구.
내 커브볼이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간 건 정확히 12회. 전부 슬로커브였다.
“이럴 거면 그냥 실전에서 던지지 마. 바로 얻어맞겠다.”
찬용이 말이 맞다. 이딴 공을 던졌다간 느린공을 노리고 치는 타자에게 얻어맞을지도 모른다.
[일일 퀘스트 : 커브볼 50개 던지기.]
[할당량을 달성하셨습니다.]
할당량은 달성했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함이 느껴졌다.
“경기 시작 10분 전! 다들 집합해라!”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천호고와의 경기에 선발투수로서 마운드에 올랐다.
천호고는 경상권을 제패한 명실상부의 강팀으로, 우승후보로 점쳐졌던 지산고를 3차전에서 무너뜨렸다.
그렇게 4차전, 사실상 대회 16강전에서 두 학교가 맞붙게 된 것이다.
여기까진 과거와 마찬가지로 흘러왔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뭐냐고.
첫 타자를 패스트볼로 압도하자마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커브볼로 10개의 삼진을 잡으세요.]
[보상 : 랜덤 뽑기권.]
랜덤 뽑기권?
오로지 보상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놓쳐선 안됐다.
문제라면 커브볼을 결정구로 10개의 삼진을 잡으라는 퀘스트의 내용이었다.
좆 됐다.
그냥 삼진도 아닌, 커브볼로 삼진 10개라니.
방금 연습했을 때 알았지만 내 커브볼은 최악이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최대한 유리한 카운트에서 커브를 시도하기 위해 강속구로 2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158km.
내 강속구에 천호고 2번 타자는 넋이 나간듯했다.
아마 타자는 속구에 대비하고 있을 터.
나는 지금이 타이밍을 뺏을 유일한 기회라고 여겼다.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향해 커브볼을 던졌다.
슈우웅-
어라··· 너무 느리게 가는데···
내가 던진 슬로커브는 사실상 아리랑볼처럼 날아갔다.
타자는 웃으며 배트를 내둘렀다.
땅-
타자가 여지없이 처 버린 타구는 1, 2루 간을 빠져나갔다.
“저 자식 오늘은 커브야?”
벤치에서 한숨이 새어나오는 걸 느낀 나는 그 뒤로 커브볼을 던지지 않았다.
원래대로 속구와 체인지업을 배합해 잔루 1루로 1회를 마무리했다.
“야, 최이강. 너 자꾸 돌발행동 할거야? 체인지업은 먹혀서 넘어갔다지만, 이게 뭐야?”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코치님···”
어쩌지?
아무래도 커브볼로 삼진을 잡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기엔 그 보상의 정도가 컸다.
상점창. 그거라면 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해결해줄지도 모르겠다.
“저 코치님··· 화장실이 급해서요.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5분 안에는 와야 한다.”
나는 서둘러 벤치를 빠져나와 화장실로 내달렸다.
구석 칸에 앉은 나는 다급하게 읊조렸다.
“상점창.”
차원을 이동하는 요상한 기분과 함께 다시금 정신이 상점으로 이동했다.
“아, 이강씨 다시 오셨군요? 어젯밤에 오셨는데 되게 빨리···”
“집중력 포션 구매하겠습니다.”
“200포인트입니다. 허수아비 더미나 런닝머신은 70% 세일 중인데, 그래도 포션만 사시나요?”
“네, 그냥 포션만 주세요.”
나머지는 사치다. 당장 급한 물건 먼저 마련해야지. 고민 없이 바로 구매를 확정했다.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남은 포인트 : 90]
“집중력 포션은 용사냥꾼의 석궁 명중률 상승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섭취한 후에···”
나는 지온이 쥐고 있는 빨간색 포션을 낚아챈 뒤 서둘러 문을 열었다.
한가롭게 설명 들을 시간이 없었다. 이닝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나는 추락하는 느낌과 함께 목동구장 화장실의 변기 위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내 눈앞에 한 남자가 나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뭐야, 웬 그림자가···
“저기요··· 괜찮으세요?”
아 맞다.
화장실 문 잠그는 걸 깜박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