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창 쓰는 천재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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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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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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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집중력 포션

DUMMY

너무 급한 나머지 화장실 문을 잠그는 걸 깜박했다.


이걸 어쩌지.


“최이강 선수···? 기절한 건가?”


하필이면 날 또 아는 사람이라니.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야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아, 깨어나셨구나! 기절하신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드래곤즈 스카우터 이우종입니다. 혹시 어디 안 좋으세요? 손에 소화제 같은 게 있어서···”


상점창에 들어갔을 땐 자는 모습으로 보이는 건가.


난 서둘러 포션이 안보이게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아 예, 맞아요. 속이 더부룩해서.”


“얼른 마시고 들어가세요. 너무 무리해서 뛰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파이팅해요.”


“넵. 감사합니다.”


하필 만나도 드래곤즈 스카우터를 만나다니.


나는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와 포션을 들이켰다.


동료 타자들이 2점을 내며 분발해준 덕분에 내가 벤치에 복귀할 때쯤 이닝 교체가 이뤄졌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했네.”


벤치에서 대기하던 찬용이가 내게 글러브를 건넸다.


“내가 달리기는 너보다 빠르거든.”


별 탈 없이 마운드에 오른 2회초.


나는 5, 6번 타자를 속구와 체인지업의 배합으로 내리 삼진으로 잡아낸 뒤, 비교적 덜 까다로운 7번 타자에게 커브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약효가 돌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먹기 전이랑 큰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였다.


포션이 몸 전체에 돌기 시작한 걸까? 관중의 함성 소리가 사라졌다. 오직 내 심장 소리만이 귀에 들렸다.


전광판, 관중석, 벤치가 순서대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내 찬용이 마저 사라지며 내 시야엔 오로지 상대 타자와 포수 미트만 보였다.


투기장.


그곳에 내던져진 검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집중력이 올라 감각이 예민해진 탓일지는 몰라도 야구공의 실밥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커브 그립을 잡은 뒤, 난 세차게 팔을 돌렸다.


그리고 난 그 순간, 잘 먹힌 커브란 무엇인지 제대로 느꼈다.


쾅-


이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커브를 마스터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



어느 순간부터 이강이가 달라졌다.


아마 청룡기 우승하고 나서부터였나?


“공 잡아 달라고?”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좀 해줘라.”


개인훈련 하자며 과자를 사다 바치더니, 어느 날 갑자기 고등학교 내내 던지지도 않던 변화구를 던졌다.


짠돌이 녀석이 갑자기 돈을 쓰는 건 그렇다 쳐도···


백번 양보해서 개인훈련도 그렇다 쳐도···


그건 풋내기의 어설픈 체인지업이 아니었다. 관록이 느껴지는 변화구랄까.


“찬용아, 내 체인지업 어떠냐?”


“어떻긴 뭐, 지저분한 공이지.”


내가 이강이를 상대했다면 그 지저분한 공에 연달아 삼진 당했을 것이다.


원래도 잘했지만 지금은 고등학생 선수 같지 않다.


이강이는 누군가의 지시 없이 힘을 빼고, 주며 완급 조절을 했다.


마치 타자를 조련하듯이 말이다.


자신의 구속과 구위만 믿고 공을 세게 던지기만 하던 이강이는 이제 없다.


숙련된 프로.


포수란 투수를 리드할 줄도 알아야하지만, 지금 난 전적으로 이강이의 리드에 따른다.


“넌 그냥 미트만 대고 있어. 내가 거기다가 꽂아줄게.”


몸쪽으로 던질지 바깥쪽 던질지 한복판으로 던질지 제안할 뿐이다.


포수로서의 부담감이 줄어들었고, 결과는 내 타격감의 폭발이었다.


내 개인 성적이 좋아지게 된 것엔 이강이의 공이 컸다.


2회초 마지막 타자. 강속구를 내리 던지며 타자의 타이밍을 뺐었다.


이닝 종료까지 남은 스트라이크는 하나.


이강이는 내게 미트를 스트라이크존 가운데에 내밀라고 했다.


한 가운데에 변화구를 던지려는 건가.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이강이가 어떤 공을 던질지 기대하고 있었다.


공이 이강이 손을 빠져나온 순간, 난 그게 커브임을 직감했다.


커브는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내 미트에 꽂혔다.


그것도 아주 날카로운 각도로.


연습했을 때만해도 중구난방이던 커브의 제구가 잡혔다.


실전에서 집중을 더 잘 하는 실전파 투수인걸까.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커브로 잠재운 이강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대한민국 야구를 책임질 선수의 공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커브볼로 삼진 : 1개 진행 중···]


삼진을 잡아내자 주변의 시야가 회복되었다.


전광판엔 내 파워커브의 구속이 떠있었다.


138km.


들리지 않던 관중의 함성소리도 들려왔다.


“와 재능 미쳤다 진짜.”

“차세대 국대 1선발 확정이다.”


오로지 공을 던지기 직전의 순간에만 집중력 포션의 효능이 발휘되는 듯 했다.


약효가 도는 데엔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내 주변의 소리와 시야가 통제되며 그 상황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커브볼 좋은데?”


“감사합니다 감독님.”


관중석과 마찬가지로 벤치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찬용이랑 맞춰서 계속 던져 봐도 좋겠어. 물론 자주는 아니어도 구사율을 10%로 올려보자고.”


커브를 던져도 좋다는 벤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젠 커브를 부담 없이 던질 수 있었다.


타선 역시 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점수를 내줬다.


2회말, 하위타선의 뛰어난 눈야구로 1점을 추가하며 우린 3점차 리드를 가져왔다.


3회초.


할당량 달성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꽤 남아있었다.


남은 삼진 횟수는 9개.


보상이 높은 만큼 요구되는 할당량도 높은 거겠지.


비교적 공격력이 약한 하위타선인 만큼, 지금이 기회였다.


천호고 8번 타자.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삼진을 잡고자 하는 강력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변이 조용해지며 그와 독대하게 됐다.


나는 완급조절을 위해 조금 힘을 빼서 직구를 던졌다.


143km.


힘을 빼고 던졌다지만, 143km란 구속 역시 절대 만만한 게 아니다.


이번엔 비슷한 구속의 체인지업.


140km.


이 공이 직구라 생각했던 천호고 타자는 그대로 스윙을 휘둘렀다.


타이밍이다.


2스트라이크에 몰렸다지만, 공을 지켜볼 여지가 있었기에 파워커브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으면 될듯했다.


136km.


부상당했을 때 직구 최고구속이 지금 내 파워커브의 구속이라니.


건강한 몸이 좋긴 좋았다. 가장 중요한 건, 팔이 아프지 않아 회전각을 더 줄 수 있다는 점.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예상대로 공을 지켜보던 타자는 그대로 삼진 당했다.


승부가 끝나자 차단되었던 소리와 시야가 회복됐다.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커브볼로 삼진 : 2개 진행 중···]


“씨발!”


타자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배트를 집어던졌다.


본인의 결정에 대한 자책이겠지.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승부욕만 너무 앞서도 좋지 않다.


그때, 앳되어 보이는 9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안타 하나 가보자 막내야!”


좌타에 1학년이라.


타자의 눈빛엔 상위타선으로 올라가고자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카데미에서 일하며 저런 눈빛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어떤 공이든 쳐내겠다는 집념이 만들어낸 강력한 열망.


그걸 품고 사는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선수들의 눈엔 독기가 서려있다.


9번 타자를 노려보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구속을 올려서 상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구. 투심 패스트볼.


딱-


천호고 9번 타자는 154km의 패스트볼을 쉽게 커트해냈다.


조금만 더 배트 안쪽에 맞았으면 내야를 뚫었을 코스.


아니나 다를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9번 타자 커트 능력이 좋아 보이는데?”

“그러게요. 이강이가 꽤나 고생하겠어요.”

“힘 좀 빠지겠다. 1, 2번 쳐야할 애가 9번에 박혀있네.”


무엇보다도 상위 타선 타자들보다도 배트 스피드가 빨랐다.


강속구가 눈에 보일만큼 엄청난 연습벌레일 수도 있고, 천부적인 재능일 수도 있다.


상대를 하다보면 알 수 있겠지.


2구. 하이패스트볼.


구위가 좋다는 건 회전수가 높다는 뜻.


내 하이패스트볼은 회전수가 높아 상대 타자를 향해 일직선으로 가다가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즉, 스윙을 유도하기 쉽다.


딱-


어라···?


9번 타자가 쳐낸 공은 1루 쪽으로 높게 떠올라 뻗어갔다.


다행히도 공은 파울라인 바깥쪽에 떨어졌다. 정타로 맞았으면 넘어갔을 법한 타구였다.


찬용이 역시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도 파울 두 개를 이끌어냈으니 카운트는 내게 유리해졌다.


3구. 커브.


타이밍을 빼앗기 좋은 타이밍.


팡-


공을 지켜보며 내 커브를 순순히 보냈다.


분명 코스는 예리했지만, 스윙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역시 좌타에게 커브는 무리인가.


4구. 체인지업.


그래도 직구 구속으로 날아오는 체인지업이면 못 참겠지.


팡-


9번 타자는 체인지업을 골라낸 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마술의 트릭을 전부알고 있는 관람객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승부를 결정 짓기 위해 여러 구종을 던졌다.


하지만 15구를 던질 동안 승부를 끝내지 못한 채 이어가고 있었다.


난 그동안 5개의 패스트볼, 5개의 체인지업, 5개의 커브를 던졌다.


천호고 9번 타자가 커트해낸 공은 무려 12개.


2스트라이크로 유리하게 시작한 승부는 결국 풀카운트까지 가게 됐다.


하위 타선에서 힘을 많이 빼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쩔 수 없다. 변화구로 승부했다간 이 긴 승부가 볼넷으로 끝날지도 몰랐다.


직구의 힘으로 타자를 몰아붙여야했다.


16구. 존 한가운데의 투심 패스트볼.


딱-


높게 퍼올린 공은 목동 센터필드를 향해 높이 뻗어갔다.


중견수는 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내달렸고, 펜스에 부딪혀가며 간신히 잡아냈다.


힘겹게 만들어낸 2아웃.


뜬공이었지만, 사실상 홈런에 가까운 큰 타구였다.


체구도 그다지 크지 않은데 홈런성 타구라니.


승부가 끝나자 주변이 보이며 9번 타자의 등번호와 이름이 보였다.


저 녀석 이름이 뭐야?


정해수···?


프로에서 들어본 적도 없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뭐지···


생각해보니 천호고와의 경기에서 이렇게 땀을 뺀 적은 없는 듯했다.


저런 녀석이 있었나···


확실한 건 저 타자가 천호고 전체를 통틀어 제일 까다롭다는 것.


어찌된 영문인진 몰라도 승부는 계속 이어가야했다.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 천호고의 상위타선.


나는 1번 타자를 패스트볼로 압도했던 기억을 떠올려 손쉽게 2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모든 것이 차단된 마운드에서 난 커브 그립을 잡았다.


그리고 난 공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상대 타자가 헛스윙 할 것이라 직감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야 잘 긁힌 커브였으니까.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커브볼로 삼진 : 3개 진행 중···]


이제 남은 삼진 횟수는 7개.


내게 남은 이닝이 몇 이닝일지는 몰라도, 페이스를 올릴 필요는 있어보였다.



§§



[Scouting Report] - Lee kang Choi


Fastball: 65

Curveball: 35 -> 40

Changeup: 60 -> 65

Control: 50

Overall: 50 -> 55


4회초, 5회초. 최이강은 커브로 천호고 타자들의 혼을 빼놓았다.


그러면서 최이강에 대한 평가는 실시간으로 올라갔다.


조셉 리를 비웃었던 애리조나 스카우터 팀은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했다.


“미안합니다. 역대급 선수인 걸 인정해야겠군요.”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서울에 파견된 스타우터가 보낸 자료에 따르면 오늘 커브까지 던졌다고 합니다.”


“커브요?”


“처음엔 스카우터도 의심을 했다고 합니다. 근데 커브로 여러 타자를 잡아내고 있어요.”


애리조나 스카우터 팀은 실시간으로 불광고와 천호고의 경기 영상을 전달받았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영상을 본 뒤 점점 굳어갔다.


최이강은 낙차 큰 커브로 5이닝 만에 11개의 삼진을 잡고 있었다.


“그 중 커브로 잡은 삼진은 8개였습니다.”


“무슨 변화구를 저 나이에 저렇게···”

“저걸 어떻게 숨기고 야구를 해온 거야?”


당장 며칠 전에 계약 제안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스카우터 팀은 서둘러 해외 유망주 보너스풀을 확인했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200만 달러.


계약을 제안했을 때 다른 팀을 압도하기 위해선 이정도의 베팅은 필요했다.


“당장 계약을 진행해야할 것 같습니다. 혹시 최 선수의 에이전시 연락처 알고 있나요?”


그러자 조셉 리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게··· 에이전시가 없답니다. 미국 진출을 거부한 적이 있다더군요.”


“아니 무슨 저런 선수가 에이전시가 없어요. 정보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그래도 제가 알아온 번호가 있는데···”


“뭡니까?”


“최선수의 아버지 연락처입니다.”


***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현풍읍의 시골집에서 전화가 울렸다.


스포츠 채널로 최이강의 피칭을 지켜보던 최윤영은 응원하다 말고 전화기를 들었다.


“웬 국제전화가 왔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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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빛의 정령 24.06.05 607 15 14쪽
29 강화된 최형민의 사인볼 24.06.04 624 14 13쪽
28 스토브리그 24.06.03 646 15 14쪽
27 드래곤즈의 예상 라인업 24.06.02 690 14 13쪽
26 마무리의 꽃, 팀 회식 +1 24.06.02 720 16 14쪽
25 아이템 강화 망치 24.06.01 739 12 14쪽
24 마지막 청백전 +1 24.05.31 752 14 14쪽
23 데이트 24.05.30 774 14 14쪽
22 진열대 새로 고침 쿠폰 24.05.29 802 15 15쪽
21 두 번째 청백전 24.05.28 840 15 15쪽
20 새로운 진열대 24.05.27 882 17 14쪽
19 눈도장 찍기 24.05.26 905 17 15쪽
18 첫 번째 청백전 24.05.25 933 16 15쪽
17 마무리캠프의 시작 +1 24.05.24 973 18 14쪽
16 10억 팔 투수 +1 24.05.23 1,022 17 14쪽
15 KBO 신인 드래프트 +1 24.05.22 1,031 16 15쪽
14 허수아비 더미 24.05.21 1,044 21 14쪽
13 첫 번째 인터뷰 +1 24.05.20 1,076 17 14쪽
12 달콤한 휴가 24.05.19 1,109 22 14쪽
11 자랑스러운 아들 24.05.18 1,124 17 14쪽
10 봉황대기 결승전 +2 24.05.17 1,150 17 14쪽
9 소방수 최이강 +2 24.05.16 1,203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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