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로부터의 관심

고교야구 중계진은 최이강의 커브를 칭찬하기 바빴다.
“최이강 선수가 원래 강속구로만 승부하던 선수인데 커브까지 장착했단 말이죠?”
“네, 보시다시피 워낙 회전이 좋아서 천호고 타자들이 손을 못 쓰고 있습니다.”
“체인지업에 이어 커브까지··· 정말 대단하네요. 이 선수 어디까지 성장할지 기대가 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다시 한 번 커브볼로 삼진! 오늘만 벌써 11개째 삼진입니다!”
“이렇게 불광고가 5회초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3대 0 리드를 굳힙니다. 여기는 목동, 잠시 후에 찾아오겠습니다.”
중계카메라는 계속해서 최이강을 따라다녔다.
차세대 스타의 탄생.
그 현장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비록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전국 각지에 있는 불광고, 천호고 야구부 학부모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TV를 바라봤다.
자기 자식이 별 탈 없이 경기에서 뛰는 것.
그게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건 현풍읍에 거주 중인 최윤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윤영은 아들이 커브까지 던지게 된 걸 알게 되고 무척이나 감격했다.
아들이 첫 걸음마를 뗐을 때와 비견될 정도의 기쁨.
그게 지금 최윤영의 기분 상태였다.
“이야, 김여사. 우리 아들 공 진짜 좋다 그치?
“그러게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어째 프로경기 보는 거 같네.”
“안 다치고 드래프트까지 넘어가면 소원이 없겠네.”
최윤영에게 중요한건 최이강의 뛰어난 실력과 성적보단 건강이었다.
‘가늘고 길게 사는 편이 굵고 짧게 사는 것보다 좋다.’
그가 아들에게 줄곧 해오던 말이었다.
최윤영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혹사로 인해 프로에 데뷔하지 못했고, 야구에 대한 갈증을 사회인야구에서 조금이나마 풀고 있는 실정이었다.
부상이 야구에 끼치는 영향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자신의 아들 역시 걱정이 됐던 것이다.
급기야 세인트루이스의 제안을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최윤영은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는 미국 야구의 육성 시스템을 좋게 봤다.
‘그때 이강이한테 가자고 설득했어야했나.’
후회해도 늦었다는 걸 잘 아는 최윤영은 체념한 뒤 나지막이 한숨을 뱉었다.
“이강이 데려갈 팀이 관리를 잘 해주려나 모르겠네.”
“요즘 젊은 애들 확확 올리고 쓰더라고요. 이강이도 혹사 당할까봐 걱정이에요.”
한국 프로야구 특성상 실력이 뛰어난 유망주는 담금질 없이 1군에 올리는 실정이다.
빠른 데뷔가 최이강의 야구인생을 짧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최윤영 입장에서 아들의 활약은 양날의 검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될까 걱정인 것이다.
“이강이 돌잔치 때 야구공 집은 거 기억나지?”
“기억나죠. 윤영씨 당신이 엄청 좋아했잖아.”
“속은 아니었어. 괜찮은 척 했던 거지. 야구의 세상에서 팔은 소모품이 되어버려. 내 피붙이가 그런 고생하는 거 보고 싶겠냐만··· 어쩌겠어. 자기가 좋다는데.”
무엇보다도 최이강은 야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해보였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행복이 지속되길 바라는 건 당연했다.
“그럼 당신이 이강이한테 바라는 건 뭐예요?”
“그냥 뭐··· 건강하게 오래 야구하는 거. 그 뿐이지.”
최윤영이 자신의 소망을 입에 담자 중계진이 5회말의 시작을 알렸다.
아들이 속한 불광고가 리드 중이었기에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TV를 보려던 순간.
최윤영의 전화가 울렸다.
“번호가 왜 이렇게 길어? 이거 010이 아닌데?”
옆에서 사과를 깎아 먹던 최윤영의 아내 김현숙이 핸드폰 화면을 보더니 기겁했다.
“이거 국제 전화네. 받지 마요. 요즘 유행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랑 비슷해.”
최윤영은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연락이 왔을 수도 있잖아.’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재미교포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전 애리조나 스카우터 팀 조셉 리라고 합니다. 최이강 선수 아버지 맞나요?”
“네··· 그런데요?”
“계약 관련해서 물어볼게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어디···라고요?”
“애리조나입니다. 미국이요.”
최윤영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애리조나가 자신의 아들을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평가가 저번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을 말이다.
§§
제 3자가 봐도 압도적인 피칭.
5이닝 동안 볼넷은 0개, 삼진은 11개였다.
직구로 잡은 삼진 3개를 제외하면 전부 커브로 마무리했다는 게 지난 경기와 다른 점이었다.
1회초에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2회초, 3회초, 4회초, 5회초를 연속 삼자범퇴로 잡아냈다.
실투로 허용한 안타 하나와 큰 플라이를 제외하면 수비가 개입할 일도 없었다.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커브볼로 삼진 : 8개 진행 중···]
집중력 포션 덕분에 할당량도 수월하게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개수는 2개. 이변이 없다면 이번 이닝에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강이 오늘 살아있다?”
“나 아까 외야에서 그냥 글러브 빼고 있을까 생각했다니까.”
신이 난 외야수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집중해. 쟤네들 은근 한방 있어.”
내가 애들을 자중시킨 것엔 이유가 있었다.
방심할 때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위협적이던 타자와의 승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9번 타자.
뛰어난 컨택력으로 내 투구 수를 늘리며 끊임없이 괴롭혔었고, 끈질긴 승부 끝에 정타를 맞춰내기도 했다.
거기다가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는 장타력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내 구속이 빠른 만큼 받아칠 힘만 있다면 타구는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
즉, 내 강속구를 홈런으로 바꿔낼 수 있는 타자였기에 천호고 타자 중 기피대상 1호다.
그 타자를 6회초에 두 번째 타자로 다시금 만나야한다.
우리 팀 역시 천호고와 마찬가지로 삼자범퇴를 당하며 점수를 더 벌리지 못했고, 불안한 3점 차 리드를 이어가며 6회초를 맞이했다.
8번 타자.
집중력 포션 덕분에 주변 시야가 차단되며 긴장한 상대 타자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방망이를 쥔 손은 떨렸다.
계속되는 삼자범퇴에 부담이 생긴 거겠지.
나는 강력한 직구로 선두타자의 기를 눌렀다.
162km.
타자는 한복판으로 날아오는 공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나는 결정구로 커브를 활용하기 위해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눈 야구를 방해했다.
구속을 조금 더 낮춘 체인지업. 헷갈린 타자는 떨어지는 변화구에 헛스윙 했다.
외부 시야와 소리가 차단된 1대 1 투기장에서 상대방의 허점은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파워커브로 타자와의 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커브볼로 삼진 : 9개 진행 중···]
나는 집중력 포션의 효과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이제 보상까지 단 한 개의 삼진만을 남겨두고 있다.
정해수.
보상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 사실상 팀의 최고 실력자라 볼 수 있는 1학년, 9번 타자와 다시 만났다.
자신의 선배들도 긴장해서 떨고 있는 마당에 정해수는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급기야 배트로 나를 가리키며 자신의 승부욕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호기로운 등장이네.
정해수의 자극이 내 승부욕을 건드린 걸까, 집중력 포션이 극대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든 방해요소가 차단되며 오로지 내 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슈웅-
164km.
오늘 경기 최고 구속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모든 시야와 소리가 차단된 덕분에 사람들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은 채 곧바로 다음 공을 준비할 수 있었다.
슈웅-
체인지업을 던져봤지만 공이 바깥쪽으로 빠져버렸다.
좋은 공을 기다리는 습관까지. 보통 비범한 녀석이 아니다.
또 다시 체인지업.
딱-
가운데에 몰려버린 체인지업을 손쉽게 커트해냈다. 다행히 회전이 잘 먹혀 타구는 파울라인 바깥쪽에 떨어졌다.
2스트라이크.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지금이 기회였다.
난 곧바로 커브를 던졌다. 그리고 난 그 공이 나쁘지 않은 코스로 날아갔음을 직감했다.
딱-
어라?
보더라인에 걸친 커브를 또 다시 커트해냈다.
나는 그 순간 정해수에게 재능과 실력이 있음을 마음속으로 인정해버렸다.
근데 잠깐만.
그래서 어쩌라고?
기껏 해 봐야 고등학교 선수다.
프로의 정신과 기억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저런 햇병아리 타자 하나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내가 하던 대로 전력을 다하면 된다.
정해수는 어떤 공을 기다리고 있을까. 직구? 체인지업? 커브?
내가 저 타자라면 실투를 노릴 것이다.
내 커브는 구속이 빨라서 가운데로 몰리는 순간 넘겨버릴 수 있을 테니까.
내 변화구를 노려도 상관없다.
난 어떻게든 이 커브로 저 타자를 잡을 거다.
다시 한 번 집중해서 커브 그립을 잡았다.
슈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슬로커브. 빠른 공을 기다리던 타자는 느린 변화구에 밸런스가 무너져버렸고, 결국 결과는 헛스윙삼진이었다.
9번 타자가 아쉬운 듯 핼멧을 벗어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한창 승부욕 넘칠 나이지.
“나이스 커브!”
“이강아 고비 넘겼다!”
[할당량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 랜덤뽑기권]
드디어 보상인가. 할당량을 달성하니 마음이 한결 놓였고, 덕분에 맘 편히 커브를 활용했다.
결정구 뿐만 아니라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커브를 서슴치 않게 던졌다.
나는 이어지는 1번 타자 역시 커브를 결정구로 삼아 삼진을 잡았다.
세 타석 연속으로 삼진을 당한 1번 타자는 멘탈이 많이 나간 듯해 보였다.
6회초, 세 타자를 전부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깔끔하게 이닝을 마쳤다.
벤치에선 격려의 박수가 흘러 나왔다.
“1회초 실투만 아니었어도 사실상 퍼펙트인데?”
“퍼펙트 아니면 어떠냐! 그냥 네가 최고다 이강아!”
그때, 벤치 구석에 앉아있던 감독님이 나를 불렀다.
“오늘 고생했다. 여기까지만 던지자.”
“알겠습니다 감독님.”
“결승전 때 9이닝 내내 던져야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오늘 아이싱도 잘 하고, 다음 경기 잘 준비하자.”
“넵!”
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6이닝 무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결과는 6이닝 13K.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현저하게 높아진 삼진 비율이다. 내 기억 상 천호고와의 경기에선 삼진이 이닝 당 한 개 꼴이었을 텐데.
나는 벤치에 앉아 아이싱을 팔에 둘렀다.
근데···
차가운 느낌이 들어야하는데 왜 이렇게 무감각하지?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건 부상 전조증상이 아니다. 부상을 여러 번 당해본 나도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다.
급기야 주변 소리가 소음처럼 어지럽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벤치, 관중석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혼재되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야구··· 최이강··· 천호고··· 메이저··· 드래곤즈···”
어라···
조금 피곤한 기운이 드는 것 같았다.
집중력 포션의 부작용인걸까? 눈은 무거워지고 귀는 어지러워졌다.
술 취한 것처럼 이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뇌를 많이 쓴 탓일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이싱···
뭔가 따듯한 거 같기도 하고.
***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가 깨어난 곳은··· 침대다. 흰색에다가 삐거덕거리는 병실 침대.
어떻게 된 거지?
내 팔엔 수액 놓는 주사가 꽂혀있었고, 어느새 난 유니폼 대신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드냐?”
“코치님···?”
“너 하루를 꼬박 잤어. 지금 네 동료들은 8강전 중이다. 저기 TV 보이지?”
9회말, 강원고와의 경기에서 우리 팀은 8대 6으로 리드 중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1학년 재하가 삼진을 잡아내면서 경기를 끝냈다.
내가 잠에 든 사이 8강전은 원래 역사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살다 살다 아이싱하다가 기절하는 애는 처음 봤다 내가. 그래, 네가 많이 피곤하긴 했겠지.”
“벤치에서 그대로 쓰러진 겁니까?”
“그래 임마. 병원 데려가느라고 애먹었어. 근데 또 검진 해보니까 별 이상 없다고 그러더라.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 같다고. 그래서 지금은 좀 어때?”
“그냥 뭔가 좀··· 술 마신 것처럼 어지럽습니다.”
“뭐? 술?”
아차.
난 술에 찌들어 살던 30대 후반의 아카데미 강사가 아닌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깜박했다.
“어른들이 그렇게 다들 말씀하시더라고요. 술 많이 마시면 그렇게 어지럽다고···”
딱-
코치님이 손에 들고 있던 파일철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술은 성인되고 합법적으로 마셔라잉.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우리 팀은 예정대로 준결승에 올랐다.
당장 내일 준결승전이 열리고, 그 다음날에 결승전이 열린다.
즉, 내겐 이틀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때, 코치님의 전화기에서 트로트 노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이강아, 감독님이 너 바꾸시란다.”
“예, 감독님. 전화 받았습니다.”
“그래, 일어났단 얘기 들었다. 일단 푹 쉬고, 결승 진출 했을 때 등판해야하니까 최대한 휴식 줄 거다. 그때까지 회복 가능하겠냐.”
“물론입니다 감독님. 지금 당장이라도 훈련 가능합니다.”
여기서 못 뛴다고 하면 결승전 등판을 안 시켜줄지도 모르니 어떻게 해서든 뛰겠다는 확답을 줘야했다.
“괜히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전혀 지장 없습니다.”
교체만큼은 안 된다. 내가 결승전 마운드에 올라야한다. 원래 역사와 다르게 흘러가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약 내가 일찍 강판당하고 우리 팀이 지게 되면 드래프트 순위에도 변동이 생길 터.
난 어떻게 해서든 원래대로 활약해야 됐다.
“일단 뛰어보고, 너무 힘들면 그대로 내려와라. 무리하지 말고.”
감독님은 전화로 내 회복을 빌어줬다.
결승 진출 했을 때 선발출전을 확답 받았으니, 이제 변수는 없을 것이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이강 선수. 아까 인사드렸던 드래곤즈 스타우터입니다. 기억나시죠?”
화장실에서 그 꼴로 마주쳤는데 까먹을 수 있을 리가.
“아 네, 안녕하세요.”
드디어 올게 왔구나. 나를 데려갈 드래곤즈.
비록 과거에 비하면 타이밍은 늦었지만, 역사는 원래대로 흘러갈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혹시 이강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실 계획이 있으십니까?”
잠깐만··· 메이저리그?
과거의 내겐 묻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난 서둘러 핸드폰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로부터 부재중전화 수십 통과 문자 여러 개가 와있었다.
[이강아. 메이저에서 200만 달러를 불렀다]
200만 달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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