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대기 결승전

§§
20년간 한국 야구를 취재하며 수많은 기사를 써낸 우영애 기자.
그녀는 좋은 평판과 신뢰도로 한국 야구 최고의 기자로 정평이 나있다.
[KBO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우영애로 통한다.]
그게 대한민국 야구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수원 드래곤즈가 기사를 써 달라 청탁해왔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는 청탁 같은 건 안 받아요.”
실제로 우영애는 자신이 눈여겨보는 선수나 사건이 아니면 취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 고귀하신 야구단이 무엇 때문에 이런 부탁까지 하게 됐을지 궁금해진 그녀가 움직였다.
봉황대기 내내 불광고를 따라다니며 최이강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투수가 지금껏 있었나?’
우영애는 최이강을 강속구만 던질 줄 아는 햇병아리라 여겼다.
물론 구속이 상당했기에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한계가 명확한 투수라 판단했었다.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될 것이란 것엔 이견이 없었지만, 업종 관계자들 사이에선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 평가를 반전시키듯, 매 경기를 다양한 구종으로 압도했다.
어느 날은 체인지업.
또 어느 날은 커브.
1회엔 초등학생 수준의 커브를 던지더니, 2회부턴 프로급 파워커브를 던졌다.
한 이닝 만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벤치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딱히 중요하진 않았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야구 선수들을 취재한 그녀에게 최이강은 역대급 천재 투수였다.
“기자님, 최이강 선수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호고와의 경기를 보고 있던 우영애에게 다른 야구 관계자가 물어왔다.
“솔직한 마음으론 미국에 안 갔으면 좋겠네요.”
“왜요? 지금 가면 바로 메이저리그로 승격할 것 같은데.”
“한국에 남으면 야구 흥행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얼굴도 반반하고.”
그렇게 그녀는 드래곤즈의 청탁 때문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기사를 써낸 것이다.
[불광고 에이스 최이강··· 메이저리그로 향하나?]
그녀는 자신이 최이강의 활약상에 대한 예찬을 해놓았다는 사실을 완고를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영애는 기사에 최이강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뒀다.
첫 번째 장점은 MLB 평균구속에서도 상위권인 강속구.
두 번째는 구속과 구종을 마음대로 조절하며 상대 타자를 속이는 뛰어난 완급조절.
마지막으로 시기는 불명확하나 아무도 모르게 습득해온 변화구까지.
단점은 여전히 내구성이었다.
메디컬 테스트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최이강의 재능은 역대급이라는 걸 부정하긴 어려웠다.
우영애 기자는 자신의 걱정을 끝으로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
‘무작정 미국에 보내는 것보다 한국에서 아끼고 잘 키우면 대성할 거 같은데···’
그런 마음에 메이저리그 진출보다 한국 잔류를 고려해보란 뉘앙스를 풍기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목동 야구장에 와서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다.
봉황대기가 끝나면 최이강과의 단독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우영애는 자신이 올린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훑어봤다.
“뭔 죄다 얼굴 얘기밖에 없어? 야구 실력 가지고 얘기해야지. 하여튼···”
그녀는 마운드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공을 뿌려대는 최이강을 바라봤다.
6이닝 퍼펙트. 흠잡을 데 없는 실력이었다.
“뭐··· 잘생기긴 했네.”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완봉승을 달성하세요]
[보상 : 랜덤뽑기권]
불광고 0 : 0 신현고
나는 완봉승을 위해 열심히 내달리고 있었다.
승부는 아직 0대 0으로 양 팀 모두 한 점도 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까지 안타와 볼넷 하나 내주지 않은 채 6이닝을 막아왔다.
퍼펙트게임에 대한 설왕설래가 벤치에서 오고 갔다.
“코치님, 이번엔 이강이 진짜 퍼펙트게임 하는 거 아닙니까?”
“나도 제발 그러길 바란다. 하기만 하면 고교야구 역사야 역사.”
“야 우리도 점수 좀 내주자. 저기 선발 못 던지잖아.”
벤치에 앉아 우리 팀의 공격을 지켜보던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퍼펙트 했다기엔 실수가 있었지.
지금까지 몇 차례 실투가 있었지만 타구에 힘이 실리지 않아 다행히 잘 막아낼 수 있었다.
6회말 1사 1루. 찬용이의 타석.
“야, 찬용아! 큰 거 하나 가자!”
딱-
상대 투수가 던진 직구를 찬용이가 받아쳤고, 우중간 펜스 앞에 떨어졌다.
선행 주자는 3루에 멈춰 섰으며, 찬용이는 재빨리 2루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슬라이딩을 하는 순간.
“끄아악!”
찬용이의 비명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찬용이는 무릎을 붙잡고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빨리 앰뷸런스 오라 그래!”
“오른쪽 다리 돌아간 거 아니야?”
그 부상의 정도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다리가 휘어져 있었다.
그때, 감독님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경기장으로 나갔다.
“아니 심판, 2루수가 주루방해 했잖아요. 이거 퇴장 줘야하는 거 아닙니까?”
“감독님. 판정은 저희가 하고, 지금 당장은 상황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하 참. 지금 애 다리가 부러졌는데 뭐하자는 거야 지금!”
코치님이 순식간에 달려 나가 감독님을 말렸다. 심판도 무안했는지 감독님을 따로 퇴장시키진 않았다.
물론 신현고 2루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현고 2루수는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실려 가는 찬용이에게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불펜에서 투수 공을 받아주던 현재가 두 경기 연속으로 교체 투입됐다.
흐름이 끊긴 탓일까. 우리는 1사 2, 3루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0대 0 승부를 이어갔다.
“씨발···”
나와 볼배합을 맞추던 찬용이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내가 무실점으로 경기를 해오던 것엔 찬용이의 리드 덕분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찬용이는 투수를 배려해주고 다독여주는 것에 특화된 선수였다.
경기야 현재와 다시 맞춰 가면 되지만, 가장 친한 동료가 억울하게 다친 게 마음에 걸렸다.
과거엔 일어나지 않았던 일.
그래서 더 죄책감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선배님, 이제 올라가셔야합니다.”
현재가 내게 글러브를 내밀었다.
“그래. 잘할 수 있지?”
“예. 준비됐습니다.”
7회초. 나는 악에 받친 채로 마운드에 올랐다.
승부욕이 넘치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난 거침없이 속구를 뿌려댔다.
158km.
160km.
163km.
오로지 3개의 직구로만 상대 1번 타자를 잡아냈다.
“점점 구속 올라간다. 이러다 최고 구속 찍는 거 아니야?”
“오늘 이강이 165km 보여주는 거야?”
악에 받친 건 비단 나뿐이 아니었다.
내 초구를 건드린 2번 타자의 땅볼은 내야를 빠져나가는 듯 했으나, 어느새 나타난 시현이가 잡아냈다.
동료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슬라이딩했으며, 눈엔 두려움이 없었다.
2아웃.
다음 상대는 신현고 3번 타자.
내가 벼르고 있던 2루수였다.
마음 같아선 등이나 팔 쪽에 공을 맞추고 싶었지만, 퇴장을 당해선 안됐기에 꾹 참았다.
할당량이 완봉승만 아니었어도···
그러다 문득 그에게 신체적 고통보단 정신적 고통으로 복수하고 싶어졌다.
공을 건드리지 못하는 치욕을 느끼도록 말이다.
난 정확히 바깥쪽을 조준한 뒤 속구를 던졌다.
슈웅-
“스트라이크!”
넌 내 공을 칠 수 없다.
그걸 상대 타자의 머리에 각인 시킬 것이다.
사과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열 받진 않았을 것이다.
상대 선수에게 존중 따위 없는 선수는 야구선수의 자격이 없다.
무자격엔 무자비로 대응하는 법.
슈웅-
“스윙! 스트라이크!”
139km의 체인지업.
쳐볼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배트가 나왔다.
어림도 없지.
예리하게 떨어진 공은 배트 근처에 닿지도 않았다.
그리고 난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공으로 이닝을 끝낼 것이라 확신했다.
슈웅-
팡-
경쾌한 소리.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165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한복판으로 날아갔지만 상대는 배트를 내두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삼자범퇴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나는 벤치로 되돌아갈 때 웃으며 상대 2루수를 쳐다봤다.
내 가벼운 도발에 넘어온 건지 그 역시 나를 매섭게 째려봤다.
“165km 찍혔다 이강아!”
“진짜 같은 팀이어서 다행이지, 상대팀이면 타율 얼마나 까먹었을까 싶다.”
7회말. 우리 팀은 하위타선임에도 상대 투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6번 타자인 시현이는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갔다.
하지만 후속 타자가 병살을 치며 그 의미가 옅어졌다.
8번 타자가 뛰어난 눈야구로 10구 승부 끝에 1루로 나섰지만, 다음 타자의 내야 플라이로 결국 7회 말에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8회초.
정신 차리고 보니 과거보다 좋은 경기력으로 게임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7이닝 3실점이 아닌 7이닝 무실점.
퍼펙트게임과 완봉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6개.
기록에 연연하면 안타를 맞는다는 미신 때문에 신경은 안 쓰려고 하는데···
“퍼펙트게임하면 오늘 치킨 쏘냐?”
“MVP 확정인데 당연히 쏘겠지.”
꼭 다른 녀석들이 난리다.
“자꾸 바람 넣지 마라. 신경 쓰이면 제대로 못한다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설레발 친 업보가 내게 돌아왔다.
상대 4번 타자가 가운데로 몰린 커브를 쳐내버린 것이다.
죄측 펜스를 강타하는 2루타.
예상치 못한 장타를 맞은 탓일까, 급기야 5번 타자에겐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무사 1, 2루.
거듭되는 출루허용에 내가 지쳤다고 판단한 건지 벤치에서 투수코치님이 걸어 나왔다.
마운드에 올라온 코치님이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감독님이 더 던질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시네. 이강이 여기까지만 하고 내려갈래?”
“아니요. 저 더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번에 삼진으로 잡고, 고의사구 내준 다음 병살 유도하자. 어제처럼, 알지?”
어제처럼.
만루 상황을 지키기 위해 소방수가 됐던 나.
이제 내가 내 스스로의 소방수가 되면 된다.
“1점주면 내려오는 거로 하자 이강아. 그땐 너무 서운해 하지도 말고. 팀이 이기는 게 우선이니까.”
작전대로 이뤄지려면 6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워야했다.
땅볼이나 뜬공을 유도하는 건 당장으로선 리스크가 있는 행동이었다.
‘체인지업 던지시죠 선배님.’
초구부터?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현재의 볼배합을 믿어보기로 했다.
1구.
딱-
6번 타자가 걷어 올린 타구가 포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난 포수가 자리를 비운 홈플레이트로 즉시 달려갔다.
현재는 안전하게 뜬공을 처리했다.
“쟤 스윙할 줄 알았어?”
“전 타석부터 초구에 배트 나오더라고요. 체인지업을 가운데 던지면 빗맞을 것 같아서···”
“준비하고 있었구나?”
나는 현재를 향해 씨익 웃어준 다음 다시 마운드에 섰다.
현재를 더 믿어도 되겠는걸.
그리고 우린 작전대로 고의사구를 진행했다.
이제 홈 플레이트를 제외한 모든 베이스에 주자가 서있다.
1사 만루.
이제 병살만 유도하면 된다.
체인지업만큼 병살을 유도하기 좋은 공은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그립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상대를 향해 공을 던졌다.
체인지업이 너무 아래에 제구 되지 않도록 공이 보더라인 아래쪽에 걸쳐야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신 후, 와인드업을 마쳤다.
슈웅-
코스는 좋은데···
딱-
공이 너무 높게 떠버렸다. 외야로 벗어나는 공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정도 거리의 뜬공이라면 희생플라이가 될 것이라고.
3루 주자는 태그업을 하기 위해 3루 베이스에 발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다행인 건 타구가 생각보다 그리 멀리 뻗지 않았다는 것이다.
좌익수인 도연이가 공을 잡고 홈 플레이트를 향해 공을 던졌다.
체구가 있는 편인 4번 타자는 덩치에 안 맞게 열심히 쇄도했다.
도연이가 던진 공은 현재의 글러브에 정확히 꽂혔고, 현재는 서둘러 태그했다.
“아웃!”
홈보살. 도연이의 미친 송구로 위기 상황을 모면했다.
“미친. 이강이 너 진짜 치킨 사야겠는데?”
홈보살로 상대 주자를 잡은 도연이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벤치로 복귀했다.
“도연아 고맙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위기를 넘기고 찾아온 8회말. 동료들은 나를 위해 점수를 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지금 이닝에서 점수를 내면 승기를 잡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딱-
1번 타자 도연이가 밀어친 공이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하지만 신현고의 투수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타자들은 신현고 계투들의 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사이 도연이가 도루를 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2번 타자, 3번 타자가 내리 아웃되며 2사 2루의 상황이 4번 타자에게 주어졌다.
부상당한 찬용이 대신 타석에 들어간 건 현재였다.
“현재야! 네가 우리 팀 미래다!”
“홈런 하나 가보자!”
“도연이 발 빠르니까 안타여도 괜찮아.”
현재는 차분히 공을 기다렸다.
상대방의 볼배합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1스트라이크 2볼.
현재는 비교적 유리한 카운트에서 스윙 기회를 잡았다.
딱-
맞는 순간 투수도 직감하는 홈런이 있다.
상대 투수가 던진 슬라이더가 현재의 배트에 정확히 맞았다.
투수는 타구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마운드에서 고개를 떨궜다.
공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멀리 뻗었다.
“홈런이다!”
현재의 타구는 목동 야구장의 전광판을 넘겨버리는 대형타구였다.
2대 0.
오랜 기다림 끝에 경기가 우리 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