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인터뷰

처음 민희를 본 건 중학생 때였다.
야구부 생활을 하면서 반에 자주 가지 못했지만, 민희는 내가 올 때마다 관심을 보였다.
‘야구 재밌어?’
‘홈런 쳐본 적 있어?’
‘투수면 삼진 잡아봤겠네?’
쉬는 시간만 되면 수많은 질문 세례로 나를 괴롭혔다.
예쁜 친구였기에 처음엔 그 관심이 기뻤지만, 질문에도 정도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질문 공세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민희는 나를 순전히 야구 심심이, 혹은 야구 GPT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별 다른 호감 없이 우린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민희가 나를 찾아오지 않은 건 그때부터였다.
아무 때나 이유 없이 찾아오던 애가 갑자기 나를 찾지 않으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겼다.
급기야 훈련으로 자리를 비울 때, 반 친구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혹시 민희가 나 찾아온 적 있어?”
“방송부 천민희? 그런 적 없는데?”
이제 물어볼 게 다 떨어진 건가.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민희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그리고 그때, 민희를 좋아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나는 민희가 나만큼이나 야구에 진심인 게 좋았다.
방송부였던 민희는 우리 학교 야구부의 경기 일정과 결과를 방송했을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민희와 다시금 같은 반이 됐다.
민희는 가끔씩 내게 달콤한 껌을 주며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곤 했다.
“야구 선수들은 껌을 자주 씹더라고. 이강이 너도 먹을까 싶어서.”
콜라맛 풍선껌.
나는 혹여 다른 야구부원들도 받은 건지 남몰래 둘러보곤 했었다.
나만 받았다는 걸 알았을 때,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었다.
그래도 난 호의와 호감을 구분할 줄 알았다.
아무래도 민희가 아깝지. 워낙 야구에 진심이라 날 좋아할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지금 민희가 내게 말을 건 것도 단순히 호의에서 비롯된 응원 목적일 거라 짐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따가 2교시 때 실내 연습장으로 오라고 전달하라 하셔서.”
“정말? 누가?”
“우영애 기자님이!”
어라··· 근데 그걸 왜 민희가 전달하는 거지?
“방송부도 같이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내가 너 찾아온 거야.”
“아 그렇구나. 난 또··· 그럼 민희 너도 오겠네?”
“응 나도 가. 그나저나 이번에 우승했다며? 축하해.”
민희는 싱긋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별 뜻 없는 행동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강이 너 3반이지? 나 이동 수업가야해서 그만 가볼게. 이따 봐!”
“그래. 이따 보자.”
방금 손을 너무 어색하게 흔든 거 같은데.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손 인사가 나한텐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지.
나란 인간은 나이 먹고도 이러고 앉아있네.
나는 반으로 들어가서 맨 뒷줄에 비어있는 책상에 앉았다.
옆에 짝꿍도 없는 사실상 운동부 지정석.
왕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반 친구들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쟤는 이름이 뭐였더라···
더군다나 난 20년 만에 학교로 온 터라 누가 누군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빨리 수업이나 시작했으면 좋겠네.
난 인사를 걸어오는 이름 모를 애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짓기 바빴다.
아무렴 어때. 1교시만 참으면 되는 건데.
그랬는데···
“이강아!”
“이강아 일어나봐!”
응···?
눈을 떠 보니 민희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깼다! 이강아 얼른 가자. 기자님 기다리셔.”
아뿔싸.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어느새 잠에 들어버렸다.
난 곧장 민희를 따라 실내연습장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가며 전신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더니 와플 기계에 눌린 것처럼 자국이 나있었다.
하필이면 민희랑 같이 걸어가는데 얼굴에 자국이라니···
“우영애 기자님이랑 인사 나눠봤는데 정말 좋으시더라. 이강이 너 칭찬도 하시던데?”
내 속도 모르고 민희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민희에게 눈길을 안 준 채 그저 앞만 보고 대답했다.
“아 그래? 좋은 사람이라니까 다행이다. 인터뷰 걱정했는데.”
“근데 이강이 너··· 아까부터 왜 사람 눈을 안 마주쳐?”
“어? 내가 그랬나?”
나란히 걷던 민희가 잰걸음으로 내 앞에 오더니 나를 쳐다봤다.
“지금도 그러잖아!”
“알았어, 알았어. 쳐다볼게.”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튼, 1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 기자님 말씀으론 인터넷에도 영상 올라간다더라고.”
민희가 이것저것 설명하는 동안 어느새 우린 강당 옆에 있는 실내 연습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방송부로 보이는 학생들이 우영애 기자와 그 일행들과 함께 인터뷰를 준비 중이었다.
나는 기자님의 부탁에 따라 교복에서 야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학생 최이강에서 야구부 최이강으로 돌아온 나는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역시 유니폼이 더 편하네.
그때 민희가 내게 다가와 옷깃에 마이크를 차줬다.
“인터뷰 잘해! 지켜보고 있을게.”
“고마워.”
좋은 향기. 섬유유연제인지 향수인지 몰라도 엄청 자연스럽고 달콤한 향기였다.
인터뷰 전 목을 가다듬는 순간, 찬용이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이제 다들 모였네요. 그럼 우리 준비 다 되는대로 인터뷰 시작해볼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본격적인 인터뷰는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그건 방금 도착한 찬용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강이 너 따로 멘트 준비해온 거 없지?”
“준비했겠냐. 오늘이 인터뷰날인 것도 몰랐어.”
“그건 좀 문제 있는 거 같은데?”
“쓸데없는 얘기는 됐고, 다리는 좀 어때?”
“3개월 정도 재활하면 된대. 안 그래도 의사가 부상 때문에 지명 순위가 뒤로 밀리지 않을까 예상하더라.”
찬용이는 지금 1라운드에 뽑힐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렇지만 부상으로 인해 밀리게 된다면 드래곤즈에게 뽑힐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서로 떨어지게 될 줄 알았는데.
불행 중 다행인건가.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 옆 조명이 켜지며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된다.
스포트라이트라는 건 이런 거겠지.
앞으로 이런 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빛이 날 떠나지 않길 바랄뿐이다.
“자! 쓰리, 투, 원!”
§§
카메라맨의 큐 사인과 함께 우영애가 입을 뗐다.
“고교야구 최고의 배터리 최이강 선수와 유찬용 선수를 모셨습니다. 우선 두 분 우승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럼 한 분씩 카메라에 대고 인사해주실까요?”
최이강은 인터뷰 경험이 있는 것처럼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불광고 투수 최이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불광고 3학년 유찬용입니다.”
그에 비해 유찬용은 아직 어색한 듯 시선처리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유찬용이 귀여웠는지 우영애가 미소를 지었다.
“당장 이번 주에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잖아요? 다들 원하시는 팀이 있나요?”
“저나 이강이나 수원 출신이다 보니까 드래곤즈에 가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럼 이강 선수에게도 물어볼게요. 혹시 최고대전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최고 대전.
야구에선 vs 게임이 흔하다.
미디어는 주로 유망한 두 선수를 묶어 라이벌리를 구축해왔다.
이는 최고대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광고 오른손 투수 최이강. 상동고 왼손 타자 고영득.
두 선수 중에서 누가 전체 1순위 지명 타이틀을 가져갈지가 최근 야구계의 화두였다.
물론 최이강이 선두에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대급 구속과 어느 순간 갑자기 장착한 변화구까지.
내구성에 의심이 들 순 있지만, 최고의 유망주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최고 대전이란 이름 붙게 된 건, 고영득의 천부적인 재능 덕분이었다.
상동고 타격 기계. 컨택의 귀재.
고영득은 당장 프로에 올라와도 150개의 안타를 칠 수 있단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컨택력을 자랑한다.
어느 팀에서건 즉시 전력 감으로 손색이 없는 타자.
그게 고영득이었다.
“수원 드래곤즈는 이강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고영득 선수를 뽑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제 마음으론 이강선수와 찬용 선수가 1,2라운드에 뽑혔으면 하네요.”
“저희도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로컬보이.
구단의 연고지와 고향이 같으면 선수도 팀에 더 애정을 가지기 마련이다.
최이강, 유찬용은 수원 토박이로 드래곤즈에 대한 열망이 다른 선수들보다 더욱 커보였다.
“이제 사실상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다들 기분이 어떠세요?”
“찬용이나 저나 10년 동안 야구를 했는데, 그 빛을 보는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프로 되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저도 이강이랑 같은 생각입니다. 지명 된다면 어느 팀이건 다 좋을 거 같아요. 정말 프로가 된다는 거니까요.”
우영애 기자는 이 둘의 진지한 마음에 감명 받았는지 옅은 미소를 띠었다.
프로가 될 자격이 있는 선수.
우영애는 이 두 선수가 요즘 같은 시기에 보기 드문 어린 선수들이라 생각했다.
“두 분의 배터리는 고교 야구에서 워낙 유명하잖아요. 이제 앞으로 합을 맞출 수도, 못 맞출 수도 있는데 서로에게 한 마디 해줄까요?”
두 선수는 부끄러운지 서로의 눈을 피하며 웃어댔다.
이내 정신 차린 유찬용이 실실 웃으며 입을 뗐다.
“이강아. 우리 중 고등학교 같이 나오면서 고생했는데, 같이 잘 큰 거 같아서 보기 좋다. 상대팀으로 만나면 홈런 쳐줄게.”
유찬용은 가볍고 신속하게 말한 반면에 최이강은 계속 어색해하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더니 최이강의 표정이 일순간에 진지해졌다.
“찬용아. 우리가 합 맞춰온 시간만큼 아쉬움도 크겠지만, 넌 정말 멋진 포수가 될 거야. 난 알아. 나도 열심히 해서 롱런하는 프로선수가 되어볼게. 같이 열심히 하자.”
서로간의 메시지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이강의 말에 별 생각 없어 보이던 유찬용 역시 감동 받은 듯했다.
“보기 좋네요. 그러면 불광고 방송부원 중에서 질문 하실 분 있을까요?”
그때 방송부원들과 함께 있던 천민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최이강 선수에게 질문 있습니다. 프로가 됐을 때 목표는 뭔가요?”
그러자 최이강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녀석 부끄러워하는데 이유가 있었네.’
눈치 빠른 우영애는 두 사람간의 묘한 감정선을 포착했다.
“제 꿈은··· 가늘고 길게 프로 생활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겸손한 답변에 우영애는 적잖이 당황했다.
“좌절을 많이 맛보는 것보단,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기록을 쌓아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구체적인 목표는 없을까요? 100승이라든지··· 다승왕 타이틀이라든지···”
“그거 좋네요. 다승왕. 그런 타이틀 하나 정돈 받아보고 싶습니다.”
최이강이 답변을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겸손한 태도에 유찬용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런 선수가 프로에 많아야할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일단 이 정도로 1부는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진행할게요.”
우영애는 스스로가 최이강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고교 최고의 선수인 만큼 그 포부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했다.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는 선수들은 으레 기고만장하기 마련이지만, 최이강은 달랐다.
최이강은 인터뷰 내내 자신은 아직 배울 게 많은 사람이란 태도로 일관했다.
우영애는 그런 최이강에게 큰 감명을 받았는지 질문이 많아졌고, 어느새 예정된 인터뷰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간을 딱딱 지키는 우영애 기자였기에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영애 선배님 이런 적 있었나?”
“그러게. 벌써 3시간째야. 쟤들 배고프겠다.”
“나도 배고파 죽겠다. 꼬르륵 소리 들려?”
“들려. 그나저나 저 친구 어째 애 같지가 않네.”
우영애 기자와 그 일행은 최이강의 성품에 감탄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가늘고 굵고를 떠나서 최이강은 롱런할 선수가 될 거라고.
§§
정신없는 인터뷰가 끝난 뒤 나는 교실로 돌아와 5시까지 꼼짝없이 수업을 들어야했다.
수업이 지루했냐고?
아니다.
어느 순간 나는 민희와 만나는 순간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종례까지 하게 된 것이다.
찬용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기숙사에서 뒹구는 동안에도 난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민희가 너무 좋은데.
이를 어쩌지.
민희에 대한 생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찰나.
퀘스트 알림이 내 달콤한 상상을 비집고 떠올랐다.
[야간 퀘스트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스쿼트, 숄더 프레스, 각 5세트]
[보상 : 20 포인트]
잡생각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다행인 걸까.
나는 야간 퀘스트를 위해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야자가 끝나고 10시를 넘긴 학교는 상당히 조용했다.
찬용이는 기숙사에서 휴식 중이고, 후배들은 리그 경기를 하러 갔으니 헬스장은 텅 비어있겠지.
다행히도 야간 퀘스트가 야구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보니 달성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달콤한 향기가 내 코를 찔렀다.
어라··· 어딘가 익숙한 향기인데.
고개를 돌린 순간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 민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찰나의 순간 동안 민희를 불러 세워야 할지말지 수없이 고민했다.
그건 마운드에서 수 싸움 할 때처럼 긴박하게 느껴졌다.
도망가야 할까. 승부를 해야 할까.
그리고 난 재빨리 결정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직구를 던지기로.
“민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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