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창 쓰는 천재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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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말론
작품등록일 :
2024.05.08 13:50
최근연재일 :
2024.06.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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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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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허수아비 더미

DUMMY

불광고 정문엔 나와 민희뿐이었다.


민희를 부르고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잔잔한 가을바람 소리만이 귀에 들렸다.


너무 다급한 말투로 말했나.


곧장 후회가 됐지만 민희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른 잡생각은 사라졌다.


조금 추운지 교복 위에 걸친 체육복과 공부에 집중하느라 썼을 안경.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부르길 잘했네.


“어···? 이강이 네가 왜 여기 있어? 야구부는 원래 10시면 기숙사 못 나오지 않아?”


“1, 2학년끼리 대회에 나가서 코치님이 없어. 그래서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민희 너는 어쩌다 지금 집 가?”


“난 자기소개서 정리 좀 하고 있었어. 집에선 야구 관련된 게 금지거든.”


“뭐라고? 왜?”


“부모님이 싫어하셔. 아빠는 내가 회사에 취직하는 걸 더 보고 싶어 해.”


“그렇구나···”


항상 밝은 것처럼 보였던 민희에게 이런 속사정이 있을 줄이야.


나는 부모님이 응원해줬는데도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란 목표를 달성했던 민희가 문득 대단해보였다.


“열심히 준비해서 꼭 아나운서가 될 거야. 언젠간 우영애 기자님처럼 선수들 인터뷰도 하고 싶어.”


“넌 꼭 멋진 아나운서가 될 거야.”


“고마워. 인터뷰하게 되면 너 먼저 해줄게.”


“오늘 질문하는 거 보니까 엄청 잘하던데? 뭐랄까··· 야구를 엄청 공부한 게 티 났어.”


민희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미치도록 귀여워서 나도 따라 웃었다.


“그나저나 이강이 너는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과거의 나라면 헬스장에 간다고 곧이곧대로 말했겠지만···


지금의 난 그렇게 말하면 그대로 안녕인 걸 알고 있는 눈치 빠른 남자다.


“난 불광천 걸으면서 운동 조금 할라고. 민희 너는?”


“나도 불광천 걸어서 집으로 가!”


“그래? 그럼 데려다 줄게.”


“정말? 고마워! 안 그래도 너무 늦어서 걱정했는데. 너 있으면 든든하겠다.”


자연스럽게 데려다줄 수 있게 됐는데도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었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민희와 걸었다.


학교 입구를 지나고···


불광천에 들어서고도 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20년 만에 만난 민희에게 대체 어떤 화두를 던져야할까.


“이강이 너··· 내가 말 안하면 말 안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이상함을 감지한 민희가 내게 물었다.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야···”


“말을 걸어줘야 나도 말을 하지. 아까부터 계속 나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나는 고심 끝에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혹시 야구는 어쩌다가 좋아하게 됐어?”


“야구··· 나 혼자 갑자기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 우리 중학교 때 애들이 야구하는 거 보면서 룰이 궁금해지고 그랬지.”


“내 영향도 있겠네? 나 그때 야구부였으니까.”


“엄청 있지.”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지한 반응이라니.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강이 너 야구하는 거 보고 엄청 멋있다고 생각했어. 고등학교 때는 나도 공부하느라 바빠서 볼 시간은 없었지만.”


“정말···? 듣기 좋은 말이네.”


우리 사이에 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서로 눈치를 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민희는 이런 곳에 사는 구나.


시골에 있는 내 본가와 달리 민희의 집은 수원 야구장 근처에 있는 고층 아파트였다.


우린 정문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색해라.


어쩌면 지금 민희는 내가 침묵을 깨주길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남자가 용기를 낼 줄도 알아야지.


“그··· 민희 네가 야구 좋아하니까 물어보는 건데··· 혹시 드래프트장 같이 갈 생각 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작정 데이트하자고 하기엔 명분이 없었다.


민희가 당황하지 않도록 야구를 구실로 삼는 편이 좋아보였다.


“뭐? 근데 너 한국에 남기로 결심한 거야?”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일단은.”


“좋아.”


“뭐?”


“너 한국에 남는다면야. 같이 가자 드래프트장.”


“평일인데 괜찮아?”


“현장체험학습 신청하고 가면 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래. 그럼 목요일 수원역에서 보자.”


“데려다줘서 고마워 이강아. 초대해준 것도 고맙고. 조심히 돌아가!”


민희는 내게 싱긋 웃어 보이곤 집으로 들어갔다.


같이 갈 일행도 생겼으니 한국에 정말 남아야겠지.


내가 한국에 남겠단 결심을 한 건 우영애 기자와의 인터뷰 때였다.


난 지난 프로 생활동안 이룬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다 문득 미국행이 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 도망친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증명하려는 욕구가 큰지 모험하려는 욕구가 큰지 스스로 저울질 해본 결과, 난 증명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모험은 내가 자란 곳에서 증명하고 떠나도 늦지 않다.


무엇보다도 난 이 동네가 너무나도 좋다.


마침 근처에 있는 불 꺼진 수원 야구장 앞을 지나갔다.


내가 저 곳에서 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20년 뒤 영구결번 유니폼이 걸릴 곳이 텅 비어있다.


하긴, 이때만 해도 수원 드래곤즈는 창단 10주년이었으니까.


“팔만 괜찮았다면 나도 영구결번이 됐을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된 후 미국에 진출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까짓 거 안 될게 뭐야.”


우선 훈련을 게을리 하면 안 되겠지.


[야간 퀘스트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스쿼트, 숄더 프레스, 각 5세트]

[보상 : 20 포인트]


난 서둘러 학교 헬스장으로 달려가 원판을 끼웠다.


난 내가 후일 감당해야할 무게를 상상했다.


“이건 별 것도 아니지.”


30kg? 50kg? 70kg?


내가 견뎌 내야할 프로의 무게감은 그보다 한참은 더 무겁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체와 어깨로 큰 무리 없이 무게를 칠 수 있었다.


[할당량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 20 포인트]


드디어 목표치인 350 포인트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난 서둘러 기숙사에 올라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상점창.”


포인트를 다 모으고 상점에 가는 기분은 또 남달랐다.


지금껏 샘플이나 값싼 물품을 사왔고, 가끔 랜덤뽑기권을 썼으니 이정도 소비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강님! 이번엔 한가득 포인트를 모아 오셨네요. 물건을 사러 오신 건가요?”


지온은 오늘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줬다.


“허수아비는 아직 세일 중인 거 맞죠?”


“네 맞습니다. 허수아비 더미를 사시게요? 원가는 500 포인트인데 할인 들어가서 지금은 350 포인트입니다.”


고민할 것도 없지. 빨리 매대에 있는 물건들을 사야 다른 물건들을 볼 수 있으니까.


“구매 확정하겠습니다.”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남은 포인트 : 0]


지온이 들고 있는 건 동전 크기의 칩이었다.


“이게 뭔가요?”


“이 칩이 허수아비 더미입니다.”

칩을 바닥에 던지자 그 위치에 허수아비 더미가 생성됐다.


“설치가 쉬운 만큼 수거도 쉬워요. 여기 당근 코를 잡아당기면 다시 칩으로 변합니다.”


역시 이종족 물건인만큼 그 사용방법이 독특했다.


“허수아비 더미는 신기한 물건입니다. 이대로 들판에 설치하면 그저 평범한 허수아비겠지만···”


지온이 허수아비 더미를 내버려둔 채 창고를 뒤적거리더니 검을 꺼내왔다.


그리고 허수아비에게 검을 건네자 허수아비가 얇은 나무손으로 검을 꼭 쥐었다.


“검이나 총을 쥐어주면 이를 이용해서 근처에 오는 것들을 처리하죠. 일종의 디펜스 타워처럼 말이죠.”


삭-


어라···?


바닥에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파리가 반 토막 난 채 떨어져있었다.


“조금 무서운데요.”


“하지만 포인트를 준다면 얘기가 다르죠.”


“포인트요?”


“허수아비는 팔을 휘두를 때마다 사용자에게 1포인트씩 줍니다.”


사실상 돈을 벌어들이는 기계잖아?


이것만 있다면 포인트를 두 배로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원금회수도 금방 할 수 있겠는 걸.


근데 난 농작물이 없는데.


부모님 밭에라도 설치해야하나···


설명을 마친 지온은 내게 허수아비 칩을 건넸다.


“오늘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귀가하세요!”


물건을 구매하자 태도가 바뀐 지온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문을 열어줬다.


항상 친절한 지온도 더 친절해지는 순간이 있구나.


곧장 침대로 되돌아온 나는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남은 물건에 대해 생각했다.


런닝머신.


그것만 구매하면 새로운 물건들이 진열된다.


진열된 물건 중에서 내 팔의 회복을 도와줄 물건이 있길 바랄뿐이다.



***



등교를 위해 문밖을 나선 순간, 기숙사 우편함에 무언가가 꽂혀있었다.


“20XX KBO 신인드래프트?”


우편은 총 3장.


KBO로부터 나와 찬용이, 2루수 시현이에게 초청장을 보내왔다.


목발을 짚고 힘겹게 내려온 찬용이가 기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뭐야?”


“KBO에서 고교생 25명이랑 대학생 5명한테 초청장을 보냈대.”


전체 30위 안에 지명될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듯 했다.


내 기억 상 드래프트 대상자는 1000명 정도를 웃돌았으니, 우리에 대한 평가가 좋다는 뜻인 거겠지.


“나 손 없으니까 어디 읽어 봐봐.”


[9월 12일(목) 오후 2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20XX KBO 신인 드래프트를 개최합니다.]


내가 여길 다시 가게 된다니.


[20XX KBO 신인 드래프트는 전면 드래프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지명은 1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이뤄집니다.]


전면드래프트.


연고지 고등학교 출신의 선수를 필수로 뽑아야했던 1차 지명 제도와는 방식이 달랐다.

수원 드래곤즈, 부산 시걸즈, 대구 푸마즈, 인천 돌핀즈, 대전 울브즈, 광주 타이거즈, 강릉 터틀즈, 서울 피닉스, 창원 스왈로즈.


총 10개의 팀이 순서대로 지명하게 될 것이다.


즉, 고영득이 부산 출신이라 해서 무조건 부산 시걸즈가 데려간단 법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팀들은 이미 드래프트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뒀을 것이다.


내 참석 여부를 알 턱이 없으니, 몇몇 팀들은 플랜 A, B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네 드래프트장 같이 가는 거지?”


어느새 우리 뒤로 따라붙은 시현이가 우리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물었다.


“이강이는 모르겠고, 난 가지.”


“나도 갈 거야.”


“뭐라고?”


두 녀석 전부 놀라는 눈치였다.


“미국 안 갈 거야. 애초에 갈 마음이 엄청 크지도 않았고.”


“이강이 쟤 때문에 한 순위씩 밀리겠네.”

“그럼 우리 다 같이 모여서 가면 되겠다.”


잔뜩 신나 보이는 찬용이가 내게 서울로 어떻게 갈 건지 물었다.


“사실··· 난 이미 같이 갈 사람 구했어.”


“뭐? 누구랑 가는데? 부모님?”


“민희.”


“민희가 누군데.”


시현이가 어리둥절하다는 듯 찬용이 눈치를 봤다. 찬용이는 배신감을 느낀 듯 고개를 저었다.


“이강이가 몇 년 동안 짝사랑하는 사람 있어. 그래라 최이강. 시현아 우리끼리 가자.”


“한번만 좀 이해해줘라. 친구가 연애 좀 해보겠다는데.”


“그래. 너 마음대로 해. 대신 드래프트장 가서 아는 척 하지마라.”


시현이와 찬용이는 웃으면서 각자 반으로 들어갔다.


드래프트까지 남은 기간은 이틀.


그때 우리들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친구들은 지난 10년간의 야구부 생활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


아마 다들 그때와 같은 팀에 지명되겠지.


하지만 그 후로 벌어질 일들은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


어떤 미래일까.


난 그 지명된 후의 세계관을 상상하며 교실에 들어갔다.



***



[일일 퀘스트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슬라이더 60구 던지기]

[보상 : 30 포인트]


수업을 끝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내게 주어진 할당량을 보고 멀뚱멀뚱 지켜봤다.


“대체 어떻게 채우라는 거야?”


1, 2학년은 대회 출전으로 없고, 찬용이는 부상, 시현이는 기숙사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부상당할까봐 무서워. 메디컬 테스트 끝나고 부상당하면 몰라도.”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찬용이의 부상 여파로 3학년 선수들에게 조심병이 생긴 듯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건 사실이다.


드래프트는 사실상 경매에 가깝다.


일종의 상품인 우리는 최상급 상태를 유지해야 좋은 계약금을 받아낼 수 있다.


그럼 대체 누구한테 던져야하지···


불현 듯 내 주머니에 있는 허수아비 더미가 생각났다.


칼을 쥐어주면 칼을 휘두르고, 방망이 쥐어주면 방망이 휘두른다···


그렇다는 말은,

글러브 쥐어주면 잡아줄지도 모른다는 뜻 아닌가?


나는 곧장 실험해보기 위해 텅빈 실내 연습장에 들어가서 허수아비 더미를 설치했다.


조그만 동전 크기였던 허수아비 더미의 부피가 점점 늘어나더니 이내 성인 남자 크기만큼 커져버렸다.


난 그 허수아비의 팔에 포수 글러브를 껴줬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못 받으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나는 허수아비를 향해 비교적 힘을 뺀 슬라이더를 던졌다.


슈웅-


팡-


어라.


이게 되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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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강화된 최형민의 사인볼 24.06.04 650 15 13쪽
28 스토브리그 24.06.03 679 16 14쪽
27 드래곤즈의 예상 라인업 24.06.02 721 15 13쪽
26 마무리의 꽃, 팀 회식 +1 24.06.02 749 16 14쪽
25 아이템 강화 망치 24.06.01 764 13 14쪽
24 마지막 청백전 +1 24.05.31 781 15 14쪽
23 데이트 24.05.30 803 15 14쪽
22 진열대 새로 고침 쿠폰 24.05.29 831 15 15쪽
21 두 번째 청백전 24.05.28 867 15 15쪽
20 새로운 진열대 24.05.27 904 17 14쪽
19 눈도장 찍기 24.05.26 930 17 15쪽
18 첫 번째 청백전 24.05.25 956 16 15쪽
17 마무리캠프의 시작 +1 24.05.24 999 18 14쪽
16 10억 팔 투수 +1 24.05.23 1,045 17 14쪽
15 KBO 신인 드래프트 +1 24.05.22 1,054 16 15쪽
» 허수아비 더미 24.05.21 1,068 21 14쪽
13 첫 번째 인터뷰 +1 24.05.20 1,099 17 14쪽
12 달콤한 휴가 24.05.19 1,133 22 14쪽
11 자랑스러운 아들 24.05.18 1,149 17 14쪽
10 봉황대기 결승전 +2 24.05.17 1,177 17 14쪽
9 소방수 최이강 +2 24.05.16 1,228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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