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된 최형민의 사인볼

뜬금없이 사인볼에 강화 가능 문구가 떠올랐다.
이계에서 가져온 물건이 아닌데도 강화가 되는 걸까?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궁금증을 자아냈다.
1회 강화는 재료가 필요 없었기에 나는 호기심에 망치를 휘둘러봤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야구공이 번쩍였다.
“미친··· 이게 된다고?”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최형민의 사인볼 ★x1]
[최형민과 인연이 맺어질 확률이 10% 증가합니다.]
잠깐만··· 이렇게 되면···
나와 인연이 맺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은, 최형민이 우리 팀에 올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드래곤즈와 돌핀즈를 사이에서 고민하던 최형민.
두 팀에 대한 최형민의 마음이 50 대 50이라는 가정 하에 10%는 엄청난 차이다.
우리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될 선수가 망치질 한 번에 우리 팀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의도치 않게 팀 운영에도 도움을 주게 됐다.
드래곤즈는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 2루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2루수 빈곤을 겪었다.
제대로 된 2루수만 있었어도 우승을 3년 앞당겼을 거란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드래프트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2루수들은 전부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최형민은 후일 정상급 2루수로 평가받는 선수가 된다.
그런 내야수가 우리 팀에 온다면 투수인 나로서도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는데 기여한 선수였기에 동료로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만약 강화재료를 하나 써서 한 번 더 강화를 하게 된다면···
한 팀에서 만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최형민은 인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에이전트와 함께 이야기 중이었다.
에이전트는 즐거운 목소리로 지금이 얼마나 협상에 유리한 상황인지를 설명해줬다.
“어제 내가 얘기했던 거 기억나지? 그 말대로야. 지금 6개 팀에서 제안이 왔어. 그 중 제일 괜찮은 제안이 돌핀즈랑 드래곤즈고.”
“인기가 많다니 기분은 좋네요.”
“B등급 받은 게 신의 한수였다니까.”
한국 프로야구에선 FA 등급제가 시행중이며 등급에는 A부터 C등급이 있다.
팀 내 연봉 및 리그 전체 평균 연봉에 따라 FA 선수에게 등급이 적용되는 시스템이었다.
직전 시즌 최형민의 연봉이 팀에서 14번째였기에 FA B등급을 받았고, 덕분에 여러 팀에서 연락이 왔다.
A급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선수를 B등급 보상을 주며 데려올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드래곤즈는 4년 60억을 불렀고, 돌핀즈는 4년 55억에 옵션을 넣었어.”
“그래요? 제가 옵션 다 딴다는 전제하에 총액은 얼만데요?”
“65억.”
“그럼 사실상 65억짜리 계약이네.”
최형민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밑바닥부터 굴러오며 야구에 매진했던 그는 최근 자신이 어느 경지에 도달했단 생각이 들었다.
통산 790안타를 때렸지만, 최근 3년간 150 안타 이상을 기본적으로 쳐냈다.
이 흐름을 이어간다면 돌핀즈의 옵션을 따내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옵션 중엔 홈런 20개 쳐야하는 것도 있어.”
“형, 저 이번 오프 시즌 때 엄청 증량하고 있어요. 이젠 홈런도 곧잘 칠거예요.”
“그래도 20홈런인데 어렵지 않겠어?”
“제가 통산 홈런이 딸리는 건 홈런을 칠 필요가 없어서인 거, 형도 잘 아시잖아요.”
“뭐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 일단 돌핀즈 계약서 먼저 봐.”
최형민은 돌핀즈 계약서에 적힌 많은 옵션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시즌 20홈런 20도루 달성 시 2억.
골든글러브(2루수) 수상 시 4억.
4년간 1000출루 달성 시 4억.
불가능한 옵션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겐 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조항들이었다.
최형민은 통산 308볼넷으로 볼넷도 잘 얻어내는 타자였기에 1000출루는 쉬워보였다.
골든글러브도 최근 들어 후보에는 들고 있으니 아예 불가능은 아니었다.
‘이정도면 뭐··· 충분히 걸어볼만한 승부 같은데.’
최형민은 분명 돌핀즈를 가는 쪽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물론 고향 팀인 드래곤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지만 자신에게 기회를 준 팀을 저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 듯, 한 가지 의심이 최형민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근데 왜··· 나를 못 믿는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옵션.
선수입장에선 동기부여일 수 있겠지만, 구단 입장에선 안전장치였다.
계약한 선수가 못했을 때 구단의 자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따라서 어떤 선수 입장에선 수많은 옵션을 제안 받았을 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형, 드래곤즈 계약서 보여줄 수 있어?”
“드래곤즈? 그럼, 가능하지.”
최형민은 드래곤즈의 계약서 역시 천천히 훑어봤다.
선수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는 계약서가 아닌, 확신에 찬 계약서.
드래곤즈는 별다른 말없이 총액 60억을 보장해준다고 약속해왔다.
마치 최형민이 60억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고 선고하듯 말이다.
급기야 최형민은 돌핀즈와 드래곤즈의 계약서를 들고 서로 비교하기 시작했다.
“근데 형. 얘네들 내가 못할 것 같아서 이런 옵션 건 느낌이 갑자기 드는데.”
“그래? 못할 정도인가. 너 폼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모르겠어. 그냥··· 그런 느낌이 드네.”
“난 형민이 네가 고민도 안하고 돌핀즈를 선택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사실 어제까진 반반이었어. 근데 선수라면 팀의 믿음도 중요하잖아.”
“그건 그렇지. 옵션이 많으면 경기 나가서도 신경 쓰느라 시즌을 망칠 수도 있고.”
최형민의 생각은 계속 깊어졌다.
물론 당장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머리가 복잡해졌다.
“너무 많이 고민되면 네가 드래곤즈 단장이랑 직접 전화해볼래?”
‘단장이라··· 내 고민에 해답을 줄 수도 있겠지.’
최형민은 에이전트로부터 주현상 단장의 연락처를 받았고, 이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머지않아 주현상 단장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형민 선수.”
“저희 에이전트가 궁금한 거 있으면 편하게 전화하라고 했다는데 맞나요?”
“그럼요. 얼마든지 질문해주세요.”
“제가 필요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저희 팀엔 전문 2루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형민 선수의 능력을 감독님이 선호하십니다. 출루율 높은 타자 말이죠.”
최형민은 돌핀즈 코치진들 못지않게 자신의 능력을 파악한 드래곤즈의 보드진에 꽤 놀랐다.
“그리고 저희는 형민 선수가 실패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듣기 좋은 말이네요.”
“언젠가 형민선수와의 계약은 혜자 계약이란 평가를 듣게 될 겁니다. 저흰 그 정도로 계약에 자신이 있습니다.”
주현상은 지금이 자신의 팀을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향으로 금의환향··· 말로만 들어도 벅차오르지 않나요?”
주현상의 말이 최형민의 심금을 울렸는지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드래곤즈 단장은 선수가 고민하는 시간을 조용히 기다려줬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편하게 결정하고 말씀해주세요. 언제나 형민 선수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형민이 말없이 에이전트를 쳐다봤다.
“형··· 아직 돌핀즈랑 연락 안했지?”
“너 의사를 들어야 내가 전달하니까 뭐, 아직 한 마디도 안했지.”
“다행이네. 일단 오늘 자정까지만 시간을 줘. 고민하고 결정 다 하면 형한테 바로 얘기할게”
에이전트는 수심 깊은 얼굴로 카페를 빠져나가는 최형민을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애초에 최형민이 돌핀즈 말고 다른 팀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쉬운 협상일줄 알았지만 일이 뭔가 틀어지고 있었다.
“저 정도면 누가 머리 조종한 거 아니야?”
§§
본가에 있던 나는 점심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드래곤즈 단체 카톡방이 요란하게 울린 탓이었다.
“그 정도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니?”
아빠는 국을 뜨다말고 내 핸드폰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확인 좀 해보려고요.”
단체 카톡방에는 축하하는 이모티콘이 도배되어 있었다.
[박원형 선배 : 덕원이 반갑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0년 만에 같이 뛰겠네]
[송도현 선배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열심히 수발 들어드리겠습니다]
[전휘수 선배 : 얘를 여기서 또 보네 ㅋㅋ]
선수들은 덩치에도 안 맞는 이모티콘을 쓰면서 김덕원 선배의 영입을 자축하고 있었다.
정작 단톡방에 초대된 김덕원 선배는 아직까지 답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입단하고 여러 가지 입단 절차를 밟느라 정신이 없는 거겠지.
나는 서둘러 인터넷 검색 창에 드래곤즈의 FA 계약 소식을 찾아봤다.
[김덕원··· 5+1년 80억으로 드래곤즈 이적. 드래곤즈의 외야 짐을 덜어줄까?]
[드래곤즈의 FA 영입전 대승리, 공격적인 행보 주목돼···]
야구 뉴스 헤드라인은 모두 드래곤즈의 큰 씀씀이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이강아, 드래곤즈가 웬일로 영입을 잘 하기 시작했다냐.”
“그러게요 아빠.”
“너도 알다시피 약간 짠돌이 구단 느낌이 조금 있었잖아.”
“이제부터 제대로 된 선수를 사면서 돈을 팍팍 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여러 기사를 정독한 나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스포츠기사 메인화면으로 나왔다.
그때, 새롭게 갱신된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속보]
[최형민 4년 총액 65억 계약. 드래곤즈의 2루 잔혹사를 끊어줄 늦깍이 스타.]
[2루수 FA 최대어 최형민, 고향팀 드래곤즈 선택···]
어라···?
최형민···?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 최형민이었다.
나는 벅찬 기분으로 기사를 클릭해봤다.
[최형민은 돌핀즈의 55억 + 10억짜리 계약을 거절하고 드래곤즈와 65억에 계약 체결했다.]
[당초 드래곤즈는 60억을 제안했지만, 협상을 통해 65억으로 최종 제안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로서 드래곤즈는 팀의 오랜 숙원이던 주전 2루수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이번 스토브 리그, 드래곤즈는 과감한 투자로 단숨에 가을 야구를 노릴만한 전력으로 팀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이번 시즌 드래곤즈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스엔 최형민이 오랜만에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서있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이야, 최형민이가 드래곤즈를 갔어?”
나랑 함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이강이 너 기억하지? 이 선수 사인볼 받아서 열심히 야구했던 거.”
“그럼요. 잊을 수가 있겠어요. 사인 받으려고 2시간을 기다렸는데, 정작 받은 건 그 공 하나였죠.”
“그땐 젊은 선수였지. 언제 이렇게 커서 고향으로 돌아왔대. 아무튼 좋은 소식이네.”
정말 강화망치로 강화된 최형민 사인볼 덕분일까.
최형민 선수가 드래곤즈를 선택했다.
인천 돌핀즈와 수원 드래곤즈에 대한 마음이 정확히 반반이었고, 강화를 하며 미래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10%. 그게 최형민과 나의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선수들 사인 좀 받아야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럼 최형민 선수랑 이강이 너랑 1군에서 같이 뛸 수도 있겠는데? 어릴 적에 사인을 받았던 선수랑 한 팀이라··· 이거 스토리 하나 나왔는걸.”
“아빠도 참··· 야구에서 설레발은 원래 금지인 거 아시죠? 최형민 선수고 뭐고 제가 일단 1군에 가야죠.”
“우리 아들은 무조건 1군에 갈 거야. 아빠가 장담해.”
“설레발 금지라니깐요.”
드래곤즈의 선발 라인업엔 이제 빈틈은 없다.
내가 그 빈틈을 뚫고 선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중요해졌다.
확실한 건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아이템 활용으로 미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포인트를 모아 금강불괴의 몸을 얻는 것.
그게 내 야구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줄 것이다.
일일 퀘스트 –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슬라이더 50구 던지기]
[보상 : 30 포인트]
나는 오늘도 포인트를 벌기 위해 습관처럼 컨테이너로 향했다.
집처럼 익숙한 이곳 마운드.
나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강화된 사인볼을 들고 허수아비 더미에 강하게 뿌렸다.
팡-
[6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오늘도 어디 한 번 빡세게 벌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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