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의 시작

메이저리그엔 무쇠팔을 가진 선수들이 존재했다.
통산 5000 이닝을 던진 괴물들.
그 중에는 여러 변화구로 타자를 요리한 선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대단한 건 선수 생활 내내 강속구를 던진 선수다.
30년간 평균 152km의 강속구로 상대를 압도하며 메이저리그에 생존한 선수.
몇몇 기자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대체 어떻게 그런 빠른 공을 평생 동안 던질 수 있는 겁니까?’
그러면 그 선수들은 이렇게 답한다.
‘저도 모르겠어요.’
해답이 될 만한 답변을 제시해줄 거라 생각했던 기자들은 실망하지만, 선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대답이다.
본인조차도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기에 답변이 불가한 것이다.
남현우 감독은 최이강이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평균 155km의 공을 던질 수 있는 파이어볼러.
거기다가 초인적인 신체조건까지.
그는 그런 메이저리그의 괴물들과 유사해보였다.
중요한 건 그런 선수가 야구 역사상 몇 명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최고 스타의 등장을 자신이 목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남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본격적인 스프링캠프가 시작하기 하루 전, 드래곤즈는 선수들의 정밀 검진을 실시했다.
드래곤즈의 메디컬 팀장은 충격적인 리포트 결과를 들고 남현우 감독과 이야기했다.
“선수단 전반적으로 감독님이 걱정하시던 큰 부상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풀 전력으로 시즌을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신인선수들도 꽤 몸이 괜찮습니다. 직전 고교리그에서 부상당한 유찬용 선수 빼고는 부상 위험도도 적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나는 말이었기에 남현우 감독은 당황했다.
“최이강 선수는··· 어깨나 팔꿈치가 괜찮던가요?”
“강속구 선수라 해서 조금 더 신경 써서 봤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도 꽤 놀랐어요. 보통 이런 케이스는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요.”
잔부상이라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던 선수였기에 메디컬 팀장의 소견은 놀라웠다.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어깨나 팔이 좋은 선수 같습니다.”
“그렇군요··· AI가 판단한 최이강 선수와 전문가의 소견이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AI의 정확도가 높다지만 20년 동안 이 짓을 한 의사보다 정확하긴 어렵겠죠.”
당차게 웃는 메디컬 팀장의 말엔 확신이 담겨있었다.
“최이강 선수의 내구성은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주현상 단장이 개발한 AI에 따르면 최이강의 부상확률은 98%에 달했다.
사실상 100%에 수렴하는 수치였다.
AI는 선수가 최근에 던진 이닝 수와 구속, 구종을 입력해 부상확률을 측정한다.
고교시절 최이강의 혹사는 여러 사람들이 우려할 정도였으니 부상확률이 높게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드래곤즈도 최대한 최이강을 활용하기 위해 불펜부터 시작하는 그림을 그렸다.
부상이 발생하면 토미 존 수술과 함께 군 문제를 해결하는 계획까지 구성해뒀다.
근데 그런 선수의 부상확률이 0%라고?
최이강에 대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할 시점일까.
남현우 감독은 고심했다.
5선발로 낙점된 천성진은 불펜에서 선발로 전향하게 된 선수다.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할 최이강과 유연한 교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코치님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영배 투수코치 역시 이 상황을 신기하게 여겼다.
“사실 코치 생활하면서 이렇게까지 강견의 투수를 본 적도 처음이고, 건강까지 좋은 투수가 처음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은 처음 계획대로 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가능성이 보이면 대체 선발로 투입시키죠.”
“알겠습니다.”
남현우 감독은 갱신된 최이강의 메디컬 리포트를 훑어봤다.
‘이런 선수가 대한민국에 나오다니···’
그는 최이강을 어떻게 활용할지 한동안 궁리했다.
§§
부산 호텔에서 일어난 나는 이른 아침부터 눈을 떴다.
객실의 통창으론 겨울 새벽의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보이는 개인실에서 잠을 잔 건 스프링캠프가 부산에서 진행된 덕분이었다.
해외 훈련의 경비를 아낀 덕분에 모두 개인실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훈련 집합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나는 잠시 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기로 결정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강님.”
“아이 씨··· 깜짝이야!”
어느새 귀를 빠져나와 말을 건 올렛 탓에 잠이 단박에 달아나버렸다.
“어제 신체적 활동을 하셨는데, 빛의 결속에 만족하고 계신지 확인 차 나왔습니다.”
“일단 너무 좋아. 아무리 던져도 어깨가 피로해지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던지고 나서 느껴지는 약간의 욱신거림이 완전히 없어졌다.
사실상 아이싱이 필요 없어진 수준이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느껴지는 어깨 뭉침도 사라졌다.
9이닝 완투를 여러 번해도 지칠 것 같지 않은 어깨.
빛의 결속은 오랜 시간 피칭을 해도 피로해지지 않는 어깨를 만들어줬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어젯밤에는 감기 위험이 감지되어서 약간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어제 조금 춥게 잤나···”
추운 겨울은 감기에 걸리기 쉽다. 그런 것까지 컨트롤 해준다니.
빛의 정령은 내게 엄청난 메리트를 가져왔다.
“지금 이강님의 상태는 완전한 상태이니 걱정마시고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자기 할 일을 마친 올렛은 다시 뽈뽈 날아서 내 귀로 들어갔다.
그럼, 일어난 김에 움직여볼까.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똑같다.
런닝머신을 달리는 것.
나는 숙소에 처음 입실한 날부터 런닝머신을 설치했다.
아침저녁마다 그 위를 달리며 보상을 위해 10000km에 가까워지도록 열심히 움직였다.
[358km / 10000km]
아직은 10000km에 한참을 못 미치지만 10000포인트를 모았을 때처럼 계속 노력하다보면 금방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런닝머신을 달리며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2월 1일 맑음.
오늘은 스프링캠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모든 1군 선수들이 숙소에 짐을 풀고 훈련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5km를 달렸을 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조식 시간인 7시를 알리는 알람이었다.
복도에 나서자 눈을 비비며 식당으로 향하는 선배들이 꽤 있었다.
“이강이 아니야?”
“맞습니다 선배님!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군기가 바짝 들은 톤으로 전휘수 선배의 물음에 답했다.
“잠은 잘 잤어?”
“너무 잘 잤습니다.”
“코치님 말로는 신인 한명 더 들어왔다고 하던데. 찬용이인가?”
“찬용이 말씀이십니까?”
과거에 나와 찬용이는 퓨처스 스프링캠프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찬용이는 1군 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찬용이 알아?”
“저랑 같은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그럼 합도 많이 맞춰봤겠네?”
“맞습니다. 초중고를 같이 나와서 거의 단짝이나 다름없습니다.”
“스타일이 어때? 먼저 리드하는 스타일인가?”
“투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리드할 때도 있고, 먼저 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 기대가 되는 친구네.”
오랜 친구와 같이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다니.
왠지 모르게 심신에 안정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인 탓에 식당에는 선수들이 많지 않았다.
줄이 길지 않아 금방 음식을 풀 수 있었다.
전휘수 선배는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자신의 접시를 채웠고, 나는 단백질을 위한 오믈렛과 닭가슴 요리를 챙겨서 앉았다.
그때 촬영을 위해 식당에 들어온 이하영 PD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바쁘게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선수들을 인터뷰했다.
식사를 다해가던 찰나, 이하영 PD가 내가 있는 테이블에 왔다.
“안녕하세요 이강 선수.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내 모습이 웃겼는지 전휘수 선배가 흐뭇하게 나를 지켜봤다.
“이번 스프링캠프가 처음이잖아요. 이제 프로선수들을 볼 텐데, 뵙고 싶었던 선수가 있을까요?”
“최형민 선수입니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재빠르게 대답한 게 신기했는지 놀란 표정으로 이하영 PD가 되물었다.
“이번에 FA로 영입된 최형민 선수요? 이유가 있어요?”
“제가 수원 출신이라 아버지 따라 드래곤즈 초창기 때부터 직관을 갔는데, 그때 신인이시던 최형민 선배님이 사인볼을 주셨습니다.”
“그건 진짜 신기한 인연인데요? 돌고 돌아 여기서 만나다니··· 감회가 새롭겠어요.”
“그러게요. 저도 드래곤즈로 되돌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최형민 선수가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가볼까요?”
“네?”
이하영 PD는 영상 각을 잡았다는 듯,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게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이 있는지 물었다.
“선배님이 주신 사인볼을 챙겨오긴 했는데···”
“얼른 같이 가지러가요.”
나는 이하영 PD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사인볼을 챙긴 뒤 최형민 선배의 객실 앞에 섰다.
“노크해보세요.”
아침부터 방해했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이하영 PD는 내 속도 모르고 계속 눈치를 줬다.
똑똑-
“선배님, 저 신인 최이강이라고 합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있던 최형민 선배는 카메라의 등장에 당황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PD님이 어쩐 일로···”
“최이강 선수가 형민 선수한테 사인볼을 받은 적이 있대요. 꼭 찾아뵙고 싶은 선배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언제지?”
내가 들고 온 사인볼을 건네받은 최형민 선배는 공을 한동안 쳐다봤다.
“사인이 어설픈 거 보니까 완전 신인 때네요. 제 사인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없었을 텐데. 그땐 완전 무명이었거든요.”
“그때 유일하게 사인해주셨던 선수이십니다.”
“그래? 해줬다니 다행이네. 아이들한테는 언제든 해주려고 하거든요. 그 추억이 오래가니까.”
그러다 갑자기 공을 보던 형민 선배가 피식하고 웃었다.
“제가 드래곤즈를 선택한 게 추억의 힘일지도 모르겠네요. 저 스스로도 간절했던 드래곤즈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었나 봐요.”
“그럼 팬이었다는 이강 선수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카메라 보고요? 아··· 별거 아닌 추억을 간직해줘서 고맙고 이제 같은 유니폼을 입었으니까 잘 해보자.”
형민 선배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형민 선배의 객실을 빠져나왔다.
용무를 마친 드래곤즈 TV 이하영 PD 역시 내게 고맙단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그때 내 핸드폰에 또 다시 알람이 울렸다.
7시 50분.
집합까지 10분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
기장 야구장은 아직 쌀쌀했다.
따듯한 시드니나 애리조나, 일본에 차려진 다른 팀의 캠프와는 아무래도 온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캠프지로 선정한 건 시차적응 없이 풀 컨디션으로 캠프를 시작한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1군 선수들은 야구장 가운데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서있었다.
40명의 1군 선수단은 그 위용이 장난 아니었다.
고등학교와 전혀 다른 무게감에 나도 모르게 압도됐다.
그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와중에 멀찍이 어색하게 서있는 찬용이가 눈에 들어왔고 난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찬용이도 웃어보였다.
그때 정영배 코치님이 앞으로 나서더니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자고 얘기했다.
“신인 선수들 먼저 소개 해볼까? 자, 그럼 야수조 신인 찬용이. 참고로 원형이가 독감에 걸려서 잠시 콜업 됐으니까 잘해줘라.”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드래프트 돼서 드래곤즈에 오게 된 유찬용이라고 합니다. 포지션은 포수고 선배님들 공 놓치지 않고 잡아보겠습니다.”
찬용이가 말을 마치자 선배들이 한껏 박수를 쳐줬다.
“자, 다음은 투수조 이강이.”
난 심호흡한 뒤 이야기했다.
“이번에 투수로 지명된 최이강이라고 합니다. 1순위로 지명된 만큼 실망시키지 않고 최선을 다해 피칭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쇼!”
“1순위 자신감 좋다!”
“네가 우리 팀 희망이다.”
다행히도 선배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신인들의 소개 이후론 기존에 있던 선수들과 FA로 온 선수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외국인 선수들 역시 통역사의 입을 빌려 자신의 포부를 얘기했다.
“헨더슨 선수는 드래곤즈에 우승하러 왔다고 합니다.”
현역 MLB 선수 출신인 헨더슨이 자신의 포부를 밝히자 선수단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됐다.
이를 잠자코 지켜보던 감독님이 입을 뗐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희가 전폭적인 투자를 실시한 것도 이번 시즌이 가을야구에 도전할 적기라 판단됐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은 웃음기를 싹 가신 채 감독님의 말을 경청했다.
“저는 증명된 게 없는 감독입니다. 그리고 우린 10년간 증명하지 못한 팀입니다. 즉, 잃을 게 없다는 겁니다. 물론 시행착오는 겪겠지만 우리에겐 훌륭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지금이 증명할 기회라는 거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의 말이 끝나자 정영배 코치님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여러분들이 잘 따라와 줘야 이번 시즌 목표를 이뤄낼 수 있어. 감독님과 코치진이 설정한 목표는··· 한국시리즈 진출이야.”
선수들은 그의 발언에 동요된 듯 웅성이기 시작했다.
“자, 정숙하고. 코치진이 이 목표에 진지하다는 걸 선수 여러분도 인지하길 바랍니다.”
모든 연설이 끝나고 선수들은 러닝을 시작했다.
과거의 드래곤즈는 턱걸이 5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와일드카드전에서 돌핀즈에 패배하며 고배를 마셨다.
물론 나는 재활을 하며 TV로 그 모습을 지켜봐야했지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어깨는 정상이고, 기존에 없던 좋은 선수들도 같이 있다.
어쩌면 코치진이 설정한 목표가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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