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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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실내 야구장에선 두 선수의 고성이 오고갔다.
“야, 치겠다? 선배를 치겠어?”
“선배? 웃기지도 않은 게. 선배 대접 받고 싶으면 선배답게 굴어. 훈련도 대충하는 새끼가. 이딴 놈도 야구선수라고.”
“이 씨발롬이 말 다했냐?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할 말 천지인데 꾹꾹 참고 있는 거야.”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서로 언성을 높이던 박기혁과 구본승은 이내 서로의 멱살을 붙잡았다.
“야, 기혁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야!”
“본승아 네가 참아. 너도 잘한 거 없어.”
거구의 오영수는 박기혁을, 최형민은 구본승에게 매달렸다.
박기혁은 거의 때릴 기세로 구본승을 몰아붙였고, 결국 5명의 선수가 달라붙어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꼽으면 야구 잘해서 나보다 일찍 입단하던가 늙다리 신인 새끼야!”
“프로에서 얼마 못 뛴 너보단 내가 나아.”
오영수와 최형민은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 전에 둘의 입을 막았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훈련해!”
황급히 뛰어온 박정수 타격 코치의 고함은 상황을 단숨에 종결시켰다.
두 선수는 각자 박정수 코치와 남현우 감독에게 끌려갔고. 훈련은 수석코치에 의해 재개됐다.
둘이 떠나고 선수들은 두 선수가 왜 싸웠는지 유추했다.
“기혁이가 먼저 멱살 잡을 성격은 절대 아니야.”
“맞아, 걔 선배들한테 깍듯한 거 봐라. 웬만한 다른 팀 고졸 신인들보다 나아.”
“어쩌면··· 포지션 때문일지도 모르지.”
“둘이 겹치나?”
“본승이 중견수인데 기혁이도 중견수 보잖아.”
“자기 자리 뺏길까봐 그렇게 갈궜다고? 본승이 그렇게 안 봤는데.”
“원래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잔인해지는 법이야.”
“찬용이 너 걔네 옆에 있었잖아. 쟤네 뭐라면서 싸운 거냐?”
유찬용은 난처한 얼굴로 입을 우물쭈물 거렸다.
“제가 느끼기엔 본승 선배님이 기혁이 형을 조금 깔봤습니다.”
“깔본다고? 어떻게?”
“평소에 자기 훈련 장비도 챙겨 달라하고 이것저것 시켰습니다. 근데 그러고 나서도 기혁이 형을 계속 놀렸습니다.”
“뭐라 하면서 놀렸는데?”
“야구 못하는 애들이 대학교에 야구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돈 없는 놈이라 놀렸습니다.”
박기혁이 프로 입단 대신 대학야구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객관적인 실력 부족.
“넌 다 좋은데 컨택이 약간 부족해.”
“기혁이 장타력만 키우면 프로에서 모셔갈 텐데 아쉽다.”
“50m 달리기 몇 초 나오냐? 7초 후반 찍힌다고? 그거로는 어림도 없어. 6초대로 줄여야해.”
중, 고등학교 시절 감독들은 박기혁의 단점들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박기혁은 자기 스스로를 아주 작은 육각형 선수라 여겼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박기혁의 자신감을 짓눌러버렸다.
‘컨택도, 장타도, 주루도 안되면 나는 뭐지?’
결국 그는 프로야구 대신 대학야구에서의 실력증진을 택했다.
그 선택은 박기혁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다.
은사인 김정태 감독을 만나며 컨택력이 폭발한 것이다.
“이것 봐 기혁아. 내가 무조건 된다고 했지.”
“감사합니다 감독님. 전부 다 감독님 덕분입니다!”
타자 출신인 김정태 감독은 박기혁의 잠재력을 알아봤고, 그에게 자신의 타격 훈련 방식을 입력 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타격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자신의 학교를 대학리그 결승 무대에 올렸고, 끝내 우승까지 이뤄냈다.
“이번 대학리그 MVP는··· 축하드립니다! 박기혁 선수!”
그렇게 독립리그를 갈까 고민했던 박기혁은 대학 리그를 평정하고 드래프트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그를 낚아챈 건 드래곤즈의 주현상 단장이었다.
지명되고 계약서를 쓰던 날, 주현상 단장은 박기혁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제가 기혁 선수를 뽑은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아뇨,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AI에 따르면 기혁 선수의 컨택력과 수비력이 프로에서도 먹힐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너무 좋게 봐주셔서 떨떠름할 뿐이네요.”
“그리고, 저희는 기혁 선수에게 뛰어난 리더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주장감으로 손색이 없어요.”
박기혁은 대학교 2학년 때 팀의 주장 자리에 올랐을 정도로 워크에식이 뛰어났으며, 그런 모습에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그를 따랐다.
드래곤즈는 박기혁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겸손한 리더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애 같지 않다.’
‘간절함이 묻어있는 선수.’
‘야구가 아니어도 성공할 사람.’
모두가 입을 모아 박기혁을 칭찬했고, 드래곤즈를 고민 없이 그를 지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적중이었다.
특유의 친화력과 진중함으로 드래곤즈에 녹아든 박기혁은 빼어난 실력을 보이며 1군 진입을 목전에 앞두고 있었다.
구본승의 목덜미를 붙잡기 전까지 말이다.
“그래서 왜 그런 거야?”
박정수 타격코치가 박기혁에게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넸다.
“구본승 선배는 저랑 동갑입니다. 물론 프로 입단은 저보다 먼저 했지만요.”
“뭐 호칭에 대한 그런 문제야?”
“전 본승 선배한테 깍듯이 대했고, 단 한 번도 무시하거나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본승 선배 쪽이었고요.”
“어떤 말로 시비를 걸었는데?”
“대학교에 간 건 사실이니 크게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가족 욕은 못 참겠더라고요.”
드래곤즈에 지명되고 나서 언론은 박기혁의 가정사를 들추며 대학야구 진출의 의도를 멋대로 해석했다.
[박기혁은 가정이 힘들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런 기자의 소설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했단 헛소문은 부풀려져서 박기혁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버렸다.
“야 기생수! 내 가방도 좀 들어줘라.”
구본승은 박기혁을 기생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박기혁은 자중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구본승은 아랑곳 않고 그를 놀려댔다.
물론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꿈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평소에도 인성이 좋지 않았던 구본승은 결국 동갑내기 후배를 갈군 끝에 이 사단을 일으켰다.
머지않아 박기혁은 구본승과의 면담을 끝낸 남현우 감독에게 불려갔다.
“화는 좀 사그라들었나요?”
“예, 감독님.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팀 게임을 하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기혁은 숨죽인 채 남현우 감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늘 있었던 일로 징계성 2군 행이 결정될 확률이 높았다.
‘구본승은 1군이었으니까 뭐. 나를 2군으로 떨어트리겠지···’
박기혁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1군 합류까지 진짜 코앞이었는데.’
그때 고개를 숙인 박기혁의 어깨를 두드려준 건 남현우 감독이었다.
“구본승 선수는 진정을 위해 2군에 갈 겁니다. 언젠가 다시 1군에 온다는 뜻이죠. 그땐 사과할 수 있겠습니까?”
의외의 선택에 박기혁의 눈이 커졌다.
“무조건 사과하겠습니다.”
“기혁 선수는 이 난관을 잘 헤쳐 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인간성이 뛰어난 선수니까요.”
그날 저녁 구본승은 숙소로 가서 짐을 쌌고, 이내 익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박기혁은 오키나와에 남아 스프링캠프를 끝까지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자칫 선수단의 분위기를 헤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남현우 감독은 오히려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훈련 태도가 불성실한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보낼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주현상 단장에게 곧장 전화를 했다.
“단장님, 저번에 얘기했던 트레이드를 진행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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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살 사건 다음날, 나는 찬용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뒷얘기를 들었다.
“기혁이 형이 많이 참았지.”
“난 그 선배가 그런 짓 하는 줄도 몰랐어. 기혁이 형 입 진짜 무겁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지금 얘기 나오는 거 보면 본승 선배가 선발 밀릴까봐 텃세 부렸다는 게 정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대박이네.”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당시 2군에서 스프링캠프 중이었던 나로선 아예 듣지도 못했던 일이다.
다들 입이 엄청 무거웠구나.
생각해보니까 구본승 선배가 스프링캠프 도중에 2군으로 합류했던 것 같기도 하다.
머지않아 트레이드 되게 될 운명이지만···
잠깐만.
지금 트레이드 되는 거라면 나 대신 1군 자리를 꿰차게 될 그 녀석이 팀에 온다는 뜻이다.
스프링캠프의 마지막 날.
드래곤즈는 창원 스왈로즈와 2 ; 2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드래곤즈는 4년차 중견수 구본승과 6년차 3루수 김주환을 트레이드 카드로 썼고, 받아낸 건 2년차 유격수 강동연과 군필 투수 정현우였다.
드래곤즈의 비주전을 내주며 유망주를 데려온 트레이드로, 이는 후일 창원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가 된다.
정현우가 시즌 10승은 꼬박해주는 투수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정현우.
그는 첫 시즌에 나랑 같이 2군에서 굴렀고, 선발투수로 낙점 받아 6월쯤 1군에 올라간다.
정현우가 자리 잡은 탓에 나는 8월 달에 뒤늦은 데뷔를 하고 머지않아 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내 자리가 없어진 뒤였다.
고영득이 지명 당시 내 라이벌이었다면, 정현우는 팀에서의 라이벌이었다.
그는 빠른 판단으로 20살에 현역으로 입대했고, 전역 후 첫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까진 트레이드 될 줄 모르고 창원에 있겠지만···
“그나저나 오늘 창원이랑 연습 경기라는데. 조금 긴장된다.”
“그게 오늘이었어?”
찬용이가 아니었다면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스프링캠프가 끝나기까지 2경기를 남겨둔 상태다.
인천 돌핀즈와 창원 스왈로즈.
그 중에서 강팀인 창원 스왈로즈와의 경기가 먼저 잡혀있었다.
“창원 너무 세서 얼마나 털릴지 걱정이다. 작년엔 거의 압도적으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했을 정도니까 뭐.”
“그러게. 창원 너무 센 팀인데.”
창원 스왈로즈는 작년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한국시리즈에 올라 우승까지 이뤄냈다.
선수층이 무척이나 두꺼웠는데, 오죽하면 유망주들을 자리가 없다고 타 팀에 넘길 정도였다.
미래를 팔고 현재에 투자하는 윈 나우를 꽤 오래 전부터 고수해오던 팀이었다.
잘하면 오늘 볼 수도 있겠네.
스왈로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정현우의 모습을 말이다.
***
지난 번 경기 때는 구시카와 구장으로 이동했지만, 이번에는 우리의 훈련장인 킨 야구장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스왈로즈 선수들은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먼저 몸을 풀고 있었다.
슈웅-
타자들보다도 눈에 들어왔던 건 스왈로즈의 투수들이었다.
“회전수가 얼마나 높으면 공이 저렇게 묵직하게 보이냐.”
오영수 선배 말대로 스왈로즈 투수들의 공은 그 무게감이 달랐다.
흔히들 투수의 재능이라 하는 구위가 다들 좋았다.
경기 시작 30분 전, 정영배 코치님은 흰색 종이를 벽면에 붙이며 말했다.
“더그아웃에 라인업 붙여놨으니까 다들 확인할 수 있도록!”
타자 선발 라인업엔 변동이 없었고, 구설수가 있었던 기혁이 형도 원래대로 9번 타순에 배치됐다.
“이강이는 4회쯤 불펜에서 몸 풀어라. 빠르면 5회, 늦으면 7회에 올라갈 거야.”
나는 비록 선발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저번처럼 불펜에서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렸고, 마운드에 올라와있던 건 스왈로즈 유니폼을 입은 정현우였다.
머지않아 시작한 경기에서 우리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땅볼을 치고 아웃된 무뇨즈는 스페인어로 욕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이어 삼진을 당하고 온 오영수 선배는 한숨을 내쉬며 후속타자들에게 경고했다.
“공이 진짜 돌처럼 날아오네. 방금 무뇨즈한테 던지는 거 봤지? 좌타자한테는 투심이랑 스플리터 투피치로 던지고 나 같은 우타자한테는 투심이랑 슬라이더 투피치야. 생각해.”
투피치 투수인 정현우의 장점은 긴 익스텐션에서 비롯된다.
익스텐션이란 투수가 투구판에서 공을 놓는 지점까지 앞으로 끌고 나가는 거리를 뜻한다.
익스텐션이 긴만큼 타자들은 구속이 더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정현우는 메이저리그의 평균 익스텐션보다 살짝 긴 2m 10cm의 익스텐션을 가졌다.
“그나저나 쟤는 신인이야?”
“현역으로 군대 갔다가 왔대. 이번이 첫 시즌이라고 하더라.” “근데 저렇게 제구가 잘 잡혀있다고?”
“중요한 건 쟤가 선발 후보가 아니래.”
“스왈로즈 투수 뎁스가 두껍긴 하네.”
정현우는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지만 선발에 오를지 불확실한 상태였다.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지는 걸.
정현우는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며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2이닝 5K 1볼넷. 피안타는 없었다.
스왈로즈는 3회, 4회에 우리 불펜진을 공략해 4점 차 리드를 가져갔고, 나는 빠르게 기회를 잡았다.
5회말.
“이강아! 올라가자.”
나는 한국 프로야구 1위 팀인 스왈로즈를 상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할당량을 채우십시오]
[무실점으로 막으세요.]
[보상 : 랜덤뽑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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