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조선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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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배고픈불독
그림/삽화
라비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4:12
최근연재일 :
2024.08.04 20:0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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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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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
글자수 :
405,028

작성
24.05.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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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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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0쪽

음악이 없는 사랑

DUMMY

-야! 진 로저 지금 어디 있어?


개 같은 자식.


내 이름 좀 불러 주면 어디가 덧나나!


로드 매니저가 길면 그냥 ‘진성일 매니저님’하고 불러주지, 앞 자와 끝 자만 따서 ‘로저’가 뭐야. 젠장.


발음도 루저와 로저의 중간쯤으로, 기분 나쁘게 사장은 매번 반말로 내게 전화했다.


덕업일치를 이루었다고 친구들 축하를 받으며, T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트로트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그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며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었던 남자 가수의 이름에다가, 넘버 원 ‘1’을 붙여 만들어 준 이름······ 진성일.


아버지 핏줄을 이어받아선지 나도 트로트를 좋아했고,

대학 내내 트로트 가수 공연 쫓아다니다 졸업한 후,

T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난 내 꿈을 이룬 줄 알았다.


덕질 10년 만에 꿈에 그렸던 가수들과 하루를 같이 하고, 공연장 가서 다른 소속사 가수 노래를 공짜로 보는 재미와 행복이 딱 6개월쯤 유지되었다.


문제는 입사 6개월 만에 규모가 더 큰 JM사에 T사가 흡수 합병되면서 부터였다. 글로벌 케이-팝을 외치는 JM 경영 방침에 트로트 파트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합병 초기만 해도, JM 소속 여자 아이돌을 쳐다보며, 눈이 호강하는 호사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주눅이 들어가는 내 트로트 가수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졌다.


여전히 지방 공연이나 전통 시장에서는 트로트 가수들의 인기가 좋아, 나는 그래도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했다.


소속사에서 내 별명은 ‘세뇨르’ 였다.


188cm의 신장에 긴 다리 비율, 스페인 귀족 혈통이 조금은 섞인 듯한 얼굴 윤곽, 짙은 눈썹과 콧대에 붉은 입술은 소속사 미남 가수들을 압도했다.


소속사 트로트 여가수, 아이돌들도 멋진 내 외모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 줬다.


내 입에서 매일매일 ‘나쁜 새x’ 욕이 세 번은 자동 발사하게 만드는 JM 하 사장도, 내 빛나는 외모가 너무 아깝다며 자체 오디션 심사까지 받게 했었다.


트로트 덕질 생활 10년에 가사는 줄줄 외우고 있었지만, 자체 오디션 노래 시작 첫 소절 만에 사장과 실장님들의 얼굴은 바로 흙빛으로 변했었다.


하 사장은 그래도 내 외모가 아까운지 어떻게든 회생을 시켜보려 했지만, 한 달 만에 포기했었다.


자체 오디션 전에 노래방에 가서 피나는 연습을 했지만, 심사 위원들의 고개 숙인 흙빛 얼굴과 웃음을 참고 있던 트로트 가수들 표정을 보며,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찬란한 ‘세뇨르 오빠’에서 ‘진 로저’로의 추락은, 날개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새처럼 초라했다.


그날 밤, 나는 술병을 셀 수 없을 만큼 마셨고, 혀가 구부러질 만큼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하소연했다.


“아버지, 왜 절 이렇게 낳으셨어요?”

“······이 미친놈의 시키! 술 마셨으면 곱게 마셔야지. 술에 취해서 집 들어와서 웬 행패야.”


보다 못해 엄마는 화장실 변기 뚫어뻥을 들고 나와, 내 등짝을 사정없이 스매싱했다.


한 대도 아니고 세 대씩이나······.


더 맞을 매를 그래도 살아있는 내 반사 신경이 엄마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매질은 끝났다.


술에 취해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던 내가 다음날 샤워를 하다가 깜짝 놀라며 쳐다봤던, 등짝에 선명하게 난 세 줄 스매싱 자국.


다음 날이 스케줄 없는 주말이라 더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내 베프 준서 앞에서 눈물 찔끔 지랄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내 하소연을 조용히 듣던 준서가 오늘 기분 전환하러 미술관에 함께 가자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집에 있으면 더 마음이 우울해져서 안 된다고.


기가 막힌 미술 특별전 있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짝꿍으로 나와 인연을 시작했던 준서는 과는 다르지만, D 대학교로 함께 진학했고, 군대도 같은 부대로 지원해 함께 복무했었다.


서로의 흑역사도 다 꿰고 있고 이제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일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미술에는 관심이 없지만, 친구가 내 기분을 전환해 줄 특별 전시가 있다는데, 술에 취한 와중에도 고개를 끄떡였다.


부잣집 아들 준서는 돈으로 자랑질은 하지 않지만, 항상 마음이 여유로웠다.


하~,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라고 했는데, 한번 비교를 시작하니 또 비교되었다.


JM 하 사장, 이놈은 전생에 나라 셋을 구했는지 태어날 때부터 입에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있었다.


응애~ 하고 눈 떠보니 재벌 3세라 했던가!


JM 대기업을 이끄는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과 비호 덕분에 서른다섯 나이에 JM 자회사인 JM 엔터테인먼트 사장으로 부임했다.


나보다 나이가 딱 2살 많은데도 그는 사장, 나는 로드 매니저. 진 로저.


낙하산 사장이다 보니 음악에 대한 사랑도 없고, 기획 마인드도 없다.


물론 기존의 JM 엔터테인먼트의 기획 이사들, 공연의 달인들, 음악 천재들이 있지만, 사고뭉치 하 사장의 뒤치다꺼리에 골머리를 싼 지가 2년이 넘어간다.


여자 끼고 술 마시고 골프 치며 놀기에도 바쁜 하 사장이 꼭 여자 오디션 심사에는 직접 참관해서, 예쁘장하고 비율 좋은 여자 후보를 고집했다.


노래와 춤 실력을 겸비하지 못한 연습생은 뽑아놔도, 연습을 시켜도 실전 투입의 날은 요원하다.


‘세뇨르 오빠’인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빛나는 외모로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받아 봤고, 오디션 참가도 수없이 권유받았지만, 연기, 노래, 춤이 안 되는 ‘3무 병신’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꿈꾸는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가 있었고, 글로벌 히트 기획이 있었고, 무대 안무가 있었다.


3년 가까운 경력은, 서당 개 3년 풍월에 시를 읊고, 분식집 개 3년에 라면을 끓인다는 농담처럼, 모든 과정에 눈을 뜨게 했다.


굳이 MBTI 따져 보지 않아도 사람 스타일을 알 수 있었고, 스타성이 있는 재목을 보는 눈까지 생겼다.


내가 사장이라면 정말 멋있는 트로트 아이돌을 탄생시킬 자신이 있었다.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 보컬 역할 분담, 색깔 있는 의상과 스타일로, 트로트도 세계에 진출할 때가 되었다.


혼자 노래 부르는 무대가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하는 트로트 아이돌로······.


약속 시간 4시에 맞추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갔다.


미술관 건물에 큰 걸개가 걸려 특별 전시를 홍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춘화전.


하아, 준서가 어젯밤 술에 취해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미술 관람을 이야기하더니, 그 눈빛이 의미하는 것이 이거였구먼.


대학교 때 준서와 같이 교양 미술을 들으면서,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인 신윤복, 김홍도도 춘화를 그렸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도를 닦은 신선 같은 그들이 전국을 유람하며 난을 치던지, 풍경 좋은 산수화만 그렸을지 알았는데, 춘화를 대강도 아니라 자세히도 화폭에 묘사해 놔서 놀랐었다.


교양 미술 때 그들의 작품 두 개에도 준서와 낄낄거리며 밤새 춘화를 이야기하며 술 마셨던 생각이 스멀스멀 기억에서 새어 나왔다.


입구 쪽에서 만난 준서도 어젯밤 술이 덜 깼던지, 아니면 오늘 마주하게 될 새로운 작품에 흥분이 되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나를 반겼다.


“어제 택시 태워서 집 보내줬는데, 집에서 혼나진 않았냐?”


나는 대답 대신 옷을 올려 내 등을 한번 쳐다보라고 했다.


여전히 선명한 엄마의 스매싱 자국들을 보더니 준서가 큰 웃음을 웃었다.


“야, 엄마 아직도 힘이 팔팔하시다.”

“어제 내가 엄마 팔 잡지 않았으면, 내 등짝이 더 처참했을 거다.”

“술에 취했어도 너 아직 운동 신경이 살아있네.”

“아직은 국대급 운동 신경이지, 하하.”


우리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 교양 미술 시간 때 봤던 코딱지처럼 작은 책 그림과는 비교가 안 되게, 큰 그림들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 춘화가 이백 점 가까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아는 사람 그림에 더 애착이 간다고, 우리는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 춘화 앞에서 정밀 관찰에 들어갔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사랑을 묘사하는 장면이 다양했고, 표정에서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감정들이 살아 있는 듯했다.


두 천재가 조선 후기 화가로 나이 차도 열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특별전시전 소개 글을 보니, 혜원이 단원의 제자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료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란다.


어쨌든 두 사람은 살면서 교우를 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왜냐면, 춘화 그림들이 많이 닮았으니까.


인간의 본성인 성에 대한 욕구는 시대와 관계없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화에 나타난 남자, 여자들은 나이, 신분의 다름에 관계없이 모두 성에 대해, 사랑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였다.


춘화에 그려진 배경 그림이 왠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너무 현대적인 화려함보다는 오래된 전통이 좋았다.


술도 소주, 맥주보다는 막걸리, 동동주 같은 전통주가 좋았고, 고색창연한 창경궁, 덕수궁에서의 데이트를 즐겼다.


드라마도 사극, 영화도 조선 시대, 고려 시대 배경인 영화가 좋았다.


고등학교 때, 유일한 백 점 과목이 한국사였다.


준서도 내 트로트 사랑을 아는지라 재밌는 말을 했다.


“저 춘화 보면 막걸리 같은 술상도 있고, 야외 사랑 장면도 있는데, 사랑을 나누면서 무슨 음악을 들었을까? 트로트?”

“준서야, 정말 기가 막힌 질문이다. 근데 그때는 라디오, 텔레비전 없었으니,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음악은 없었겠지.”

“사랑가를 불렀을까? 음악이 없는 사랑은 좀 무드가 없잖아.”


우리의 전통 민요에 미국 블루스, 일본의 엔카가 영향을 주어서, 1960~70년에 트로트란 장르가 개척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준서의 말은 충격이었다.


음악 없이 어떻게 분위기를 잡았을까?


조선시대의 사랑은 앙꼬 없는 찐빵이었나?


아니면 정말 사랑가라도 부르며 사랑을 속삭였을까?


갑자기 조선시대 사람들의 사랑에 나는 깊은 호기심이 생겼다.



작가의말

배고픈 불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 작성자
    Lv.9 k1******..
    작성일
    24.05.17 10:26
    No. 1

    첫화를 빠르게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듯 하여 기대가 크네요.
    배고픈불독님 ~~
    화이팅 입니다 ~~^^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 k9******..
    작성일
    24.05.17 20:50
    No. 2

    흥미롭네요. 계속 보게 될것 같아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 sy*****
    작성일
    24.05.18 00:19
    No. 3

    기존의 작품과 느낌이 좀 다르네요.
    전 작품은 스타트가 강렬해서 독자들을 처음에 사로잡았다면 이번에는 잔잔하게 시작해서 다음화는 어떨까 궁금하게 만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k4******..
    작성일
    24.05.18 21:42
    No. 4

    배고픈 불독님 신작 보려고 가입까지 했어요 세뇨르 오빠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k7******..
    작성일
    24.05.19 01:38
    No. 5

    갈수록 끌리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lo****
    작성일
    24.05.20 12:25
    No. 6

    세뇨르의 활약이 기대되네요. 세뇨르 홧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피타파
    작성일
    24.05.23 19:16
    No. 7

    12화까지 읽은 후기) 조선 시대로 넘어가는 3화부터 읽어질만하고 세종대왕님 나올때부터 재밌음. 이륙 허가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 n7******..
    작성일
    24.05.25 16:51
    No. 8

    배.불님 신작이라니 문피아 가입완료....
    조선아이돌 이건 에이뿔류다
    세뇨르 별표땡땡땡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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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양녕대군과의 결투 24.07.27 246 4 11쪽
72 위기의 밤 24.07.26 239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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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여자의 존재 24.07.24 242 5 11쪽
69 양녕대군과의 만남 24.07.23 246 5 11쪽
68 한양 공연 24.07.22 246 5 11쪽
67 소양강의 밤 24.07.19 246 6 11쪽
66 조선 시대의 입맞춤 24.07.18 249 6 11쪽
65 함흥냉면의 비법 24.07.17 249 5 11쪽
64 영변의 약산(藥山) 24.07.16 252 5 11쪽
63 세종대왕에게 뻥을 치다니 +2 24.07.15 256 5 11쪽
62 죽음의 고비와 사랑 +1 24.07.14 255 5 11쪽
61 역모죄의 증거 24.07.13 252 5 11쪽
60 단식 투쟁 2 +1 24.07.12 250 5 11쪽
59 단식 투쟁 24.07.11 262 5 11쪽
58 평양에서의 시련 24.07.10 264 5 11쪽
57 둘이 아닌 하나가 된 느낌 24.07.09 271 4 11쪽
56 매화와의 첫 입맞춤 24.07.08 267 4 12쪽
55 세종대왕과의 대화 24.07.07 268 4 11쪽
54 현대로의 회귀 실험 24.07.06 266 4 11쪽
53 조선 시대의 패션 24.07.05 26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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