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요갱의 유혹

장영실, 박연에 이은 초요갱의 작업이 양녕대군을 만나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막례가 보고한 대로 저녁에 나가서 초요갱이 한 행위까지는 추적할 수 없지만, 그녀의 의상만큼 파격적인 행보를 그녀가 하는 것이 분명했다.
양녕대군의 얼굴이 웃음꽃이 핀 것과는 대조적으로 초요갱의 과한 행동을 바라보는 맹사성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초요갱의 순서가 끝나자 두 번째로 도영의 벼 노래를 선보였다.
‘춘 3월 가시내 바람에 봄바람 살랑일 때,
우리 어미, 아비 모내기했네.
모모모~~ 내내~~ 기~.
굽혀진 허리가 여름 땡볕에 녹아 세워질 때,
내 얼굴에도 땀이 흐르고, 벼도 땀을 흘렸지.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노란 벼가 논밭에 흐를 때, 참새가 달려왔지.
훠이~ 이놈들, 훠이~ 이놈들.
허수아비가 휘파람을 불고 참새를 쫓았지.
훠이~ 이놈들. 훠이 이놈들.’
도영이 원곡에 추임새를 추가해서 곡의 흥겨움을 더했다. 추임새가 추가되고 조선 아이돌이 함께 부르자 그 중독성이 대단했다.
도영은 자신의 곡이 연주될 때 새롭게 제작된 악기 틀에서 마음껏 조선 시대의 드럼을 연주했고, 추임새 부분에는 꽹과리 연주를 추가해 흥겨움을 극대화했다.
맹사성과 양녕대군도 과거에 봐왔던 북, 장구, 징, 꽹과리지만, 거기에 처음 보는 놋쇠 그릇을 얹어 놓은 것 같은 악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도영 혼자서 몇 개의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고, 거기에 유라의 생황 소리가 화음으로 멋있게 들어가고, 윤서의 옥피리 소리도 기가 막혔다.
맨 앞줄의 매화와 초요갱이 전혀 다른 색채로 춤을 추고 모두의 군무가 더해지니, 벼농사는 대풍년을 이룬 듯 흥겹게 마무리가 되었다.
도영의 연주와 모두의 군무가 끝나자 맹사성과 양녕대군은 아낌없이 손뼉을 쳐 주었다.
마지막의 매화의 곡이었다.
“말을 타고 달려. 사랑을 싣고 달려.
신나게~ 다그닥 다그닥~~.
매화 향기 가득~ 사랑을 싣고 달려.
싱그럽게~ 다그닥 다그닥~~.
먼지 속에 말은 안 보여. 그런데 님의 모습은 보여.
바람 불고, 매화 향기 날리며 내 님은 달려.
날아가라 휘이~~ 휘이~~
시야 속 내 님은 사라졌지만, 항상 마음은 함께 달려.
사랑을 싣고~ 다그닥 다그닥~~.”
매화의 원곡에 비해 따라 부르기 쉽게 개사를 조금 했고, 후렴구도 더 신나게 넣으면서 춤을 더 단순하지만 흥겹게 만들었다.
매화의 곡이어서 매화가 맨 앞줄의 가운데에 서고, 윤서와 초유갱이 좌우로 포진했고, 유라. 도영. 초선이 뒷줄에 섰다.
날아가라 훠이~ 훠이~ 할 때는 초선의 고난도 춤사위가 공중에서 펼쳐졌고, 마치 매가 달리는 말을 따라가며 허공에서 춤을 추듯 환상적으로 보였다.
초선이 내 의견을 듣고 춤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기본적인 춤 동작은 단순, 반복으로 중독성을 높이지만, 귀엽고 섹시하게 구경꾼들의 관심을 최대한 유도하고, 자신의 고난도 춤으로 방점을 찍는 그런 안무였다.
독특한 개성의 의상도 처음 입었을 때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안무하기에 편하게 만들어졌고 전체 색감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너무나 개성이 있었다.
기생들의 단순히 화려한 의상과는 차별화도 되었고 각기 다른 색감이 춤을 추면서 묘하게 어우러져, 나는 초요갱의 예술적 감각이 정말 천재라고 생각되었다.
매화가 앞줄 가운데 서니 정말 안정감이 있었다.
빼어난 미모의 매화, 윤서, 초유갱이었지만, 윤서가 조선 시대 정통의 미인상이라면 초요갱은 요염한 기생으로 화려하고 개성이 강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극적으로 다른 분위기의 윤서와 초요갱 사이에서 매화가 조화를 이루어주고 있었다.
매화의 하얀 피부, 짙은 눈썹, 앵두 같은 붉은 입술은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매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듯, 인간계의 극과 극을 이루는 윤서와 초요갱을 어우르는 존재처럼 보였다.
목소리도 초요갱이 독특하고 개성이 있지만 몇 곡 들으면 싫증이 날 소리였고, 윤서의 목소리는 좋지만 구경꾼들에게 어필하는 힘이 매화의 것에 미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곡 연습을 반복하면서 조선 아이돌의 메인 보컬로 매화가 적합함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매화의 곡이 끝나자 맹사성과 양녕대군은 대단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양녕대군은 모두를 치하하면서 매화에게 다가갔다.
“매화야, 네 노래가 혼자여도 좋았지만, 함께 하니 더 매력이 느껴지는구나.”
윤서는 양녕대군이 매화를 아끼고 있음에 만족해하며 그녀를 대군 앞에서 칭찬했다.
“대군마마, 매화가 여느 대갓집 여식처럼 올곧고, 착합니다. 본받을 점이 많사옵니다.”
윤서의 칭찬에 맹사성도 하얗게 서리 내린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해했다.
자신이 모신 상관의 손녀가 비록 기생으로 있지만, 나름의 품격을 지키고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표정이었다.
윤서와는 달리 초요갱의 눈에서는 강한 질투의 불꽃이 타올랐다.
같은 기생 출신으로 그렇지 않아도 경쟁의식이 있었는데, 맹사성 예문관대제학뿐만이 아니라 양녕대군까지 애정 어린 눈초리로 매화를 바라보니 인내심이 바닥나는 듯했다.
세 곡 발표가 끝나자 곡을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장영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악기 구성을 했고, 박연의 도움을 받아 악보도 완성했음을 보고했다.
맹사성은 공연의 완성도를 칭찬하며, 임금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곡과 춤, 연주가 잘 구성되었다며 다음 날 입궁하는 대로 임금님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앞으로도 조선 아이돌이 직접 노래를 만들고, 안무를 만들고, 무대 의상도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맹사성은 무대 의상이 파격적이라며 분명 유생들의 반발을 살 수 있음을 지적했다.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만들면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만, 나는 백성의 관심을 끌고 공연의 흥행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탈은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첫 예비 공연은 성공리에 끝났다.
그동안 고생한 조선 아이돌을 격려하고, 맹사성 어른과 양녕대군을 대접하기 위해 저녁 식사 자리로 함께 이동했다.
그동안 잘 먹고 지내기는 했지만 무사히 첫 예비공연을 마친 그들에게, 입이 쩍 벌어지게 진수성찬을 준비해 준 모친에게 정말 고마웠다.
전국 도방들이 보내준 각지의 특색있는 곡차와 술들이 준비되어 식사 자리에 제공되었다.
임금님의 큰 형님과 같은 상은 아니었지만, 겸상으로 옆자리에서 식사하게 된 초선과 도영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격해했다.
자신의 인생 변화를 가장 실감 나게 느끼게 해 준 저녁 식사 자리였다.
과거 같으면 언감생심 고개를 들고 보지도 못할 임금님의 큰형님이고, 한때 조선의 세자로 위용을 떨치던 양녕대군이었다.
그런 대군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함께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자리가 너무나 큰 영광이었다.
초선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마마, 정말 영광이옵니다. 내레 사당패 친구들한테 평생 자랑하며 살갓시오.”
맹사성이 식사를 하고 곡차를 한 잔씩 마시는 반면, 양녕대군은 전국의 특산주들은 한 잔씩 음미하면서 마셨다.
그런 양녕대군의 모습을 보며 기회를 놓칠 초요갱이 아니었다.
“마마, 대행수가 따라주는 술보다는 소인이 따라주는 게 더 맛있겠지요?”
“아무렴. 초요갱이라고 했지? 당돌하지만 네가 마음에 드는구나. 이리 와서 한 잔 따라봐라.”
제지할 수도 없었고 제지할 힘도 없었다.
맹사성 예문관대제학과 양녕대군은 한양 상단 대행수가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맹사성에게 앞으로 만들 노래에 대해 좋은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다.
향악의 대가답게 그는 고유의 리듬을 잘 연구해서 노래와 접목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전통 음악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색깔이 다르고, 남과 북이 다르니 곡의 특색에 맞는 리듬과 추임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라고 했다.
다행히 조선 아이돌이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뽑힌 인재들이라 각 지역의 특색있는 전통 음악은 추출할 수 있었다.
도영은 맹사성의 충고에 깊은 감사를 표현하고, 다음번에는 더 좋은 노래로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자신했다.
맹사성 어른이 맨정신으로 조선 아이돌의 미래에 좋은 말을 해 줄 때, 양녕대군 옆에서는 초요갱이 붙어 앉아 계속 술을 권하고 있었다.
나보다도 훨씬 주량이 약한 양녕대군은 술이 계속되자 술에 취한 듯 조금씩 말이 흩어지고, 초요갱에게 몸을 기대었다.
그런 양녕대군을 보며 맹사성은 옛 제자에게 기침하며 정신 좀 차리라고 신호를 주었지만, 한번 고삐가 풀린 양녕대군은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낱 대행수인 내가 양녕대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조선 시대였고 유배된 그였지만 세종의 큰형님이었다.
초요갱에게 신호를 보내 술을 그만 권할 것을 말했고, 넌지시 맹사성에게 자리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거듭된 옛 스승의 권유로 겨우 술자리가 끝이 났다.
반은 구부러진 양녕대군의 혀 사이로 겨우 알아들을 말이 흘러나왔다.
“매화 저년은 칼처럼 서늘하거늘, 초요갱 너는 여름 태양처럼 뜨겁구나.”
양녕대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나는 바로 파악했다.
맹사성도 양녕대군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오래 봐 와선지, 그 말을 듣고 혀를 차며 다시 허연 수염을 어루만졌다.
초요갱은 오늘 나름의 성과를 얻은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양녕대군을 부축했다.
양녕대군의 손이 가느다란 초요갱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런 술자리를 처음 목격한 어린 도영은 두 손을 눈으로 가리며 못 볼 것을 본 마냥 창피해했다.
초선과 유라도 고개를 돌렸다.
초요갱은 양녕대군의 손을 허리에서 떼 놓기는커녕, 그의 손을 자신의 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마마, 오늘은 많이 취하신 듯합니다.”
“그래, 내가 술에 취하고 초요갱 너한테 취했구나.”
“황공하옵니다.”
먹이를 노린 독수리처럼, 마침내 먹이를 잡고 강한 발톱으로 먹이를 움켜쥐고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는 표정이, 초요갱의 얼굴에 순간 스쳤다.
대방에게 부탁해 양녕대군을 보내줄 가마를 대령시켰다.
경기도 이천까지 가야 하는 양녕대군을 배웅하며 초요갱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살펴 가시옵소서.”
“그래. 남자는 술을 마시면 끝을 몰라. 널 갖고 싶어 술술~~ 네 이름이 초요갱이라 했지? 내 널 기억하마.”
그렇게 양녕대군은 먼 길을 떠났다.
양녕대군을 오랜만에 다시 봤지만 맹사성은 술에 취한 그의 모습이 아쉬운 듯 혀를 차며 소 등에 올랐다.
오늘따라 그의 퉁소 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윤서는 양녕대군과 맹사성이 떠나자마자 초요갱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초요갱, 너 그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무슨 말씀이온지?”
“처음 보는 대군에게 그렇게 색기를 부려야 되겠어?”
“대군마마께 술 한잔을 따라 드리는 것도 색기를 부리는 행동인가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하나같은 조선 아이돌에 서서히 균열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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