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서 자존심을 건 싸움

막례로부터 양녕대군을 만나기 전에도 밤에 한 번씩 초요갱의 외출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비록 양녕대군이 경기도 이천에 유배 중이지만, 유배지에서 쉽게 벗어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윤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초요갱의 일탈을 자신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양녕대군 오라비와 초요갱의 일탈은 막겠지만, 매화는 어떻게 하면 되겠소?”
그녀의 의도가 눈에 보이는 말이었다.
내가 윤서에게 매화와 연모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그녀는 의심을 풀지 않고 있었고, 내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 연유가 매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솔직히 대답했다.
“낭자, 매화가 일탈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같은 기생이라 해도 믿음은 하늘과 땅 차이구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윤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에 일어섰다.
*****
두 번째 자작곡 경연에서도 대단한 곡들이 발표되었다.
도영은 의도적으로 이번에는 어부의 노래를 만들어 4명으로부터 합격 표식을 받았고, 초요갱은 ‘여자의 삶’이란 곡으로, 2명으로부터 합격 표식을 받았다.
태어나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음식을 만들어도 출산과 노동의 힘든 과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을 꾸짖는 노래였다.
하지만, 결혼은 했었지만 출산 경험도 없고 기생 생활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그녀가 그런 노래를 하니 좋은 평가는 못 받은 듯했다.
초선의 노래는 여전히 현대의 래퍼 같은 노래였지만 시대를 앞서간 그녀였기에 평가는 박해서 겨우 한 표의 합격을 도영에게 받았을 뿐이다.
유라의 가무도 첫 번째 노래보다는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였지만 2표를 얻는 데 그쳤다.
도영의 실력은 이미 내 입을 통해서도 공표가 되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노래 경연을 통해 다른 멤버들에게도 공인이 되었다.
하지만, 깜짝 스타는 항상 나오게 마련이었고, 두 번째 경연의 스타는 윤서와 매화였다.
윤서의 곡은 어떤 측면에서는 초요갱의 ‘여자의 삶’과 궤도는 비슷했지만, 바라보는 차원이 조금 달랐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몸도 달라, 마음도 달라.
달라 달라~ 많이 달라~~.
남자는 여자처럼 못 하는 게 너무 많아.
많아 많아~~ 바보처럼 많아~~.
아이도 못 낳고, 젖도 못 주지.
그래서 아이는 태어나면서 엄마를 먼저 찾지.
응애응애 엄마~~ 응애응애 엄마~~.
여자는 대단해. 엄마는 대단해.
대단 대단~ 정말 대단~~.
꿈을 향해 달려가 봐. 희망을 찾아 날아가 봐.
모든 세상 남자의 엄마는 여자야.
달라 달라~~ 많이 달라~~.”
고관대작 딸인 그녀였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찾아 조선 아이돌에 참가한 그녀가 자신의 철학을 노래에 담은 듯했다.
그녀다운 노래에 초요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합격 표식을 들어 4표를 받았다. 도영과 같은 결과였다.
도영과 윤서로 끝날지 알았던 그날은 매화가 파란을 일으키며 모두에게 합격 표를 받았는데, 그녀가 만든 곡은 조선 아이돌에 대한 곡이었다.
“길을 떠났지. 보이지 않는 희망을 안고서.
대동강 물길 따라 내려왔지. 낙동강 따라 올라왔지.
어기여차~ 영차~ 어기여차~ 영차~~.
꿈을 노래하고, 사랑에 춤을 추는 우리들은
조선 아이돌~ 조선 아이돌~~.
우리들 노래에 사람들은 춤을 추네, 어깨를 들썩이며.
어여라 디여~~ 둥기둥기 두둥기~~~.
힘들어도 함께하면 우리는 힘이 나네.
어여라 디여~~ 둥기둥기 두둥기~~.
백성들아 힘을 내세. 어깨춤을 함께 추세.
힘들어도 함께 하면 우리는 힘이 나네.
조선 아이돌~ 조선 아이돌~~.”
마치 조선 아이돌의 주제곡 같은 가사를 갖고 있었고, 현대 판소리 공연에서도 들은 것 같은 흥겨운 추임새가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매화는 어깨춤을 두둥실 추면서, 사뿐사뿐 무대를 돌며, 마치 구경꾼들이 그녀의 가무에 환호하는 것을 즐기는 듯 기쁜 표정으로 춤을 추었다.
노래와 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고, 매번 공연 피날레로 써도 될 만큼, 흥겨우면서 조선 아이돌의 취지에도 딱 맞아떨어졌다.
매화의 곡이 끝나자 모두 아낌없이 손뼉을 쳐 주었고, 윤서와 초요갱까지 합격 표식을 올려줘 처음으로 5표의 합격자가 나왔다.
당연히 매화의 곡을 먼저 연습하고, 도영과 윤서의 노래를 연습하기로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기의 화합이 기가 막혔다.
도영의 타악기, 유라의 현악기, 윤서의 피리 소리와 더불어 매화와 초요갱의 장구, 가야금까지 더해지니 그 조화가 풍성해졌다.
박연과 장영실의 합작으로 울림통이 있는 비파가 만들어져, 유라는 신나게 비파를 연주하며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매번 자작곡 공연이 있는 날 이후에는 자문단을 초청해서 평가를 받았다.
그런 날은 초요갱의 유혹이 양녕대군을 향했지만, 윤서가 그런 초요갱을 견제하며, 내가 걱정했던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가을이 가고,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었다.
봄에 내가 조선 시대로 회귀했으니, 이제 4계를 다 경험했다.
겨울을 나면서 우리는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더 연습에 매진했고, 곡을 15곡 완벽하게 준비해서, 노래와 춤, 악기 공연까지 완성도를 극대화했다.
전국 공연을 할 때 대상이나 지역에 따라 좀 개사를 해서 부르는 곡도 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 전국 공연을 나가기에 앞서 두 가지 이벤트를 준비했다.
하나는 그동안 조선 아이돌에 대한 자문을 열심히 해 준 자문단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궁궐에 들어가 초연을 하는 것이었다.
항상 사고는 긴장의 끈을 놓을 때 생기는 법이었다.
양녕대군과 맹사성, 박연, 장영실을 초청해 마지막 연습곡을 선보이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술술~ 들어가는 술이 문제였다.
맹사성을 제외하고 양녕대군과 박연, 장영실 모두 술을 좋아했다.
술이 술술~ 들어가면서 남자들은 용감해졌고, 그 틈을 타고 초요갱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여자들만 있을 때는 윤서의 견제가 가능했지만, 양녕대군이 있은 자리에서 윤서가 함부로 초요갱의 행동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양녕대군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맹수처럼 초요갱은 그 곁에 앉아 교태를 부렸고, 술에 취해가는 양녕대군도 옛 스승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가며 그녀의 허리를 안곤 했다,
조선 아이돌은 예술적 재능뿐만이 아니라 외모도 모두들 한 인물 했다.
섬 머슴 같던 초선조차, 한양 생활이 몇 달 지나면서 때 국물이 쑥 빠지더니 남정네들의 시선을 한눈에 맞는 미녀로 탈바꿈했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남자 사환들과 서리들이 조선 아이돌의 미모에 쑥 빠져, 자기들끼리 최고 미인에 대해 말다툼도 벌였단 이야길 준수에게 들었다.
곡차만을 마시며 정신이 멀쩡한 맹사성과는 달리 양녕대군과 박연, 장영실은 술에 조금씩 취해 갔고, 노비 출신이었던 장영실만 정신을 바짝 차리려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감사 자리가 또 술로 얼룩지면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나서 윤서에게 눈짓했지만, 그녀도 난감한 표정으로 날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맹사성 어른이 있음을 믿었고, 윤서가 초요갱을 잘 견제해 줄 것을 믿었다.
하지만 초요갱이 윤서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녕대군에게 술을 계속 권했고, 맞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박연은 양녕대군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러고선 한마디 했다.
“대군, 술이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뭐야? 내가 유배 중이라고 무시하는 게냐?”
“······.”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양녕대군의 등장 전에 초요갱이 장영실, 박연 모두에게 눈웃음을 쳤던 것을 봤던 나는 그 팽팽한 긴장감이 남자로서 자존심을 건 싸움처럼 보였다.
유배하는 도중 유배지를 이탈하는 것은 큰 죄였지만, 그는 임금님의 큰형이었다.
하지만, 세종이 의지를 가지고 유배를 풀려고 해도 대신들의 반대로 끝까지 이루지 못함을 난 알고 있었다.
양녕대군의 유배지 해방을 막고 있는 대신 중 박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순 없지만, 오늘 술자리가 양녕대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맹사성 어른은 그런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지, 양녕대군에게 술을 그만 마실 것을 권했다.
“참 재미없는 사람들일세. 이렇게 절세미인들의 가무를 보고서도 자제를 하다니······.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 풍류를 아는 영웅호걸이거늘.”
그러면서, 양녕대군은 몹시 위험한 발언을 했다.
“초요갱, 풍류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 물리고, 너와 내가 밤새 술을 마시면 어떻겠느냐? 근처 기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 하자꾸나.”
맹사성은 옛 제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아니 됨을 말했지만, 술 취한 그는 굶주린 맹수처럼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박연과 장영실은 직급상 대군에게 이래라저래라 말할 위치가 못 되었다.
나는 윤서에게 눈짓했지만, 윤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전주 이씨 왕족이었지만, 양녕대군은 그녀에게는 하늘처럼 높은 먼 친척 오라비일 뿐이었다. 그것도 조선 아이돌 돼서 처음 본.
왕족이 술 한 잔 더 하고 싶다는데, 그만두게 할 명분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없었다.
양녕대군은 한 손으로 초요갱의 가는 허리를 안고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자리를 정리해야만 했고, 맹사성의 거듭된 만류에도 양녕대군이 굽히지 않자, 준수를 시켜 기방에 연락해서 양녕대군과 초요갱을 모실 가마를 준비했다.
준수를 시켜 기방을 지킨 다음, 반드시 양녕대군을 이천 집으로 보내고, 초요갱을 저녁에 조선 아이돌 거처로 데려올 것을 엄명했다.
그날 사건으로 초요갱은 양녕대군의 사랑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조선 아이돌의 멤버들에게 신임을 잃었다.
영특하고, 뛰어난 가무의 실력에 빼어난 의상 감각까지 있지만, 조선 아이돌의 앞줄 가운데 주인공으로서는 품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전국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 영리한 초요갱이 분명 주판알을 굴렸겠지만, 그녀의 선택은 양녕대군이었다.
적어도 그날 밤에는.
초요갱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매화의 품격은 빛이 났고, 저녁 술자리나 평소 모습이 너무나 격이 다른 매화에게 칭찬이 쏟아졌다.
그런 매화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나 자신이 느끼지 못했지만 꿀 떨어지는 내 시선을 몹시도 시샘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윤서였다.
앞줄에서 이제 윤서와 매화가 가운데 주인공 자리를 놓고 경쟁하겠지만, 내 꿀 떨어진 시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나는 그날 밤에도 깨우치지 못했다.
매일 같이 생활하다 보니 그녀가 최고 권력자인 평안 도사의 딸이면서 왕족이란 사실조차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비극은 무지 속에서 피어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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