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매화는 내게 그 전서를 건네주었지만, 나는 그 전서를 읽을 수가 없었다.
내게 한자로 적힌 그 전서는 그저 까만 것은 글씨였고 하얀 것은 종이일 뿐이었다.
난감해하는 나의 표정을 매화가 미안해하며 전서의 내용을 읽어 주었다.
‘내 딸 매화야,
애비는 지금 전주 이씨 왕족인 ’이필‘의 집에서 노비로 지내고 있다.
너의 소식은 어제 조선 아이돌 공연을 구경 갔었던 이 집 노비인 막동이한테 전해 들었다.’
매화는 전서를 읽다가 다시 감정이 복받치는지 논물을 쏟아냈다.
그녀의 눈물이 내 심장에 강한 염산처럼 뚝뚝 떨어져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니 다시 매화가 전서 내용을 읽어주었다.
‘아비는 잘 지내고 있으나 바깥출입이 힘들어 너를 보로 갈 수가 없다.
네가 나를 보러 오더라도 주인 양반이 허용해 주지 않을 것이니 괜한 걸음 하지 말고 네 갈 길을 가거라.’
잠시 또 눈물로 말이 멈추었지만, 부친은 사랑의 마음과 당부로 전서를 마무리했다.
‘고려 충신 집안임에도 네가 길거리 공연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만, 스스로 굳건히 네 갈 길을 걷고, 행복하게 산다면 이 애비는 만족할 거다. 목숨 부지하고 살다 보면 만날 날이 올 거다. 꼭 건강해라. 사랑하는 내 딸아.’
바로 전주 도방에게 ‘이필’이란 사람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는 이조참판까지 한 대신으로 전주의 가장 영향력이 큰 왕족이었다.
낙향해 있지만 워낙 권세가 등등해, 주변 관리들도 설설 긴다는 권력가였다.
매화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자, 매화는 낙담하며 ‘이필’ 저택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다.
도방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쳐 주자, 매화는 그쪽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부친의 행방은 이제 찾았으나,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일개 상단의 대행수로서 나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매화에게 조선 아이돌이 대성공을 하는 날, 세종대왕에게 부친의 면천까지 반드시 허락을 받아내겠다고 매화에게 약속해 줬다.
아쉬운 마음을 남겨놓고 우리는 광주로 향했다.
현대에서 광주는 광역시로 컸지만, 조선 시대에서는 전주와 나주에 비해 작은 고장에 불과했다.
무등산 아래 계곡에서 잠시 쉬었나가 광주천 옆으로 무대를 잡았다.
현대에선 통닭으로 유명한 양동시장이 있는 광주천이었지만, 조선 시대는 작은 저잣거리가 형성된 곳이었다.
이미 조선 아이돌 행사는 전국구 행사가 되었고, 지엄하신 세종대왕의 협조 공문이 각 관청에 내려진 터라, 도착하기 전부터 홍보, 무대 설치가 원활하게 되었다.
광주에서의 공연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전라도의 마지막 공연지인 나주로 향하는데, 행렬을 따르는 구경꾼의 숫자가 또 스무 명은 늘어난 듯했다.
말을 타고 가는 나와 준수, 소가 끄는 6대의 가마, 소가 끄는 수레 뒤로 행렬을 따르는 긴 무리가 장관을 이루었다.
나주로 향하는데 유라가 왠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극도로 보수적이고, 폭력적인 남편과의 과거가 트라우마처럼 유라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한양 있을 때는 편하게 생활했던 유라가 자신의 거처였던 나주에 가까워질수록 불안해 보였다.
나주에 도착하고 지난번 선발전 때 인사를 나누었던 관찰사와도 재회해서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주 관청 목민관 앞 광장을 내주었던 그는 다시 같은 장소를 공연장으로 내주었다.
선발전과 달리 6명의 완전체로 나타난 조선 아이돌로 관청 앞의 저자거리는 말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그 사이 나주 도방은 내가 말해준 대로 나주 곰탕집을 저자거리에 선보여 겨울 내내 수익이 짭짤했다고 했다.
그가 차린 나주 곰탕집을 찾아가 부들부들한 우설과 함께 수육을 맛보고, 곰탕에 밥을 한 그릇 말아서 맛있게 먹었다.
부친의 전서로 계속 침울해하는 매화에게는 조선 아이돌의 대성공만이 부친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하며 그녀가 하루빨리 정상을 찾길 바랐다.
한양에서부터 하나둘 늘어난 응원 부대는 맛보기 공연과 전주, 광주를 지나 나주로 오면서 이제 백 명에 가까운 인파로 늘어났다.
현대로 말하면 팬클럽인데, 충성도가 현대의 극성팬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전라도 전주에서부터 매화와 유라의 인기는 치솟아 올랐고, 그녀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다른 조선 아이돌을 압도했다.
다른 네 명은 어서 고향 땅에서 공연을 하는 날 만을 학수고대했다.
특히, 어느 양반집 자제 같은데, 전주에서부터 유라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저 놀고만 먹는 한량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상당히 진지해 보였다.
나에게도 다가와 자기가 꿈꾸는 이상형이라며 유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그녀에 대해 말해 줄 순 없었다.
특히, 유라는 조선 시대에는 그다지 흔하지 않은 돌싱으로서 그녀의 과거는 내가 보호해 주어야 할 비밀이었다.
전 남편으로 인해 극도로 민감해진 유라의 상황에서 괜히 그녀를 자극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전라도의 마지막 공연이 유라의 고향에서 펼쳐졌다.
조선 아이돌 선발 때보다 적어도 두 배의 인파는 몰린 것 같았다. 목민관 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근처 저잣 거리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흐미, 밀지 좀 말랑께.”
“조선 아이돌 오늘 못 보믄 인자 니 죽고 나 죽고여. 내가 아침에 쪼매 일찍 나오자고 했냐, 안 했냐?”
목민관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리가 나 있었다.
무대의 귀퉁이에는 양녕대군의 명필이 새겨진 조선 아이돌 깃발이 찬란하게 나부끼고 있었고, 무대에는 도영이 조선시대판 드럼 세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무대에 내가 올라가 우렁찬 징 소리와 함께 조선 아이돌 공연의 시작을 외쳤다.
그리고, 조선 아이돌의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며 그녀들을 무대로 올라오게 했다,
오늘도 무대 앞줄을 선점한 ‘아딸따’ 팬들이 그녀들의 이름을 연호하면,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아참, ‘아딸따’은 ‘아름다운 딸들을 따르는 무리’로 유라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사내가 조선 아이돌을 따르는 사람들의 명칭으로 붙였다며 내게 말해 줬었다.
현대로 말하면 팬클럽이었고, 그 팬클럽의 회장이 전주에서부터 유라를 짝사랑하면 쫓아온 사내였다.
맨 앞줄에서 ‘아딸따’ 사람들이 백 명 가까이 포진하며, 조선 아이돌의 이름을 연호하자 나주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오매, 저 사람들은 누구여? 조선 아이돌 친구들이여, 친척이요? 다들 허벌나게 친해분거 같은디?”
“이쁜 처자들한테 쏙 빠져분 불쌍한 남정네들이고만.”
절세미인들이 무대를 채우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면서 사내들의 가슴을 벌렁벌렁 뛰게 했다.
유라 소개가 되자 나주 백성들은 의녀인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오매, 우리 의녀님 아니여? 내 다리 분질러 졌을 때 고쳐준 의녀님 맞네. 오매매 방가운거.”
친절한 의녀였던 유라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칭찬이 이어지자, ‘아딸따’를 이끄는 유라의 짝사랑남은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유라의 이름을 연호했다.
나주 사람들도 그를 따라 유라의 이름을 외쳤다.
봄바람에 유라의 볼이 유난히 복숭앗빛을 띠는 것 같았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고, 나주 목민관은 아주 난리가 났다.
조선 아이돌 선발전과는 달리 절세미인 6명의 군무와 기가 막힌 연주, 흥겨운 노래가 울리자, ‘아딸따’는 물론 춤을 덩실덩실 추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앉아서 공연을 보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도저히 앉아서 얌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 일어서서, 조선 아이돌을 따라 중독성이 강한 후렴구는 따라 불렀고, 단순, 반복 군무는 따라 춤을 추었다.
귀엽고 섹시한 춤 동작을 따라 하는 나주 낭자들은 수줍은 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방긋 웃는 미소는 숨겨지지 않았다.
공연이 클라이맥스를 치달으면서 오늘 나주 무대도 매화의 ‘조선 아이돌’ 주제곡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할 시간이었다.
도영의 멋있는 연주과 초선의 독무로 구경꾼들의 시선이 피날레 무대를 향해 쏟아질 때, 어떤 사내가 유라의 이름을 외치면서 튀어나왔다.
“유라, 네 이년~~.”
그의 손에는 봄볕에 번쩍이는 칼 같은 게 쥐어져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나도 전혀 움직이지를 못했고, 무대를 호위하던 포졸도 거리상 그를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먹구름과 같은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있는데, 그 순간 흉기를 든 그에서 어떤 사내가 번개처럼 달려가 그를 넘어트렸다.
순간, 무대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포졸들이 뛰어와 땅바닥에 쓰러진 그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유라와 조선 아이돌은 무사했다.
정신을 차리고 무대로 뛰어나가 상황을 바라보니, 흉기를 들고 뛰어나온 사내를 제압한 용감한 이는 바로 ‘아딸따’를 이끄는 유라의 짝사랑 남이었다.
그리고 흉기를 든 사내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는 유라의 전남편이 분명했다.
“유라, 네 이년! 네가 날 버리고, 온전히 살지 알았더냐?
니 죽고 나 죽자.”
포졸들에게 흉기를 빼앗기고, 잡혀있던 그가 용을 쓰며 유라에게 또 달려가려고 하자, 용감한 ‘아딸따’의 회장님께서 호랑이처럼 유라 앞에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포졸들은 유라의 전 남편을 포박해 끌고 갔다.
어수선해진 무대를 정리하고, 나주 백성들을 향해 소리쳤다.
“조선 아이돌의 마지막 노래를 듣고 싶으신가요?”
“하믄. 언능 불러불랑께.”
매화는 가운데에서 침착하게 ‘조선 아이돌’ 주제곡을 불렀고, 흥겹게 마지막 무대를 잘 마무리해 주었다.
유라도 정신이 없었겠지만, 실수 없이 마지막 곡을 소화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녀가 두려워했던 전 남편의 폭력성이 모두에게 적나라하게 공개되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다치는 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유라에게는 천군만마 그녀만을 바라보는 짝사랑남이 ‘아딸따’를 이끌며 그녀의 호위무사로 떠올랐다.
위기는 기회였고, 고난은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어 주었다.
나주에서 광양을 거쳐, 경상도 하동 화개장터까지 가면서 전주에서부터 유라만을 쫓아다니던 짝사랑 남은 조금씩 유라의 마음을 얻어낸 듯했다.
몸을 던져 유라를 구한 그의 진심을 유라가 느낀 듯했고,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현대에서는 KTX, 고속버스로 하루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이었지만, 조선 시대에선 모든 게 느렸다.
느림이 현대 사람들에겐 불편함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조선 시대 사람에겐 당연한 속도였다.
느린 만큼 유라와 ‘아딸따’ 회장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대화는 그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주었다.
전주 짝사랑 남은 유라의 전남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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