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조선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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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배고픈불독
그림/삽화
라비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4:12
최근연재일 :
2024.08.04 20:0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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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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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글자수 :
4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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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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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역모죄의 증거

DUMMY

눈을 뜰힘조차 없었지만, 가까스로 말 위에 탄 두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한 명은 충직한 준수였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관리였다.


분명 어명을 갖고 준수와 같이 오는 것이 분명했다.


관리는 바로 관청으로 들어갔고, 준수는 말에서 내려 내게 달려왔다.


“대행수님, 아직 이렇게 단식하고 있다니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인제 정말 뭐 좀 드세요.”


속으로는 ‘이놈아, 난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를 외치고 싶었지만,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자만 몇 번 나오려다가 멈추었다.


준수가 내게 전해준 이야기는 약간 뜻밖의 이야기였다.


매화를 한양으로 압송하고, 평안 도사에게도 입궁을 명했다는 어명이 떨어졌다고 했다.


아마 관청으로 들어간 관리는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평안 도사 앞에서 읽을 궁궐 사람인 듯했다.


매화의 석방이 아니라 압송이었지만, 평안 도사도 한양 궁궐로 입궁하니 무엇인가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지만, 준수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다 해 주었다.


맹사성 어른에게 평양의 상황을 다 이야기했더니, 신선 같은 그분이 격노했다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했지만, 양녕대군에게 보낸 서찰에는 답신이 없었다고 했다.


맹사성 어른이 매화를 위해서 무엇인가 구명 운동을 한 것이 분명했다.


유라는 내게 소금물을 주었다.


“대행수님, 이제 우리가 매화를 따라 한양으로 가야항께 퍼득 이 물 마시랑께요. 기운을 차려야지 따라갈 수 있당께요.”

“······네.”


처음으로 내 의지로 소금물을 받아 마셨다.


흐릿해진 내 의식을 틈타 유라가 내 입에 억지로 물을 넣은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내 무의식조차 물을 거부해서 몇 방울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했었다.


나는 희망의 빛이 보이며, 내 목젖을 타고 들어가는 짠 소금물 줄기를 느꼈다.


잠시 후, 말을 타고 달려왔던 관리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에 소가 끄는 수레 하나가 뒤에 보였다.


피골이 상접한 매화가 수레 위에 얹어진 나무 감옥에 실려 있었다.


살아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


내 몰골도 처참하겠지만, 매화는 그동안 얼마나 문초를 심하게 당했는지, 옷과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딸따’와 평양 백성들은 모두 분노에 차 평양성 관리들을 욕했다.


“천벌을 받을 놈들, 매화 낭자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기적이지비. 사람 몰골이 아니라이.”


하늘에서 구름 타고 내려온 선녀 같았던 매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처참한 피투성이 모습으로 나무 감옥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수레가 내가 있는 거적을 통과할 때,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내 모습과 내 눈물을 보았고, 나도 그녀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눈망울을 보였다.


평소에는 사슴처럼 맑은 눈빛이었는데, 그동안의 문초 때문인지, 아니면 삶에 대한 강한 의지 때문인지, 유난히 강하게 빛나 보였다.


그녀에게 죽을힘을 짜내서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해 주었다.


내 마음 밑바닥부터 온몸의 사랑을 담아 간절하게 그녀에게 죽지 말고 살아달라고 기도했다.


순간의 찰나였지만, 그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스친 듯 보였다.


그리고선, 그녀도 눈물을 흘리는지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녀의 수레 앞에는 한양에서 내려온 관리가 서고, 수레 옆과 뒤에는 호위하는 포졸들이 섰다.


아직 평안 도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준수와 평양의 도방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소가 끄는 수레 하나를 가지고 왔다.


내게 걸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살아있는 매화를 봤으니, 나도 버텨야 했다.


유라는 긴 단식 후에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며, 물을 자주 마시고, 죽 같은 것을 조금씩 먹어줘야 한다고 했다.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눈짓으로 매화의 뒤를 따라가자고 말했다.


준수는 나를 부축해 수레에 태웠다.


매화의 한양 압송에는 긴 행렬이 따라붙었다.


말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소가 끄는 수레는 한양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사이사이 ‘아딸따’와 행렬을 따르는 백성들이 매화와 나를 극진하게 보살펴 주었다.


맛보기 공연을 하면서 작은 고을들도 지나가서, 조선 아이돌을 알아보는 백성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을 보며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준수를 시켜 매화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다시 보자고.


맹사성 어른과 양녕대군을 통해 구명 운동을 하고 있고, 세종대왕은 우리 편이니 절대 삶의 의지로 버텨주라고 당부했다.


온종일 이동하는 데도 8일의 시간이 걸려 한양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한양의 성곽 안으로 들어가자, 마포나루에서 매화의 공연을 보고, 나의 모습을 봤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레의 행렬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평양에서부터 따라온 ‘아딸따’와 백성들 수에 한양 백성이 합쳐지니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매화를 호위하는 포졸들과 겨우 의식을 붙잡고 버티는 내 상태로 인해, 그녀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서로 멀리서 바라만 보며 8일을 걸었지만, 행복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나의 의지가 그녀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궁궐 안으로 들어가는 매화의 옥 수레를 바라보며 수많은 인파가 ‘조선 아이돌’과 ‘매화’의 이름을 연호했다.


백성의 힘이었다.


세종대왕이 말했던 백성의 힘이 바다의 큰 파도처럼 거대한 물결로 내 가슴에 벅차게 다가왔다.


그 힘을 진정으로 믿고 싶었다.


조선 시대에 3족을 멸할 수도 있는 역모죄이지만, 그녀의 결백을 나는 안다.


어질고 현명하신 세종대왕께서 그녀에게 죄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줄 것을 믿었다.


궁궐 밖에서 거적을 깔고 다시 누웠고, 매화의 무죄를 주장하며 시위를 이어 나갔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아딸따’와 우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백성이 궁궐 밖에서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나의 시위에 동참해 주었다.


한양에서 과거 공부를 하고 있던 전주 ‘일영회장’도 한걸음에 달려와 유라와 재회했고, 나에게도 다가와 내 건강을 염려했다.


‘일영회장’은 한 번 회장은 영원한 ‘아딸따’의 회장답게, ‘아딸따’의 구호를 정하고, 역할 분담을 하며, 시위에 힘을 보탰다.


점박이는 잠시 일인자 생활을 즐겼었지만, ‘일영회장’의 심복답게 그의 재등장을 진심으로 반겼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고, 인심이 넘쳤다.


해가 중천에 걸려 오시에서 미시로 넘어갈 즈음, 웬 관리 한 명이 뒤에 수행원 같은 사람과 같이 말을 달려 궁궐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궁궐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인상 쓰며 지나가는 그를 바라보니, 평안 도사 이창기였다.


손을 겨우 들고 그를 가리키며 ‘평안 도사’라고 말하자, 모두의 야유가 그를 향해 거칠게 쏟아졌다.


많은 군중이 퍼붓는 야유는 그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할 만큼 크고, 거칠었다.


“천벌을 받을 거요. 죄 없는 사람을 그리 피곤죽을 만들어 놓다니.”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거칠게 쏟아지는 말에, 그는 인상을 쓰며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대꾸하거나, 백성을 꾸짖기에는 너무 분노에 찬 백성들이 많았고, 그 표정에는 살기조차 느껴졌으니까.


한양으로 내려오면서 물도 마시고, 유라가 준 죽을 조금씩 먹으며 서서히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한번 가라앉은 몸 상태가 영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매화의 옥 수레가 궁궐에 들어갔고, 이제 평안 도사까지 입성했으니 오늘 오후에는 무엇인가 결판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대방과 모친은 그 사이 다시 2년을 누었던 병자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나를 보고 통곡을 하셨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아픈 아들의 모습만큼 부모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대방과 모친에게 말하며 집에서 기다려 주라고 부탁했다.


매화의 석방을 기다리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는데, 궁궐에서 나온 관리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한양 상단 대행수 유성이 맞느냐?”“네, 그렇사옵니다.”

“입궁하라는 상감마마의 어명이시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세종대왕께서 무엇인가 나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서 입궁하라는 지시 같았다.


준수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발걸음을 떼고 궁궐로 들어갔다.


궁궐 한편에서 세종대왕이 의자에 앉아 계시고, 그 좌우로 맹사성 어른을 비롯한 관리들이 몇 보였다.


그리고 앞쪽 마당 의자에 매화가 겨우 앉아 있었고, 그 한쪽에 평안 도사가 서 있었다.


관리는 나를 인도해 매화 옆 의자에 앉게 했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세종대왕 눈길에서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세종대왕의 문초가 시작되었다.


“매화 듣거라. 네가 고려의 관리였던 최은섭의 손녀가 맞느냐? 그리고, 조선 시대가 건국되며 처형된 것도 알고 있느냐?”

“네, 상감마마. 아뢰옵기에 황송하오나 저는 최은섭의 손녀가 맞고, 저희 조부모가 처형되었고, 부친이 노비로 전락한 사실도 알고 있사옵니다.”


세종대왕의 좌우로 포진하고 있는 대신들은 나이가 많아 매화의 조부를 기억하는 듯했다.


“매화 네가 조부모와 부친 때문에 이 조선에 억울한 마음이 있어 역모를 꾀했다는 게 사실이냐?”

“마마, 조부모와 부친의 일을 듣고 솔직히 억울하고 분통한 마음은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역모를 꾀했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이옵니다.”

“없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매화의 말을 듣던 세종대왕이 평안 도사에게 물었다.


“평안 도사, 매화가 역모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무엇이 있는가?”

“······마, 마마. 그건······.”

“증거도 없이 사람을 역모죄로 몰았다는 말인가?”

“매화가 조선 왕족을 능멸하고, 좋지 않은 소문을 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누군고?”

“······.”


세종대왕은 대답하지 못하는 평안 도사의 모습에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 내게 시선을 돌려 물어보았다.


“대행수, 너는 매화가 조선 왕족을 능멸하고, 좋지 않은 소문을 낸 모습을 듣거나 본 적이 있느냐?”

“마마,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사옵니다. 저는 지난가을부터 지금까지 쭉 매화와 함께 있었습니다만, 역모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세종대왕은 다시 평안 도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평안 도사, 다시 묻겠다. 역모죄의 증거는 무엇이냐?”

“······마, 마마. 그건······.”


평안 도사가 대답을 못 하며 주저하자, 세종대왕의 눈에서 호랑이 같은 안광이 번쩍이더니 큰 고함이 터져 나왔다.


“평안 도사 이창기, 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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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양녕대군과의 결투 24.07.27 244 4 11쪽
72 위기의 밤 24.07.26 236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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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한양 공연 24.07.22 242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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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조선 시대의 입맞춤 24.07.18 244 6 11쪽
65 함흥냉면의 비법 24.07.17 245 5 11쪽
64 영변의 약산(藥山) 24.07.16 246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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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죽음의 고비와 사랑 +1 24.07.14 25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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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매화와의 첫 입맞춤 24.07.08 26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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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현대로의 회귀 실험 24.07.06 26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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