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비와 사랑

처음 보는 세종대왕의 분노였다.
“짐이 너희 집안과 매화 집안의 얽힌 원한을 모르는지 아느냐?”
“······마, 마마께서 그것을 어떻게?”
세종대왕은 잠시 맹사성 어른을 쳐다봤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임금님은 말씀을 이어 나갔다.
“평안 도사, 너의 부친이 매화의 조모를 사랑했던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 매화의 조부 때문에 결혼에 실패하고 그 원한으로 조선 건국 때 두 사람을 죽였었다.”
“그땐 조선 건국을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처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마마.”
나도 매화도 처음 듣는 조부모의 비화였다.
“평안 도사, 그땐 그랬었다고 치자. 그런데, 대를 이어 계속 보복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마마, 무슨 말씀이온지?”
“네가 매화의 부친을, 왕족을 사주하여 전주 이필의 집으로 보내 학대하고, 매화까지 역모죄로 몰아 죽이려 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아, 아니 어떻게 마마께서 그걸······.”
매화는 처음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맹사성 어른에게 윤서의 집안과의 악연을 들었지만, 이렇게 대를 이어 그 악연이 이어질지 상상도 안 했었다.
그리고, 부친의 전주 이동과 학대에 평안 도사가 개입되어 있다는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세종대왕의 근엄한 꾸짖음은 계속되었다.
“같은 왕족인 네가 짐을 도와줘도 부족할 시점에 짐이 윤허한 조선 아이돌을 비방한 상소나 올리고, 그것도 부족해 매화를 무고하게 역모죄로 몰아 죽이려 하다니 네 죄가 너무나 크다.”
“······마마, 잘못했사옵니다.”
“공과 사를 구별 못 하고, 온 백성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조선 아이돌을 중단시켰으니 네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종대왕은 평안 도사의 파직을 명했다.
유배까지 보내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집에서 근신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는 원상 복귀를 명했다.
“이창기, 근신하며 앞으로는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관리가 되도록 해라. 평양성에서도 이 궁궐 밖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 ‘조선 아이돌’을 외치고 있지 않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당연히 조선 아이돌은 평안도에서 공연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고, 매화의 부친은 맹사성의 집에서 노비로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조처되었다.
매화의 구명에 맹사성 어른이 큰 역할을 했다는 내 느낌이 다시 확인되는 임금님의 명령이었다.
인자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세종대왕은 나와 매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먼저 몸을 회복하도록 하라. 그리고 다시 건강을 찾은 후에 남은 조선 아이돌의 여정을 마치도록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세종대왕은 온몸이 성치 않는 매화와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나를 위해, 가마를 내어주었다.
궁궐 밖으로 가마를 타고 나온 매화와 나의 모습을 보자, ‘아딸따’와 백성들의 환영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조선 아이돌’과 ‘매화’의 이름만이 메아리쳤다.
감격스러웠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도 컸지만, 백성의 힘으로 매화를 살렸다는 감격이 너무 컸다.
자기 일처럼 공감해 주고, 무죄를 주장해 주는 이 백성들이 없었다면, 매화도 죽었을 것이고, 나도 같이 죽었을 것이다.
이 백성들을 위해 매화와 내 몸이 치유되는 대로 남은 조선 아이돌의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죽음의 고비를 함께 나눈 매화와 함께.
*****
며칠이 지났다.
한양 상단 집으로 돌아온 나와 매화는 모친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 많이 치유되었다.
윤서를 제외한 조선 아이돌 모두 상단 옆 거처에서 함께 지내며 매화를 보살펴 주었다.
유라는 의녀의 경험을 발휘하며, 나와 매화의 회복에 좋은 탕제를 끓여주고, 수시로 둘의 상태를 봐주었다.
단식만 했던 상황이라 나는 회복이 빨랐지만, 매화는 갖은 고문을 당해 회복이 쉽지 않았다.
매화가 혼자 누워 있는 방에 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피부가 애처롭게 흰 종잇장처럼 보였고, 손등과 팔에 난 상처가 하얀 피부에 대비되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매화,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소.”
“유성 님도 곡기를 끊어서 거의 죽을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소녀가 무엇이라고 그러셨습니까?”
“매화가 없는 내 삶은 의미가 없소.”
매화의 손을 잡으며, 내 마음속의 사랑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온 백성의 환영을 받으며 함께 즐겁게 공연을 다녔던 순간도 있었지만, 죽음의 고비를 함께 나누었고, 극복한 시간도 함께했다.
인간관계에서 즐거움과 기쁨만 함께한 사이보다, 슬픔과 고통까지 나눈 사이는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죽음의 순간까지 나눈 사이이니, 매화와 나 사이에는 평양 이전보다는 훨씬 다른 느낌과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오후 늦게 소를 타고 퉁소를 불며 맹사성 어른이 집으로 오셨다.
나와 매화는 큰절을 드리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신선 같은 미소를 띠며, 매화에게 이야기했다.
“매화야, 이제 내가 내 마음에 진 빚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구나. 너도 고생 많이 했고 살아 있어 줘서 고맙구나. 네 부친은 걱정 마라. 우리 집에 잘 모셔 왔다.”
맹사성 어른은 매화가 건강을 되찾으면, 자기 집으로 함께 가서 부친을 보자고 했다.
매화를 한시라고 빨리 만나고 싶어 하는 부친이지만, 문초를 당한 딸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까 봐, 맹사성 어른이 만류했다고 했다.
매화는 맹사성 어른이 말해준 윤서 집안과의 악연을 되새기며, 평양 감옥에서도 끝까지 버텼다고 했다.
고통의 한계에 다다라도 자신의 무죄가 밝혀질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나와 맹사성 어른을 믿고 참아냈다고 했다.
참으로 현명한 그녀였고, 용감한 매화였다.
“윤서 집안과의 악연을 생각하면, 그녀와 평안 도사를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될까 봐 그 나쁜 생각을 접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충분히 들 수 있는 보복의 마음이었지만, 매화는 그 마음을 접고 용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맹사성 어른은 이번 일에 박연과 장영실, 황희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자신은 고려 관리 출신이라 몇몇 전주 이씨 왕족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호의를 가져서 매화 부친 정보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매화의 구명에 황희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역시 나중에 맹사성 어른과 세종대왕의 두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칠 현명한 분들이었다.
“대행수,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백성들에게 빚진 게 많사옵니다. 평양에서도, 한양에서도 저 혼자만 단식하고 시위했으면 이런 좋은 날이 오지 않았겠지요. 그 빚을 갚으러 다시 떠날 겁니다.”
맹사성 어른은 내 말에 공감하며, 평양성과 한양성에서의 상황이 수시로 임금님에게 보고가 되었다고 했다.
매화가 삶을 포기하거나, 고문에 못 이겨 역모죄에 수긍했다면 바로 평양성에서 상황이 종료되었겠지만, 그녀가 버텨줘서 자신도 임금님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매화의 삶에 대한 의지와 백성의 힘이 매화를 살렸었다.
맹사성 어른은 목숨을 건 나의 단식투쟁도 높이 평가했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 것은 숭고한 행동이네. 대행수, 자네를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웠네.”
“맹사성 나리, 송구스럽습니다.”
소를 타고 또 그는 신선처럼 떠났다.
멀리서 퉁소 소리가 들렸다.
*****
모친의 극진한 간호로 나는 이제 정상을 되찾았고, 유라 덕분에 매화도 이제 상처가 아물면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궁궐에서 풀려나온 후, 나는 건강 문제로 조선 아이돌의 공연은 당분간 떠나기 힘드니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아딸따’의 영원한 회장이자 유라의 든든한 사랑꾼이 ‘일영회장’은 각 지역의 회장을 뽑고, 연락망을 구축했다고 내게 말해줬다.
그는 조선 아이돌 상황과 공연 일정도 이제 연락망을 통해 홍보하겠다며, 앞으로 나와 수시로 연락을 하자고 했다.
과거에 급제하면 바로 유라와 혼인식을 치르겠다며, 그때는 내게 전주에 와서 공연을 꼭 해주라고 부탁했다.
현대의 팬클럽 뺨치게 잘 ‘아딸따’를 조직하고, 역할을 분담해 운영하는 그는 상단에서 일해도 거상이 될 재목이었다.
매화의 건강이 회복해 가면서 나도 천천히 조선 아이돌의 평안도 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평안도의 평양, 안주, 영변을 거쳐, 함경도의 함흥, 원산, 강원도의 강릉과 원주, 춘천에 이어 피날레를 한양에서 하는 여정을 잡았다.
매화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매화는 마차를 타고 가니 걱정 없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광활한 개마고원도 보고 싶고, 압록강, 두만강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우고 싶은 바람도 있었지만, 매화의 건강이 걱정되어 너무 긴 여정을 포기했다.
한양에서 지내는 동안, 초요갱은 밤에 한 번씩 나가서 양녕대군을 만나는 눈치였지만, 왠지 그에게 서찰은 오지 않았고, 초요갱을 통해 전해지는 말도 없었다.
양녕대군이 이천 유배 집에서 한 말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면천을 막아서라도 매화를 자기 곁에 붙잡아 놓으려는 그의 속셈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으로 족할 매화의 시련이 또 다가올지 두려웠지만, 죽음까지 함께 극복한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믿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름의 태양도 이제 그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매화의 손을 잡고 맹사성 어른의 집을 방문했다.
몇 년 만에 이루어진 부녀 상봉이었다.
그간의 고초를 서로 아는 부녀는 말없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와 맹사성 어른은 그런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매화의 부친에게 큰절을 올렸다.
노비의 신분으로 강등당한 그가 한양 상단 대행수의 큰절을 받자, 내 손을 잡으며 나를 만류하려 했다.
용기를 내어서 그에게 말했다.
“어르신, 저는 매화를 많이 사모하고 있습니다. 매화의 부친이신데 제가 당연히 큰절을 올려야지요.”
매화의 부친도 맹사성 어른을 통해 내가 10일 넘게 단식하며 매화의 구명 운동을 한 것을 들었는지, 내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매화도 눈물을 흘리며 나와 부친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 또다시 한 획을 그었다.
맹사성 어른이 준비해 준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매화 부녀와 행복한 담소를 나누었다.
처음 뵈었지만, 충신의 아들다운 품격을 잃지 않고 있었고, 맹사성 어른과의 대화를 들어보니 학문도 대단한 경지처럼 느껴졌다.
매화의 면천이 부친까지 영향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맹사성 어른과 평온한 여생을 보낼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서서히, 다시 조선 아이돌의 대장정을 떠날 날이 다가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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