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조선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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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배고픈불독
그림/삽화
라비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4:12
최근연재일 :
2024.08.04 20:0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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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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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영변의 약산(藥山)

DUMMY

작년 봄날에 이루어졌던 조선 아이돌 선발전이 있었던 대동강 연관정 무대였지만, 감흥이 새로웠다.


봄날 대동강을 거니는 물놀이 배들처럼 가을 대동강에도 한가로이 배들이 있었고,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조선 아이돌 본 공연할 때마다 6명이 섰던 무대에 5명이 섰고, 평양성 같은 무대에서 선발되었던 윤서가 빠져 있었다.


지금까지 남도의 공연에서 본 고장 출신이 무척이나 환대받았었는데, 본 고장 윤서가 빠진 무대에서 조선 아이돌이 어떤 반응을 받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무대에 먼저 올라가 지난 몇 달 동안 조선 아이돌과 매화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준 평양성 백성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드렸다.


백성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나의 인사에 답해 줬다.


조선 아이돌을 차례차례 무대로 불러 소개해 줬다.


조선 아이돌의 메인보컬인 매화를 맨 마지막으로 부를 때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감격스러운 듯, 무대에 올라와 평양성 백성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백성 모두가 그녀 생명의 은인이었다.


이윽고, 도영의 힘찬 조선 시대 드럼 소리가 울리고, 초선이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허공을 가르는 신명 나는 독무를 선보였다.


맛보기 공연과는 차원이 다른 무대 구성과 악기 모습에 모두 입이 벌어졌다.


장영실이 만들어준 조선 시대 마이크의 증폭 효과도 대단했고, 음향 시설도 생각보다 소리가 멀리 전파되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고, 경이로웠다.


5명의 군무가 마치 한 사람이 춤을 추는 듯 동작이 똑같았고, 안무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기한 춤 동작에 귀엽고, 섹시했다.


물론, 섹시했다는 조선 시대에는 없는 표현이었지만.


무대를 보는 내 마음도 너무 감격이었다.


인생이 아무 일도 없으면 감사하겠지만, 때때로 슬픔과 비극이 몰려오는 것이 인생이었고,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했다.


평양성의 위기가 조선 아이돌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었고, 더 뜨거운 반응과 환영으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도영은 여름 동안 곡을 몇 개를 더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평양성’이었다.


‘함경도 장진에서 시작해 힘차게 달려왔지비.

능라도 돌아, 굽이굽이 돌아 평양성 눈에 보입네.

반갑습네다~ 반갑습네다~~.

대동강물에 국수 한 그릇 몰아 먹고,

숭어 잡아 숭어국 먹었지비.

맛있습네다~ 맛있습네다~~.’


평양성의 역사와 지리, 풍습을 담은 ‘평양성’이 경쾌한 악기 장단과 신나는 노래, 춤이 어우러져 곡이 끝나자 바로 ‘재창’ 요청이 쇄도했다.


도영의 재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모두 모여 회의할 때, 적어도 각 도의 대표곡 하나는 만들어 선보이자고 제안했고, 직접 곡을 만들었다.


이제 열일곱 처자의 머리에서 어떻게 저렇게 노래가 만들어지나, 감탄이 나오는 도영의 재주였다.


천재가 백성을 위해 그 머리를 번뜩여 줄 때, 가장 빛나는 주제가 예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본 공연을 15곡 내외로 했었는데, 평양성은 20곡을 훨씬 넘었고, 모두 힘들었지만 진심으로 열심히 공연했고, ‘재창’도 웃으면서 받아 줬다.


매화도 자기를 살려준 평양 백성에게 보답하는 듯, 빛나는 공연을 했고, 다시 살아난 그녀의 모습에 모두 반가워했다.


그녀가 피투성이로 소가 이끄는 감옥 틀 안에 갇혀, 모두 동정의 눈물을 흘렸던 그들이었다.


그녀가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게 모두를 꿈속 무릉도원으로 이끌었다.


마치, 현대에서 내가 그녀를 꿈속에서 만났던 것처럼.


조선 아이돌 주제곡으로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무리하며 환상적인 무대를 모두 끝냈다.


공연이 남긴 짜릿하고 흥겨운 여흥이 남은 백성들은 조선 아이돌이 무대에서 내려와 가마에 오르자, 그 뒤를 따라오며, ‘평양성’의 후렴구를 외쳤다.


“반갑습네다~ 반갑습네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서 무대 앞 광장을 빠져 나오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일일이 백성들의 손을 잡으며 감사한 마음을 표시했다.


무대 앞 광장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익숙한 모습의 처자를 보고 몹시 놀랐다.


윤서였다.


그녀는 거의 구경꾼들의 제일 뒷자리에 서서 조선 아이돌의 공연을 지켜본 듯했다.


준수와 도방에게 조선 아이돌의 귀가를 부탁하고, 윤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잠시 대동강 강가를 걷자고 했다.


안 본 사이에 상당히 얼굴이 여위어 보였다.


”윤서 낭자,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행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속으로 화가 났다.


사과를 받아야 할 대상은 매화였다.


매화는 말 그대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동안 매화의 고충이 그녀의 집안 악연이 아니라 나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괴롭기까지 했었다.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좀 더 처음에 현명하게 처신했으면, 오해도 없었을 것인데, 내가 문제였지요.”

“······.”


내 말에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윤서 낭자에게 조선 아이돌은 어떤 의미였소? 단지 집에서 탈출하기 위한 그런 것이었소?”


그녀가 매화를 감옥에 가두고, 조선 아이돌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원망스러울 때마다 들었던 의문이었다.


“집을 떠나고 싶어 선택했던 조선 아이돌이었지만, 제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도 왜?”


그 이유가 짐작은 갔지만, 너무 그녀 입으로 듣고 싶었다.


같은 맥락이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약간 의외였다.


“제가 맹사성 어른과 양녕대군께서 모두 매화를 아는 체해서 조금 알아봤지요. 제가 연모하는 대행수가 왠지 그녀에게 마음을 써서,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역시, 그녀는 나로 인해 매화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제가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어, 부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의외의 사실이 밝혀져 부친께서 격노했어요.”


윤서는 매화 집안과 긴 악연으로 부친이 매화의 부친을 전주에 있는 왕족 친척 집으로 보내 버렸지만, 매화의 소식은 관기가 되었다는 소식 후 끊겼다고 했다.


그런 매화가 조선 아이돌로 부활해 큰 인기를 끌자, 윤서의 부친은 화를 참지 못했었다고 한다.


윤서가 만류했었지만, 그녀의 부친은 매화를 어떻게든 없애려고 생각했었고, 평양성에 오자 그녀를 옥에 가두었었다.


윤서는 그런 결과를 바란 것은 정말 아니었다며 고개를 떨어뜨리며 눈물을 흘렸다.


나에 대한 연정과 매화에 대한 원망이 결과적으로 매화의 죽음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낳을 뻔했었다.


윤서와 양녕대군이 이천 유배 집에서 나눈 마지막 밀담이 궁금했다.


평양성에서 내가 맹사성 어른과 양녕대군에게 모두 상황을 이야기하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 준 사람은 맹사성 어른이었다.


양녕대군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고, 매화와 내가 죽음의 길목에서 살아 돌아온 한양에서도 어떤 기별이 없었다.


호형호제하자던 그의 행보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윤서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양녕대군 마마도 평양성에서 매화가 옥고를 치를지 알았었습니까?”

’이천 양녕대군의 집을 떠날 때, 제가 저희 집안의 악연에 대해서는 조금 언급했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 하셨습니까?“

”매화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서가 매화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양녕대군은 누구보다 매화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힘든 상황임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양녕대군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를 만나,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죽음 앞의 매화를 매정하게 놔둔 것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윤서는 매화에게 미안함을 전해 달라고 내게 말했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일이 크게 벌어졌고, 이제 돌이키기에는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녀에게 다시 조선 아이돌로 돌아오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매화도 큰 상처를 받았지만, 그동안 양반인 윤서의 군림으로 마음을 다쳤던 4명의 조선 아이돌이 그녀의 귀환을 원하지 않았다.


인생의 길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인연도 시작과 끝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윤서와의 인연에 이별을 고하며 그녀와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내 사랑으로 인해 이미 매화에게 많은 고초를 안겨 주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길 원하지 않았지만, 미래는 내가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나를 힘들게 했다.


매화는 부친과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며,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위로했지만, 양녕대군의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두렵게 했다.


그녀를 데리고 현대로 회귀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거치에 도달할 때쯤, 날이 어두워지고 하늘의 달이 떠올랐다.


수많은 별 사이로 떠오른 달이 오늘따라 외롭게 보였다.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밝은 달이 오늘은 나처럼 보였다.


조선 시대 수많은 사람 중에 혼자 존재하는 현대 사람인 나.



*****



다시 북상을 시작했다.


평안도 안주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방향을 오른쪽으로 꺾어 영변으로 향했다.


현대에서 시인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을 수없이 읽고, 외웠었고, 가수가 불러 히트 치면서, 그 시를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게 되었다.


북도에는 김소월, 남도에는 김영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순수 시문학으로는 우리나라를 대표했고, 소월이 진달래꽃이라면 영랑은 모란이었다.


전라도 강진의 영랑생가를 구경하면서, 영변의 약산을 못 감을 아쉬워했었는데, 드디어 내 소원을 풀었다.


영변에는 청진강의 지류인 구룡강이 흐르고 있었고, 구룡강과 향적산, 오봉산, 약산에 둘러싸인 철옹성이 있었다.


약초가 많아 약산(藥山)으로 불리고, 봄에는 철쭉꽃, 진달래꽃이 만발한다지만, 험준한 바위가 많고 마치 솟대가 솟아있는 것처럼 뾰족하게 보였다.


그래서 약산동대란 말도 있었고, 시에서 느꼈던 다정한 느낌의 약산이라기보다는 오르기 힘든 악산(惡山)처럼 보였다.


인생에서 좌절과 실패를 맛보고 부인과 술을 마신 후 33세의 나이로, 아편으로 음독자살한 천재 시인의 거친 삶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짧은 5~6년의 문단 생활 동안 154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떠났던 그를 생각하며 내 입에서는 그가 남긴 <진달래꽃>이 외워져 나왔다.


영변의 약산 앞에서 그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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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양녕대군과의 만남 24.07.23 242 5 11쪽
68 한양 공연 24.07.22 242 5 11쪽
67 소양강의 밤 24.07.19 243 6 11쪽
66 조선 시대의 입맞춤 24.07.18 244 6 11쪽
65 함흥냉면의 비법 24.07.17 245 5 11쪽
» 영변의 약산(藥山) 24.07.16 247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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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죽음의 고비와 사랑 +1 24.07.14 251 5 11쪽
61 역모죄의 증거 24.07.13 248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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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단식 투쟁 24.07.11 256 5 11쪽
58 평양에서의 시련 24.07.10 261 5 11쪽
57 둘이 아닌 하나가 된 느낌 24.07.09 267 4 11쪽
56 매화와의 첫 입맞춤 24.07.08 26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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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현대로의 회귀 실험 24.07.06 261 4 11쪽
53 조선 시대의 패션 24.07.05 26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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