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조선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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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배고픈불독
그림/삽화
라비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4:12
최근연재일 :
2024.08.04 2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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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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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함흥냉면의 비법

DUMMY

현대에서도 소월의 <진달래꽃>을 읊조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던 이별의 노래가, 오르기도 험준해 보이는 약산을 실제로 바라보면서 시를 읊자 더 슬펐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체념처럼 시작한 그의 시에는 진달래꽃은 가는 길에 뿌려준다는 축하의 말도 있었고, 나를 즈려 밟고 가라는 희생의 말도 있었다.


체념, 축하, 희생의 말에서 마지막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슬픔의 자제와 인내를 보여주었다.


현대에서 베프인 준서와 술 마시면서 그가 오래 사귄 여친과 헤어지던 날, 소월의 <진달래꽃>을 들먹이며, 어떻게 그런 이별을 할 수 있냐고 싸웠었다.


매화를 사랑하면서 단 한 번도 이별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이별은 피할 수가 없는 순간이다.


아무리 백년해로를 한 잉꼬 같은 사이의 부부도 헤어지는 순간은 피할 수가 없고, 하루를 보지 못하면 병이 날 것 같은 연인도 이별은 어쩔 수 없는 삶의 필연이었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이었고, 하루를 살면 하루씩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우리 숙명이었다.


매화를 사랑하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살 수 있기를 기도했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현대로 회귀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죽음이 갈라놓든, 회귀가 나를 다른 공간, 시간으로 보내든 나는 매화와 이별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순간을 상상하기 싫었다.


하지만 소월의 ‘영변의 약산’을 바라보는 순간, 매화와의 이별을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별하는 순간이 오면, 만일 그 순간이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회귀의 순간이라면, 내가 체념하고 축복하고 희생하며 슬픔을 자제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그런 이별의 순간이 주는 슬픔을 자제하거나 인내할 자신이 없었다.


두려웠다.


죽음이든, 회귀이든,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게 내 숙명이란 것이.


철옹성에서 소월을 기리며, 조선 아이돌의 본 공연을 가졌다.


5백 년은 지나야 소월이 태어나고, 그의 시로 인해 유명해질 영변이었고, 세월이 더 지나면 북한의 영변 원자로가 지어지겠지만, 조선 시대의 영변은 평화롭기만 했다.


평안도의 마지막 공연을 영변에서 성황리에 마치고, 함경도로 넘어갔다.


함경도 함흥과 원산은 거의 평안도의 안주, 영변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었다.


안주에서 영변을 거쳐 동쪽으로 쭉 이동하면, 원산과 함흥으로 도착했다.


더 북상하면 광활한 개마고원을 만나고, 두만강까지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동선이 너무 길었다.


원산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함흥으로 향하는데, 준수가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대행수님, 조금 걱정스러운 상황이 있는데요.”

“공연도 성황리하고 있고, 이제 조선 아이돌도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걱정스럽다는 게냐?”

“‘아딸따’를 이끌고 있는 점박이요.”


우리 믿음직한 ‘일영회장’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나는 그래도 점박이가 ‘아딸따’를 잘 이끌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딸따’가 긴 여정이었지만, 따라오는 행렬은 자신이 좋아하는 조선 아이돌의 공연을 매일 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들 중 일부는 미래 조선 아이돌을 꿈꾸는 처자들이었다.


행렬을 따라오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조선 아이돌에게 한 수 지도를 부탁했고, 모든 조선 아이돌은 아낌없이 자기 실력을 전수해 줬다.


초선은 춤을, 도영은 곡 만드는 방법과 타악기 실력을, 유라는 현악기 실력을, 매화와 초요갱은 춤과 노래, 장구 치는 것까지 모두 즐겁게 가르쳐 주었다.


‘아딸따’ 남자들은 그런 모습을 또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경제적으로 여유 없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십시일반 나누는 그들의 정은 특별한 것 같았다.


조선 아이돌도 모두 어려운 시기가 있었기에 그들의 사정을 이해했고, 그들의 꿈을 응원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을 이끄는 점박이가 문제가 좀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준수야, 그게 무슨 문제냐?”

“대행수님, 말씀드리기가 영 그렇습니다.”“이놈아, 뭔데 그리 뜸을 들이느냐?”

“······그, 그게 좀 대행수님을 열받게 할 것 같아서요.”


점박이가 매화의 열렬 추종자인 것을 알긴 했지만, 그동안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어서 좀 의아했다.


“점박이가 매화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다만, 그 마음이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뭐라 할 순 없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마음이 커가고, 끝이 보일수록 조바심을 하는 것이 그 마음이지요.”


준수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놈아, 속 시원하게 말을 좀 해 봐라.”

“이제 함경도도 함흥 공연만 끝나면, 강원도로 내려가잖아요?”

“그렇지. 그게 무슨 문제냐?”

“강원도 끝나면, 한양에서 마지막 공연하고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문제냐니까?”


준수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점박이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준수가 직접 들을 이야기는 아니고 점박이가 ‘아딸따’의 친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요점은 점박이가 매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어떻게든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어 하고, 그 장소를 강원도 강릉으로 잡았다는 정보를 전해주었다.


매화에게 고백하고,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그녀를 갖고 싶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딸따’ 사람들은 그의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반대했고, 그 정보를 준수에게 주면서 대비하라고 일러 주었다.


윤서의 내게 대한 마음이 만들었던 비극과 파장을 생각하면서, 점박이의 계획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준수에게 매화에 대한 경계 근무를 밤낮으로 부탁했다.


조선 아이돌이 숙식을 같이 하는 상황이라 점박이가 매화에게 따로 접근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그가 그녀를 밖으로 불러내는 일을 절대 있어선 안 되었다.



이미, 평양성에서 고초를 겪은 후라, 매화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가 미리 점박이와 담판을 지어서 해결해야 했다.


지금까지 조선 아이돌의 단합을 위해서, ‘아딸따’의 팬심을 위해서, 드러내 놓고 매화와의 애정을 밖으로 보이진 않았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에서도 JM 회사의 하 사장이 연습생을 뽑거나, 회사 아이돌을 예뻐할 때, 내가 갑질한다고 그렇게 욕했었는데, 나는 그런 욕을 먹기가 싫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고, 무관심이나 관용으로 대처하기엔 점박이의 언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떻게든 함흥 공연이 끝나고, 강원도 강릉에 도착하기 전까진 점박이와 단판을 지기로 결심했다.


조선 시대 초기라 그런지 함흥냉면이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감자녹말로 만든 면 요리 비슷한 것도 있었고, 매콤하게 무친 가오리회도 반찬으로 있었다.


함경도 함흥의 한양 상단 도방에서 감자녹말 면에 가오리회를 넣어 비벼주었다.


메밀로 만든 평양 물냉면과는 확연히 다른 감자녹말의 질긴, 면 느낌이었고, 매콤한 가오리회의 양념으로 맛을 낸 비빔면이었지만 너무나 맛있었다.


현대의 함흥냉면은 가오리가 흔하지 않아 홍어회로 만든 집도 많고, 가오리회의 신선도도 떨어지는데, 조선 시대에 맛본 가오리회는 신선해서 너무 맛있었다.


함경도 도방은 감자 메밀면에 어떻게 가오리회를 비벼 먹을 생각을 했는지 신기해하며 나를 칭찬했다.


“대행수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지비. 한양서도 신기한 것을 많이 만들더구먼, 어떻게 이렇게 먹는 것도 재주가 있음 둥?”

“하하, 제가 좀 재주가 많긴 하지요.”


현대에서 냉면으로 유명한 평양냉면, 함흥냉면, 진주냉면 성지를 다니면서, 맛 평가로 싸웠던 나였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어, 최애 냉면이 달랐지만, 냉면의 특성이 워낙 달라서, 그 다름을 인정해 주면 될 일이었다.


현대의 우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1등만을 고집해서 탈이었다.


S대만 인정해 주는 더러운 세상 욕을 하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만 칭찬하고, 은메달, 동메달 선수들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는데 이제 현대도 많이 달라졌었다.


공부만 죽자 살자 해서 S대 나와 취직해도, 연봉이 뻔했고, 그런 친구들한테 JM 회사 연예인 수입 이야기하면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진 로저’ 내 수입은 그들보다 적어서, 난 할 말이 없지만.


함경도 도방에게 함흥냉면의 비법을 전수해 준 후, 그의 선전을 부탁했다.


원산에 이은 함흥에서의 공연도 대성공이었다.


현대에서의 내가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함경도는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 들었지만, 두 곳의 대성공은 내게 무한한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현대에서의 내 삶이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면, 조선 시대의 삶은 단식의 고난이 있기는 했지만,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내게 안겨 주었다.


함흥에서 강원도로 내려오는데, 가을의 정취가 진하게 풍겼다.


강원도 화양군,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있는 금강산을 지나가게 되었다.


한때, 현대에서 금강산 구경이 허용된 시기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호사를 누리면서 살지를 못했었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여 금강, 여름에는 계곡과 봉우리에 녹임이 깔려 봉래, 가을에는 일만 이천 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풍악으로 불린 금강산이었다.


겨울에는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 개골이라 불리지만, 우리가 지날 때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단풍이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현대에서 내가 고성군 축제할 때, 잠깐 짬을 내서 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만 보았던 금강산을 직접 눈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소월의 33세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불과 48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동문학가 강소천이 우리에게 남겨준 금강산을 노래로 흥얼거렸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왠지 흥얼거릴수록 슬픈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감상에 젖기에는 점박이가 주위에 D 데이로 잡은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든 강릉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점박이와 담판을 짓기로 생각하며, 그 시각을 금강산을 지나 고성의 바닷가에 묵는 오늘 밤으로 결정했다.


금강산을 지나 고성에 접어드니 눈에 익숙한 고성의 지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에서 DMZ 박물관도 있고, 통일 전망대와 김일성 별장도 있어서 대학교 때 가보기도 했지만, 로드매니저로 고성 축제에서 눈에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조용히 점박이를 불렀다.


점박이는 그동안 여정에서도 나와 ‘아딸따’의 임시 수장으로 대화를 많이 나눠서 별다른 생각 없이 내 부름에 임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내게는 특별한 자리였고, 그에게도 잊을 수 없는 밤이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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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쌍무지개 뜨는 날 24.08.03 243 3 11쪽
79 매화 향기와 사랑의 징표 24.08.02 239 3 11쪽
78 평생 잊히지 않을 사랑의 징표 24.08.01 244 3 11쪽
77 인연 24.07.31 240 3 11쪽
76 엄마 생각 24.07.30 241 4 11쪽
75 현대라는 사회 24.07.29 240 4 11쪽
74 진실 고백 24.07.28 244 3 11쪽
73 양녕대군과의 결투 24.07.27 242 4 11쪽
72 위기의 밤 24.07.26 235 4 11쪽
71 궁궐 공연과 신분 상승 24.07.25 238 4 11쪽
70 여자의 존재 24.07.24 236 5 11쪽
69 양녕대군과의 만남 24.07.23 240 5 11쪽
68 한양 공연 24.07.22 240 5 11쪽
67 소양강의 밤 24.07.19 241 6 11쪽
66 조선 시대의 입맞춤 24.07.18 243 6 11쪽
» 함흥냉면의 비법 24.07.17 244 5 11쪽
64 영변의 약산(藥山) 24.07.16 245 5 11쪽
63 세종대왕에게 뻥을 치다니 +2 24.07.15 250 5 11쪽
62 죽음의 고비와 사랑 +1 24.07.14 249 5 11쪽
61 역모죄의 증거 24.07.13 246 5 11쪽
60 단식 투쟁 2 +1 24.07.12 246 5 11쪽
59 단식 투쟁 24.07.11 255 5 11쪽
58 평양에서의 시련 24.07.10 259 5 11쪽
57 둘이 아닌 하나가 된 느낌 24.07.09 265 4 11쪽
56 매화와의 첫 입맞춤 24.07.08 261 4 12쪽
55 세종대왕과의 대화 24.07.07 264 4 11쪽
54 현대로의 회귀 실험 24.07.06 260 4 11쪽
53 조선 시대의 패션 24.07.05 26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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