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동도.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 하루 종일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한탄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어디부터가 잘못되었는가?”
의정부의 권한 축소와 왕권의 강화를 외치며 종친을 하나로 모으려던 수양 형님이 사화를 일으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병조판서 조극관 등을 비롯하여 많은 조정 신료와 관리들이 죽거나 유배를 떠났다.
이것까지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사화가 일어나고 내가 붙잡혀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붙여 유배를 온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사 이현로가 수양 형님을 경계하라는 말을 여러 번 전했지만, 그 말을 무시했었다. 종친의 어른으로 세종과 문종의 부탁대로 어리신 전하를 잘 보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생각하였다.
강화도로 유배를 오는 중에도 이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나를 부를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교동도로 옮겨지고 경비가 강화되는 것을 보며 불안감을 느꼈고, 들려오는 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양 형님의 뜻을 알 수 없구나?”
왕권의 강화를 외치며 의정부의 불만이 많았던 형님이지만 종친의 큰 어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이셨다.
“···말이 되질 않는다. 설마.”
교동도에서 선착장이 바라보이는 바위에 앉아서 고민했지만 결국에 하나의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교동도로 유배를 온 것은 수양 형님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나를 치우기 위해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안감에 오른손을 가슴에 올려 만져지는 서찰. 그 내용을 생각하며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부디 서찰을 꺼내지 않기를 소원했다.
“아버님. 어서 피신하셔야 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다급하게 뛰어오는 아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넘어지겠구나. 천천히 오거라.”
내 당부에도 뛰어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아들의 얼굴에 땀이 흐르고, 허리를 숙여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지금 관복을 입은 자들과 의금부 도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도망가셔야 합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교동도에서 어디로 도망을 간단 말이냐?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선왕께서는 대신들의 요청에도 양녕 백부를 끝까지 지켜 내셨다. 종친의 사람인 나를 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안합니다. 아버님.”
“네 숙부께서 너와 나를 죽이겠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불안에 떨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고, 머무는 초막으로 내려갔다.
하인들이 불안감에 모두 모여있었고, 의금부 병사들과 관복을 입은 자들을 지나쳐 쪽마루에 앉아서 살폈다.
열 명이 넘는 병사들과 관복을 입은 자가 두 명이었다. 그중에 관복을 입은 자의 손에 교지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유심히 쳐다봤고, 반가운 인물이기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보게 범옹. 이 사람을 만나러 왔으면서 어찌 못 본 척을 하고 있는가?”
“··전하의 어명을 받들고자 이리 찾아왔습니다. 안평대군.”
“그러한가. 어찌 좋은 소식이 아닐듯하네. 맞는가?”
“······.”
신숙주와 많은 일을 함께 해왔고,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비해당이었다. 서로 좋은 관계가 되고 나서부터는 군호를 부른 적이 없었다. 또한 그의 표정으로 봐서는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하의 뜻인가? 수양 형님의 뜻인가?”
“······.”
“이 사람이 대신하겠습니다.”
신숙주가 가진 교지를 빼앗듯이 넘겨받은 이가 붉은색의 실이 묶인 끈을 풀고는 펼쳤다.
“자네는?”
“한명회입니다.”
“그렇지. 자네가 그 유명한 수양 형님의 책사로군.”
한명회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교지를 읽었다.
“죄인 이용은 교지를 받으라.”
쪽마루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나갔고, 전하가 계신 곳을 바라보고, 몸을 단정하고는 세 번의 절을 올린 후 무릎을 꿇었다.
“신. 이용 전하의 어명을 받습니다.”
“죄인 안평대군 이용은 역적 황보인, 김종서 등과 역모를 공모한 죄로 능지처참해야 하나 왕실 친족의 권위가 있기에 몸을 온전히 보전하고자 사약을 내리니 이에 전하께 감사하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오랫동안 내 집에서 일을 해왔던 하인들의 울먹임을 보였고, 아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빨리 시행하라.”
의금부 도사는 한명회의 말에 분주하게 움직였고, 사약을 들고 오는 것을 바라보며, 한명회가 나를 보지 못하도록 몸을 움직였다.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었고, 가슴속에 서찰은 누구에게 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 서찰은 가족의 안위를 부탁하는 내용으로 수양 형님께 전달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의금부 도사는 나를 내려다보며 쟁반을 받쳐 든 손이 벌벌 떨고 있었다.
“자네는 왜 이리 손을 떠는가?”
“죄송합니다. 비해당 저하.”
“누구인가?”
“의금부 진무 이순백입니다.”
“내 부탁이 하나 있네. 이 서찰을 꼭 효령 숙부께 전달해 주시게.”
가슴에 품어왔던 서찰을 꺼내 이순백에게 건넸다.
종친의 가장 큰 어른인 양녕 백부는 수양의 조언자였고, 불교에 뜻을 가진 효령 숙부만이 유일하게 부탁할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고맙네. 이리 주시게. 이곳까지 가져오느라 고생했네.”
건네받은 사발 안에는 검은색 액체를 내려다보고는 깊게 숨을 내뱉고는 사발을 잡은 손이 떨려왔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빠르게 사약을 마셨다.
“··아버지.”
나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들에게 눈길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네 어미도 그리고 자식들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구나.”
몸을 일으켜 다가오려는 아들을 손짓으로 저지하고는 내 마지막 할 일을 하고자 했다.
신숙주에게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이보게 범옹.”
“···말씀하십시오.”
“자네도 알잖는가?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소유하지 못한 적이 없었고, 의문을 가진 삶을 살아오지 않았네. 그러니 묻는걸세. 자네는 이 모든 것을 알았는가?”
“······.”
“알겠네. 자네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니 내가 말해보겠네.”
나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한명회와 눈을 마주했다.
미소를 지으며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계유 사화를 일으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목적으로 방해를 피하고자 자기 동생을 죽이는 금수보다 못한 수양을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닙니다. 수양대군께서는 의정부 고명대신의 횡포에 맞서며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나선 것입니다.”
신숙주는 수양을 변호하며 소리쳤지만 내 눈길은 한명회를 바라봤다.
“자네 생각도 그러한가?”
“안평대군께서는 계속 사화라 언급하는데 역사에는 계유정난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 사람이 계책과 수완으로 이룩한 일입니다.”
한명회는 손가락을 3개를 펼쳤다.
“3년입니다. 그 안에 수양대군께서 임금이 되어 옥좌에 앉으실 겁니다. 이 사람이 반드시 그리할 것입니다. 하면 이 사람에게 좋은 자리 하나 주시지 않겠습니까? 가시는 길 답답하지 않으시게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시원한 대답 고맙네. 내 반드시 수양과 자네를 찢어 죽일걸세.”
“킥킥. 그런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좋은 것만 찾으시는 분이 목숨을 걸고 정난을 일으킨 우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괜한 헛걸음 마시고, 저승 가는 길 좋게 가십시오.”
한명회는 거만하게 웃음을 보이며 나를 응시했다.
“그러한가. 내 반드시 돌아오겠네. 기대하시게.”
그동안 고민해 왔던 것이 해소되었고, 고통보다는 어리신 전하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고통보다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피곤이 몰려왔다.
눈이 감겨오며 몸이 휘청였다.
“아버님. 안 되십니다. 어찌 소자를 남기고 홀로 떠나려고 하십니까?”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멀어져가며 눈을 감고, 정신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부터가 잘못되었는가?
수양이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알 것 같지만 죽일 정도야.
억울한 것보다 마음이 아파졌다.
동생을 죽이고, 조카의 왕위를 빼앗아 왕이 되고 싶단 말인가?
기록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어리석은 사람으로 후세의 사람들이 기억할 것 같았다.
후훗.
‘죽는 이 순간 이런 생각으로 가득하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다만 바라는 것은.
나의 책사 이현로의 안배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안하게 정신을 놓았다.
1443년 10월 18일 안평대군 이용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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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톡. 톡.
알 수 없는 소리음에 정신을 차렸고, 어딘지 모를 공간에서 눈을 떴다.
찌릿.
밀려드는 다른 이의 기억에 두통이 생겨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이정민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가 가진 지식까지 모두 전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떴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동방대 기숙사.
이정민은 동방대 신입생으로 사학과였고, 개강한 지 두 번째 날이었다.
음!
신음성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역시 조선은 아니었다.
높은 건물, 자동차, 학생들.
방문으로 이동해서 이 방에 유일하게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역시 내가 아니군.”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인물인 이정민이었다.
울부짖으며 아비를 부르는 아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눈을 감았는데 일어난 곳은 대한민국의 대학 기숙사였다.
20살의 이정민의 기억을 알고 있는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더 이상 믿지 않는 불교의 윤회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곳에서 이정민의 몸을 빌려 눈을 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짐작되는 것은 하나가 있었다.
이현로의 안배.
지리(地理)와 복서(卜筮)에 능통하며, 시, 화에도 솜씨를 발휘했고, 선비답지 않게 무예도 뛰어난 이였다. 그래서 그를 종용했고, 나의 책사가 되었다.
책사 이현로가 유배를 가는 나를 찾아와 당부했던 말이 있었다.
“모든 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깨어나시거든 강화도 정수사 부도전 밑에 작은 동굴에서 꼭 반지를 착용해 주십시오. 잊으시면 안 되십니다.”
몇 번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현로는 주변의 눈을 피해서 사라졌었다.
이 사태에 관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이었다.
톡, 톡.
알 수 없던 소리음이 이정민의 기억으로 알게 되었고, 폰을 들어서 확인했다.
- 너 아직 자는 거 아니지?
- 오후 수업은 같이 듣는 수업인데 꼭 와라.
- 밥 먹었어? 학식같이 먹자.
이 모든 톡이 한 사람의 것이었고,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는 이도윤이었다.
나는 무시했고, 검색창에 들어갔다.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이정민의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이정민의 기억 속에 없는 내 아들과 딸 그리고 양어머니는 어떻게 생을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이우직과 무심을 검색했지만, 나오는 것이 없었고, 내 이름을 검색했다.
-안평대군 이용.
검색되는 것을 확인하다가 두 줄의 문장을 찾았다.
-맏아들 이우직은 전라도 진도로 이배되었다가 1454년 사약을 마셨다. 며느리인 오대와 딸 무심은 권람 집의 노비로 분배되었다. 양아버지 성녕대군의 사가와 가산은 몰수되었고, 양어머니 창녕 성씨는 폐출되고 경주로 귀양 가게 되었고, 몇 년 뒤에 귀양에서 풀려났으나 본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가 죽었다.
꽝.
흥분해서 주먹으로 문을 쳤다.
고통보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네 이놈, 수양.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찌 내 식솔과 양어머니를 그리 대할 수 있단 말이냐. 절대 잊지 않겠다. 내 반드시 돌아가 찢어 죽이겠다. 더 이상 당신을 형제로 생각하지 않겠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화에 부들부들 떨리는 몸이 진정되질 않았다.
방안을 서성이며 수양과 결탁한 인물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수양, 한명회, 신숙주, 권람, 양정, 홍윤성, 정인지, 정찬손···.”
계유 사화와 관련된 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반드시 돌아가 너희를 찢어 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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