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자네들 뭔가? 여기가 어디라고 이런 행패를 부리는 거야? 당장 경비원 불러.”
이정철은 큰소리를 치며 말했지만 문이 닫힌 공간에서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한 남자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기자들이 모인 곳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당부드리겠습니다. 이곳에 나가고 싶으신 분은 명함과 핸드폰을 맡기고 나가십시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밖에 나가서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쓰거나 신고한다면 나중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실 때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셔야 할 겁니다.”
기자들은 횡포를 부리는 남자들에게 명함과 폰을 맡기고 있었고, 큰소리친 남자가 이정철을 지나서 심사위원들에게 갔다.
“돈 받아 처먹을 때는 좋았지. 그러면 끝까지 입 다물었어야지. 너희들은 죽었어. 야. 끌고 가.”
덩치들이 심사위원들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살려주십시오. 선생님. 제발.”
“이게 무슨 짓인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횡포인가?”
“선생님께서 이곳의 일들을 주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팔이 남아서 휠체어를 끌고 다니시는가 본데 이제 두 팔도 다쳐서 집에서 옴짝달싹 못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쇠 파이프를 건네받고 이정철 팔을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연습했다.
“소리치셔도 됩니다. 밖에 우리 애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아무도 못 들어옵니다.”
쾅.
입구에 문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기자회견장으로 쓰러졌다.
“김 실장. 모두 제압해서 누구의 짓인지 알아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최천호 회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오고, 착호갑사들 8명이 20명이 넘는 사람들을 제압했다.
“괜찮으십니까? 이정철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저런 놈들이 어찌 서예미술관에 난입할 수가 있습니까?”
“제 생각인데 오금 전자의 전도민 회장의 짓인 것 같습니다.”
“··내가 절대 이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지켜보시지요.”
김서훈 실장이 가까이 다가와 보고를 했다.
“모두 제압했습니다. 저들의 책임자로 보이는 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누구의 지시였습니까?”
“······.”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최천호 회장의 눈빛을 회피했다.
“서로 힘 빼고 어렵게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여기서 풀어 드립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고통을 받을 겁니다.”
최천호 회장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오금 전자의 전도민 회장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와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이런 일을 몇 번 한 적이 있고, 비서실장님에게 연락받았습니다.”
“좋습니다.”
최천호 회장은 김서훈 실장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 내 보내고, 기자회견 할 수 있도록 정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착호갑사들은 빠르게 정리를 했고, 기자들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소란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이번에 대상을 받은 전산오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오금 전자 전도민 회장이 저지른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비해당 그룹은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고, 사과를 받겠습니다.”
“자네들이 아는 것을 말하게.”
이정철이 심사위원 남종진, 임우식에게 말했다.
전도민 회장에게 돈 가방, 전산오에게 금두꺼비를 받은 것을 말했고, 수상이 유력한 작품에 획을 추가해 본선에 오르지 못하게 했던 것을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정철은 두루마리를 들고, 펼치려 하자 최천호 회장이 나섰다.
“제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정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천호 회장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 작품은 안평대군이 쓴 ‘천신’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여드리는 이유는 서예대전에 참가한 사람이 이 작품을 보고 임서를 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최천호 회장의 말을 했고, 기자들은 사진을 찍었다.
“서예대전의 대상 결과는 바뀔 것이고, 다시 처음부터 작품들을 수거해 살펴본 후 잘못된 점을 확인하고, 수상자들을 다시 선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분들은 사실만을 기사화해 주시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자회견이 종료되었다.
이정철의 휠체어를 최천호 회장이 밀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제가 일찍 왔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민 학생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천신’은 제 소유물입니다. 제가 가지고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직원들이 집까지 모실 겁니다. 살펴 가십시오.”
“내 외손주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서예대전의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었다.
****
아침 일찍 성북동으로 향했다.
“오늘 만나는 이는 나와 오랜 친우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오해로 몇 년째 만나지 않고 있다. 하필 그놈이 화기를 가지고 있다.”
“작은 오해가 뭡니까?”
“예전에 화연스님이라고 풍수에 능한 스님이었다. 그분이 열반에 드시기전 나에게 묫자리를 하나 알려주셨는데 그놈이 마음에 든다고 몇 번이나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
“고약한 분이시네요. 남의 것을 함부로 달라고 하다니.”
“말 잘했다. 고약한 놈이다. 그놈을 만나서 화기를 달라고 하면 어떻겠냐?”
“··묫자리를 달라고 하겠죠.”
“그래서 나는 그놈에게 화기를 받고 그 묫자리를 넘기려고 한다.”
“괜찮으시겠어요?”
“그 스님이 우리나라 마지막으로 남은 풍수지리에 대가였어. 이제는 그런 자리를 봐 줄 사람은 없어.”
“제가 한 명 알고 있습니다.”
“누구?”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성북동으로 와.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이현로는 1시간 정도 걸린 후에 도착했다.
“저 자는 누구냐?”
“저와 알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풍수지리에 이분만 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조선에서 문종의 왕릉을 조성, 관리를 담당했고, 김종서 대감의 부인 묫자리를 살펴봐 준 것도 이현로였다.
“인사드리세요. 제 외할아버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조기철이라고 합니다. 미아리에서 철학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철이네.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이정철은 말과는 달리 조기철을 보며 의심이 가는지 탐탁지 못한 표정이었다.
“강남 논현동으로 가자.”
이정철의 운전기사가 차를 준비했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강남으로 이동했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한 블록 넘어가니 높은 담벼락 집들이 몇 가구가 있었고, 그중에 한곳에 주차했다.
이정철은 대문을 보며 한숨을 길게 쉰 후에 초인종을 눌렀다.
-네놈이 내 집에 무슨 일이냐?
“대문이나 열어라. 얼굴 보고 대화하자.”
지이이잉.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운전기사분이 부축해서 계단을 올라가니 정원에 삐쩍 마른 노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죽어도 장례식장에 오지 않겠다는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한테 온 것이야.”
“화기는 아직도 가지고 있나?”
“화기? 나는 그딴 거 모른다.”
“쯧쯧. 그 나이 처먹고도 욕심만 많아서.”
“너만큼 하려고. 이 못된 놈아. 같이 온 놈들은 누구야?”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소개했다.
“이 정자 철자 외손자인 이정민입니다. 옆에 계시는 분은 저를 도와주시는 조기철입니다.”
“오호라. 내 딸년이 바람나서 도망치더니 아들 하나 낳았나 보구나.”
“못된 놈 같으니라고 어찌 말을 그렇게 해.”
“네 놈이 마음 졸이는 것을 보고 얼마나 고소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야.”
두 분이 서로 말싸움하며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노인분은 나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네 어미를 많이 닮았구나. 나는 임성진이다. 영특하게 생겼구나.”
임성진은 나를 보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정철과 말싸움을 하는 모습과 상반되는 표정이었다.
“최 집사. 어딨나?”
대기하고 있었는지 40대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정철 선생님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자네는 여전하군. 저놈이 월급은 제때 주는가?”
“에잉. 흰소리 집어치우고 자네. 금고에서 화기 좀 꺼내오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현로와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기다리고 있었고, 이정철과 임성진은 투덕거리고 있었다.
“관상으로 볼 때 지극히 평범합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겠지만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문이 열리고, 최 집사는 화기를, 임성진의 부인으로 보이는 이는 차와 간식을 들고나왔다.
“이정철 씨 오랜만이에요.”
“제수씨 잘 지내셨습니까?”
“이놈아. 어찌 제수씨야. 형수님이지.”
이현로는 임성진의 부인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어이쿠.”
“왜 그러나?”
“오랜만에 보는 귀인의 상입니다. 저분은 처복에 재물을 끌어오는 형상입니다.”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았고, 임성진의 부인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랑 많이 닮았네. 인물이 아주 잘생겼어. 대학생이니?”
“동방대 사학과 1학년입니다.”
“엄마를 닮아서 똑똑하구나. 재능이 참 많은 아이였는데 엄마는 요즘 어떻게 지내니?”
“피아노 원장님이십니다.”
“그렇구나.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힘들지만, 보람이 있는 일이지. 잘 지내는 것 같구나.”
차를 따르고, 내 앞으로 간식을 몇 개 놓아주었다.
이정철은 화기를 살펴보고 있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기를 나한테 넘겨.”
“화연스님이 너에게 준 묫자리를 나한테 넘기면 화기를 가져가고, 아니면 못 가져간다.”
“그래. 네가 가져가라. 우리는 그만 가자.”
“···잠시만요.”
이정철과 임성진이 나를 쳐다봤다.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다면 사람의 상황과 처지에 따른 묫자리를 선정했을 겁니다. 두 분이 화연스님과 인연이 있었는데 외할아버지에게 그 묫자리를 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옳거니. 우리 외손자가 말을 아주 잘하는구나.”
“그게 무슨 뜻이냐?”
나는 고개를 돌려 이현로를 쳐다봤다.
“안녕하십니까? 조기철입니다. 풍수에 일가견이 있으니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임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에서 직접 묫자리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위치가 어디입니까?”
“경기도 김포에 있어.”
“한번 가서 살펴보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나중에 내가 지관들을 데리고 알아보면 돼.”
“제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저를 모르겠지만, 자부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저만큼 풍수지리에 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임성진은 이현로를 보며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외출하는 건 어떨까요?”
임성진의 부인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럴까 그러면.”
외출 준비를 하고, 세분은 임성진의 차를 타고 우리는 따로 타고 이동했다.
차로 최대한 가깝게 이동했고, 이정철은 부축받으면서 도착했다.
이현로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 땅은 풍수적으로 명당이라고 말 못 하지만 괜찮은 자리입니다. 먼저 뒤편에 주산이 있어 안정감 있게 묘를 받쳐 주고 주산의 기세가 부드러워 후손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 줄 겁니다. 앞쪽으로 넓은 땅이 펼쳐져 있지만 그 너머 맞은편의 산이 기의 흐름을 조절해 주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화연스님께서 이정철 선생님께 이 묫자리를 주고, 임성진 선생님께 이 묫자리를 주지 않은 이유입니다.”
“설명해 보게.”
이정철이 이현로에게 물었다.
“이 자리는 후손들에게 아주 좋은 자리입니다. 하지만 안 좋은 것이 하나 있는데 이 땅에 묻히는 사람의 부인에게는 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부인이 없는 이정철 선생님께 이 땅을 주신 것 같습니다.”
“부인에게 해가 된다.”
“그렇습니다. 올라오다 보면 비슷한 형상의 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땅을 묻힌 부인분이 살아계신다면 몸이 안 좋거나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네 말은 내가 이 자리를 사용한다면 내 부인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임성진은 곰곰이 생각하고는 이현로에게 물었다.
“이 비슷한 묘가 어딘가?”
우리는 이현로의 안내를 받고 내려갔고, 주변을 살펴보며 임성진이 말했다.
“그렇군. 느낌이 비슷해. 묘를 만든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 확인해 보러 갈까? 자네 말이 바르면 나는 이 묫자리를 포기하겠네.”
“이 땅이 누구의 묘인지 어떻게 알아봅니까?”
“기다리게. 내가 아들에게 전화해서 알아보지.”
임성진은 통화를 하고는 10분 정도 후에 문자를 받았다.
“이동하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야.”
“아들이 뭐 하는 분입니까?”
“공무원이야.”
이현로의 질문에 임성진이 대답했다.
“산업자원부 공무원이야. 제법 높은 자리에 있는.”
이정철이 어떤 직렬에 있는 공무원인지 말해줬고, 우리는 임성진이 알아본 주소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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