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지웅 실장이 말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깔보는 시선이었다.
나는 모여 있는 직원들을 좌우로 살피고 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외할아버지께서 경매장을 운영한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전문가는 없는 겁니까? 이 작품이 위작인 것을 여기 있는 직원분은 모르는 겁니까? 작품의 감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경매장 운영을 지금까지 어떻게 했습니까? 첫 대면부터 실망스럽네요.
“···안견의 작품입니다. 국내에 작품이 별로 없고, 일본에서 어렵게 가져온 것입니다. 이지웅 실장과 여러 루트를 거쳐 감정을 진행했고,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이 작품이 위작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장종화 실장이 차분히 내게 물었다.
“이 작품이 왜 위작인지 설명해 드려요?”
“··설명해 보거라.”
직원들은 입을 다물었고, 이정철이 답답했는지 내게 말했다.
“안견은 산과 물, 나무와 바위 등을 매우 사실적이며 현실적인 자연경관을 이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세밀한 묘사와 구성 균형감이 뛰어납니다. 내가 판단하는 안견의 가장 뛰어난 점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구성을 잘 나타냅니다.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몽유도원도와 비슷한 화풍이며 안견의 작품을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나 역시 이 작품을 보면서 안견의 구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진품이라 감정했습니다.”
“안견의 산수화는 안평대군이 수집하고 있는 작품들을 모작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켰습니다. 안견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알려진 몽유도원도를 기점으로 자신의 화풍을 선보였습니다.”
나는 족자의 오른쪽 가장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 기해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세종 24년을 말하는 겁니다. 몽유도원도는 5년 뒤 세종 29년에 그려졌습니다. 몽유도원도 이전의 작품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그 이전의 작품에서는 균형감과 구성 그리고 사실적인 표현이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몽유도원도의 화풍을 따라 한 사람이 그린 위작입니다.”
“안견의 화풍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위작이라고 판정할 수 없습니다.”
이지웅 실장은 내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좋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종이입니다. 안견은 안평대군에게 종이를 받았고, 왕실에서 사용하던 고급한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 종이는 그보다 질이 낮습니다. 만져보시면 거칠거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칠한 느낌은 있습니다.”
장종화 실장은 종이를 만져보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할 말은 다 했습니다. 실력이 제가 인사동에서 거래했던 그분들보다 감정 실력이 떨어지네요.”
“인사동에 누구와 거래했습니까?”
“인사동 목련의 노성환, 장안동 가유의 김인석 사장하고 거래했습니다. 감정도 두 분이 빠르게 했고, 결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그 두 분은 국내 최고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그분들보다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지웅 실장은 내 말에 반박하다가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자신이 부족함을 인정했다.
“이번 주에 진행될 물건들은 어떤가?”
이정철이 장종화 실장에게 물었다.
“경매에 들어갈 것들은 도자기 두 점하고, 서화 1점, 불상 1점입니다. 일본에서 서화 매입요청이 있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북한에서 유통된 청자죽절문표형주전자를 매입요청이 있었습니다.”
“중국에는 가짜유물이 많으니 교차 검증을 해서 매입해야 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은 국내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해외에서 유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몽유도원도와 수양의 초상화를 모아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해외에 있는 유물의 정보는 어떻게 아는 겁니까?”
“해외에 나가 있는 B팀이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내는 정보가 있고, G블랙마켓으로 물건의 매매를 부탁하는 경우입니다.”
“회원제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몇 명이나 가입되어 있습니까?”
“국내에는 50명 정도, 일본과 중국은 100명 정도 됩니다. 그 외에 나라는 200명 정도 가입되어 있습니다.”
“회원제의 가입 조건은 있는 겁니까?”
“보통 유물을 보유 중인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비트코인으로 가입비를 받습니다. 보통 회원으로 가입된 사람들이 소개로 가입시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유물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고 있다는데 브로커들도 가입되어 있습니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장종화 실장의 대답을 들었다.
“1년 평균 거래 금액은 어떻게 됩니까?”
“2천억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내가 노성환 사장과 거래한 조맹부의 묵죽도가 520억에 거래되었다.
“G 블랙마켓은 비트코인 수수료를 가지고 운영이 되는 겁니까?”
“외국에 나가 있는 작품을 국내에 들여와서 재판매하고, 수수료도 어느 정도 운영에 보탬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G 블랙마켓의 운영과 거래 방식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는 거냐?”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만 가지.”
이정철은 기사님에게 손을 들었고, 부축을 받고 사무실을 나왔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회장님.”
“자네들도 수고하게.”
인사를 받고 계단을 조심히 내려가면서 직원들을 지켜봤고, 직업소개소, 전당포, 흥신소로 각자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3층 전부를 G블랙마켓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성북동으로 이동했다.
“할 수 있겠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직원들이 저한테 호의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B팀의 주선호 실장이 G 블랙마켓을 나에게 제시한 녀석이다. 그놈만 포섭하면 운영하는 데 문제없을 것이다.”
“주선호 실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에 넘어간 골동품을 감시하고, 찾아오는 일을 하고 있어. 내가 소원화개첩을 찾게 되면 바로 국내 복귀시킬 생각이다.”
성북동에 도착해서 이정철이 2층으로 올라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
아침에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강남에 있는 비해당 그룹으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에는 김서훈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을 통과하는 차량 중에 비서실에서 통보되는 차량번호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모시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천호 회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언제 오시나 기다렸습니다.”
최 씨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 서예대전에서 대상. 축하드립니다.”
“이정민의 시간을 빼앗는 짓을 해서 마음에 쓰였는데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김서훈 실장이 차를 가지고 들어왔고, 적당한 온도의 국화차를 마셨다.
나는 최 씨의 서예 연습하는 곳을 한번 쳐다봤다.
최 씨는 나를 보고는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글씨를 쓰고 싶으신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함께 일어났다.
최 씨가 벼루의 물을 내리고 먹을 갈았다.
소나무, 대나무가 새겨진 것이 제법 조화롭게 보였다.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정철조가 새긴 벼루입니다. 요즘 잘 사용하고 있는 벼루입니다.”
“좋아 보입니다.”
먹물이 준비되었고, 붓을 들고 글자를 써 내려갔다.
학무지경(學無止境)
배우는 것에는 끝이 없다.
최 씨는 글자를 한번 내려보고는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보였다.
“··제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네. 가령 철을 생산할 수 있는 용광로의 기술이나 해외무역을 위한 범선을 제작할 수 있도록 각 전문가를 섭외해 배울 수 있도록 해 주게.”
“준비하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이정철의 도움으로 화기는 챙겼고, 소원화개첩도 수중에 들어올 것 같네. 나머지 몽유도원도와 수양의 초상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 주게.”
“알겠습니다. 조선에 돌아가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고맙네.”
최 씨에게 부탁할 것을 다 했고, 서예대전 대상 수상을 위해서 비해당 그룹을 나와서 수업을 받으러 학교로 이동했다.
****
수업을 받고 나오는데 주서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서 의자에 앉아서 대화했다.
“어떻게 된 거야? 주 병원 주식 5%를 보유할 수가 있어?”
“외할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겁니다.”
“누구신데?”
“예전에 문화부 장관도 하시고 성북동에 높은 담벼락이 있는 집에 사세요. 이정철이라고 골동품 쪽에서 유명한 분입니다.”
주서연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주 병원은 지금 분위기 어떻습니까?”
“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작은아버지, 고모 리베이트 기사가 나와서 난리 났어. 주주총회는 내일 하는데 분위기는 이미 넘어갔다고 봐야지.”
“잘됐네요. 주서연 선배는 열심히 공부만 잘하시면 되겠네요.”
“··내일 주주총회 참석할 거지?
“아니요. 이미 분위기가 넘어왔는데 제가 필요하겠습니까? 혹시 모르니까 대리인을 보내겠습니다.”
“알았어. ”
“내일 수업은 들어오십니까?”
“오후 수업은 들어갈 수 있어,”
“알겠습니다. 정철 교수님이 찾으셔서 가봐야 합니다.”
“그래. 알았어.”
정철 교수실로 들어갔다.
“서예대전 대상 받은 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성북동에는 들어갔나?”
“어제부터 들어가서 살고 있습니다.”
“잘됐네. 내일 수업은 어떤 주제가 좋겠나?”
“대한민국의 정책 중에서 조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과 대표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성북동에 오자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이미 인연을 끊고 산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보연이 아들을 집으로 들인 이유가 뭡니까?”
“저희와 상의 한마디 없이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인사해라. 큰외삼촌와 작은 외삼촌이다.”
“이정민입니다.”
나를 보는 못마땅한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리와 앉아봐라.”
큰 외삼촌이 나를 불렀고, 나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너 성북동에 들어온 이유가 뭐냐? 외할아버지 재산이 욕심나서 보연이가 보낸 거냐?”
이제야 이들이 이곳에서 난리를 피우는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학교 기숙사가 편합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정철이 두 아들을 보며 소리쳤다.
“내 친아들, 손주 중에서 동방대 다니는 녀석이 있어?”
“······.”
“아버지. 제 둘째가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벌써 6년을 다니고 있는데 졸업은 할 수 있는 거냐? 그놈 왜 안 들어와. 혹시 군대 안 보낼 생각으로 미국에 보낸 거면 다시는 날 찾아올 생각하지 마라.”
“아버지. 그래도 친손자를 챙겨야지 외손자를 챙기시면 되겠습니까?”
“그래. 좋다. 친손자, 손녀 집으로 보내라. 나랑 같이 산다고 한다면 오히려 나야말로 좋다.”
이정민의 큰 외삼촌, 작은외삼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무도 토 달지 마라. 조금이라도 내 재산의 일부라도 상속받고 싶다면 나를 거스를 생각하지 마.”
이정철은 자식들을 보며 경고했다.
“너희들 다시 나를 찾아올 생각하지 마라. 나 죽으면 찾아와. 이미 고 변호사한테 유언 남겼다. 분란을 일으키면 너희들에게 갈 재산은 없다. 그만 가거라.”
두 형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나갔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너와 가족이다.”
“괜찮습니다. 참고로 저는 외할아버지 재산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게 어떤 것인지 알고 거부해?”
이정철은 두 아들에게 보였던 표정을 내게도 보여 주고 있었다.
“물려주신다면 받겠습니다.”
“고얀 놈.”
나는 2층에 올라와서 서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도환씨 조사는 어떻습니까?”
-조사는 끝났습니다. 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내일 오후 수업이 있습니다. 수업 전에 만나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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