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서재준이 비서실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내가 들어오자, 문을 열어서 잡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최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십니까?”
“헉. 관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현로는 뒷걸음치며 최 씨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인사하게.”
내 말에 이현로는 앞으로 나가서 인사를 했다.
“이현로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천호입니다.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안평대군의 책사를 볼 수 있어 영광입니다.”
“나를 아시오?”
“제가 안평대군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편하게 대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 인사가 끝났고,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일이 있는데 몽유도원도와 수양의 초상화를 전적으로 책임져 주게. 이정철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네.”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조만간에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고맙네. 자네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네. 무슨 일인가?”
“용광로와 범선을 배우고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따른 보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최 씨에게 말해 주지 못한 말이 있었다.
강화도 정수사 동굴의 비밀이었다.
“자네에게 알려 주지 않은 사실이 있네. 목효지와 이현로가 준비한 동굴이 있네. 10평 정도의 크기에 높이가 2M 정도이네. 그 동굴을 이용한다면 조선의 물건이나 대한민국의 물건을 서로 보내고 받을 수가 있네. 이를 활용한다면 더 편히 조선을 발전시킬 수가 있네.”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다시 준비시키겠습니다.”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드릴 것이 많은 것 같아 좋습니다.”
“준비되시면 연락해 주게. 태백에 있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서재주를 잘 활용하십시오. 유능한 친구입니다.”
“내 비밀을 알려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래도 됩니다.”
최 씨는 김 실장에게 서재주를 불러달라고 했고, 나에 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재주는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범선은 미 해군의 군함인 컨스티튜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두 달 이내로 국내에 전문가를 모시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작업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고맙네.”
나는 최 씨의 집무실을 나와서 성북동으로 향했다.
“확실히 보통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안평대군께서 말한 천신의 아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관상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에서 봤던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상황이네.”
“그렇습니다.”
“이정철을 이정민의 어머니와 만나게 해 드리고 싶은데 좋은 의견 있는가?”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한 달 이내로 죽는다고 말하는 게 쉽겠나?”
“신이 하겠습니다. 정리할 것이 있다면 딸을 만나러 가지 않겠습니까? 또한 이정민으로 알고 있기에 안평대군께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입니다.”
“자네가 알아서 해보게.”
성북동 집으로 들어갔고, 이정철이 지켜보고 있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꼭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보시게.”
이현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풍수와 관상을 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저보다 뛰어난 이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퍼지고 있습니다.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정철은 큰 숨을 내쉬고는 이현로에게 물었다.
“··사실인가? 내가 얼마나 살겠나?”
“한 달 정도입니다. 주변을 정리하시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정철은 담담히 이현로의 말을 받아들였고, 나를 쳐다봤다.
“엄마 보러 가시겠어요?”
“··그러자꾸나. 얼마 전부터 파래무침이 생각나더니···. 내일 가 보도록 하자. 미리 연락을 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이현로는 택시를 타고 돌아갔고, 내 방에 앉아서 문자를 보냈다.
-외할아버지께서 파래무침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내일 모시고 내려갈게요.
****
이정철의 차를 타고 서천으로 내려갔다.
“20년 세월 동안 네가 학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사진으로만 지켜봤다. 그만큼 네 어미와도 만나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의 그 결정이 후회되는구나.”
“과거의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내가 시간이 없지.”
이정철은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피아노 학원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자,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김 기사님이 문을 열었고, 저학년의 아이들이 쳐다보고는 뛰어가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원장님. 손님 왔어요.”
이정민의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이정철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많이 늙으셨네요. 파래무침은 엄마의 비법 양념이 들어가서 그 누구도 흉내 못내요. 잘 오셨어요. 아버지.”
3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집으로 이동했다.
“집이 좁구나.”
이정철이 집으로 들어와서 한 첫마디였다.
“무슨 소리예요. 정민이 서울 간 후에 너무 집이 커서 휑한데. 이쪽으로 오세요.”
식탁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국, 찌개를 데우고 있었다.
나는 휠체어를 밀었고,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고, 이정민 엄마가 이정철 옆에 앉았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거예요?”
“고혈압, 당뇨 같은 병이 있어서 혼자 움직이기 쉽지 않다.”
“엄마가 그렇게도 술, 담배 하지 말고 운동하라고 하셨는데 말을 안 들으셨어요. 아버지는.”
“네 어미가 그런 잔소리들을 많이 했지.”
“성북동에서 아버지 혼자 사시는 것은 아니죠? 오빠들 있잖아요.”
“그놈들이 나랑 함께 살겠다고 하겠어. 그놈들도 눈치나 보지.”
“아버지가 며느리한테 잘했으면, 언니들이 서로 모시려고 했을 거예요.”
이정철은 고개를 저었다.
국, 찌개를 그릇에 담고, 식탁으로 왔다.
“이 서방은 오지 않는 거냐?”
“말 안 했어요. 오늘은 식사만 하고 가세요. 다음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만나요.”
“그래 알았다.”
식사를 시작했고, 이정철은 음식이 맞는지 밥을 깨끗하게 비웠다.
“맛있구나.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어.”
“제가 엄마한테 음식을 배웠어요. 그래서 익숙해서 그러실 거예요.”
이정민의 엄마는 숭늉을 내왔다.
“아버지. 식사 끝나시면 숭늉은 무조건 드셨잖아요. 일부러 만들었어요. 다 드세요.”
“아직도 먹고 있다.”
숭늉까지 비우고 식탁에서 차를 마셨다.
“이거 받아라.”
이정철은 서류 봉투를 꺼내서 이정민 엄마에게 줬다.
“이게 뭐예요?”
“피아노 학원 건물 등기다. 어제 권 변호사에게 요청해 놨고, 조만간에 네 이름으로 처리될 거야.”
“월세 안 나가고 좋겠네요.”
“미안하구나. 이 서방에게도 너에게도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
“20년 만에 아버지에게 사과받네요. 다음에 같이 만나요.”
“그러자꾸나.”
이정민의 엄마는 이정철의 손을 잡아 주었다.
딩동
문자가 와서 확인했다.
-잠깐 1층에 내려올 수 있겠습니까?
이정민의 아버지는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는듯했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기억을 더듬으며 이정민의 친구를 떠올렸다.
“창만이 잠깐 보고 올게요.”
“그래. 다녀와.”
1층에 내려가자, 이정민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파트 놀이터로 이동했다.
“내가 내려올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평소와 다르게 아침에 분주해 보여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는데 장인어른까지 함께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정민의 아버지는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았고, 이정철에 대해서 말해줘야 했다.
“이정민의 외할아버지는 한 달 정도 후에 돌아가십니다.”
“장인어른도 아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상황을 상당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기는 서로 부담스러울 겁니다. 조만간에 서울에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서예대전 대상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정민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기에 나름 노력했습니다. 군대는 안 가도 될 겁니다.”
“언제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까?”
“··봄이 오면 나는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정민의 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제 아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정민의 아버지를 보내고 다시 아파트에 올라왔다.
소파에서 두 분이 대화하고 있었고, 내가 들어오자, 이정철이 내게 말했다.
“그만 가자꾸나.”
“알겠습니다.”
“아들. 할아버지랑 잘 지내. 아버지 모시고 서울 한번 올라갈게.”
“알겠어요.”
****
성북동에 도착하고 이정철에게 말했다.
“태백에 일이 있어서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월요일에 경매가 있어. 사무실에 가서 확인해 봐라.”
“알겠습니다.”
나는 태백으로 이동했다.
와사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논에 벼는 키가 많이 커 있었고, 고구마, 감자밭도 무성하게 잎이 풍성해졌다.
“정민아.”
이재현 선배는 얼굴이 시커멓게 타 있었다.
“공사는 어느 정도 진행된 겁니까?”
“다음 달이면 와사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잘됐네요.”
“그동안 바빴던 거야?”
할아버지도 공사 현장에 계셨다.
“이제 방학해서 시간이 많습니다.”
“잘됐어. 내가 닭 농장 하는 사람에게 부탁했거든 같이 가 보자고.”
“감사합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닭 농장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규모가 상당한 조립식 건물이 두 동이 있었고, 농장주인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이정민입니다. 닭 농장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잘 오셨어요. 젊은 분이 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우선 확인해 보세요.”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수많은 닭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건물 안에 6천 마리 정도 있어요.”
“병아리에서 육계로 나갈 때까지 얼마 정도 소요되는 겁니까?”
“삼계탕이나 치킨으로 나가는 것은 40일 미만으로 키우고 토종닭 같은 경우는 80일 정도 키워요.”
“달걀을 낳는 닭은 얼마 정도 키워서 낳게 됩니까?”
“5개월 정도 키우면 계란을 낳고, 1년에서 2년 사이까지 낳습니다. 그 후에 감소하기 때문에 처분을 하게 됩니다. 닭을 키우는 목적이 중요합니다. 달걀을 얻을 것인지 고기를 얻을 것인지 그리고 암컷을 키우게 됩니다.”
닭 농장주인은 수컷과 암컷의 생식기를 비교하며 보여 주었고, 사료와 온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
호프집에서 세 명이 모여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지금 확인 메일이 엄청 쌓여있습니다.”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 월요일 경매 진행해 보면 알겠지.”
장종화 실장의 말에 김인수와 문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종화 실장님은 일본작품 얼마 예상하십니까?”
“비트코인으로 1,000개 이상이지. 이지웅 실장이 예측하기에는 1,200개는 무난하다고 하더라.”
김인수는 폰을 꺼내서 계산을 해보고 입을 벌렸다.
“천억이 넘어가네요.”
“그래서 B팀의 주선호 실장이 일본에서 들어오기로 했어.”
김인수와 문태민이 서로 눈을 마주쳤고, 눈치를 보면서 장종화 실장에게 말했다.
“···솔직히 우리가 고생은 다 하고 월급 받는 처지잖아요. 조금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야?”
“물건을 팔고 현금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으로 받는데 실장님께서 중간에 잘 처리하시면···.”
“이 사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러다 걸리면 우리 다 죽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실장님. 비트코인입니다. 지갑에 넣어서 해외로 뜨면 어떻게 잡습니까? 아무도 몰라요.”
“맞습니다. 실장님. 이제 우리도 나이도 들고, 외국 나가서 편하게 살면서 여생을 보내야지. 월급 받아서 언제 집사고 골프 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실장님께서 낙찰한 후에 비트코인을 중간에 다른 지갑으로 넣고, 해외로 뜨면 아무도 모릅니다.”
“저희 둘은 그렇게 욕심 없습니다. 실장님께서 70% 가져가시고, 저희에게 15% 정도만 나눠주세요.”
장종화 실장은 둘을 쳐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실장님이 힘들다고 하시면 가만히 계십시오. 저희가 실장님 30%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냥 지갑 주소와 비밀번호만 알려 주십시오.”
계속된 설득에 장종화 실장은 흔들렸고, 셋은 오랫동안 호프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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