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 초야권? -
“음냐아~”
하품을 쩌억거리며, 창문 너머로 오늘도 평화로운 영지를 바라봤다.
용사로 소환된 지 10년, 아주 지겹도록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목숨까지 걸고 싸울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 희생을 바탕으로 이런 평화가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냐.”
마왕을 없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았다.
공주와 결혼을 하여 다음 황제의 지위를 누리는 것.
역소환 의식을 통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가능한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한 것은 아주 소박했다.
그저 이 한 몸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평화로운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나는 지쳐도 너무 지쳐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조차, 시선이 느껴지면 하지 못 할만큼 소심했던 내가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니.
전쟁 초기에는 매번 눈물을 흘리며 적을 베어 넘겼더랬지.
지금에는 아련한 기억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매일 밤 심각하게 눈물과 함께 자살을 고민했었다.
특히 초창기에는 단 하루도 눈물 없이 잠든 적이 없었다.
전선에는 아직 마계와 연결된 통로가 존재했다.
마왕은 죽었지만 마계 10공작 중 상당수가 온전한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나의 전쟁은 끝났지만, 마계와 이 세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영지 트리토니아.
인구는 불과 5천여명 남짓에 불과한 이곳에서 내 남은 삶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내가 용사임을 알고 있는 곳은 싫었다.
자의든 타의든 또 누군가의 검으로 이용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방관할 성정(性情) 또한 아니기에... 이곳으로 왔다.
내가 용사임을 아는 사람이 없는 대륙의 끝으로.
그리고 생계 걱정 없이 남은 여생을 누릴 수 있도록 영주의 지위를 가지고!
물론 현대에서 살고, 이곳에 와서는 싸움만 주구장창 해댄 내가 영지 운영에 대해 뭘 알까.
영지를 대리 운영해 줄 전문가와 함께 왔다.
탈세를 비롯한 기타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용사임을 아는 몇 안되는 영지의 인물이자, 지난 마계와의 전투에서 내가 속한 부대의 보급을 전담했던 믿을 만한 전우였기에.
카인 L. 라기스 남작.
이곳에 부임하며 받은 내 이름이었다.
기존의 이름은 너무 유명했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곳 트리토니아는 사실 독립된 영지는 아니었다.
이웃 영지 백작의 봉토였는데, 그의 배려로 인해 내가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영지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 그곳이 떠오르는 아련함이 느껴졌기에 향수를 자극했다.
다만, 이곳에 부임한 지 불과 1주일만에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졌다.
흔히 말한다. 마약, 섹스, 도박 중독에 빠지면 답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적용되는 말이었다.
전쟁, 살인... 이 둘에 익숙해지면 다른 그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함이 찾아 온다.
그나마 위에 말한 마약, 섹스, 도박으로 허기를 달랠 수는 있겠으나, 그 갈증을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심지어 나는 도박은 차지하더라도, 마약이나 섹스로 갈증을 달랠 수는 없었다.
마약이 이 육체에 통할 지도 의문이지만, 관념적 불쾌함이 그 이유였고,
섹스는...
현대의 나는 축복 받지 못한 아이였다.
나의 어미라는 사람은 의도치 않게 아이를 가진 고작 15살의 중학생이었다.
그녀는 그 나이의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았으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채 홀로 끙끙 앓았고, 결국 시기를 놓쳐 지우지도 못하고 나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아비라는 인간은 누군지도 모르고, 쫓겨나듯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
어느 사회에 가도 한 번쯤 뉴스에 나올 법한,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였다.
처음 이런 사연을 들었을 때가 내 나이 19살.
이제 막 고아원을 벗어나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충격이 컸으나, 오히려 분노는 없었다.
분노를 허락할 만큼 내 삶은 여유롭지 않았기에, 당장의 삶이 힘겨워 앞날에 대한 고민이 먼저였다.
딱히 반기지도 않는 어미를 찾을 만큼 낯짝이 두껍지도 않았다.
그저 오히려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을 알았다는 불쾌감만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런 어릴 적 트라우마는 사랑 없는 섹스에 빠지는 걸 거부하게 했다.
임신중절은 물론이고, 피임조차 안 되는 이곳에서 함부로 쾌락에 몸을 맡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용사의 혈통을 얻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황가와 여타 귀족들의 이목 역시 거부감이 들었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호감은 있어야 했다.
그저 용사의 혈통을 위해 몸을 던져오는 여인들이, 적어도 나에게는 매춘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도 아리따운 그녀들의 접근을 칼같이 차단했다.
그녀들의 전투력을 믿기에 등 뒤는 내줬지만, 그 미소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앞을 내줄 수는 없었다.
자결을 해서 이 무료한 삶을 끝낼지언정, 적어도 마약이나 섹스에 빠지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뭐 그렇다고 도박에 빠져 살 것도 아니다.
도박이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나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 가진 자들에게는 잠시의 유흥에 불과했으니까.
내게는 일확천금을 바래야 할 곤궁도, 당위성도 없었다.
지금 가진 재물도 다 쓰지 못 할 텐데, 도박은 무슨.
그런고로 은퇴한 지금의 나는 미친 듯이 무료했다.
-똑똑.
집무실 창가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나.”
“잘 주무셨습니까, 남작님.”
“허헛.”
나도 모르게 헛웃음부터 나왔다.
전장에 찌든 우리가 저런 안부를 주고 받다니!!
아무렇지 않을 저 아침 인사를 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전쟁터에서는 아침 안부 인사 따위 없었다.
그저 비명 소리가 기상종이었고, 동료의 뜨거운 피가 세안물이었다.
가장 노곤 할 시간은 기습의 최적기였고, 새벽은 언제나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첨병이었다.
헛웃음과 함께 아련한 상념에 잠긴 나를 보며, 부관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제는 익숙해지셔야지요.”
“그래야지. 미안하네. 그래 영지 전반에 대한 전권을 줬는데 무슨 일로 찾아 온 겐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절 보실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네만. 영지로 온 지 얼마 안 돼서 자네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으니 하는 소리지.”
“그걸 아시는 분이 여기서 이렇게 멍이나 때리고 계시는 겁니까? 와서 조금이라도 도와주실 생각은 없으시고?”
“크흠.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에효.
부관의 한숨 소리가 나직이 들려온다.
아니, 그렇다고 여기서 뭘 더 하긴 죽어도 싫은 데 어쩌라고.
계급이 깡패인데 까라면 까야지.
“일단 영지 업무를 대충 정리했는데 당연히...... 보실 생각 없으시군요. 하.”
“......”
고개를 살짝 돌린 상태로 어처구니 없다는 그의 반응에 대꾸하지 않았다.
사람인 이상 하나를 보기 시작하면 눈에 걸리는 게 들어오고, 그럼 두 개, 세 개... 결국 영지 전반을 내가 관리하게 될 테니까.
“혹시 몰라서 전부 가지고 왔는데, 필요 없는 듯하니 앞으로는 이런 보고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고서 정리가 오히려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라서요.”
“그럼, 당연하지. 앞으로는 모든 보고를 생략하도록.”
짧지만 현대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나다.
희한하게도 윗사람이란 존재는 구두 보고를 싫어한다.
또한 실무보다 보고서에 적힌 단어 하나, 줄 바꿈 한 번에 더 신경을 쓰는 존재들이다.
보라는 내용은 안보고, 폰트 크기나 단어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다시 작성해 오라고 하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런 주제에 이미 보고서에 본인의 사인이 떡하니 박혀 있건만,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왜 보고 안 했냐고 타박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나라고 다르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재벌 3세 막내 아들 모드로 기어를 올렸다.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도 없고, 그저 가진 부를 즐기며 사는 상상만 해도 즐거웠던 존재.
사실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거 같던 회사가 내 퇴사 이후에도 멀쩡하게 돌아가듯이, 영지야 영주인 내가 난장판만 안치면 꾸역꾸역 돌아가게 마련이다.
가장 기본적인 세율, 치안만 책임져줘도 크게 문제가 생길 여지 따위 없다.
내부적으로 보면 그렇고, 외부적으로 보면 이웃 영지와의 마찰이나 황가를 포함한 중앙 정치권과의 관계 등을 들 수 있다.
...만은 이곳의 영주가 나인 순간 외부적 요소들은 큰 고민 거리가 되지 못 했다.
“그래도 이거 정도는 읽어 보시죠.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추려온 것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종이들 중에, 맨 위의 1장만을 책상 위에 올려둔다.
“맘에 들었네 부관. 앞으로도 이렇게 부탁하지.”
“하... 진짜 피비린내 나는 전쟁통이 싫어 따라오기는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주군을 만난 것 같군요. 분명, 전쟁터에서는 그 누구보다 주도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내가 좀 그렇긴 했지.
내가 가장 강했으니깐.
가장 전선의 앞에 서야 했고, 가장 늦게 부대에 복귀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실행했고, 무리라고 판단하면 물려야 했다.
“여긴 전쟁터가 아니니까. 그때는 내가 최강이었지만, 적어도 영지 관리에는 자네가 최강이니까! 알지 않나. 멍청한 지휘관은 유능한 적보다 무섭다는 걸.”
“......그걸 아니까 참고 있는 겁니다.”
“고맙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네, 그럼 편안한 시간 되시길.”
부관의 퇴장과 함께 집무실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보고서 1장.
아무런 생각 없이 읽다가, 마지막 한 줄에서 부관에 대한 배신감과 깊은 빡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트리토니아 영지 -
인구 : 약 5천 (약 1700백 가구)
영지 현황 : 본성 및 마을 5곳
세율 : 50%(황실에 납세 의무 없음)
구성 : 농지 50%, 상가 30%, 마탑 20%
예상 1년 영지 세수 : 약 1000만 골드
평균 1년 영지 관리비 : 약 700만 골드
......
금년 잔여 초야권 대상 : 5건 (거부 불가)
하? 이것 봐라. 미친 거 아닙니까,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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